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어, 쓰기

2019.08.22 22:27

Sonny 조회 수:389

우린 모두 몹쓸 예시로 국어를 공부하며 자라났습니다. 띄어쓰기의 무시무시함을 익히기 위해 아버지를 가방에 한번씩 넣어야 했어요. 딸아, 아들아, 이게 무슨 짓이냐? 띄어쓰기를 잘못한 사람들을 탓하세요, 아버지. 여러분의 아버지는 순순히 가방에 들어가던가요. 아니야. 아니야. 내가 들어가려던 건 가방이 아니라 방이었단다아아... 누군가의 아버지는 단말마와 함께 부릅뜬 눈을 마지막으로 가방의 지퍼가 잠겼을지도 모릅니다. 저희 아버지는 순순히 가방에 들어간 편입니다. 커다란 볼링백에 다리 한 쪽씩을 넣고 얌전히 무릎을 모으더라구요. 저는 최대한 아버지를 배려해서 넉넉한 크기의 가방을 준비해드리곤 했습니다. 하지만 얄짤없이 지퍼를 올렸습니다. 가방을 탁탁 치고 마음 속에서 크게 외쳤죠. 아버지 가방에 들아가신다~~~~~ 이거 다 상상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는 거 아시죠...

안동시체육회, 어그거실화, 양변 기가막힙니다... 패륜 없이도 띄어쓰기를 배우는 여러가지 예시들이 있지만 아직도 아버지는 가방에 들어가곤 합니다. 갑자기 오컬트적 의혹을 제시하고 싶습니다. 혹시 사도세자의 원한이 일으킨 언어적 복수는 아닐까요? 뒤주에 갇혀 죽은 아들의 혼령은 국어선생들의 꿈에 나타나 아비를 가방이 가둬달라는 읍소를 하고... 어쨋든 잘 띄어 써야 합니다. 너무 붙어있으면 일단 웃기게 읽게 되잖아요. 사람이란 게 참 그래요. 정답이 눈에 보이는데도 괜히 오답대로 따라가며 킬킬대는 이 심술. 그렇습니다. 띄어쓰기는 인간의 심술을 억제시키기 위한 도덕적 장치였던 것이었던 것이었던 것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여간 귀찮지 않습니까. 국문학과 학부생도, 학사님도, 석사님도, 박사님도 헷갈려하는 게 띄어쓰기잖아요. 좀 대충 살면 안될까요. 아버지 가방에 들어가면 안되지만, 조사같은 건 좀 붙어도 누가 오해할 여지도 없을 텐데요. 전 아직도 할 수 있다나 어쩔 수 없다 이런 게 어렵습니다. 그리고요. 틀리면 또 어떻습니까. 우리의 워드 프로그램들이 알아서 빨간 줄을 좍좍 그어주는 걸! 아차차 아버지 가방에 들어가는 건 빨간 줄을 그어주지 않으려나요. 역시 아직은 인간님께서 편집자를 해야겠군요... 오해를 방지하자면 전 맞춤법은 지켜야 한다고 믿습니다. 단지 띄어쓰기에 한정해서는 대다수 국민이 한정적 문맹으로 남을만큼 너무 까다로운 건 아닌가 좀 투덜대고 싶은 거죠. 붙어있어도 안헷갈리는 건 그냥 이 참에 접착시켜버리면 어떨까요?

혹시 띄어쓰기라는 명칭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요. 원래 글이라는 건 단어들이 나열되어있는 거고, 간간이 틈이 있을 뿐이지 좌르르 붙어있잖아요. 기본적으로 붙어있는 이 구조에서 띄어서, 틈을 벌려야 하니까 이 부가적인 작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띄어쓰기를 뛰어쓰기로 불러야해요. 단어 위를 쭉 달리다 "아버지가"와 "방에" 사이를 폴짝 뛰어넘는 슈퍼마리오처럼요. 힘차고 씩씩하지 않습니까? 뭔가 리드미컬하고 씐나는 이 명칭이야말로 불필요한 "띄어쓰기"의 강박에서 코리안을 구해낼지도 모릅니다. 거기서 잠깐 멈추고, 뛰어! 떨어지면 죽는 그런 건 아니지만, 아버지가 방에 들어가실 때 조금 더 신나게 들어갈 수 있을 거 같은데요. 에.... 그런데 아버지 가방에 들어갈 때도 뛰긴 뛰네요. 네 그럼 아버지는 어딜 들어가든 신나게 뛰어 들어가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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