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를랑 윌리엄스의 양보

2015.09.14 23:13

칼리토 조회 수:939

아래 글을 읽다보니 떠오른 이야깁니다. 


1982년 겨울에 에어 플로리다 항공기가 워싱턴의 포토맥 강에 추락했습니다. 당시 탑승중이던 70여명의 승객과 다섯명의 승무원중에 비행기 밖으로 탈출해서 구조를 기다리게된 건 단 여섯명. 그중에 한명이 당시 46세였던 은행 감사관 아를랑 윌리엄스 주니어였습니다. 구조 헬기가 날아오고 차례 차례 기다리던 사람들을 나르기 시작했는데 자기 차례가 왔음에도 아를랑 윌리엄스 씨는 두 차례나 그 순서를 다른 여자 두명에게 양보했고 결국 차가운 강물에 익사하고 맙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 에피소드를 인용하며 친절심이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몸에 밴 친절심이 아니라면 살을 에는 추위에서 그렇게 양보를 할 수 있겠느냐며.. 자신도 글을 쓸때 최대한 독자가 이해하기 쉽게 친절한 마음으로 쓰겠다는 그 다운 이야기로 마무리를 하지요. 


이 이야기를 읽으며 오는 전철에서도 자리가 나자마자 사자처럼 달려들어 앉아오는 스스로의 모습이 못내 부끄럽습니다만.. 요즘 주변을 돌아보면 전반적으로 과거보다 양보하고 배려하는 모습이 많이 줄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 그런가 곰곰히 생각해보니 제가 어릴때만 해도 부자는 일부고 대부분이 가난한 처지라 못사는 사람끼리 도와야 한다는 유대감 같은 것이 있었던 반면 그시절보다 풍요로워지기는 했지만 한번 밀리면 지옥끝까지 떨어진다는 생각을 주입받고 자라온 요즘은 양보가 바보같은 일이요 멍청한 짓이란 생각이 드는 것 같습니다. 


역시 또 세월호를 떠올립니다. 가만히 있으라는 이야기에 서로 양보하며 순한 양처럼 어른들, 아니 선원들과 선장의 말을 믿고 가만히 있었던 아이들. 세계 역사상 유래가 없을 어처구니 없는 해난 사고의 진상을 조사하는데 우리는 아직 진실의 한조각도 알지 못합니다. 진실을 덮으려는 세력도 문제지만.. 이미 지난 남의 일이라고 안타까움과 분노보다는 내부적으로 분열하며 서로 미워하는 모습들이 참 슬픕니다. 어쩌면 이것도 모두..  베일에 가려진 흑막속의 누군가가 바라는 것이겠지요. 


아를랑 윌리엄스같은 의인이 결코 적은 사회요 나라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그걸 알게되는 사고는 더이상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세월호 이야기만 나오면 쌍심지를 켜고 욕하는 사람들.. 왠만하면 그러지 맙시다. 인간같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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