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998년에 You've got mail이 개봉했죠.  저는 철썩같이 맨 끝에 멕 라이언의 서점이 살아남는다고 기억하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더군요. 흠.


영화의 배경은 미국에 Barnes and Noble이나 Borders 같이 책값 할인을 많이 해줄 수 있는 대형 서점이 곳곳에 들어서면서 소형 서점들이 망해갈 무렵이고, 스타벅스 얘기가 나오는 걸로 봐서는 아마 매장안에 스타벅스를 운영하던 Barnes and Noble이 Fox 서점의 모델인 것 같아요. 


어쨌든, 그게 13년 전의 얘긴데, 지금은 형편이 또 달라졌죠. Borders는 전국적으로 폐업선언을 했고, Barnes and Noble도 여러 지점을 폐쇄했고요.  그래서 제가 사는 동네는 이제 서점이 없어요.  Barnes and Noble의 e-book 리더 Nook은 얼마나 팔리고 있는지 모르겠네요.  이게 다 Amazon.com이 대형 서점도 못하는 할인, 배송비 무료, 총알배송, (주에 따라) 세금 면제를 무기로 해서 몇 년에 걸쳐 시장을 장악한 영향이죠.  돈은 좀 들지만 Amazon 프라임 계정 혜택도 꽤 좋아요. 저도 아마존에서 프라임계정 무료 스트리밍으로 이 영화를 봤는걸요. 이것만 봤나요. 고든 램지의 크리스마스 요리쇼도 보고 기타등등.....


"You've got mail, 13년 후" 라는 영화를 만든다면 Fox서점을 운영하던 Fox 가문은 어떻게 되었을지 궁금하네요.  13년 늙어버린 톰 행크스가 멕라이언이 아래 동영상에서 하는 대사를 Amazon.com 웹사이트를 향해 외치고 있을까요?  뭐, 사업이 축소돼서 좀 의기소침해지고 신경질적이 됐겠지만, 그래도 이미 분산해놓은 투자로 그런대로 잘 먹고 잘 살고 있겠죠.



2.

주말에 Midnight in Paris를 두번째 봤어요.  첫번째는 어디선가 어디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봤는데, 기내 방송으로 봤어도 꽤 재미있었거든요.  그래서 이미 DVD로도 나온 영화를 극장에서 보기로 했죠.


오웬 윌슨은 전부터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이 영화에서 정말 괜찮더군요.  젊고 덜 못생긴 우디 앨런을 이렇게 연기하다니! 


이런 영화, 저는 치유계 영화라고 부르고 싶어요. 아아.....내가 이해할 수 없는 가치로 모든 걸 판단하고,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하는 사람들에게서 나를 구해줘요, 우디 할아버지.....랄까요.  우디 앨런의 90년대 후반 이후 영화는 어떻게 이렇게 다 사랑스러운가요.


......라고 생각하며 부푼 기대를 안고 지난 금요일쯤 You will meet a tall dark stranger의 DVD를 주문했죠. 오늘 배송 왔더군요.  제목도 왠지 재밌을 것 같쟎아요!!  방금 다 봤는데, 기대와는 달리 영화를 본 후 조금 우울해지고 말았어요.  이 영화가 끝난 후 이어질 등장인물들의 삶을 생각하면 참으로 답답해져요.  특히 나오미 와츠는 몇 번이나 감정적인 나락으로 떨어지는데.........우디 할아버지 나한테 이러지 말아욧!!!  (그리고 솔직히 남자 등장인물들이 너무 제 취향이 아니었어요!!! 안토니오 반데라스는 제가 싫어하는 어떤 이탈리아 남자를 닮았구요!!!!)


기분 전환을 위해서 사놓기만 하고 안본 Vicky Cristina Barcelona나 틀어놓고 보던지 해야겠어요.  이건 극장에서 봤으니까 기대를 뙇! 하고 배신하는 일은 없겠죠.



3.

오늘 왠지 게시판이 제 취향이네요.  오빠 방에서 라면먹는 얘기하며 귀여니 얘기하며 코선생 얘기하며...기타등등 기타등등.  아, 귀여니 책이 제 취향이라는 게 아니라 저는 전반적으로 제가 뻘댓글을 달 수 있는 글들을 좋아합니다.



4.

주말에 저 혼자 슬슬 걸어서 동네 클럽에 갔어요.  동네가 하도 작아서 그냥 집에서 슬슬 걸어가면 동네 사람들 모이는 클럽이 나와요.  제가 술은 안마시는데 클럽 가는 건 좋아하고, 친구들은 다들 조신해서 같이 갈 사람이 별로 없고요.  그래서 가끔 혼자 어슬렁 어슬렁 가서 콜라 마시면서 사람구경하다 오곤 하죠.


이번 주말에도 사람 한 명 구경도 못하고 컴퓨터랑 일을 하다가, 이래선 안되겠다는 생각에 또 어슬렁 어슬렁 클럽에 갔거든요. 거기서 한시간쯤 있다가 드디어 제가 뭘 원하는지를 인정하고 말았어요.


서로 (그쪽은 얼만큼인지 모르니까 일단) 약간의 감정이 있다는 건 알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제가 극도로 회피하고 있었던 사람을 이제 일부러는 피하지 말아야겠다고 결정했거든요.  그 사람 많은 클럽에서 있었던 한시간 동안 그 사람하고 여기 같이 있으면 얼마나 더 좋을까 하는 생각이 계속 나더라구요. 그리고 장소가 미국인지라 어느 집 자제인지 초면에 버릇없이 도발하는 남자들이 좀 있었는데, 소름이 짜르르 돋는 것이, 아아...사람이 오징어처럼 보이고!!!  클럽 안을 돌아보니 이건 오징어 건조장인가!!! XX야 나를 여기서 구해줘!!!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다들 아시겠지만, 거기 있는 사람들이 진짜 오징어처럼 생겼을 리는 없죠.  다 그냥 괜찮고 멀쩡한 사람들이에요.  그냥 그 때 제 눈에 그렇게 보인 거지.


그래서, 돌아오는 길에 인정하고 말았습니다.  이대로 흘려보내면 평생 후회하겠구나!  


근데, 일단 지금부터 한달동안 제가 다른 곳에 가 있게 되기 때문에 시동 걸기도 전에 휴지기가 있어요.  또 한달 후에는 제가 뭔 생각을 하고 있을지 모르죠.  돌아와보면 그 사람한테 여자친구가 생겨있을 수도 있고요.  어쨌든 지금 생각으로는 1월에 그 사람을 보게 되면 관심 담은 말이라도 한 마디 건네야겠습니다.


그리고, 이게 제가 You will meet a tall dark stranger를 보다가 좀 우울해진 이유에요.


(스포일러)

















나오미 와츠가 안토니오 반데라스와 서로를 향한 감정이 있음을 느끼지만 계속 외면하다가, 드디어 자신의 감정에 대해 확신을 가지게 됨과 거의 동시에그게 혼자만의 생각이라는 걸 알아내는 장면이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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