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울증을 치료하고, 자신을 사랑하고, 변화를 위한 방법들을 잘 갖추고, 특히 성장마인드세트로 무장하고 나면, 그토록 찾아해맸던 인생의 목표를 향해 달리는 것이 훨씬 수월해집니다. 이런 것들을 배우고 익히기 전까지는 진정한 삶의 목표가 뭔지 몰라서 헤매었습니다. 전 정말 10년 넘게 헤맸던 것 같아요. 학교도 그만 두고 밖에서 방황하기도 하고. 그래도 찾아지지 않더라고요. 그러다 희미하게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게 되기 시작했지만, 우울증이 심해서 의욕도 에너지도 없고, 삶의 패턴이 너무 망가져있어서 제대로 된 생활과 새로운 것의 학습이 불가능하였고, 지금까지 쌓아온 것이 없고 이미 있던 것도 망쳐놓은 상태여서, 헤매다보니 나이가 너무 들어 그것을 시작하기에는 너무 크게 늦어서, 그리고 결정적으로 죽도록 노력할 수 있을지 스스로를 믿을 수 없고, 도전했다 실패할까 너무 두려워서, 제대로 추구하지 못했던 인생의 목표. 이것이 서서히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했어요.  그 이전에는 무서워서 제대로 알아 볼 생각도 못 했죠. 이미 늦었고, 잘 할 수 있을지도 몰라서 부러 외면했었으니까. 그런데, 이제는 늦든 뭐하든 잘 할 수 있을지 없을지 고민이 되든 말든 현실적으로 시도하는게 가능하든 안 하든, 우선 도전해보기로 했어요. 정말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해서. 시간이 얼마나 걸리더라도, 해보기로 했어요. 물론 철저하게 현실적인 기반 하에, 즉 혼자 먹고 살 수 있도록 돈을 벌고 절약하는 습관을 들이고 외부의 도움도 받을 수 있는 한 최대로 받고, 그러면서 내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찾아가며 관련 공부를 하고 자격증을 따는 등등 일을 시작할거에요. 이런 도전을 해도 현실적으로 이미 너무 늦어서 원하는 그것을 할 수 없을수도 있겠죠. 하지만 꿈이 한 단계로 끝나는건 아니잖아요. 꼭 해당 전문 직업이 아니더라도 비슷한 일을 하는, 혹은 보조적인 도움을 주는 관련 분야에서 일을 하거나, 아니면 봉사를 할 수도 있고. 혹은 취미(라고 해도 꽤 전문적으로 공부하겠지만.)로 할 수도 있고. 결과가 어찌 나올지 모르지만, 우선 제 목표를 향해 끈덕지게 도전해보기로 했어요.  사실 삶의 목표는 이미 알고 있었어요. 이런 저런 노이즈때문에 그게 흐려졌을 뿐. 스스로에 대해 공부하고, 또 명상을 하면서 그것이 명확해졌죠. 정말 기쁜 일이에요. 도전할 목표를 다시 가지게 된 것. 목표가 있어야, 앞으로 움직여 나갈 수 있을테니까. 그리고 그 과정속에서, 제가 바랐던 '행복', 삶의 의미도 얻어질 테니까.

 

 

 

 

 

2.

 

<우울증에 반대한다>의 피터 D. 크레이머 박사님은 '우울증 때문에 많이 배웠어요.' 운운하는 이야기를 상당히 싫어하십니다. 그런 태도가, 뇌에 대한 타격이나 수명 단축이나 생활의 질 저하 등 뭘로 보다 최악의 질병 중 하나인 우울증에 조금이나마 '긍정적'인 평가를 가능케하여, '환자의 완벽한 변화를 위해서는 더 깊이 침잠하여 삶의 고통을, 자아를 직시해야 한다.'며 우울증세를 암묵적으로 방치하는 '일부', '과거' 심리치료전략등이 다시금 발생할까 크게 우려하기 때문이죠. 이런 우려,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하지만 역시 저는 우울증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정말 많이 배웠어요. 우울증에서는 아무 것도 못 배웠고요-_-, 이걸 극복하는 과정에서요. 예전에는 '인생에서 가장 필요한 공부가 무엇인가요?' 하는 막연한 질문에 어떤 스승들이 '마음 공부를 해라. 자기 자신에 대해 공부하라.'고 답해주시는 것을 들으며 '그게 뭐야? 마음? 뇌과학을 공부하라는 이야기인가?' 하고 시큰둥하게 듣고 넘어갔어요. 정신적 고통이 심해지고 나서는 뭔가 관련 공부를 해야 할 것 같은데 대체 뭘 어찌 해야할지 감을 못 잡아서 시도를 못하기도 했고요. 그렇게 오랜 시간 우울증 재발을 겪으며 결국 만성 재발성 우울증 환자가 되고, 스스로 망쳐가는 삶이 너무 괴로워서, 정신적으로 힘들어서,  그래도 죽기 싫어서 꾸역꾸역 관련 정보들을 찾고 이것 저것 알아보았어요. 그리고 어느 순간 알게 되었죠. 아, 이게 마음공부구나. 종교일 수도 있고, 심리치료일 수도, 과학적인 심리학일 수도 있고, 인간에 대한 철학일 수도 있지만(음, 저는 철학 공부를 많이 못했어요. 앞으로 해나가야 할 듯.) 하여튼 연관되는 각종 방법들을 총 동원해서 자신에 대해 이전보다 좀 더 잘 알고, 아픔을 치유하고, 해야 할 일이 있으면 적극 행하며, 그 결과 자신에 대해 더 투명해지는 것. 우울증 덕에 저는 이 과정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꼭 운명이 그렇게 만들어 놓은 것 같이.

 

 막말로 이 병이 아니었다면 이런저런 공상이 취미고 조그만 쉬는 틈을 참지 못해 잡지니 책이니 인터넷을 뒤적거리는 제가 '2시간씩 가만히 앉아 들숨 날쉼이나 쳐다보는' 무모한 짓을 시도하기나 했겠냐고요. 불교도도 아닌데. 몸 움직이기 그토록 싫어하는 제가, 여행을 가는 것도, 친구들과 만나러 밖에 나가는 것도 어지간하면 원천차단하는 제가, 달리기까지는 꾸준히 못해도 매일 강아지를 끌고 한시간씩 산보를 했겠냐고요. 이제 제 삶의 축복 중 하나가 된 제 강아지도 애초에는 개를 기르는 것이 우울증 치료에 큰 도움이 된다 하여 입양했던 것인데. 우울증이 아니었다면 영양제 같은 건 제대로 된 식사로 퉁칠 수 있다며 비웃던 제가 오메가-3와 각종 종합비타민제를 꼬막꼬막 챙겨먹고, 뇌에 좋은 음식이 뭔지 기억하며 찾아먹으려 애쓰고, 두통약이나 소화제도 먹기 싫어하던 제가 정신과약을 먹었겠냐고요. 비싼 돈 들여가며 심리치료를 받고, 치료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취직을 하고, 누가 돈 주는 것도 아니고 학점을 딸 목적도 아닌데 심리학 논문을 뒤지고 관련 책들을 사대고 종교서적을 읽고 명상을 배우러 절에 기웃거리고. 우울증을 치료하기 위해 발버둥치기 전에는, 이런 제 모습은 상상할 수도 없었어요. 그리고 이 과정에서 저에 대해 좀더 많이 알게 되고, 제가 무엇이 이상했는지, 어디가 부족한지, 뭘 배우고 채워야 하는지 깨닫기 시작하고, 변하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저는 변했어요. 그리고 앞으로도 변해갈 거에요. 그렇게 노력 할 거고.

 

더 좋은 건, 우울증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배운 방법들이, 우울증의 삶 이후에도 크게 좋은 방법들이라는 것이에요. 자신을 관조하는 심리적 기법, 생각 바꾸기, 관련 정보를 위해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 성공적인 변화를 위한 방법들, 성장마인드세트, 좋은 영양, 운동, 명상을 하는 습관, 열려있는 마음, 반응하지 않는 마음, 자신을 잘 이해하여 갈수록 투명해지기, 아는 것을 행동에 옮기는것. 이런 것들은 제가 우울증에서 완치(?)되고 난 후에도, 삶의 질을 개선하는데, 더 나아가 평범한 삶을 넘어서 더 위로 높이 높이 올라가는데 핵심적인 도구가 될 거에요. 그리고 저는 이것들을 우울증을 극복하려 노력하는 과정에서 하나 둘 배웠고요.

 

 

 

 

3.

 

우울증의 모습은 사람마다 다 다르대요. 그리고 치유가 시작되는 계기부터, 치료의 과정 또한 사람마다 큰 차이를 보인대요. 이 병의 정확한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고, 사람들은 다들 저마다의 이유와 사연 때문에 우울증에 걸려요. 그렇기에 치유되는 모습도 가지각색일거에요. 그리고 이 글은  '저의 우울증의 모습'과, 제가 치유되기 위해 이것 저것 시도해봤던 과정에 대한 이야기에요. 어떤 분에게는 나와 같은 환자의 경험담으로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또 어떤 분에게는 저에게 아주 좋았던 방법이 전혀 효과가 없을 수도 있죠. 하지만 원래 그럴 수 밖에 없는 것 같아요. 사람이 다 다른 만큼, 치료되는 과정도 다 다른 것.

 

이 글을 쓰게 되어서 정말 좋았어요. 심리치료방법 중에 '글로 하는 치료'가 있대요. 그리고 저는 이 글을 쓰면서, 그 치료법을 스스로에게 적용시키고 있었어요. 책을 읽고 머리 속으로만 '정말 좋다. 크게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하고 지나갔을 것들을 정리하고 요약해서 쓰면서 더 확실히 머리속에 입력이 되고, 자신에 대해 막연하게 분석하고 생각해 왔던 것들 또한 글로 쓰면서 한층 명확해지고. 그리고 뭔가 해냈다는 성취감도 있어요. 중간에 내던지고 도망가기도 했고, 이것저것 많이 모자라기도 하지만, 하여튼 대강 글을 마무리 지은 것 같거든요. 우울증이 심해지고 나서는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는데. 칭찬해줘도 좋을 것 같아요. 원래 무언가를 '창조'하는 것은 정신적인 고통을 방어하는데 어마어마한 효과가 있대요. 그래서 불안증, 우울증, 조울증 등 심리적 고통에 시달리던 사람들 중에 작가와 예술가들이 많다고 하더라고요. 창조하고 있는 순간 만큼은, 고통이 완화되기에. 그리고 창조가 꼭 어마어마한 것일 필요는 없잖아요. 그림을 그리고 요리를 하고 일기를 쓰는 것도 훌륭한 창조 행위죠. 그리고 이 글을 쓰면서 저 역시 우울증이 더 많이 좋아지고,  심리적으로도 크게 위안을 받았어요.  제일 좋았던 것은, 저와 같은 병으로 힘들어하시는 분들이 생각이상으로 참 많다는 것, 그리고 그중에는 크게 회복되셔서 멋진 삶을 살고 계시는 분들도 있다는 것을 수시로 확인한 점이었어요.  '나는 혼자가 아니구나. 나 혼자만 이상한 돌연변이는 아니었구나. 그리고 나도 훨씬 좋아질 수 있구나.'  앞으로 긴 글은 쓰지 않겠지만 (힘들 ㅠㅠ), 개인적으로 소소한 우울증 일기나 책을 읽고 또 무언가를 배우고 기록을 남기는 행위들은 꾸준히 해 나갈 생각이에요. 꾸준히 글을 쓰는 것은 정말 좋은 습관이더군요. 글 때문에 생각도 못했던 일들이 막 생겨요.

 

우울증 관련 정보를 접하며, 또 글을 쓰면서 알게 된 사실. 심한 우울증 환자 중 위인전에 등장하는 사람도 상당히 많더라고요. 제가 관심을 가지고 팠던 사람들만 해도 윈스턴 처칠, 아브라함 링컨, 윌리엄 제임스. 이들이 생존했을 당시는 항우울제도 변변하게 없었을 때인데, 이분들은 정상적으로 기능하는 것을 넘어서서 위대한 업적을 이루기까지 했어요. 그리고 이런 위대한 사람들의 리스트는, 우울증 뿐 아니라 조울증, 불면증 등 각종 정신적 고통을 이겨내고 탁월한 삶을 성취한 사람으로 폭을 확장시키면 더 길어져요. 정신적인 고통이 무조건 삶을 망치는 것은 아니라는 훌륭한 실례들이죠. 심지어 지금 우리는 더 나은 약과, 훨씬 발전한 심리치료법, 그리고 급속히 발전하는 뇌과학, 심리학적 지식들을 손에 쥐고 있는걸요. 물론 우리들이 그들처럼 될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뭔가 안도감과 자신감이 생기지 않나요? 그 가능성을 생각하는 것만 해도.

 

특정 질병이 한 사람을 정의하지 못하며, 그 질병이 오히려 새로운 가능성을 위한 발판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저는 우울증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배웠어요. 이 교훈은 인생의 모든 고통과 어려움에도 적용되는 이야기일 거에요. 타고난 한계와 물려받은 조건이, 혹은 지금 놓인 최악의 상황이, 한 인간의 삶을 완전히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은 무언가를 이루어낸다. 그러므로 인간의 삶 속에 필연적인 고난과 고통을 이겨내면서 우리는 늘 변하고, 발전하며, 성장하고, 자신과 세상을 더 잘 이해하며, 그리하여 겸손해진다. 그리고 이 끊임없는 과정이, 진정한 의미의 '삶'이다.

 

 

 

 

 

Fin.

 

 

지금 미얀마의 양곤에 와 있어요. 어제 도착했는데, 다행히 무선 인터넷이 되는 호텔에 머물고 있어요. 미얀마의 거리는 탄약냄새를 방불케하는 매연으로 가득하고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찢어지게 가난하지만, 사람들은 정말 착하고 잘 웃고 친절했어요. 명상센터에 사전답사 갔다가 우연히 뵙게 된 스님도 영어를 유창하게 하시는, 아주 멋진 분이셨고요.  몇 시간 지나면 명상센터에 들어갈거에요. 일 주일을 버틸지, 한 달 이상 있을 수 있을지 해봐야 알겠지만,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할거에요. 다시 한국에 돌아갈 때는 지금보다 더 투명해진 모습이 될 수 있기를. 그 동안 듀게 여러분도 행복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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