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인적으로 이건 영화 특성상 스포일러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어쨌든 마지막에 둘이 이혼을 하게될지 말게 될지를 적지 않고는 글을 쓸 수가 없네요. 그래서 딱 그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스포일러 방지용 여백 만드는 김에 공식 예고편도 넣어 보구요.









 - 먼저 블랙 위도우를 소개하는 카일로 렌의 나레이션으로 시작합니다. 다 칭찬이에요. 정말 멋진 사람이고 그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 같습니다. 이 나레이션이 끝나면 블랙 위도우의 차례죠. 카일로 렌 역시 멋진 사람이고 둘은 진심으로 서로 사랑하나봐요. 그리고 이 나레이션이 끝나면... 이게 다 이혼 준비를 위해 담당자가 시킨 일이라는 게 밝혀지죠. 제목은 '결혼 이야기'인데, 내용은 '이혼 이야기'입니다.

 재미도 없는 배우 농담은 그만두고, 남자는 '찰리' 여자는 '니콜'입니다. 원래 니콜은 헐리웃에서 막 뜨기 시작한 LA 토박이 배우였으나 연극 연출가 찰리에게 반해서 다 때려치우고 결혼해서 뉴욕으로 이사해 와서 예쁜 아들(정말로 예쁘게 생겼습니다!!!) 하나 낳고 남편 연극에서 주연을 맡으며 살고 있었어요. 그런데... 음... 뭐 특별한 건 없습니다. 그냥저냥 잘 살다가 어느 순간 '아, 이게 잘 사는 게 아니었나봐'라는 걸 깨닫고 이혼을 준비하기 시작하게 된 거죠. 줄거리 소개는 여기까지요.



 - 한국인으로서 미국 영화들을 보다보면 늘 '쟤들이 실제로 저래?' 라는 생각이 드는 문화적 차이들이 꽤 있죠. 개인적으로 그 중에서 보면 볼 때마다 신기한 것 하나가 바로 이혼입니다. 이혼을 결정하고 또 진행하는 과정도 신기하고 이혼 후 자식을 중심으로 서로 얽히며 살아가는 모습도 신기하고 그래요. 어찌보면 한국보다도 '가족'이란 걸 훨씬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구요. 또 어찌보면 '자식 때문에 참고 산다!!'는 한국 사람들보다 이혼은 쉽게 하면서도 반면에 훨씬 자식을 배려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암튼 신기합니다.

 이 영화의 찰리와 니콜을 보면서도 마찬가지로 신기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혼 과정을 밟고 있고 서로 욕하고 싸우고 증오하지만 동시에 여전히 사랑하고 있고 그렇다는 사실을 서로에게 숨기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우린 함께 살 사이는 아닌가벼'라고 판단이 되니 그냥 제 갈 길 가는 거죠. 하지만 결국 자식을 중심으로 평생을 얽혀서 살아가게 될 거구요. 음. 이렇게 적으면서 생각해보니 다시 한 번 더 신기하네요.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그런 부분 때문에 그리 크게 감정 이입을 하며 보지는 못 했습니다. 그런 '미국식 이혼'은 영화로만 배웠지 아무래도 남의 나라 일이란 느낌이라.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가정을 꾸리고 잘 살다가 일상에 지쳐서 감정이 옅어지고, 그러다가 서로 실수도 하고, 서로를 잘 이해 못 하게 되면서 균열이 커지고, 그러면서 서로 상처주고... 이런 보편적인 이야기를 하는 영화이고 그런 면에서 감정 이입할 부분은 충분히 많습니다만. 그래도 어디까지나 미국적인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 생각도 났어요. 아들 하나를 둔 부부가 이혼하면서 법적 다툼을 벌인다는 기본 요소를 제외하곤 전혀 다른 이야기죠. 하지만 또 어찌보면 딱 40년(끄악... 세월이여. ㅠㅜ)의 차이를 두고 진행된 결혼과 이혼, 남성과 여성의 역할에 대한 미국인들의 인식 변화를 잘 보여주는 영화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는 그냥 대놓고 눈물 짜내는 멜로드라마잖아요. 이혼은 끔찍한 비극이고 그 안에 얽힌 모두의 삶이 비극이 되는 일이었죠. 하지만 '결혼 이야기'에서의 이혼은 뭐랄까... 그냥 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겪게 될 수도 있는 삶의 한 과정 같은 느낌으로 그려집니다. 피곤하고 힘들지만 잘 극복해낸다면 길게 볼 때 그리 나쁠 것도 없고, 또 잘 하면 인간적으로 성숙해질 수도 있는 뭐 그런 경험이요.



 - 종종 리처드 링클레이터 영화를 보는 기분이 들기도 했습니다. 삶을 관조하는 듯한 시선도 그렇고, 큰 의미 없는 수다 장면들의 연속을 통해 등장 인물들의 변화와 성숙을 차분하게 보여주는 느낌도 그렇구요. 뭐 이게 리처트 링클레이터의 전매 특허 같은 건 아니지만 제가 본 영화가 그리 많지 않아서 그래요. ㅋㅋㅋ



 - 사실 무려 2019년에 나온 영화이기도 하고, 배우들의 면면도 있고 하니 부부 중 어느 한 쪽의 편을 대놓고 드는 이야기는 아닐 거라고 짐작을 하고 봤죠. 그 예상이 아주 틀리지는 않았는데... 그래도 상황 설정상 '남자가 잘못했네'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는 내용입니다. 근데 동시에 아주 은근슬쩍 남자 쪽에 감정 이입을 하는 이야기이기도 해요. 볼 때는 전혀 그런 생각을 안 했는데 다 보고 나서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렇습니다. 따지고 보면 그 난리통을 겪은 후 철이 드는 것도 남자 쪽이고. 초반엔 여자 쪽 입장을 많이 보여주는 것 같지만 정작 중요한 후반부로 가면 남자쪽의 비중이 확 커지거든요. 

 하지만 걱정은 마시길. 그 와중에 감독이 그래도 균형을 열심히 잘 잡아주기도 하고, 또 애초에 누구 한 쪽을 비난하려는 이야기도 아니거든요.



 - 본격 이혼 전문 변호사들 욕하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중반부에는 정말로 '이거 미국 이혼 제도의 현실을 비판하려는 영화였어?'라는 생각도 잠깐 했네요. ㅋㅋㅋ 근데 그 장면들도 재미있어요. 로라 던과 레이 리오타가 양측의 변호사 역할로 재밌는 연기를 보여주거든요.



 - LA와 뉴욕을 비교, 대조하는 대화의 비중이 좀 희한할 정도로 높습니다. ㅋㅋ 남자랑 여자가 계속 뉴욕이 좋다 엘에이가 좋다 아들은 뉴욕에서 살아야한다 엘에이에서 살아야 한다... 이러면서 싸우거든요. 영화 속 장면도 두 곳을 계속 오가구요. 그러면서 두 동네의 대조적인 풍광과 문화도 조금씩 보여주는 게 재밌더군요. 그런데 계속계속 집요하게 반복돼서 나중엔 결국 저를 피식 웃게 만들었던 '엘에이는 공간도 넓고' 드립을 보면 감독은 아무래도 뉴욕편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까지 적고 나서 검색해보니 감독이 뉴욕주 출신이네요. 그럼 그렇지.



 - 아담 드라이버는 정말 덩치가 크더군요. 스칼렛 요한슨과의 투샷이 잡힐 때마다 '우와 진짜 크네!!'라는 생각을 계속 했습니다. 찾아보니 키도 189cm나 되는데 또 어깨가 엄청 넓어서... 음. 근데 자꾸만 카일로 렌의 상의탈의 배바지 짤이 생각납니다;;;



 - '믿을 수 없는 이야기'의 교회 다니는 형사님이 여기에도 나와요. 니콜의 언니 역할인데 역시 비중이 크지는 않습니다만. 대략 10초 정도 나왔던 '버드맨'에 비하면야...

 


 - 이쯤에서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한때 사랑했던 이들이 헤어지는 과정에서 서로 상처 주고 상처 입고 하면서 성숙해가는 과정을 그리는 '인생만사 다 그렇지 뭐' 류의 이야기에요. 

 이야기에 msg를 거의 첨가하지 않고 차분하게 관조하는 시선을 유지하지만 또 웃길 때는 정말로 웃기고 슬플 때는 가슴 먹먹해지고 그렇습니다.

 연출도 좋고 배우들 연기도 좋고 재미도 있고 불쾌하게 자극적인 부분도 없으면서 보고 나면 생각할 꺼리도 주고... 게다가 어차피 이제 넷플릭스 컨텐츠이니 한 번 시도해보지 않을 이유가 없는 작품입니다.

 시간 나실 때 한 번 보세요. 전 아주 만족스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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