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개봉날에 <소울>을 봤고 그날 이후로 이 영화를 보고 받은 감동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어요. 새해 초에 불과하지만 이미 저에게 올해 개봉작 1위는 <소울>이 확정적이라고 봐요. <소울>이 영화적으로 훌륭한 이유에 대한 글도 쓸 생각은 있지만 그것보다 먼저 이 영화를 보고 받은 특별한 감동을 듀게 여러분들과 꼭 나누고 싶고 이 사연을 통해서 <소울>을 아직 보시지 않은 분들에게도 이 영화를 강추하고 싶어요. 그러니까 이 글은 <소울>을 추천하기 위한 글이 맞아요.
저희 어머니는 2008년에 '폐섬유증'이라는 희귀병으로 돌아가셨어요. '폐섬유증'은 간단히 말씀드리면 폐가 점점 굳어서 숨을 못 쉬게 되고 결국 사망하게 되는 병이에요.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몇 일 전에 여기에 장문의 글을 써서 올렸었어요. 그 글은 숨을 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 것인가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어요.
그 글의 일부 내용을 옮겨드려요. (전체 내용은 http://www.djuna.kr/xe/oldmain/10160113 에서 보실 수 있어요.)
저는 정치에 대해 잘 모르지만 요즘 나라가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그냥 한숨만 나옵니다. 이런 상황에서 문득 내가 숨을 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숨을 제대로 쉬고 있다는 것이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에 대해 알게 된다면 이 세상은 좀 더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순진한 생각을 해봤습니다.
...... 저와 여러분이 '숨'을 쉬고 있다는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요!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많이 힘들지만 아무 고통 없이 '숨'을 쉬고 있다는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요! '숨'을 쉬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것은 아닐까요? '숨'을 쉬고 있다는 당연한 사실에 감사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세상은 더 나아지지 않을까요? 제가 아무 고통 없이 마음껏 '숨'을 쉴 수 있다는게 이렇게 감사한 것은 처음입니다. 그래서 이 글을 꼭 쓰고 싶었습니다. 어머니는 위독하시고 저는 여전히 많은 고통 가운데 있지만 지금껏 당연시 여겼던 '숨'을 쉬고 있다는게 얼마나 감사한지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습니다. 그냥 현실을 바라보면서 저의 순진하고 순수한 소망을 담은 글로 이해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위의 글을 쓰고 몇 일 후에 어머니는 돌아가셨어요. 그런데 어머니가 돌아가신 날에 병원 창밖을 보면서 너무 아름다운 순간을 보게 되어 그 감동을 또 다시 여기에 글로 써서 올렸었어요.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어제 어머니가 진통제를 맞고 주무시고 계실 때 창 밖을 내다보았는데 한강, 한강의 다리와 차들, 한강에 비치는 햇빛, 강물이 흘러가는 잔 물결, 교차되어 지나가는 지하철, 구름 속에서 얼굴을 비쳤다가 사라졌다가 하는 태양, 이 모든 풍경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어머니가 병상에서 과연 이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계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어제 눈물을 흘리면서 오즈 야스지로의 '동경이야기'의 오노미치 항구의 빈 풍경과 허우 샤오시엔의 '비정성시', '카페 뤼미에르'의 기차나 전동차가 지나가는 장면, 나루세 미키오의 '흐르다', 타르코프스키가 영화를 시작한 계기가 되었다는 물의 흐름까지 모두 한꺼번에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 풍경들이 너무나 시적이었습니다......
조 가드너(제이미 폭스)가 영화의 마지막 순간 크게 숨을 쉴 때 삶의 목표를 이루는 것보다 살아있다는 증거로 마음껏 숨을 쉬면서 소소한 일상의 삶을 즐기는 것이야말로 삶의 진정한 의미라는 깨달음, 즉, '이 땅에 태어난 삶 자체로 감사하자'는 메시지를 전달받으면서 동시에 '숨'을 쉬는 것에 대한 소중함을 느끼게 해주셨던 어머니가 떠올라서 울컥하는 마음과 함께 깊은 감동을 받았어요. 그리고 오랜만에 위의 글을 찾아서 읽어봤는데요. 글의 내용이 <소울>에서 감동을 받았던 일상의 아름다운 풍경 이미지들과 겹쳐져서 또 다시 울컥하는 심정이 되었어요. 저에게 '범사에 감사하라'는 성경 말씀을 <소울>만큼 설득력있게 보여준 영화가 이전에는 없었던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모든 크리스천들에게도 <소울>을 강추하고 싶네요.
저는 <소울>을 보고 만약 내일이 2022년이 되는 상황이 벌어진다고 할지라도 올해 이 영화를 본 것만으로도 올 한 해가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큰 감동을 받았어요. 그야말로 영혼을 뒤흔드는 감동이요. 그래서 아직 <소울>을 보지 않으신 분들에게 이 영화를 꼭 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저처럼 이 영화로부터 큰 위로를 받으시고 다시 살아갈 힘을 얻으실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아요. <소울>의 감동은 영원할 거에요. 왜냐하면 이 영화는 앞으로의 삶이 어떻게 흘러가던지 간에 삶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거라고 우리에게 말하고 있으니까요. 삶 속에서 어떤 일이 닥쳐도 햇빛의 아름다움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거에요.
사실 이런 거 다 떠나서 <소울>은 너무 재미있는 작품이기도 하죠. 오락성도 최고이니까요. 천재적인 스토리텔링으로 영혼을 뒤흔드는 걸작! 제가 픽사 직원은 아니지만 모든 분들께 <소울>을 자신있게 추천합니다! ^^
2021.02.17 13:32
2021.02.17 15:22
2021.02.17 14:15
잘 읽었습니다. 울림이 있는 추천 감사드려요. 저도 소울 각잡고 보려는 마음 먹고 있어요! 아끼는 사람이 정상인 폐의 30%만 가지고 생활 중이에요. 와중에 어떻게든 본인 작업을 완수하려고 애를 쓰고 있죠... 여건이 안 좋을 땐 빨대로 숨 쉬는 기분이라 하던데... 사망으로 향하던 그의 폐를 치료하다 보니 스테로이드를 쏟아부었고, 그 후유증은 현재 진행형이 되었어요. 그가 스테로이드 후유증으로 부들부들 손을 떨며 찻잔을 쥐는 걸 볼 때마다 마음이 저며요. 손으로 만드는 작업을 하는 사람이라 더더욱 마음이 괴로운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그가 행하는 모든 순간에 늘 경외심을 느끼고 있습니다. 아무리 가늠해봐야 어머니의 고통을 도저히 알 수가 없는 것인데.... 폐 이야기가 나와서 한자 한자 이입하며 읽었어요. 소울 보고 그 사람에게도 추천할게요. 글 고맙습니다.
님조회 수:73
2021.02.17 15:24
2021.02.17 15:44
2021.02.17 16:34
제가 좀 완벽주의 성향이라서 맞춤법만 틀려도 수정을 해서요. 어머니의 죽음을 애도해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은밀한 생님도 늘 숨을 마음껏 쉬시면서 늘 행복하시기를 진심으로 바래요. ^^
2021.02.17 15:59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이전 글도 같이 읽었는데, 마음에서 뭔가 울리는 게 느껴져요.
더불어 소울도 꼭 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2021.02.17 16:36
글을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부디 Tuesday님에게 <소울>이 좋은 영화로 기억되었으면 정말 좋겠어요. ^^
2021.02.17 22:56
2008년의 글과 지금 글은 시간 간격이 꽤 있는데도 crumley님은 많은 것을 잃지 않고, 여전히 '숨'에 대한 고마움을 지니며 단단하게 살아가고 있으신거 같아 마음이 뭉클했어요.. 전 아직 소울을 보지 못했는데 이후의 감상이 어떨지 정말 궁금해지네요. 글 잘읽었어요.
2021.03.08 02:13
글을 읽어주시고 공감해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qnfdksdmltj님께도 <소울>이 좋은 작품으로 남으셨으면 좋겠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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