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일상 때문에 극장에서 상영할 당시에 놓쳐서 며칠 전에 DVD로 풀린 <블루 재스민>을 아마존 스트리밍 서비스로 봤습니다. 


영화를 보자마자 딱 떠오른 것은 Tennessee Williams의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Streetcar Named Desire>가 아닌 Madoff 금융사기건이었습니다. 


2008년 12월에 Madoff 스캔들이 터졌을 때 신문에서 읽고 대충 알긴 했지만 영화 <블루 재스민>을 보고 나니 궁금해져서 


인터넷을 좀 뒤져봤습니다.



이 사건을 알고 있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듀게나 국내 영화 잡지에선 영화 <블루 재스민>과 Madoff 사건과 비교한 글이 보이질 않더군요. 


Madoff 금융사기가 한국에선 그다지 거론되지 않았나 봅니다. 그래서 그 사건을 요약하면서 <블루 재스민>에 대해서 잡담해 보겠습니다.



2008년 미국 경제가 부동산 버블이 꺼짐과 동시에 월스트리트의 막강한 금융관련 회사들이 문을 닫네 마네 하고 있을 때 


Bernard Madoff 라는 이름난 투자자가 600억 달러 (60 billion)가 넘는 금융사기를 상당한 기간 (20년 정도) 저지르고 있었다는 것이 폭로되고 구속되었습니다.  


미국 역사상 가장 규모가 큰 금융사기라고 해서 미국 내 언론에선 난리였죠. 숫자가 너무 커서 한글로 번역하기도 힘드네요. 



이 사람이 저지른 금융사기는 "폰지 스킴 (Ponzi Scheme)" 이었는데 실질적이고 합법적인 투자없이 기존의 투자자들에게 새롭게 끌어들린 다른 투자자들의 


돈으로 후한 배당금을 주면서 투자사를 운영하는 금융사기이죠. 


금융 피라미드라고 할 수 있는 일종의 돌려막기인데  Bernard Madoff 는 자신의 입으로 90년대 초부터 폰지 스킴으로 자신의 투자사를 꾸렸다고 합니다. 


보통 폰지 스킴으로 오래가지 못하는데  Madoff는 교묘하게 후하지만 과하지 않는 배당금과 금융천재 이미지 메이킹으로 거의 20년 가까이 


엄청난 규모의 투자금을 끌어들였고 그 돈으로 그와 그의 가족들은 뉴욕 상류층의 삶을 마음껏 누렸죠. 



그의 사기가 발각난 사연도 흥미롭습니다. Madoff 에겐 장성한 아들이 둘 있고 둘 다 아버지 회사에서 일했습니다. 


2008년에 세계 경제가 악화되면서 더이상 버텨내기 힘들었던  Madoff가 아들들에게 자신의 죄를 털어놓습니다. 


희대의 금융 사기꾼인 Madoff를 고발한 것은 바로 그의 아들 Mark와 Andrew였습니다. 


가장 가까운 가족이 고발했다는 것이 영화 <블루 재스민>에서 재스민이 남편 할을 FBI에 고발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아들이 아버지를 고발한 것도 천재적인 사기꾼인 Madoff 가  혼자 다 뒤집어쓰고 가족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꾸민 계략이라고 하더군요. 



2만명에 가까운 투자자가 얽혀 있고 실질적인 손실액은 200억 달러(20 billion)에 달한다고 하니 사실 어마어마한 금융사기 사건이었죠. 


가족들이 평생 모은 돈을 Madoff 때문에 몽땅 날린 후 자살한 투자자도 있고 영화 <블루 재스민>에서 보듯이 평생 열심히 일해서 모은 돈, 


새 삶을 시작할  씨앗돈까지 다 날린 개미투자자들이 부지기수입니다. 


Madoff 본인은 150년 징역을 선고받고 지금 복역 중인데 200살이 넘도록 살아야 징역을 끝낼 수 있으니 감옥에서 죽을 신세죠. 


가족들은 장남인 Mark가 아버지 체포 후 2년 되는 시점에서 목을 매달아 자살했고 차남인 Andrew는 약혼자의 도움에 힘입어 새삶을 산다고 합니다. 


영화 <블루 재스민>에서 사기 당사자인 재스민의 남편, 할이 감옥에서 목매달아 자살한 것이랑 


할의 아들인 데니가 아내 잘 만난 덕분에 마약도 끊고 중고 기타점을 운영하면서 소박하게 사는 게 떠오르지 않습니까?



케이트 블란쳇이 연기한 재스민은 Madoff의 아내인 Ruth를 모델로 한 것이 분명합니다. 


Madoff 의 아내 Ruth는 남편이 사기로 벌어다 주는 돈으로 9채나 되는 호화 주택을 소유하며 


엄청나게 사치스러운 삶을 누렸지만 직접 사업에 관여한 경우는 거의 없다고 주장합니다.


Madoff 가 구속된 후에 침묵을 유지하다가 남편이 150년 징역이라는 선고를 받을 때 성명서를 하나 발표했는데 


"나는 전혀 몰랐다. 나도 평생 믿은 남편한테 배신 당해서 혼란스럽고 괴롭다" 라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지요. 


이 성명서에 다들 기함을 합니다. 대다수가 Ruth 가 남편의 사기행각을 알고 있었는데도 죄가 없는 양 모른 척 한다고 분노했지요. 


그리고 남편의 재산 몰수 과정에서 8억 달러 (800 million)가 넘는 두 사람 명의의 자산을 포기하는 대신에 250만 달러 (2.5 million, 원화로 30억 쯤)를 


자기 명의로 유지할 수 있도록 검찰과 협상을 했는데 그것에 분노한 사람들도 많았죠. 하지만 검찰이 민사소송까지 막을 수 없기 때문에 


250만 달러는 연이은 민사소송과 변호사 비용으로 대부분 다 사라지지 않았을까 추측하더군요. 



결국 사건 이후에 플로리다에 있는 여동생집에 몇년 얹혀 지냈는데 그 여동생도 형부인 Madoff 덕분에 돈을 날렸다고 하더군요. 


이 대목은 영화 <블루 재스민>에서 빚을 잔뜩 진 채 샌프란시스코의 여동생 아파트에 얹혀 살 게 된 재스민의 처지랑 비슷합니다. 


참, <블루 재스민>의 재스민 캐릭터처럼 Ruth Madoff는 유태인으론 드물게 타고난 금발미녀라고 합니다. (지금은 70세가 넘은 고령이라서 미녀라고 하기엔 좀 그렇지만)


남편 Bernard Madoff 랑은 고등학생 시절에 만났는데 치어리더로 잘 나갔고 트로피 와이프가 될 자질을 갖추고 있었죠. 



쓰고 보니 장황한데 우디 알렌의 <블루 재스민>은 Madoff 사건과 Ruth Madoff 라는 인물에 기반해서 만들어진 영화라는 추측을 벗어나기 힘들 것 같네요.


<블루 재스민>의 사기 투자자 할이 십대에 불과한 여성과 바람을 피운다는 점에서 우디 알렌이 전 아내였던 미아 패로의 입양아인 순이 패로랑 결혼한 일을 떠올리는 분들이 


많은 것 같은데 Madoff 사건의 그림자가 순이 패로보다 몇 배는 더 짙은 것 같아요. 

  


Bernard Madoff 가 <블루 재스민>의 우디 알렌처럼 뉴욕 출신의 유태인이라는 것도  슬쩍 집고 넘어가야겠어요. 


Madoff 에게 사기당한 투자자들의 상다수가 유태인들이라고 합니다. 같은 유태인이라고 해서 더욱더 믿고 감싸주는 바람에 일이 더 커졌다고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사기당한 투자자들 중엔 스티븐 스필버그 같은 할리우드의 유명 유태인 인사들의 이름도 보입니다. 



<블루 재스민>의 재스민 캐릭터를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의 블랑슈랑 비교하는 리뷰가 더러 보이던데 


물론 과거의 영화에 집착해서 현실을 부정하는 인물의 파멸이라는 점에선 공통점이 있지만 


재스민을 또다른 블랑슈라고 부르기엔 블랑슈가 너무 손해를 보는 것 같습니다. 



비루한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해서 젊은 날의 환상 속에 파묻혀 살다가 17세의 소년을 유혹했다는 의혹에 궁지에 몰리긴 했지만 


블랑슈는 젊은 사람들이 대부분 다 떠나고 귀신같은 노인들만 남은 남부의 고향에서 학교 선생으로 일하면서 버틸 만큼 버텼습니다. 


제대로 된 결혼 생활을 해 보기도 전에 자살한 남편(동성애자)에 대한 감정도 남편의 성정체성을 몰랐던 젊은 남부 아가씨의 순수한 애정에 가까왔지요.



그에 비하면 재스민은 보스턴 대학교 4학년 때 잘 다니던 대학교까지 그만두면서 허영으로 가득찬 맨하탄 상류층의 삶을 스스로 선택했고 


9살이나 많은 남편이 가져다 주는 부와 사회적 지위에 취해서 그가 저지르는 온갖 부정과 부패를 알고도 모르는 척 했습니다.


블랑슈의 삶이 철저한 비극인 것에 반해서 재스민의 삶이 블랙코메디로 쉽게 희화될 수 있는 이유는 


동정의 여지가 충분한 블랑슈의 처지에 비해서 재스민의 불행은 자기가 중얼거리다시피 자초한 바가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배우들의 연기에 대해서 조금 얘기하자면 


케이트 블란쳇의 연기는 놀라웠습니다. 씁쓸한 코메디의 캐릭에 비극적인 느낌을 살짝 얹는 그 신들린 연기는 올해 골든 글로브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을 만 했습니다.


아카데미도 이변이 없는 한 케이트 블란쳇에게 여우주연상을 줄 것 같네요. 


하지만 케이트 블란쳇의 캐스팅이 조금 아쉽기도 했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제시카 랭이 했으면 정말 적역이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이제 나이가 너무 많아서 무리겠지요 ㅠㅠ.)


재스민은 20대 초반 대학 4학년의 나이에 야심만만한 투자자가 뉴욕 상류층에 내세울 만큼 전형적인 트로피 와이프의 외모를 갖춰야 하는데 


케이트 블란쳇은 매력적인 배우이지만 그런 전형적인 미인은 아니거든요. 


피팅이 완벽한 명품 스타일과 세련된 화술로 남자들을 단번에 혹하게 하는 30대 후반-40대 초반의 여자라는 것을 케이트 블란쳇이 설득력 있게 연기하긴 했지만


조금 억지스러운 부분도 있었던 것 같아요. 


샐리 호킨스는 재스민의 여동생인 진저 캐릭터와 더할 나위없이 잘 들어맞고 연기도 자연스러우면서도 신선해서 좋았습니다.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로 밀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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