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왜, 올림픽도 다 끝난 마당에 이걸 쓰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예요, 2002년 월드컵때 그 난리가 난 상황에서 (회사의 암묵적인 용인 하에) 직원들 모두 근무중에 축구방송을 보겠다고 다들 (미쳐) 뛰쳐나갔을 때도 혼자 남아서 "축구 따위" 하며 일이나 하던 제게 "너도 참..." 이러시며 살짝 고장난 라디오로 주파수를 맞춰 잡음이 끓던 축구방송을 들려주고 나가던 상무님의 혀 끌끌 차던 소리가 아직도 귓전에 맴도는 기억으로 남아있을 만큼 스포츠 냉담자(그러나 운동중독자)인 제가 이번 런던 올림픽 중계를 제대로 챙겨봤을 리 없잖습니까만, 우연찮게 곁눈질 하다 채널 고정한 리듬체조를 보면서 아, 그동안 내가 근질근질 궁금했던 그것이 오래 묵은 어항의 수포처럼 뽀록하고 올라오던 것은,

 

   "아니 왜, 발레리나들은 리듬체조 선수들 만큼 주떼를 잘 뛰지 못한단 말인가?"  모든 춤의 근원이 발레인 만큼 리듬체조 선수들의 동작 많은 부분이 발레의 기본에 빚지고 있는데 그들의 주떼는 공중에서 양 다리를 벌렸을 때 180도를 넘어 200도 이상으로 휘기까지 하는데, 대부분 발레리나들의 주떼는(심지어 그랑주떼라도) 아무리 뛰어봐야 앞,뒷자리 높이가 다르고 앞다리의  높이를 뒷다리가 따라가지 못해 공중에서 겅중거리는 느낌인데, 저 리듬체조 하는 아이들은 어쩜 저렇게 주떼를 가볍고 탄력있게 유연성이 지나치다 못해 두 다리가 활의 자태처럼 휜단 말인가?

 

   드물게 몇 발레리나들말고는 저는 늘 그렇게 느꼈기에, 개인적으로 박세은 양을 좋아하는 이유도 그니는 분명 발레 연습때 뒷다리차기에 더 전념한 듯 높고 가볍게 차주지만 역시나 리듬체조 하는 선수들처럼 휜다는 느낌은 받지 못하죠. 물론, 발레가 유연성과 탄력을 높이 치면서도 결론적으론 리듬체조처럼 과장되게 양 손끝이 꽃손이 되는 걸 경계하는 절제된 우아함이라는 걸 압니다만 저는 늘 이게 궁금해요. 발레리나들이나 리듬체조 선수들이나 유연성을 기르는 무지막지한 훈련량은 더하고 덜할 게 없을 텐데( 역시 식초를 마셔야;;;)

 

  2. 이번 주말, 오백 년 만에 파주에 가서 그 이름난 어느 음식점의 런치코스를 먹고 수정과를 마시고 헤이리에 어느 카페에 음악 들으러 갔습니다. 거기서 손에 잡히는대로 펼친 무가지에서 우연찮게도 듀나님의 글을 읽었어요. 제목은 '얼마간 복잡하고 그만큼 속깊은 나의 클래식 연대기' 라는 글이었는데 제가 벌써 몇년 째 듀게에 적을 두고 있음에도 단 한번도 듀나님의 작품을 읽어본 적도 하다못해 '여러 가지' 조차 찬찬히 읽어본 적 없음에도 저 제목은 확 끌리는 것 아니겠습니까? 네, 작가가 괜하 작가겠습니까만, 제가 그쪽 장르에 흥미가 없달 뿐 그 유명세와 필력까지 모른 척 할순 없으리라 짐작은 했지만, 저는 처음으로 읽은 저 제목의 글이 그렇게 좋았더랍니다. 잘은 몰라도 그 무가지(?) 성격에 이런 내용을 이렇게 듀나스럽게 아무렇지도 않게 쓸 수 있었다니 싶은 유쾌하고 용감한 어떤 대목들 때문이었어요. 글 제목을 공개하는 게 문제가 되거나 듀나님 개인적으로 불쾌하시다면 삭제 하겠습니다.

 

    3. 짧지만 굵고 빡세게 통영으로 여름휴가를 다녀왔어요. 버스를 타고 오래 달리는 것도 좋았고 시내를 택시로 이동해도 웬만한 요금이 3~4천원 또는 멀리가도 5~6천원을 넘지 않는다는 점이 좋았어요. 배 타고 장사도에 들어간 것도 격주 월요일에 정기점검하느라 놓친 케이블카를 기어이 다음 날 탔던 것, 마지막 날 오면서 점심을 먹기 위해 찾은 호동식당의 복국이 단지 홍상수 영화 때문에 거품이 아니라는 것을, 단순하고 정갈하고 맛있는 음식이 주는 감동은 이런 것이구나 하는 것을 온 몸으로 느끼며 밑반찬까지 싹싹 다 긁어 먹고 왔지요. 그리고 저는 통영의 명물인 멸치를 국물용과 볶음용으로 사서 박스채 들고오는 기염을 토해냅니다. 조미료 첨가 0인 제 모든 음식의 기원은 바로 멸치 육수인데 오자마자 국멸치 좀 끓여 국수를 말았더니 이것은 환상이에요! 게다가 전 여름휴가를 나눠 쓰기로 해서 3박의 휴가가 아직 남았다는 것이 훈훈하군요.

 

    4. 일요일 늦은 오후와 이른 저녁 사이, 손을 써야하는 모든 집안일을 끝내놓고 늘 가는 네일샵에 휴가 때문에 빠져 2주 만에 가서 관리를 받는데 신상이 들어왔다고 추천하며 발라준 펄이 들어간 짙은 터키블루의 매니큐어가 이제 다 말랐습니다. 제 피부가 희고 혈색없이 창백한 편이라 푸른 계통은 화장이든 뭐든 어울리지 않는다고만 생각했는데, 처음 제 고정관념을 깨고 짙푸른 네일컬러를 권해준 이 아티스트 덕에 의외로 주변인들에게 너무 폭발적(?)인 호평을 받은 적 있어 오늘도 얌전한 고양이처럼 열 손가락을 맡겼는데, 오늘 것도 살짝 야하면서 이쁘네요. ㅎ ㅎ 이 색깔도 8월 지나면 못하겠지만요. 내일은 사놓고 한 번도 입은 적 없는 긴팔 흰 블라우스에, 허리를 바짝 조여주는 검정색 하이웨이스트 스커트를 입고 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출근할까 합니다. 손톱색과 같은 뿔테안경을 쓰고요. 앙큼한 비서룩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옷차림이고 또 월요일이니까요.

 

  듀게분들 모두 즐거운 주말밤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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