듀게 성향 논고

2013.04.01 11:11

lonegunman 조회 수:3740



위트겐슈타인 : 티스토리 초대장 있으신가요?



여러분이 잘 아시는, 최근 듀게 (듀나의 영화 낙서판 메인 게시판) 를 둘러싼 일련의 사건은 모두 평범한 하나의 게시물에서 비롯됩니다.
'위트겐슈타인'이라는 아이디가 올린 '티스토리 초대장 있으신가요?'가 바로 그것이었죠.
초대장 없이는 가입할 수 없는 티스토리 블로그의 특성상, 게시판을 통해 초대장을 나누는 것은 당시만 해도 듀게에서 흔한 일이었습니다. 
때문에, 이 게시물에 특별히 주목하는 사람은 없었죠.
어쨌든 이 게시물이 시발점이 되었다는 건 이제와 거의 정설입니다.
아이디 '너쎄'(듀게 포인트 랭킹 6위)가 '확인해보니 남는 초대장이 좀 있군요. 메일 주소 보내주시죠'라는 댓글을 달았고, '위트겐슈타인'은 초대장을 얻었으며, 그래서 마침내 문제의 블로그가 개설되었다는 것이죠.
여기서 잠깐, '너쎄'의 댓글에는 아이디 '표펴'의 대댓글 '저도 한 장 보내주실 수 있나요, 굽신굽신'이 달렸지만 '너쎄'의 대대댓글은 없었습니다. (일련의 사건 후 혹자는 이거 뉴비 배척 아니냐고도 항의했지만,  듀나님이 가입 일자를 확인한 후 '표펴'는 눈팅족이었지 뉴비는 아니었다고 일갈하는 촌극도 있었지요. 아무튼 이 댓글이 표펴의 마지막 글이었으며, 이 일로 상처받은 표펴는 쥐도새도 모르게 탈퇴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지금이야 여러가지 추문으로 인해 '제 2의 박윤배 블로그'로까지 폄하되지만, 저는 여러분과는 의견을 달리합니다.
'위트겐슈타인'의 (지금은 폐쇄된) 블로그는 '듀게 성향 논고'라는 명쾌한 한 편의 게시글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그것을 흔한 듀게 뒷담화로 치부하기엔 무리가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훗날 여러 가지...문제를 일으키게 되는 그 단 한 편의 게시글은 총 7개의 명제를 담고 있었습니다. 각각의 명제에는 부연 설명이 따르는데, 7개의 명제는 자연수로, 그 각각에 대한 부연 설명은 소수점 이하의 수를 덧붙여 표현되어 있습니다. 
지금은 삭제되어 원문을 찾아볼 수는 없지만, 구글 미리보기 페이지에 남아있는 분량을 옮기면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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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듀게는 게시물들의 총체이다.

1.1 듀게는 게시물들의 총체이지, 게시자들의 총체가 아니다.
1.11 아무튼 듀나 팬클럽은 확실히 아니다.


2. 게시물은 본문과 댓글, 즉 바이트의 존립함이다.

2.01 유사한 게시물들이 듀게에서 차지하는 일정 비율 이상의 지분이 듀게의 성향이다.
2.011 외부의 비판은 듀게의 어떤 이미지를 확정할 수 있을 뿐이고, 실질적인 성향을 확정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이 후자는 게시물들에 의해서만 비로소 형성되기 때문이다.
2.012 듀게의 성향은 형식이다.
2.013 게시물은 확고한 것, 존속하는 것이다. 성향은 변하는 것, 비영속적인 것이다.

2.1 게시자들은 게시물을 통해 듀게 성향을 형성한다
2.11그러나 게시자들은 게시물을 통해 듀게 성향을 규정할 수 없다. 듀게 성향은 게시물들을 통해 보여진다.


3. 게시물들 사이의 대립이 사고이다.

3.001 '듀게에서 사고가 났다'가 뜻하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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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미리보기는 여기서 짤려있지만, 블로그에 놀러가본 사람은 누구나 기억하듯, 충격적인 마지막 명제는 ' 7.말할 수 없는 것에 관해서 우리는 침묵해야 한다.'였습니다.
그의 글은 결국, 당시 듀게를 두고 입방아 찧기 좋아했던 사람들의 논쟁을 일갈하려는 시도로 보입니다. 듀게는 강남 좌파의 온상이다, 깨시민의 집합소다, 노처녀들의 살롱이다는 등의 마법적인 어그로를 일소하고, 듀게의 성향은 게시물들을 통해 보여지는 것이지 말하여질 수 있는 게 아니라고 단언한 것이죠. 듀게 성향이 맘에 안 들면 듀게가 이렇다 저렇다 떠들기 전에 니가 먼저 영화글 하나라도 더 올려라, 그리고 말할 수 없는 것에 관해선 침묵해라.



너쎄 : 모니터 뒤에 사람 있는데... 



처음엔 이 블로그에 주목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지만, '너쎄'가 해당 블로그를 듀게에 링크하면서 논쟁은 일파만파 커지게 됩니다.
'너쎄'는 본인이 초대장을 줘서 개설된 블로그라며 해당 블로그를 소개한 뒤, 위트겐슈타인의 논고에 대해 '글쎄요... 천재적이긴 하지만 좀 무리수같군요. 모니터 뒤에 사람 있는데...'라고 말 끝을 흐렸습니다.
위트겐슈타인은 댓글로 '너쎄씨는 제 글을 하나도 이해하지 못하셨군요. 주안점은 게시글을 통해 말해질 수 있는 것과, 게시글을 통해 말해질 수는 없지만 보여질 수 있는 것의 차이죠. 그리고 듀게는 게시물들의 총체이지, 게시자들의 총체가 아닙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너쎄는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하고 대댓글을 다는데요, 위트겐슈타인은 '어디서 반말이십니까.'라고 응수합니다. 이에 너쎄는 '니가 먼저 씨라고 했잖아'라며 (이는 차후에 반말 논쟁과 말끝 흐리기 논쟁으로 번지는데, 정작 위트겐슈타인 본인은 가담하지 않았다고 하죠. 다만, 온라인 지인이라고 밝힌 아이디 '엊그제만 익명'이 모든 사건이 종결된 뒤 위트겐슈타인이 했던 말을 전하는데요, 다음과 같습니다. '나는 너쎄가 게시판에서 반말을 하더라도 그 사실로 그의 사람됨을 평가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가 자기는 네임드고 포인트 랭킹 6위이기 때문에 반말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면 그는 사기꾼임에 틀림없다.')

결국 이 '모니터 뒤에 사람 있다' 논쟁은 위트겐슈타인과 너쎄의 오프라인 벙개를 성사시킵니다. 목격자가 없는 이 벙개에서 둘은, 피씨방 하나의 모니터를 다 뒤집어 엎으며 모니터 뒤에 사람이 있나 없나를 두고 피 튀기는 논쟁을 벌였다고 전해집니다만, 사실일지...




표펴 : 위트겐슈타인, 너 신고 ㅇㅇ.



듀게 유저들에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 일련의 사건으로 트위터 타임라인은 거의 뒤집어집니다. 위트겐슈타인의 글은 외부 비판을 차단하는 것으로 여겨졌고, 이후의 논쟁은 거의 촌극으로까지 보였기 때문이죠. 
특히 한 트위터리안이 위트겐슈타인의 '듀게 성향 논고'가 듀게 내부가 아닌 티스토리에 계제된 점을 들어, 위트겐슈타인의 논고 자체가 일종의 외부에서 듀게 성향에 대해 논하는 글이며, 즉,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라며 날카로운 비판을 합니다. 이 지적은 실시간 리트윗되며 위트겐슈타인의 논변에 상처를 내는가 했지만, 해당 계정이 듀게를 탈퇴한 '표펴'의 계정임이 밝혀지면서 단순한 중상모략으로 일단락되는 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 일은 '트위터 듀게 뒷담화 이대로 좋은가'라는 작은 논쟁을 낳죠. 이 논쟁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지만 ('듀게도 트위터 욕하는데 트위터는 왜 듀게 욕 못하냐'는 아이디 '잠익4672948'의 댓글로 정리되었습니다.) 결국 이 논쟁이, 트위터 중심으로 활동하던 '표펴'를 듀게에 재가입시키고, 위트겐슈타인, 너쎄, 표펴의 3자대면이 이루어지게 하는 결정적인 시발점이 됩니다.

아시다시피 재가입 이후 표펴의 글은 전에도 그랬듯, 위트겐슈타인, 너쎄의 관심 밖에 있었습니다. 발레는 스포츠인가, 다큐멘터리 감독은 희귀한 장면이나 보여주는 사람인가, 한국인은 노예인가 등의 철지난 떡밥들을 재생산하며 댓글 만선 놀이에 천착하는 듯 보였을 뿐이죠.

문제가 된 글이 위의 예시들 중 하나인지, 아니면 쿨타임 돌아온 종교, 동성애, 페미니즘 떡밥인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해당글은 이미 삭제되었으니까요. 눈팅하던 유저들의 주장은 제각각입니다만 아무튼 표펴가 다시 식은 떡밥을 들고 왔을 때, 위트겐슈타인이 처음으로 댓글을 달아줬다는 점만은 이견없이 이구동성으로 증언합니다.  



위트겐슈타인 : 부지깽이로 널 이렇게...




네, 이것이 안개에 싸여있던 '부지깽이 사건'의 전말입니다. 표펴와의 논쟁 끝에 위트겐슈타인은 '부지깽이로 니 두개골을 이렇게 갈라버리겠어'라는 (혹은 그와 유사한) 댓글을 답니다. 표펴는 '부지깽이로 유저를 위협하지 말 것.'이라며 게시판 규칙 위반으로 신고하겠다고 말하죠. 위트겐슈타인은 댓글을 읽지도 않고 게시판을 탈퇴해버립니다. 표펴 역시 신고수 누적으로 강퇴당하게 됩니다. 

둘이 동시에 탈퇴한 사건은 듀게 내에서도 큰 충격이었습니다. 특히 표펴의 경우, 그가 여러 가지... 논쟁의 중심에 있었다는 건 사실이지만, 최소한 그는 시종일관 예의를 잃지 않았으며, 특별히 신고를 당할만한 게시판 규칙 위반 사항도 없었던 것으로 저는 기억하거든요. 모르죠, 저야 드문드문 눈팅을 하는 것이 다이고 제가 모든 사건을 다 보았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니까요. 아무튼 표면상으로는 문제가 없어 보였지만 많은 유저의 게시판 스트레스 누적에 일조한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로 보이고, 그 과정에서 위트겐슈타인 뿐만 아니라 표펴 역시 많은 적을 만들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위트겐슈타인은 어쨌거나 자진 탈퇴하였으므로 논외이지만요.

아직도 부지깽이 사건의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한 유저들은 제가 위트겐슈타인을 옹호한다고 비난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위트겐슈타인이 정말로 '부재깽이로 니 두개골을 이렇게 갈라버리겠어'라는 댓글을 달았는지는 여전히 의견이 분분합니다. 당시 논쟁에 참여했던 모유저는 논쟁 중에 '부지깽이'라는 비유를 들어 이야기했을 뿐 위협은 아니었다고 회고합니다. 다른 유저는 위협을 한 건 맞지만 나중에 댓글이 수정되었다고도 하고요. 문제의 부지깽이는 사실 진짜 부지깽이가 아니라 이모티콘이었다는 설도 있지요. 심지어 정말로 부지깽이로 위협한 것이 아니라, 화해의 의미로 에미넴 사진을 링크했을 뿐이라는 유저도 있습니다. 






아무리 탈퇴자라고는 하나, 이렇게 의견이 분분한 사안을 두고 공공의 적인 양 입방아를 찧는 것은 PC하지 못해서 불편하다고 생각하는 건 저 뿐인가요?

듀게를 휩쓸고간 폭풍의 눈이었던 위트겐슈타인이, 듀게 탈퇴 후 네이버 댓글란에 출몰하며 키배를 뜨고 있다는 건 참으로 씁쓸한 일입니다. 저는 아무리 그래도 위트겐슈타인이 그 정도의 사이즈는 아니었다고 보거든요.

수많은 논쟁도 그렇고, 자진 탈퇴를 했다는 사실도 그렇고, 듀게에 대한 기억이 좋을 리 없다는 건 알지만 저는 호기심을 누를 수 없었습니다. 결국 네이버를 통해 위트겐슈타인에게 쪽지를 보냈죠. 만우절을 기하여 이러이러한 글을 올리려 한다, 혹시 실례가 되는 건 아닌가 하여 동의를 구한다, 그때의 논쟁에 대해 첨언할 말이 있느냐.

듀게에서 언제나 단답형의 냉소적인 기믹을 유지하던 위트겐슈타인의 쪽지는 의외의 것이었습니다. 이 글이 성사된 것을 보면 이미 아셨겠지만, 위트겐슈타인은 흔쾌히 동의하며 당시를 이렇게 회고하였습니다. 다음이 위트겐슈타인의 마지막 메세지입니다.



'나는 경이로운 바낭을 하였다고 그들에게 전해주십시오.'


위트겐슈타인 : 이게 오리게, 토끼게? 나는 트롤이게, 아니게?




그리고... 오늘도 듀게는 평화롭습니다.
끝.





주1. 참고 문헌 : 위트겐슈타인 '듀게 성향 논고' '철학적 바낭'

주2. 참고 문헌 ; 데이빗 에드먼즈, 존 에이디노 '위트겐슈타인의 부지깽이'

주3. 참고 영상 : 데릭 저만 '위트겐슈타인'

주4. 본 바낭은 그 어떤 실존 인물 & 실존 아이디와도 전혀 무관하며, 어떠한 사실에도 바탕을 두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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