- 분명히 재미는 있었는데, 장동민의 예리함과 현명함이 분량을 메워주지 않았다면 그냥 망한 회차로 기억되었을 뻔한 에피소드였습니다. 1시즌 좀비 놀이의 재림이었달까요.


- 가장 큰 문제점은 제작진에게 있었습니다. 메인 매치를 잘 못 만들었어요. '더 지니어스' 참가자들에게 주어지는 기본적인 목표는 생존입니다. 우승은 하면 좋은 것이긴 해도 일단 사는 게 중요하죠. 위험을 걸고 우승을 노리느냐, 그냥 안전빵으로 생존을 챙기느냐... 라는 선택이 주어진다면 후자를 선택하는 게 현명한 게임이라는 얘깁니다.

 그런데 지난 에피소드에서 역적팀에겐 너무나도 강력한 유혹이 있었어요. 다른 때 같았음 배신을 하더라도 실패할 여지가 있었을 것이고, 또 배신을 성공하더라도 데스매치에 끌려가게 될 위험이 있었겠죠. 그래서 배신이냐 승부냐를 고민해 볼 여지가 있었을 텐데. 하지만 이번 게임의 룰은 너무나도 강렬하게 역적팀으로 하여금 배신을 유도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냥 배신하고 '누구랑 누구도 역적이래요! 충신들 우승하시고 대신 난 감옥에서 빼주셈' 하면 배신자는 100% 안전하게 생존하게 되는 룰이었으니까요.

 물론 게임의 초반 전개가 역적들에게 유리하게 흘러갈 수 있었다면 또 달랐겠지만 '야! 모두 다 모여! 여기서 빠져나가면 바로 감옥이야!!'라고 장동민이 외치는 순간 이미 역적들에겐 절대적으로 불리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ㅅ=;;


- 물론 김유현의 어색한 연기도 문제였고 또 차례로 장동민에게 찍혀 나온 김경란, 최정문의 부족함도 결과에 큰 영향을 주긴 했지만 그 역시 역적팀에게 운신의 여지를 확보해주지 않은 제작진의 실책이 더 큰 문제였다고 봅니다. 아니 뭐 자기들끼리 대화라도 나눌 여지를 줘야 뭘 하든지 말든지 하죠. 명색이 한 팀인데 서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확인할 틈도 없으니; 예를 들어 '나 그거 100자리까지 아는데!' 라면서 충신들에게 술술 정답을 불러주는 최정문을 보며 김경란이나 김유현이 그 속마음까지 알아서 판단해야하는 상황 자체가 역적들에겐 심각한 핸디였단 얘깁니다.


- 김경란이 또 욕을 먹고 있더군요. 

 뭐 시청자들 입장에서 예능 프로 승부 때문에 사람이 그렇게 핏대를 세우는 걸 보는 게 그다지 기분 좋은 경험이 아니긴 하겠습니다만. 김경란은 화 낼만한 상황이었고 또 화 낼 자격이 충분했어요. 위에서도 적었듯이 이 날 메인매치는 역적들 중 누구 한 명이 먼저 배신하면 바로 게임 종료, 그리고 그 배신자는 100% 생존하는 게임이었고. 그 와중에 가장 먼저 배신 오퍼(...)를 받았던 게 김경란이었죠. 이미 장동민에게 역적으로 의심을 받고 있었고 그걸 본인도 눈치 채고 있었으니 걍 상콤하게 배신 때리고 혼자 살면 되는데 이 분은 그러지 않았죠. 어떻게든 끝까지 역적 셋이서 뭔가 해 보고 싶었고 그래서 그렇게 했었던 겁니다. 물론 능력이 부족하긴 했지만서도 그토록 연기 못 한다고 욕먹던 사람이 막판에 그 필사의 연기를 펼치는 거 보세요. ㅋㅋ 심지어 제 가족분도 처음엔 역적이라고 확신하다가 막판에 헷갈리셨...;

 게다가... 사실 이 분이 욕 먹는 가장 큰 이유는 게임 능력이 떨어지면서 맨날 사람들 휘어잡는 식으로 생존한다는 건데. 제가 늘 주장하는 바이지만 지니어스 게임에선 그것도 능력이거든요. 제 입장에선 최정문보다 오히려 김경란이 훨씬 뛰어난 플레이어이고 결국 3시즌 통틀어서 최고의 여성 참가자입니다. 비록 그 플레이가 구경하는 재미는 없을지 몰라도 말이죠. (쿨럭;) 

 그리고 어쨌거나 포커 플레이어를 포커로 꺾고 데스매치 생존까지 했잖아요. 이제 이 분 좀 그만... 까진 아니어도 좀 덜 까였으면 좋겠습니다. ㅋㅋ


그리고 이 날 최정문의 배신은 평상시 지니어스 게임의 배신들과는 좀 성격이 달랐어요.

 예를 들어 1시즌의 나름 유명한 장면이었던 김성규씨의 뭐시기 경매 게임 장면이 있습니다. 그 장면에서 성규는 자신과 느슨한 연합 관계를 맺고 있던 홍진호에게 배신을 당하지만 그걸 눈치채는 순간 1초의 주저도 없이 바로 상황을 다시 엎어버리고 메인 매치에서 우승을 거두죠. 보통 지니어스 게임에서의 배신이란 이런 거였거든요. 배신으로 상황을 크게 바꿀 순 있어도, 보통은 배신 당한 측에서도 그 상황을 어떻게 해 볼 여지는 주어지는, 뭐 그런 식이었습니다만. 위에서 몇 번을 말 했듯이 저번 게임에서 역적의 배신이란 그대로 게임 종료... 나머지 플레이어들은 정말 손을 놓고 당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행위였죠. 제작진이 그렇게 만들어 놓았으니까요.


 게다가 다른 때 지니어스 게임의 연합과 배신이란 어차피 그 날 상황에 따라 자율적으로 형성된 연합에 자기 의지로 가입했다가 자기 의지로 탈퇴하는 것이었지만 이 날 역적 연합은 애초에 강제 구성이었으니 (애초에 본인들이 무덤을 판 부분이 있다고는 해도) 배신에 따른 완패를 겪은 김경란과 김유현의 허탈감은 더욱 컸을 겁니다. 제가 볼 땐 빡칠만 했어요. 다들 막판에 김경란이 사과하는 최정문을 쳐다보지도 않았다고 독하다고 비난하던데 그 장면을 잘 보면 김유현도 마찬가지로 최정문을 완전히 외면하고 있습니다. ㅋㅋㅋ


- 암튼 그래서 결론은 장동민은 훌륭하다. 입니다. 이상민 나가버리고 예능은 누가 하나 걱정하는 사람들도 많았는데 홀로 외로이 딜러들 상대로 어떻게든 분량 뽑으려고 고군분투하고 있더군요. 제작진 입장에선 정말 고마운 출연자일 듯. 아니 뭐 물론 얼마전의 그 사건 때문에 '나 장동민 싫어서 지니어스 안 봐'라는 사람들도 많으니 병 주고 약 주고일 수도 있긴 하겠습니다만(...)


- 마지막으로.

 1, 2시즌을 보는 동안에 종종 '아, 이건 제작진이 좀 대놓고 개입을 하는 듯?' 이라는 생각이 드는 장면이 종종 있었는데. 제겐 이번 게임이 그랬습니다.

 숫자 배열을 원주율로 해 놓았는데 놀라운 우연으로 최정문이 그걸 외우고 있고 또 그 최정문이 하필 역적이라니! 라는 드라마틱한 상황이 좀 맘에 걸려서 검색을 해 보니 최정문이 시즌 1 이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나 원주율 100자리까지 외움' 이라는 발언을 한 적이 있더라구요. 아마도 그걸 알고 활용해 보려는 의도로 만든 게임 같은데... 그게 또 하필이면 최정문이 저번 시즌에 거하게 삽질했던 좀비 게임이랑 비스무리한 룰을 가진 게임이었고. 또 하필이면 최정문이 첩자 역할이고...

 아니 뭐 설마 최정문이 좀비에 이어 역적이 된 것까지 제작진이 손을 쓰진 않았겠습니다만. 3.141592의 활용은 분명 최정문을 염두에 둔 설정이었을 것 같아요. 다만 문제는 최정문이 그걸로 뭘 해보지도 못 했다는 게... ㅋㅋㅋ


+ 남아도는 잉여력으로 김성규씨 장면을 찾아 보았습니다.



근데 이렇게 보니 감흥이 덜 하네요. 본방으로 볼 땐 (제겐) 홍진호 오픈패스 다음 정도로 기억될 정도로 정말 짜릿한 장면이었습니다만. ㅋㅋ


++ 덤 한 마디 추가하자면.

 김경란이 데스 매치 종목 고를 때 '어차피 질 거 시원하게 상대방 주종목으로 지고 싶다' 면서 포커를 남겨 놓는데. 뭐 진심이었던 것 같습니다. 고작해야 '지면 망신인데 어떡하지?' 라는 부담 정도 안겨 주자고 프로를 상대로 상대방 주종목을 선택한다는 건 웃기잖아요. 그것도 자기가 탈락했던 종목인데.

 장동민이 이리저리 코치를 잘 해주기도 했지만 김경란 본인이 참 침착하게 잘 했는데... 어찌보면 이것도 '어차피 난 질 거니까'라는 편한 마음 덕분이 아니었나 싶기도 합니다.

 아이러닉했던 건 김유현이 가장 큰 삑사리(막판 올인 말구요. 그건 상황상 확률상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죠)를 저지른 이유가 김유현이 준비를 열심히 해왔기 때문이었다는 겁니다. 김경란의 저번 시즌 인디언 포커 플레이를 보고 성향을 예측한 건데 김경란이 그 때의 반대로 반응해 버리면서 대참사를 당했죠.

 더불어 이준석과 유정현의 데스 매치 생각도 나더라구요. 거기서 이준석도 유정현 출연 시즌을 공부하고 와서 성향을 예측했는데 유정현은 하던대로 그냥 해서 졌죠. 이준석이나 김유현이나 똑같이 상대의 과거를 공부해와서 승부했는데 그 결과는 전혀 달랐다는 게 재밌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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