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다른 곳에 먼저 올렸던 것을 수정해서 올리는 것이라서 말투가 이런 것이니 양해 부탁드려요.)


올해는 개인적으로 역사적인 해가 될 것 같다. 내가 정말 사랑하는 에드워드 양의 전설적인 걸작인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이 CGV 등에서 개봉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아직 상영 중이다.(CGV에서는 내일까지 시간표가 나와 있는 상황이고 네이버로 영화명을 검색하면 에무시네마, 이봄씨어터, 명필름 아트센터, 서울아트시네마에서의 상영이 남아있다. 전주디지털독립영화관에서도 연말까지 상영된다.) 많은 극장에서 개봉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관객 수는 현재 6500명을 넘었다. 이 정도면 상당한 성과라고 생각한다. 지인의 권유로 최근에 작성했던 역대 영화 베스트 10 리스트에도 나는 이 영화를 포함시켰다. 이 글을 보는 모든 사람들이 이번 기회에 꼭 이 영화를 보기를 바란다. 적어도 영화 애호가들이라면 이 영화를 꼭 보기를 바란다. 이 영화의 예고편에 나오는 문구를 인용하자면 '인생의 하루를 바칠 충분한 가치가 있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국내에 출간된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영화 1001편'이라는 책에도 이 영화는 당당히 이름을 올리고 있다. 올해 개봉작 중에 단 한 편의 영화를 추천한다면 주저하지 않고 이 영화를 추천하겠다. 나는 이 영화를 필름으로만 대략 7번 정도 봤을 정도로 열렬하게 사랑한다. 이 영화의 1인 홍보 대사라도 되어서 한 명의 관객이라도 더 모으는 데 일조하고 싶은 심정이니 말 다 했다. 이 글을 올리는 것도 이 글을 올리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개봉 이후에 이 영화를 두 번 더 보고 왔는데 여전히 대단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놀라웠다. 정성일 토크가 포함된 상영때에도 보았는데 토크를 영화 상영 시간보다 더 긴 5시간 25분 동안 했지만 너무 좋아하는 작품이라서 그런지 지루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시간이 끝나지 않기를 바랬던 것 같다. 두 번으로도 만족할 수가 없어서 이 영화를 한 번 더 보려고 예매해둔 상태이다. 누가 나를 보면 미쳤다고 할 지 모르지만 이 영화에 대한 나의 애정은 식을 줄을 모른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의 개봉은 기적처럼 느껴진다. 판권의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있어서 개봉은 불가능하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이번 개봉때 이 영화를 디지털 복원판으로 처음 보는 사람들은 축복을 받았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 영화를 처음 본 것은 문화학교 서울에서였다. 그때 비디오에 자막을 넣은 것으로 보았었는데 화질 문제로 어두운 장면의 디테일을 확인할 수 없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4시간이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았을 정도로 몰입해서 보았고 마지막 부분에서는 전율했다. 이 영화를 필름으로 처음 본 것은 씨네21 영화제에서였다. 역대 아시아 영화 베스트 10에 이 영화가 선정되었기 때문이다. 그때 에어컨이 제대로 가동되지 않아서 찜통인 실내에서 영화를 보는 바람에 영화 속 여름을 거의 4D로 경험했던 추억이 있다. 그때 <고령가..>을 봤을 때가 가장 강렬했다. 

그렇다면 나는 왜 이 영화를 이리도 사랑하는 걸까. 이 영화는 나에게 허우 샤오시엔의 <비정성시>를 볼 때처럼 영화라기보다 차라리 삶에 가까운 작품이라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 영화를 보고 있으면 4시간 동안 마치 대만의 60년대로 들어가 당시의 사람들과 함께 호흡하며 그들의 삶의 질곡들을 함께 경험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실감이 난다. 에드워드 양은 이 영화에서 정말로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사물 하나도 놓치지 않고 생생하게 살려내어 시대의 공기까지 느낄 수 있는 하나의 세계를 완성해놓았다. 이 영화의 제목에 이미 '살인사건'이라는 말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제목에서부터 누군가가 이 영화에서 살해당한다는 것을 전제로 시작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에 누가 죽는지와 관련된 미스테리나 긴장감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은 마치 스탠리 큐브릭의 <배리 린든>이 1부와 2부에서 배리가 어떤 인생을 겪을지를 미리 알려주는 것과 유사하다. 도입부에 자막으로 친절하게 스릴러가 아니라고 선언하고 시작하는 로베르 브레송의 <소매치기>와도 통하는 면이 있다. 이 세 작품의 공통점은 시작부터 일정한 거리를 두고 영화를 보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세 작품이 훌륭한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그 거리감 때문이다. 관객은 앞으로 주인공에게 무슨 일이 벌어질지를 알고 영화를 보게 되기 때문에 주인공에게 감정 이입을 한다기보다 일정 부분 거리를 두고 주인공의 상황을 관찰하면서 보게 된다. 그렇게 됨으로써 영화의 결론은 온전히 관객의 몫으로 남게 된다. 이 영화 속에서 영화 촬영소가 등장하고 영화 촬영소와 주인공의 서사가 얽히는 것도 거리 두기와 관련되어 있다. 이 영화에서 처음으로 나오는 샤오쓰의 아버지가 선생님과 대화하는 쇼트와 그에 이어서 나오는 샤오쓰(장첸)의 단독 쇼트에서 어쩌면 이 영화의 주인공인 샤오쓰의 운명은 이미 결정된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4시간 동안 시대의 억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던 샤오쓰의 여정을 냉정한 눈으로 따라가게 된다. 이 영화는 도식화하자면 샤오쓰의 학교 생활과 샤오쓰의 가족의 삶이 서로 맞물리며 진행되면서 점점 거대한 그림을 그리게 되도록 구조화되어 있다. 에드워드 양은 당대의 대만 사회를 영화적으로 탁월하게 형상화하기 위한 영화적 설정들을 만들어놓고 있다. 샤오쓰는 영화 초반부터 야간학부로 중학교를 다니게 되는데 그렇기 때문에 그의 학교 생활을 그려내는 데 있어서 어둠은 자연스럽게 중요한 요소로 등장하게 된다. 어둠을 밝히려면 빛이 필요하다. 샤오쓰는 영화 촬영소에서 손전등을 훔치고 그 손전등이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어둠을 밝히며 대만 사회를 탐사하는 도구로 사용된다. 그리고 샤오쓰는 초반부터 점점 시력을 잃어가는 것으로 그려지는데 시력을 강화하기 위해 주사를 맞으러 양호실에 갔다가 이 영화의 여주인공인 샤오밍을 만나게 된다. 샤오쓰는 샤오밍을 만난 것을 계기로 여러가지 일들을 겪게 된다. 정전 상황은 수시로 일어나고 어둠 속에서 소년 갱단들은 자주 다툼을 벌인다. 이 영화에서 등장하는 일본도, 녹음기, 팝송, 라디오 등은 대만의 역사와 깊이 관련되어 있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곡을 포함해서 이 영화에 등장하는 팝송들은 하나 같이 달콤한 사랑의 언어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곡들은 매우 반어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 영화는 그런 사랑이 불가능한 시대를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이 영화는 사소한 디테일 하나도 허투루 사용하지 않고 촘촘히 얽혀있고 그 디테일들이 모여서 거대한 세계를 만들어간다. 그런 면에서 이 작품은 건축적인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이 영화는 빛과 어둠의 대결 속에서 결국 어둠이 승리하는 영화라고 볼 수도 있다. 빛과 어둠이 중요한 시각적 요소로 작용하는 것은 이 영화가 일정 부분 필름 누아르의 서사를 취하고 있다는 것과도 맞물려있다. 샤오쓰가 시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설정 역시 누아르적 서사와 관련이 있다. 이렇게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일정 부분 장르적인 요소들을 영화 속에 잘 녹여내고 있다.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인 살인 장면만큼 복합적인 감정을 자아내는 살인 시퀀스를 거의 본 적이 없다. 몇 번을 봐도 그 살인 장면이 주는 충격은 대단하다. 그런데 그 장면은 어떤 자극적인 요소가 포함되어 있지 않고 거의 무심한 시선으로 평온한 상황에서 펼쳐진다. 어떤 감독이 <고령가..>을 만들었을지라도 이 살인 장면의 연출을 에드워드 양만큼 해내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 장면은 완벽하다. 그 장면을 현재와 같이 만들어내지 못했다면 <고령가..>은 지금과 같은 명작이 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 이 영화를 보지 않는다면 내 입장에서는 손해를 보는 것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인터미션이 있으니 4시간을 두려워하지 말라. 이 영화를 보는 데 물리적인 시간은 중요치 않다. 영화를 보다가 보면 순식간에 이 세계에 빠져든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에드워드 양의 역작인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은 영화가 위대한 예술일 수 있음을 입증하는 작품이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이 작품이 인생의 영화가 될 것이다. 어린 시절의 장첸을 볼 수 있는 즐거움도 있다. 부디 많은 분들이 앞으로 남은 상영 기간 동안 이 위대한 작품과 만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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