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 사과, 용서에 대한 단상

2012.02.25 23:19

13인의아해 조회 수:3406

 

원래는 지난 주엔가 본 SBS '궁금한 이야기 Y'라는 프로그램을 보고 글을 쓰려고 했었어요.

근데 어찌저찌 하는 사이에 블락비라는 아이돌그룹이 대형사고를 쳐서

그것까지 포함하여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되는 한 주였습니다.

 

궁금한 이야기 Y라는 프로그램에 나온 사연은 이런 거였어요.

21살인가 된 청년이 중학생 시절 친구들을 찾아다닙니다. 용서를 구하기 위해서요.

이 청년, 알고 보니 어린 시절 제대로 일진이었던 듯 했습니다.

전학도 다섯 번을 갔다던가(정확한 기억은 아닙니다. 여튼 세 번 이상인 건 분명;;)

본인 스스로 말하기를, 조금만 거슬려도 성질이 나서 주먹을 휘둘렀는데

교사 앞에서 그런 적도 있고, 의자였는지 책상이었는지 여튼 기물도 던져가면서 그랬던가 봐요.

후배들의 증언에 따르면(이 후배들은 지금은 이 청년과 격의 없이 잘 지내는 듯 보였어요)

어느날 한 친구가 3일 동안 안 보였는데, 알고 보니 이 청년 집에 3일간 갇혀서 맞았다고;;;;;;;;

그 시절의 '형'은 정말 건드릴 수 없는 사람이었다고.

 

여튼 이렇게 심각한 폭력을 휘둘렀던 청년이 어떤 계기인지는 모르겠지만(그건 안 나오더라구요)

그 시절의 친구(?)들에게 사과를 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고,

카메라는 그가 친구들을 방문하고 사과하는 과정을 따라갈 뿐 아니라

때로는 이 청년의 연락을 피하고 만나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친구들을

카메라를 든 PD가 직접 만나기도 하면서 꽤 적극적으로 만남을 주선해주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두어 명은 피하다가 끝내는 만나서 사과를 받아들여 주었고,

한 명은 처음부터 반가이 맞아주었을 뿐 아니라 피해학생의 어머니께서

'다들 그냥 넘어가고 살아가는데, 이렇게 사과하러 온다는 것이 기특하다'는 식의 덕담까지! 해주셨죠.

 

처음에 피해학생들을 찾아다니는 청년의 모습을 볼 때 저는 좀 거부감이 들었어요.

다짜고짜 전화하고, 전화해서는 서두가 '나 중학교 때 누구야. 나 알지? 좀 만나자. 할 얘기가 있어.' 이런 식이었거든요.

이게 지금 정말 미안해서 사과를 하려는 건지 의심스러울 만큼 뻣뻣한 태도였어요.

집까지 찾아갔는데 문전박대 당하는 경험을 당한 후에는 충격을 받은 모습을 보이면서

'사과하는 게 이렇게 어려울 줄 몰랐다', '친구가 이 정도로 피할 만큼 내가 잘못했었나보다' 는 식의 얘기를 하더군요.

 

왜 사과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됐는지에 대해서는 짧은 인터뷰가 있었어요.

주위 사람들에게 늘 그런 식으로 폭력을 휘두르며 살다가 어느날 주위를 둘러보니 친구가 없더래요.

 

그럼 그 시절에는 대체 왜 그렇게 폭력을 휘둘렀었는가, 하는 질문에는

늘 화가 나있었다고 하더군요. 아버지는 툭하면 어머니에게 폭력을 휘둘렀었고, 그로 인해 부모님은 이혼,

그리고 자신은 누나와 할머니와 함께 살았다는 이야기를 덧붙이면서요.

 

청년은 올해 중학교 졸업장을 받더군요. 현재는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구요.

 

 

 

이 프로그램을 보고 나서 참 많은 생각이 들었어요. 저 청년은 어떻게 사과를 할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어떻게 더 안 좋은 폭력의 세계로 빠져들지 않을 수 있었을까. 그렇게 폭력을 행사하던 시절로부터 달라진 지금을 사는 기분은 어떨까. 피해학생들에게는 그 때의 경험이 어떤 의미였을까. 사과를 하겠다고 용서를 구하며 찾아온 가해자를 보며 어떤 느낌이 들었을까. 사과를 들을 땐 또 어땠을까. 이 학생들은 정말 사과를 받아주고 용서한 것일까. 그 용서는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그런 생각들을 하던 와중에 블락비란 그룹의 문제의 태국 인터뷰에 대해 알게 되었죠. 저 역시 그 인터뷰 내용에 경악했기 때문에 처음에는 '어떻게 저렇게 타인의 고통에 대해 무감각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어요. 쉽게 말하면 소위 개념이 없는 건데, 그 '개념없음'이 어떻게 만들어진 건지가 궁금해지더라구요. 그건 머리로 알기 전에 어떤 감수성이 습득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이 아이돌 그룹이 여론에 떠밀려 사과야 하겠지만, 무엇이 문제인지를 정말로 가슴으로 깨닫게 될 수 있을까, 그게 가능해야 할텐데, 뭐 이런 생각들을 했었어요.

 

그런데 오늘도 보니까 계속 시끄러운 뉴스가 보도되고, 해당 아이돌 그룹의 멤버들이 제대로 반성하고 뉘우치는 문제 이상으로, 그 그룹의 소속사의 대처방법이라든가 팬덤의 반응이라든가 인터넷 여론 같은 문제들이 얽혀서 사건이 악화일로를 걷는 것처럼 보이네요.

 

 

모르겠어요. 사과, 반성, 용서. 너무 어려운 주제라서 간단히 답을 내릴 수 없는 건 당연하죠.

그냥 고민을 많이 하게 됩니다. 당장 제 자신의 문제로서요.

 

여러분은 절대 용서할 수 없는 누군가가 있으신가요? 전 있어요. 어디사는 누군지도 몰라서 대부분의 시간은 잊고 지내지만, 어쩌다 생각하게 되면, 그 사람이 평생 괴롭게 살았기를, 남은 인생도 괴롭게 살기를 바라게 되는 그런 사람이요. 만약 제가 이 사람에 대한 분노나 원한이 너무 깊었다면, 그 감정에 짓눌려서 제 인생 전부가 망가졌을지도 모르죠. 그렇게 되지 않을 수 있었던 건, 제가 피해의 당사자가 아닌 덕분일 겁니다. 누군가 그 사람을 용서할 수 있냐고 묻는다면, 용서할 수 없다고 대답하겠지만, 평소엔 거의 의식하지 않고 살고 있기에, 기억하지 않고 살고 있는 덕분에 용서를 할 수 있네 없네 하는 말을 쉽게 하는 것도 같아요.

 

반대로, 용서를 구하고 싶은 사람 있으세요? 이번에도 전 있습니다. 연락이 끊어진 후배인데, 그 후배의 어떤 질문에 대해 뜬금없이 짜증을 벌컥, 낸 적이 있어요. 별로 친한 사이도 아니었는데 말이죠. 그 친구는 제 짜증에 대해 황당해하며 기분이 상했다고 말했는데, 전 제 자신의 모습에 당황하여 아무 말도 안 하고 모른 척 했어요. 아.. 어릴 때 일이긴 한데, 참 두고두고 마음에 걸려요. 그 후로도 더 가까워질 기회는 없었고(어쩌면 그 친구가 저를 피했는지도), 사실 몇 년 간은 까맣게 잊고 살고 있었는데, 최근 들어 종종 생각이 나더라구요. 꼭 사과하고 싶은 사람, 이라고 생각하면 그 친구가 떠올라요.

 

그 후배와의 일 정도는 사과를 한다면 쉽게 용서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언제 그 기회가 올지 모르겠지만, 그런 기대를 품고 있긴 해요. 하지만 제 예상과는 달리 그게 정말 그 친구에게 큰 영향을 미쳤을 지도 모르죠. 그런 생각을 하면 두려운 마음이 듭니다. 게다가 제 자신이 의식하지 못하고 저지른 잘못도 참 많을 것 아니겠어요? 어쩌면, 루시드폴 노랫말처럼, 살아가는게 나를 죄인으로 만든다는 생각도 자주 하구요. 또한 앞으로 살아가면서, 내가 의도치 않았지만 실수를 하고 큰 잘못을 저지를 가능성도 얼마든지 남아있습니다. 그럴 때, 나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가야 하는 걸까요? 나의 진심을 다한 사과가 상대방에게 전달되지 않는다면? 설령 용서를 받는다 한들, 스스로 느끼는 죄책감은 어떤 크기로 얼마나 오랫동안 지니고 살아가야 하는 걸까요?

 

반대로 내가 누군가를 용서해야 하는 위치에 설 때는 어떨까요. 나는 상대방의 사과가 진심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내 용서가 잘못된 면죄부를 주고, 또 다른 누군가의 마음을 아프게 만드는 결과를 낳으면 어쩌죠?

 

잘못한 사람에게 뉘우치고 새로운 삶을 살 기회를 주는 것, 이건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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