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다른 곳에 먼저 올렸던 것을 여기에 다시 올려서 말투가 이런 것이니 양해 부탁드려요.)

 

<천국의 문>, <폭스캐처> 그리고 나의 흥분의 미스터리

어제 두 편의 걸작들인 마이클 치미노의 <천국의 문>과 베넷 밀러의 <폭스캐처>를 연달아 보고 너무 큰 감흥을 받아서 진이 다 빠져버렸다. 이 영화들에 대한 생각을 몇 자 적어보고자 하는데 그 전에 나에 대한 얘기를 좀 해보고 싶다.

지금 현재도 느끼고 있는 것이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나의 모든 감각 기관은 영화를 보는데 용이하도록 최적화되어 있는 것 같다. 그러지 않고서야 영화를 본 흥분을 가라앉히고자 잠을 못 자고 있는 현재의 상태를 도대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마음을 진정시키고자 커피숍에 들렀다가 막차 시간이 끝나도록 일어나지 못하고 그만 주저 앉아버렸다. 올해 들어서도 벌써 몇 번째다. 오늘은 옆구리가 아프고 자칫 잘못했으면 토가 나올 정도였다. 아직까지 다행히 그런 적은 없었지만 좀 과장을 하자면 이러다가 영화를 보다가 심장마비로 죽는 일이 생기지나 않을까 살짝 걱정이 되기도 한다. 이런 상태가 되면 각성제가 따로 필요가 없다. 핫식스를 한 10개 복용한 효과랄까. 마약을 하면 이와 비슷한 기분을 느낄 수 있을까. 마치 세상을 다 가진 듯한 흥분 상태가 오랫동안 지속된다. 정녕 나의 성감대는 눈에 집중되어 있는 것일까. 이런 상태에 빠지면 심호흡도 해가며 밤을 꼴딱 새는 방법밖에 없다. 마음이 안정되어야 잠을 편안히 잘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그 전에는 몸과 마음이 자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이 마음을 진정시키고자 보고 온 영화에 대한 글도 쓰고 영화와 관련된 많은 것들을 검색하면서 시간을 보내게 된다.

내가 영화를 보고 이런 반응을 하는 것은 사실 나를 피곤하게 만드는 부분도 있다. 내가 이런 상태가 된다고 해서 남들보다 영화를 잘 이해한 것은 절대로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영화를 볼 때 단 한가지도 놓치지 않겠다는 굳은 마음으로, 마치 전투에서 꼭 승리하겠다는 심정으로 봤음에도 불구하고 주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다가 보면 오히려 내가 영화에 대한 이해력이 떨어진다는 것을 절감하면서 좌절하게 될 때가 다반사다. 당장 어제도 그걸 느꼈다. 결과적으로 이런 흥분 상태는 나에게 무용하다.

이 흥분 상태가 그동안 얼마나 민폐의 온상이었던가에 대해 말을 하기 시작하면 흥분 상태의 무용성은 더욱 드러나게 된다. 내가 영화를 보고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걸작'을 남발하면서 수다를 떠는 바람에 나에게 질려버리고 나와 영화 얘기를 더 이상 하기를 원치 않는 사람들도 주변에 있었고 내가 상대방으로부터 그렇게 느낀 적도 있고 내색은 하지 않지만 속으로는 나에 대해 그렇게 느끼고 있는 사람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영화를 보고 나온 상대방에게 하는 나의 가장 악명높은 발언. 아마도 '영화 어떠셨어요?'와 '걸작이죠!'일 것이다. '영화 어떠셨어요?'에 대해서 먼저 말하자면 그것은 아마도 나의 호기심 천국 성향에서 비롯된 것 같다. 나는 왜 늘 남의 의견을 궁금해하는 걸까. 나는 예전부터 남의 삶에 관심이 많았다. 밤이 되면 창 밖에 불이 켜진 집들을 바라보며 그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궁금해하곤 했다. 이것은 한편으로 내가 주체로서 제대로 성립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나는 보통 남의 의견을 듣고 나의 것과 종합을 해서 결론을 내려는 성향이 있는데 내가 상대방의 의견을 묻는 건 그것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이 정도로 내가 '영화 어떠셨어요?'라는 질문을 하는 것에 대한 해명이 되지 않았다면 더 생각을 해봐야할 것 같다.

'걸작이죠!'라는 발언을 하는 이유는 좀 더 복잡하다. 우선 이것은 학습효과에 의한 것이다. 내 주변에서 영화를 자주 보러 다니던 지인들 중에는 끝내주는 영화를 보면 '걸작'이라고 하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이것을 듣고 배웠고 그 이후로 어떤 영화에 대한 최고의 찬사를 보내고 싶은 경우 항상 '걸작'이라는 말을 썼다. 논리적인 근거를 항상 댈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내적으로 어떤 높은 기준점에 도달했다는 마음이 들 때가 있는데 그런 경우에 나는 그 영화를 걸작이라고 부른다. 문제는 나에게는 그런 영화가 상대적으로 남들보다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걸작이라는 용어를 가르쳐준 지인들마저 내가 남발하는 걸작 소리에 나에게 질려버리는 웃지 못할 상황까지 벌어지고 말았다. 그리고 나의 걸작 남발은 주변에서 영화 평가에 대한 나의 신뢰도를 현격히 떨어뜨렸다. 내가 보통 영화를 평가하는데 있어 남들보다 점수가 후하다는 말은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것은 항상 내가 어떤 영화를 볼 때 어떤 영화든지 그 미덕을 찾기 위해 단점보다는 장점을 위주로 보려고 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어떤 영화를 걸작이라고 부르고 싶은 욕구를 버리지 못하는 것은 내가 항상 어떤 것을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싶어하는 것과 관련이 깊은 것 같다. 나는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어떤 측면으로 보자면 무질서한 상황를 불안해하고 견디지 못하고 정리, 분류, 배열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영화도 '범작', '수작', '걸작'으로 분류를 해야 직성이 풀리는 것이다.

내가 소위 '걸작주의자'(?)라는 오명을 얻게 된 것은 나의 기형적(?)인 영화 보기와도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내가 97년부터 여러가지 계기가 합쳐져서 영화에 본격적으로 미치기 시작했을 때 나는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종류의 영화를 다 봐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렇게 생각을 하자 곧바로 그렇게 하려면 어떤 기준점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게 되었다. 이로부터 내가 그당시 했던 논리적인 선택이 첫단추를 잘못 끼운 것이었고 결과적으로 나의 비극의 시작이었는지는 몰라도 당시로서는 그 판단이 옳다고 믿었다. 내 생각은 일단 영화사적으로 중요한 작품들이 망라된 리스트를 찾고 전체적인 영화에 대한 지도를 그리고 나서 지도에서 빠진 내용들을 채워가면 점점 더 세밀한 지도를 그릴 수 있을 거라고 봤다. 볼 영화는 많고 시간은 한정되어 있으므로 될 수 있으면 중요한 작품들을 우선순위로 봐야지만 영화의 핵심으로 좀 더 다가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해서 내가 처음으로 참고했던 리스트로는 '구회영'이라는 필명을 썼던 김홍준 감독이 뽑은 영화 리스트와 '사이트 앤 사운드' 역대 베스트 10 등이 있었다.

97년에 캐나다에 어학 연수를 갔을 때 이름만 알고 있었던 구로사와 아키라의 <7인의 사무라이>, <라쇼몽>, 잉마르 베리만의 <산딸기>, 페데리코 펠리니의 <8과 2분의 1>, 윌리엄 와일러의 <우리 생애 최고의 해> 비디오 테이프를 사왔다. 내가 본격적으로 영화를 보기 시작하고 사온 작품들이 이미 공인된 걸작들이었다. 이런 식으로 영화사적으로 중요한 영화들을 사모으고 보면서 <시민 케인>, <네 멋대로 해라>, <현기증>의 엔딩을 보면서 충격을 받고 영화의 세계에 점점 깊이 빠져들었다. 내가 소위 걸작 위주로 영화를 봐왔다는 것은 국내에 출간된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영화 1001편'만 봐도 알 수 있다. 그 책에 나온 영화들을 쭉 살펴보니 책에 소개된 작품들 중 내가 지금까지 본 영화가 대략 600편이 넘었다. 나의 독자적인 판단이 전혀 들어가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현재까지도 나는 매년 그해에 나온 중요한 영화들을 위주로 관람작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여전히 영화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리려면 알짜배기부터 봐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다양한 영화들을 골고루 보려고 하지만 상대적으로 그해 주목받는 작품들과 시네마테크의 상영작들을 더 많이 보는 건 사실이다.

내가 나의 영화 보기를 기형적이라고 한 것은 내가 존경하는 지인들의 말을 바탕으로 스스로 유추해본 것이다. 그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나는 애초에 영화를 잘못 봐왔다는 것이다. 비유를 하자면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다양한 음식들을 먹어오다가 어떤 음식에 꽂히면 그 음식을 많이 먹게 되고 그러다가 보면 그 음식의 깊은 맛까지 음미하게 된다는 것이다. 나 같은 경우 처음부터 음식점의 대표 요리들만 먹어온 셈이다. 그렇게 되다가 보니 영화에 대한 나만의 주관이 생기기가 힘들다는 것이 나에 대한 그들의 비판이었다. 이제 누구나 내가 왜 '걸작주의자'로 판단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나는 소위 걸작을 위주로 영화를 봐왔기 때문에 그 영화를 보고 걸작이라고 판단할 확률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높은 것이다. 그래서 내 지인들이 나를 비판하는 것은 내가 이미 걸작이라는 것을 상정하고 영화를 보기 시작하기 때문에 보고 나서도 걸작이라고 느낀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걸작이니까 걸작이다'라는 논리에 내가 빠져 있다는 것이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자존심이 상하고 부인하고 싶었지만 내가 기형적인 영화 보기를 해온 것으로 파악하고 있는 그들이 나를 그렇게 판단하는 것에 대해 나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다. 나도 따라쟁이가 아니라 내 나름의 논리를 가지고 그 영화를 걸작으로 판단한다고 주장하고 싶다. 남들이 극찬하는 영화에 대해 심드렁하거나 과소 평가를 받은 영화에 대해 극찬을 하는 경우도 나에게는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요즘에는 내가 걸작이라는 말을 쓰는 이유가 좀 더 다양해지고 있는데 과소 평가 받은 영화를 옹호하고 싶을 때 걸작이라는 말을 쓰곤 한다. 최근에 요시다 다이하치의 <키리시마가 동아리활동 그만둔대>를 걸작이라고 말했다가 지인으로부터 욕을 바가지로 먹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리고 걸작을 봤다고 해서 항상 날밤을 새야 하는 흥분 상태에 빠지게 되는 것은 아니다. 걸작도 마음의 기준에서는 편차가 있는 모양이다.

영화를 본 흥분 상태가 촉발시키는 글쓰기에 관해 생각해보아도 흥분 상태의 무용성은 마찬가지이다. 주체할 수 없는 감정 때문에 마음을 안정시키고 정리하고자 글을 쓰게 되지만 정제되지 않은 채 글에 솔직한 감정이 그대로 담기는 것은 배설행위와 유사한 것 같다. 감정의 포르노라고 할 만한 글을 쓴다고나 할까.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정말 좋아하는 존 포드나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들은 절제되어 있고 인물들도 과묵한데 그렇게 본다면 나는 그 영화들로부터 아무 것도 못 배우고 있는 셈이다.

내가 생각해도 내 글은 너무 길다. 솔직히 지금 쓰고 있는 이 글이 이렇게 길어질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글재주가 있는 사람이라면 똑같은 내용을 훨씬 간단하고 압축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텐데 아쉽게도 나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다. 이 흥분 상태를 촉발시킨 이유를 독자들과 모두 공유할 수 있을만큼 나는 영화에 매혹된 내용들을 글로 잘 풀어낼 능력도 없다. 그리고 글이 길면 재미라도 있으면 좋을텐데 내가 봐도 내 글은 재미가 하나도 없다. 나를 걱정해주는 지인 한 명도 내 글은 너무 재미가 없고 남의 글을 따라한 것 같은 어디서 본 듯한 글이라고 하면서 글로 밥벌어먹기는 글렀다고 했다. 글쓰기에 있어서 사망선고를 받은 셈이다. 그리고 글을 쓰는데 남들보다 시간이 2~3배는 더 걸린다는 것도 문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번 발동이 걸리면 날밤을 새서라도 모두 쏟아내야 직성이 풀리니 정말 큰일이다.

위의 내용들을 읽고 종합해보면 짐작할 수 있을텐데 내가 어떤 영화를 보고 큰 감흥을 받아 흥분 상태가 되는 것은 위에서 보았듯이 나에게 오히려 해만 끼칠망정 지극히 무용한 일일 뿐이다. 이 흥분 상태 때문에 별 내용도 없는 글을 쓰다가 또 다시 밤을 새고 말았다. 남들이 영화를 보고 나처럼 흥분이 되지 않는다고 해서 나만큼 영화를 이해하지 못했거나 감흥을 못 느낀 게 절대로 아닐텐데 나도 남들처럼 잠시만 흥분하고 마음을 가라앉히고 잠도 자고 흥분을 가라앉힐 시간에 다른 일도 할 수 있었으면 정말 좋겠다. 그런데 몸이 매번 스스로 그렇게 반응을 해버리니 나로서도 이것을 피할 방법이 없다. 영화를 보고 나서 나와 유사한 흥분 상태에 빠지는 사람이 또 있는지 정말 궁금하다. 내가 생각해도 도무지 논리적으로는 이해하기가 힘든 증상이기 때문이다. 이 증상과 관련하여 누가 나를 한번 분석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나와 유사한 일을 겪는 사람이 또 있다면 동병상련의 정이라도 나누고 싶다. 내가 이 흥분 상태를 자주 경험하는 게 더욱 무용하다고 느끼는 것은 나는 현재 그냥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일 뿐이기 때문이다. 내가 차라리 지금껏 꿈꿔왔던 영화 감독이나 영화 평론가가 되어 특별한 위치에 있다면 이런 일을 겪는 것에 대해 지금보다는 좀 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현재 이 흥분 상태는 생계와도 전혀 무관하다.

나의 증상을 생각해보니 문득 이마무라 쇼헤이의 유작 <붉은 다리 아래 따뜻한 물>의 여주인공 캐릭터가 떠오른다. 엄격하게 따지면 경우가 다르기는 하지만 나와 그 캐릭터 간에는 유사점이 있지 않나 싶다. '좋은 영화만 보면 흥분하는 남자'의 이야기를 코미디 영화로 만들어봐도 재미있지 않을까. 남자가 너무 흥분을 한 나머지 주변을 아수라장으로 만드는 슬랩스틱 개그 같은 것을 섞어서 말이다.

글을 쓰기 시작한 지 대략 7시간은 지난 것 같다. 이미 수년전부터 이런 증상이 있었는데 또다시 흥분 상태에서 영화에 대한 글을 쓰려다가 보니 오늘에서야 한번 털어놓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글을 쓰게 되었다. 이제 마음도 많이 가라앉았고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다. 정작 <천국의 문>과 <폭스캐처>에 대한 글은 단 한 자도 쓰지를 못했다. 그 글이 얼마나 실속이 있을지는 몰라도 조만간 써서 올려야겠다.

요새 들어 '인생은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인데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라는 찰리 채플린의 말이 정말 명언이라는 생각이 든다. 현재로서만 얘기해보자면 영화를 보면 경험하게 되는 흥분 상태는 위의 내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나에게 비극이다. 적어도 황홀경을 경험하게 해주기는 하므로 완전한 비극은 아니지만 말이다. 누군가에게는 영화를 보고 흥분한 나머지 밤새 어쩔 줄을 몰라하는 나의 이 모습이 우스꽝스럽게 보일 것 같다.

아무튼 요약하자면 이게 다 <천국의 문>과 <폭스캐처> 때문이다. 나 이렇게 만든 거 책임져라. 정말.

(긴 글을 읽어주신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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