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민족주의와 친일에 대한 짧은 생각을 써 볼까 합니다.

생각은 짧은데 글만 길어질 것 같아 조심스럽긴 하지만

의견의 공유라는 온라인의 순기능에 초점을 두고 너그럽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꼭 푸네스님께 드리는 얘기는 아닙니다만, 푸네스님의 글을 읽고 생각을 전개했다는 점 먼저 밝힙니다.

생각의 기회를 준 푸네스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저의 퇴근을 세시간 늦추셨습니다 ㅠ저 이제 퇴근합니다 ㅠ)

 

21세기의 남한에서 민족주의는 여전히 유효한가에 대한 질문을 던져봅니다.

 

1. 민족주의 일반에 대하여

 

저는 민족주의가 일종의 신화라고, 더 정확히는 지배계급의 이익을 위해 작동하는 신화라고 생각합니다.

푸네스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조선시대의 양반계급은

아마도 같은 조선의 똘복이보다는 대륙 어딘가의 선비와 계급적 동질감을 공유했을 것입니다.

서양에서도 그러했겠고, 한 나라의 왕조에 대해 반란이 일어나면 다른 왕조가 군대를 보내어

혁명군을 제압하거나 망명한 몰락 왕조를 보호하거나 하는 일도 드문 경우는 아니었습니다.

자본주의 이전의 계급사회에서도 여전히 국가는 존재하였지만

그 구성원들이 실감하는 민족의 개념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가 말하는 민족의 개념과는 차이를 보입니다.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민족주의는 국가 내의 계급적 차별을 은폐하고

하층 계급의 불만을 외부로 발산시키는 데 공을 세웠습니다.

민족국가들 사이의 경쟁에 바탕을 둔 자본주의는 민족주의를 끝없이 부추기고 파퓰리즘에 기반한 쇼를 벌이지만,

어느 지점에서 민족적 갈등이 자본의 이익과 대치하는 경우 민족의 가면을 벗어던진 사례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민족자결권을 주장한 윌슨이 쿠바와 도미니카, 아이티 등 민족국가의 자결권을 해쳤던 것처럼,

한국의 정상들이 정기적으로 독도에 대해 강경한 발언을 하는 듯 하지만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거나 기다려달라고 한다거나 했던 것처럼요.

 

여기까지는 저와 푸네스님의 인식이 공유하는 부분이 많은 듯 합니다만 다른 점을 얘기하자면,

저는 말씀하신 주목받지 못한 희생자들에 대한 조명은 오히려 더욱 명백한 과거 청산이 선행되어야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한 한국의 역사에서 친일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던 유일한순간이 지나가버렸다고 생각하지 않고,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며 미약하나마 우리에게는 다양한 방법과 기회가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2. 3세계 민족주의에 대하여

 

서구의 민족주의와 제3세계의 민족주의-소위 말하는 식민지 민족주의는 다른 양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짐이 곧 국가입네 하던 시기에서 군주가 사라지고 민족이라는 개념이 자리잡기 시작했다는 해석을 많이 봅니다.

저는 전문가가 아니라 학술적 논의로 들어가면 어렵습니다만,

프랑스혁명에서 유래해 나폴레옹 전쟁을 통해 유럽 일반에 전파되었다는 서구의 민족주의는 제국주의적입니다.

-프랑스 혁명에서 유래했다는 것은 민족주의가 당시 부르주아지의 요구에 부합했고 그에 맞게 발전해 왔다는 반증이기도 하지요.

 

그러나 한국을 포함하여 제3세계의 민족주의는 제국주의에 반하고 제국주의와 결탁한 지배세력에 반하며 성장해 왔습니다.

따라서 그 제국주의와 결탁한 지배세력에 대한 반감을 서구식 민족주의의 작동으로만 보는 것은 엄밀하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국주의 국가의 하층 계급이 민족주의에 경도되는 것은

해당 국가 내에서 자국 자본가들의 이익에 기여하고 스스로의 손해를 가져오기 쉽습니다.

반대로 식민국가의 하층계급이 민족주의를 걸고 싸우는 것은 어떠한 지점까지는,

제국주의적 압제가 해소되고 자국 내 계급의 문제가 보다 명확히 드러나는 단계에 이르기까지는 효과적인 진보의 동력이 됩니다.

 

한국이 해방되었을 때에, 물론 일본이 패전하고 열강의 참정이 있었으나,

그 이전까지 과연 누가 독립을 가장 열망하였는가 하면 당시의 지배계급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일본 아래서 기득권을 누렸으니까요. 3.1운동은 거리에서 시장에서 일어난 것이지 관청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지요.

 

3. 21세기 남한의 민족주의에 대하여

 

현대 한국에서 누가 가장 통일을 원할 것인지 생각해보면 과거와는 좀 다른 모습을 볼 수도 있습니다.

오히려 일반 국민들은 하루하루 먹고살기 바빠 그런지 이산가족들이 상당수 죽어서 그런지

워낙 북한의 실상을 들어서 그런지 여튼 민족적 동질감이 많이 옅어진 반응을 보입니다.

노동자들의 경쟁은 더욱 심해질 것이고 국민들이 감당해야 할 흡수통일의 비용은 클 것입니다.

 

그러나 자본가들은 이미 개성에 공단을 만들고 북한의 값싼 노동력을 이용했습니다.

치적 위험을 무릅쓰고 들어간 것은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의 개념이지 통일을 위한 대의적 차원은 아니었지요.

그것이 얼마나 성공적이었는가와 별개로 북의 값싼 노동력이나 자원, 새로이 창출될 시장 같은 것들은 매력적이었습니다.

 

개성공단 조성을 앞두고 남북 접경지역의 땅값이 올랐으며,

재계는 중소기업 인력난 해소를 위해 개성공단 조성 기간을 단축해 달라고 정부에 요청했습니다.

북한 노동자들의 임금 수준은 한 민족임을 감안하여중국이나 동남아보다 약간 높은 수준에서 형성되었고

개성공단 분양가는 평당 15만원대 였습니다. 개성공단에 입주한 122개 기업의 생산액은 3 2000만 달러이고,

47000명 근로자 중 46000명이 북한 노동자입니다.

문제가 발생할 시 보상은 수출입은행 등에서 총 투자액의 90%까지 해준다는군요.

 

정치권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빨갱이니 주적이니 하지만 적대적 공생 같은 용도는 차치하고,

본질적으로 어느 정치가이든 통일의 주역이 되는 것을 마다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 과정과 비용을 얼마나 유연하게 통제하느냐는 정치가가 누구냐에 따라 크게 달라지겠지만요.

츤데레의 대상을 북한에서 중국(동북공정)이라든가 일본(군국주의)으로 대신하겠지요.

 

현대 한국의 민족주의는 과거의 식민지 민족주의가 아닙니다.

21세기 한국은 이제 식민지가 아니고, 세계질서 상에서 상위 20~30위권에 드는..

반장은 못되도 분단장, 조장 정도 하는 꼬마 제국주의 국가가 되었습니다.

북한 뿐 아니라 중국이나 동남아, 아프리카에도 간다고 하고 말이죠.

 

21세기 현대 한국의 민족주의는 서구식 자본주의적 민족주의에 가깝습니다.

또한 민족주의는 좌파적으로도 우파적으로도 이용될 수 있고,

그러한 허점에 비해 강렬하고 즉각적으로 효과를 발휘하는 호소력 때문에

몇몇 진보적 공간에서는 농담의 소재로 등장할 만큼 전락한 것이 현실입니다.

촌스러운 것, 감정적인 것, 때로는 지배계급에 이용되는 것으로 비아냥의 소재가 됩니다.

 

4. 친일 청산과 민족주의에 대하여

 

그러나 친일 청산의 문제는 여전히 식민지민족주의의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합니다.

민족주의가 단일한 추상이 아님을 인정한다면 말이죠. 친일파에 대한 한국인들의 반감은 청산되지 않은과거에 기인합니다.

 

나이 많던 친일파들이 죽었습니다. 그러면 그 후손은 아무런 연관이 없는 사람이므로 죄과를 묻는 것은 연좌제라 합니다.

그러나 21세기 한국에서도 과거청산이 빨갱이 좌파라고 무수히 손가락질 받으며 말을 꺼내야 하는 문제라는 현실은

그 후손들에 의해서 역사의 은폐와 왜곡이 자행되고 있음을 외면하고는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핏줄로서의 후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많은 경우 그렇기는 하겠지만 통계적으로 확인해보지 못했으므로),

친일 지배세력의 유형/무형의 자산을 이어받은 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입니다.

 

친일인명사전이 법적 구속력을 가지는 것도 아니고, 친일파의 족보를 대대로 이어 붙이겠다는 것도 아닌데

후손들은 불명예를 당했다고 여깁니다. 인정하지 않으려 하거나 은폐하려 합니다.

(말하지 않아도 내가 낸데 하는 짜한 사람들이 많아서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만)

 

친일 후손들의 재산 환수에 대하여는 이미 법적으로 결론이 난 듯 하나,

법 제정이 꽤 전에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바로 올해 7월까지 69건의 항소가 남아있었다고 하고,

바로 엊그저께인 12 19정미7중 하나인 친일파 송병준의 후손이 패소했습니다.

조선왕실의 종친으로 일본정부로부터 후작 직위와 공재 168000(현재돈 67억원)을 받은

이해승의 후손의 재산 환수는 아직 법정에 남아있습니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각각의 사주가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되자 국가의 정통성을 훼손하려는 좌파사전이라고 강력히 주장하였고

방우영 전 조선일보 명예회장은 방응모 전 사장은 친일한 적이 없다며 사전 등재를 취소하려는 소송을 냈습니다.

법원은 친일한거 맞다고 확인해 주었는데, 이 경우는 핏줄인 게 확실하군요.

 

정치인은 너무 많고 기업 자본의 경우에도 독립운동 한다고 재산을 말아먹은 자본가가 있었는가 하면

일제와 독재에 기생하여 재산을 지키고 불린 자본가가 있을 것이고 그렇겠지요.

국가검정 교과서는 통제되고 아이들은 그 교과서로 배웁니다.

 

말하고 싶은 것은, 여전히 청산되지 않은 과거-과거가 아닌 과거-현재 진행형의 역사라는 것입니다.

연좌제라는 것은 할아버지나 부모가 좌익사범이었기 때문에 신원보증서에 빨간 줄이 가서 취업이 취소된다든가

여권이 안 나온다든가 하는 것인데,-물론 이보다 포괄적 의미이지만- 

친일 후손들이 조상의 친일을 인정조차 하지 않는 마당에 너무 과한 말입니다.

 

5. 식민지 민족주의의 유효함에 대하여

 

피해자를 위로하고 재조명하는 것은 가해자의 존재를 인식하는 데서 출발합니다.

너무도 당연한 말이지만, 가해자가 가해자임을 인정하지 않을 때,

그런데 그 가해자가 기득권일 때 피해자는 더한 핍박 속에서 묻혀가게 되어 있습니다.

 

실제로 역사 속에서 기득권층이 내가 살기 위해서상대를 극악으로 몰거나

자신들의 잘못을 은폐하려는 시도는 수도 없이 있어왔습니다.

떳떳하게 살기 위한 선택은 솔직히 인정하고 사회에 기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무죄임을 증명하려면 저들이 빨갱이임을 혹은 저들의 존재 자체를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게 만드는 것입니다.

 

위안부 문제가 더 조명되고, 독립운동가 후손의 열악한 처우가 더 조명되면

반대로 떵떵거리며 살고있는 친일파의 후손들에게 비난이 가해질 것은 너무도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그것을 싫어하리라는 것도 너무 쉽게 짐작이 가능합니다.

 

따라서 시일이 지나고 문제가 복잡하니 그만두자는 무용론

가해자를 잊는 것일 뿐 아니라 동시에 피해자를 잊는 것이기도 합니다.

배상을 한다는 것은 죄를 인정하거나 인정 당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친일후손들의 재산을 국고로 환수한 금액의 90% 이상이 독립유공자에게 환원되었다고 합니다. 다른데 쓴 게 아니라요.

 

위안부 문제에 대한 정부의 대응이 사실은 생존자들이 다 죽기를 기다리는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는데,

죽은 자는 말이 없다고, 가해자도 죽고 피해자도 죽으면 끝나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사회 구성원들이 공감할 때 진정으로 과거가 과거로서 제자리에 돌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한국의 식민지 민족주의가 여전히 유효한 또 하나의 이유는

안타깝게도 꼬마 제국주의인 한국 곁에 분단장을 넘어서 부반장쯤 되는 중국과 총무쯤 되는 일본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완전히 사장된 주의로 치부하기에는 식민지 민족주의가 발현될 여지가 여전히 존재하고

우파도 좌파도 그것을 여전히 이용하고 있습니다.

 

일본군 장교였던 박정희를 비롯해 반민특위를 무산시킨 이승만, 현재에 이르기까지,

강경한 제스쳐와 실리적 협상(이라 부르고 양보라 읽을수도)을 진행해 온 한국의 기득권과 마찬가지로

중국 역시 중화사상과 민족주의로 통치해왔으나 막상 중국 내에서 반일감정이 극심해 질 때는 중국 국민들을 통제합니다.

 

반면 소수이지만 일본의 군국주의에 반대하는 일본인들과 한국의 식민지 민족주의자들 그리고 좌파들이 협력하는 것은,

한국 정부가 민족주의적으로 일본 정부에 독도 문제의 완전한 해결을 이루어 내는 것보다 훨씬 더 가능성이 높은 일일 것이며

민족주의적 가치를 공유하지 않더라도-계급적 관점에서도 의미있는 일이 될 것입니다.

 

6. 반성에 대하여

 

친일인명사전에 대해 잘 아신다고 하니 비전문가인 저보다 먼저 보셨으리라 예상됩니다만

친일인명사전 발간보고대회 자료에서 본 당사자들의 고백 중 검사의 고백을 인용할까 합니다.

 

-이 검사생활, 이것이야말로 왜정 압력 하에서 독립운동에 신명을 바치시던 애국지사들에게 대하여는

지금도 면목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필자의 공사의 생활에서 마음에 꺼림직한 일은 거의 없습니다만 왜제하의 검사,

즉 고관을 지냈다는 것만은 한없이 후회되는 일입니다. 그동안 사상사건을 취급시키지 아니하던 왜제하의 검찰정책 때문에

큰 죄를 지을 기회는 없었으나, 굴절했고 왜제통치에 협력을 하였다는 것만은 아무리 사과를 하여도 모자랄 것입니다.

 

-허일태/ 신동운/ 엄상섭 권력과 자유

 

이것은 이 고백이 통렬하고 뼈아파서 덧붙이는 것이 아닙니다.

당사자의 반성이 이러한 수준이며 (성명서를 발표하고 사표를 냈습니다)

이제와 후손들에게 석고대죄를 하라거나 뭐 그리 큰 반성을 요구하는 게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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