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게 생긴 여자

2010.07.07 22:50

차가운 달 조회 수:5262




평소와 같은 시간에 핸드폰의 알람이 울렸고, 저는 잠에서 깼죠.
더 이상 잠은 오지 않았지만 괜히 뭉기적거리며 시간을 보냈어요.
어차피 회사에는 지각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으니까요.

뭐, 기억하시는 분은 알겠지만 어제 버스 정류장에서 이상하게 생긴 여자를 만났거든요.
그런데 너무 여유를 부려서 그런지 집을 나서며 시계를 보니 제법 많이 늦은 거예요.
잘못하면 그 여자가 출근을 하는 시간보다 더 늦을 것 같았어요.
그래도 뛰면 더우니까 뛰지는 않았죠.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니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몇몇 있었지만 그 여자는 없더군요.
왠지 들판 한가운데 있는 것 같은 버스 정류장이에요.
너무 늦어서 그 여자가 이미 가 버렸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회사에도 지각을 하게 생겼고 말이에요.

이놈의 버스가 언제 오나 팔짱을 낀 채 도로만 바라보고 있는데
들판 저쪽에서부터 걸어오는 그 여자가 보였어요.
처음엔 확신할 수 없었죠.
어제와는 다른 옷을 입고 있었거든요.
점점 가까워질수록 알겠더군요.
참 이상하게 생긴 여자였어요.
흔히 남자들이 보는 시각에서 예쁜 것과는 거리가 멀었죠.

오늘은 청바지를 입고 있더라구요.
그리고 소매가 없는 상의를 입고 있었는데
왜 있잖아요, 농구선수들이 입는 것 같은 그런 헐렁한 옷 말이에요.
짙은 남색이었어요.
어제 바지도 남색이었는데 아마 그런 색깔을 좋아하나 봐요.
그 남색 셔츠 밑에는 또 흰색의 소매 없는 셔츠를 하나 더 입었더라구요.
하긴 그 남색 셔츠는 삼총사에 나오는 총사들이 그냥 겉에 걸치고 있는 그런 옷이랑 비슷했거든요.
아무튼 패션 감각은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 눈에는 참 보기 좋았어요.

그런데 신발은 굽이 전혀 없는 흰색 단화를 신었더라구요.
마치 학교에서 그냥 실내화를 신고 나온 학생처럼 보였죠.
신발이 그런데도 뭐 키는 그렇게 작지 않았어요.
오히려 큰 편이라고 해야겠죠.
어쨌거나 연약해 보이는 몸은 절대 아니었죠.

어제는 분명 직장인이라고 생각했는데
오늘은 그렇게 캐주얼한 옷을 입고 있으니 좀 헷갈리더군요.
하지만 매일 아침 같은 시간에 학교에 가는 학생은 잘 없잖아요?
어쨌거나 반가웠어요.

버스는 뒷문을 열더군요.
정류장에 있던 사람들 가운데 그 여자와 저만 버스에 탔죠.
그 여자는 위치 선정이 좋아요, 오늘도 저보다 먼저 버스에 올라갔거든요.
사람들을 밀치며 자리를 잡고 보니 그 여자와 마주 보는 모양이 되더군요.
몸을 옆으로 살짝 틀었죠.
마주 보는 건 좀 부담스럽잖아요?

그 여자와 저는 같은 손잡이를 잡았죠.
바닥에서 천장까지 세로로 길게 선 쇠막대 말이에요.
여자는 귀에 이어폰을 끼고 핸드폰인지 MP3 플레이어인지 알 수 없는 기기로 음악을 들었어요.
음악이 조금 새어 나왔는데 댄스곡인지 락음악인지 알 수 없더군요.
아무튼 조용한 음악은 아니었어요.

손잡이를 잡은 그 여자의 손목에는 커다란 시계가 있었어요.
은색이 나는 금속으로 만든 시계였죠.
큼지막한 금속줄도 모두 차가운 은색이었어요.
다른 손목에는 마치 은단을 이어붙인 것 같은 은색 팔찌를 차고 있더군요.
왠지 여성스럽다기보다는 터프해 보였다고나 할까요.
저는 예전부터 그런 여자가 좋았죠.
변기 뚜껑으로 악당을 때려 죽일 수 있는 그런 여자라고나 할까요?

무슨 짓을 하든 그 여자의 기억에 저를 심어주고 싶었어요.
일단 그 여자가 저를 인식해야만 했어요.
그렇잖아요, 누군지 알지도 못하는 사람과 무슨 일이 생길 수가 있겠어요.
하지만 출근길의 만원 버스 안에서 뭔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죠.
버스가 흔들려 그 여자가 제 발을 밟거나 제 팔을 붙잡거나 뭐 그런 일이 일어나기를 바랐죠.
아무 거나 좋았어요.
그런데 버스 기사가 운전을 참 잘하더라구요.

저는 무심코 손가락으로 쇠막대를 톡톡 두드렸어요.
문득 그 생각이 들더군요.
세상에는 예쁜 손을 가진 남자를 좋아하는 여자들이 있다.
드물지는 몰라도 분명 그런 여자들이 있죠.
혹시 모르잖아요, 그 여자가 바로 그런 여자인지도.
그래서 저는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죠.
제 손은 전국 예쁜 손 경연대회를 해도 3위 안에는 들 자신이 있을 정도로 괜찮았거든요.

마치 인도인들이 춤을 출 때 그러는 것처럼 손을 괜히 꼼지락거렸어요.
그 여자가 제 손에 주목할 수 있게 말이죠.
제 손은 물고기처럼 쇠막대와 허공 사이를 헤엄쳤어요.
정신 사나울 정도로 말이에요.
그런데 어느 순간 그 여자가 등을 돌리더군요.
그때부터 저는 얌전히 있었어요.

지하철에서 우리는 헤어졌죠.
사무실에 도착하니 10분 늦었더군요.
이만하면 괜찮다 싶었어요.
앞으로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지각을 할 거라고 결심을 했죠.

컴퓨터를 켜고 의자에 앉아 그 여자를 생각했어요.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 여자의 얼굴을 생각했다고 해야겠죠.
두 번째 보는 얼굴이라 그런지 오늘은 인상이 더욱 뚜렷하게 남아 있었어요.
괜히 그러는 말이 아니라 정말 이상하게 생겼어요.
눈은 옆으로 찢어졌는데도 조금 커요.
이상하죠, 예쁜 눈은 아니에요.
코는 마치 요트의 돛처럼 길고 반듯하게 뻗은 게 그런대로 보기 좋았죠.
입술, 입술은 살짝 튀어나온 광대뼈와 더불어 그 여자의 얼굴이 이상하게 보이게 만드는 일등 공신이에요.
마치 흑인 래퍼들이나 가지고 있을 법한 입술이라고나 할까요.

아무튼 좀 시원시원하게 생겼어요.
화를 내면 참 무서울 것 같은 그런 얼굴이죠.
가만히 있어도 뭐 귀엽다거나 예쁘다거나 그런 느낌은 전혀 안 드는 얼굴이에요.
그런데도 뭔가 사람의 마음을 잡아끄는 구석이 있어요.
물론 저한테는 그렇다는 말이죠.
그 여자의 얼굴을 석고상으로 만들어 책상 위에 올려놓고 한 번씩 보고 싶어요.
사람의 흥미를 끄는 얼굴이에요.

그 여자 생각은 그걸로 잊고 하루 종일 바쁘게 지냈죠.
퇴근길에 다시 그 여자 생각이 나더군요.
하지만 아주 잠깐이었어요.
그냥 그런 여자가 있다는 거지 뭐 어쩌겠어,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죠.


아...
쓰다 보니 별로 재미없네요.
시간을 두고 매일 조금씩 쓸 수 있는, 뭔가 드라마틱한 얘기를 기획했는데...
한 달 뒤에는 사랑에도 빠지고, 또 어떤 날에는 싸우기도 하고,
비극적이고 격정적인 사랑 얘기로 흐를 수도 있고, 뭐 그런 식으로 말이에요.
그런데 이쯤에서 그만 끝내야겠어요.
이상하게 생긴 여자와 사랑에 빠지는 얘기, 재미없네요.

아무래도 컨셉을 잘못 잡은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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