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출근 길은 언제나 천근만근으로 무거운 법이지만 그나마 가벼운 웃음을 짓게 하는 순간은 오래된 가게 앞에서 둘이서 아웅다웅 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는 쌍둥이 검둥이 개들의 모습입니다. 그렇게 가까이 붙어 다니면 자주 싸울 만도 하건만 어찌나 카릉카릉 서로 개처럼 (하긴 진짜 개니까 ) 잘 노니는지 괜시리 부럽기도 하고 때론 신기하기도 해서 그 둘이 보일 때면 굉장히 바쁜 출근길이건만 마치 미니스커트를 입은 아가씨 옆을 스쳐 지나가는 것처럼 절로 걸음이 느려지곤 해요. 사이 좋게 둘이 아침 늦잠을 자는 모습을 보면 개팔자가 상팔자라는 것을 실감하면서 흥흥 거리기도 하지만요.

 

 옛날 옛적 재믹스로 갤로그 하던 시절에 저도 첫 번째 강아지를 식구로 맞이한 적이 있었습니다. 세 집 건너 아래에 있었던 유난히 화려했던 철 대문 너머에 살고 있는 뽀글뽀글 파마를 예쁘게 했던 마치 공주님 같은 느낌의 뽀미라는 개의 새끼였어요. 쉽사리 접근하기 어려운 개였는데 주인 아주머니가 짙은 화장을 하고 외출할 때마다 그렇게 작아 보이지 않았던 개를 품에 쏙 안아서 다니곤 했었거든요. 모름지기 개란 문 밖을 지나칠 때면 온 동네가 떠나갈 정도로 캉캉 짖어대서 좁은 동네 길을 마음껏 뛰어 노닐지 못하게 하는 방해꾼에 불과하거나 새로 산 물총의 성능 실험 대상으로 여기었던 시절이었는데 사람이 안고 다니다니. 항상 아주머니가 자신의 개를 뽀미라고 꼬박꼬박 이름을 부르거나 자신의 자식이라고 호칭하였으니 정말 그 아주머니의 딸이 환생한 것이었나 어린 마음에 생경해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족보 있는 혈통을 지닌 개라고 자랑한 것이 기억나기는 하는데( 그 아주머니의 자랑에 어머니를 비롯한 다른 아주머니는 어쩌라고 라는 반응이었지만 -_- ) 아무리 애지중지 하고 도도한 척 하더라도 뽀미는 동네 개와 사랑에 빠질 수 밖에 없었지요. 그리고 어느날 헬숙해진 아주머니의 모습과 함께 빨간 철 대문 너머로 뽀미의 낑낑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밖에 없었는데 한 2주가 지난 후 그 아주머니께서 새깡이를(어머니께서 호칭한 새끼 강아지의 준말) 몇 마리 보여 주시더라고요. 두 눈도 채 뜨지 못했던 끙끙거리기만 했던 새깡이들을 보는 순간 염라대왕이 울고 간다는 저의 고집통이 확 살아나서 어머니께 한 마리 얻어달라고 땡깡을 부리기 시작했습니다. 아마 저 혼자만의 땡깡이었다면 어머니께서는 빗자루 하나로 가볍게 제압했을 테지만 마침 형과 누나들의 땡깡 연대가 성립되어서 단지 손 하나에 매 하나만을 들 수 밖에 없었던 어머니는 결국 키우는 것을 허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새깡이는 하나요 그 녀석을 원하던 사람은 다수였던 지라 한쪽 눈매는 백옥 같이 하얗고 한쪽 눈매는 칠흑같이 까뭇했던 문양을 했던 새깡이를 품에 앉을 기회는 자주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기에 기회가 찾아 왔을 때 최대한 잘해 줄 수 밖에 없었는데 눈을 뜨지 못해서 엄마 젖을 찾아 다니는 새깡이에게 어머니 몰래 숨겨 두었던 병우유를 꺼내어서 손가락에 한껏 묻힌 다음에 제 손을 물리게 하는 것은 처음 느꼈던 아빠의 기분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윽고 그 칠흑같이 까뭇했던 곳에서 동그란 호수 같은 눈동자를 발견하게 된 순간에는 그 귀여움을 견딜 수 없어 그 눈동자가 향하는 곳을 쫓아 제 자신을 구르면서 그 녀석의 눈동자만 쫓아 다니곤 했답니다. 품에 개를 앉고 다닌 아주머니를 이해 할 수 밖에 없었건만 제 등에 새깡이를 앉혀 놓고 제 자신이 가마가 되어 이러저래 기어다닐 수 밖에 없었지요. 이름을 지어주어야 했는데 어머니는 무심하게 바둑이라 이름을 붙였건만 다른 식구들에겐 그토록 특별한 존재이기에 촌스런 우리말로 된 이름을 줄 수가 없었어요. 집안 식구들의 지난한 논의 끝에 캐리라는 이쁜 이름이 떠올라서 그렇게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래도 이 녀석이 똥개의 피를 물려 받은 바둑이 숫컷이라는 점은 변치 않았지만요.

 

 평소에는 얌전했던 형이었건만 동물에게는 참 짓궂었던 아이였던지라 캐리가 아장아장 걸을 수 있을 때부터 고스트 바스터즈 계획이라고 명명한 극기훈련 혹은 생체실험을 캐리에게 실행했어요. 이불을 잔뜩 깔아 놓고 서랍장 위에서 캐리를 뛰어 내리게 한다든지 캐리를 배구공처럼 천장으로 던져 놓았다가 다시 받는 반견륜적인 행동을 하곤 했어요. 누나들이 볼 때면 굉장히 놀라며 질책을 했었지만 저는 캐리가 불쌍하다고도 생각되면서도 고스트 바스터즈가 끝나면 오들오들 거리며 제 품을 먼저 찾는 캐리가 좋았기에 말릴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사실은 저도 형을 따라서 몇가지 고스트 바스터즈의 계획을 도와준 적도 있곤 했어요. 사랑을 잔견한 태도로 표현했던 악랄한 형제 손 사이에서 캐리는 무럭무럭 자랄 수 밖에 없었습니다.

 

~ 그래서 캐리는 어머니와 억지로 헤어진 상처 이후에도 형제의 고스트 바스터즈 계획에 의해 악랄하게 자라나서 결국 매그니토가 되었습니다. ~ 라고 끝을 맺었으면 저희 형제는 지금 이순간 살아 있을 수가 없었겠지만 캐리는 정반대로 너무 순해서 바보처럼 보일 정도로 자라고 말았습니다. 6개월도 채 안되어서 자기 어머니인 뽀미가 무서워할 정도로 훌쩍 커진 캐리는 보기완 다르게 낯선 사람을 보더라도 컹컹 짖기는커녕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기만을 했어요. 언제나 웃는 표정으로 사람들을 맞이하는 캐리를 보면서 어머니는 집도 못 지키는 밥돌이란 이야기를 했었고 누나들은 이게 다 너희 악랄한 형제의 고문 때문에 캐리가 저렇게 된거야 라고 타박을 하곤 했습니다. 제가 살던 집은 빨간 기와와 플레이트로 된 삐뚤 빼뚤한 전형적인 달동네 인테리어였지만 나름 혼자 놀기에 좁지 않았던 마당이 있기에 혼자 놀기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었던 공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부쩍 커진 캐리 때문에 마당에서 놀기도 여의치가 않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였을 거예요. 캐리가 성가시게 느껴졌던 순간은. 순서가 되면 냉큼 해내었던 밥 당번도 목욕 당번도 이러저래 핑계를 대며 미루기 시작하며 캐리는 제 하루에 없는 듯 지내기 시작했습니다.

 

 때문에 어느새부터 캐리를 키우는 것은 어머니의 몫이었지요. 먹는 것을 가리지도 않았고 먹을 것만 주면 “난 남들보다 세배는 빠른다 말이야!”를 외치듯 빠르게 흔드는 꼬리와 함께 순식간에 밥그릇을 싹싹 비우는 캐리였기에 인풋 대비 아웃풋의 결과물도 굉장히 풍성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바닥에 그래비티를 만들어내는 캐리 때문에 어머니는 투덜투덜 거리며 마당 청소를 몇 번씩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바닥을 쓰는 에너지 보다 고래고래 불만을 터뜨리는 소리가 더욱 에너지 소모가 심할 법 하건만 어머니께서 바닥을 쓰는 횟수가 잦아질수록 어머니의 노도 같은 잔소리도 더욱 커져갔습니다. 계절이 바뀌게 되면 집안 가득히 날리게 되는 하얀 민들레 홑씨가 아니라 캐리의 털뭉치 때문에 다른 가족들의 불만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래도 캐리는 자기 때문에 가족들이 서로 싸우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사람들이 돌아오면 컹컹 짖는 것 대신에 살랑살랑 꼬리를 흔들며 반갑게 맞아주기만 했습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달콤한 낮잠을 자고 굉장히 맛난 내음의 삽겹살을 굽는 소리에 잠을 깨었던 날. 이상하게 그 날은 모든 식구들의 두 눈이 퉁퉁 부어 있었습니다. 이렇게 맛난 고기를 앞에 두고 사람들이 숙연해 하는 것에 대해 굉장히 이상하게 생각하였지만 남들이 고기를 안 먹고 있었기에 저 혼자 낼름 낼름 주워 먹고 있었지요. 누나도 형도 밥을 먹지 않고 팽개치고 있었는데 평소에는 어머니의 호통이 뒤 따를 일인데도 어머니는 말 없이 고기를 제 숟갈 위에 얹어 주기만을 하였습니다. 전 만족스럽게 고기를 채 뱃 속에 채워 놓고는 내가 싫어했던 비계를 몰래 휴지에 꽁쳐 두었습니다. 그리곤 식사가 끝나자마자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캐리에게 얄량한 생각을 해주는 척 개집앞에서 꽁깃꽁깃했던 휴지를 펼쳐 놓아 비계를 떨어뜨려 놓았지요. 하지만 고기 냄새를 맡고 내 앞에서 세 배로 빠른 스피드로 꼬리를 흔들어 대었던 캐리의 모습은 보이지가 않았습니다. 평소에는 개줄을 풀어놓아도 단 한번도 집 밖에 나간 적이 없던 캐리였건만 삼겹살이 잔뜩 구워졌던 그날 캐리는 사라졌던 거지요.

 

“ 어~ 캐리는 어디 갔어?

 

누나의 울먹이는 목소리가 방에서 들려 옵니다.

 

“ 엄마가… 엄마가…. 캐리를 팔아 버렸어....“

 

나지막히 책망하듯 어머니의 목소리가 이어집니다.

 

“너희들이 제대로 키우지 않아서 내가 좋은 사람에게 팔아 치웠으니 그리 알거라. “

 

쉽게 그 상황이 받아 들여지지 않았던 저는 다시 반문합니다.

 

“ 캐리를 팔다니. 누구한테? 멀리 사는 사람한테 판거야? “

 

울음을 참지 못해 악을 쓰는 누나의 목소리가 들려 옵니다.

 

“ 집에 왔는데 캐리가 없어져 버렸어. 그런데… 그런데 한시간 있다가 캐리가 도망쳐서 우리집 옥상으로 도망쳐 숨어 있었어…. 그 것을 무서운 아저씨가 와서는 다시 끌고가 버렸어. 캐리는 마구 짖어대었지만… 아저씨가… 그냥 데려가… 버렸어”

 

라고 엉엉 웁니다.

 

단 한번도 집에 나간 적도 바보였는데… 단 한번도 짖어본 적이 없는 순둥이였는데… 캐리는 마냥 바보도 순둥이도 아니었던 셈이지요. “참 이 놈 날 고생하게 하네” 라는 아저씨의 마지막 말에 돈을 돌려주고 다시 데려오겠다고 싶어했던 어머니였지만 아저씨가 한사코 거절한 채 캐리를 다시 데려갔다고 했습니다. 아마 어머니도 그때 왈칵왈칵 눈물을 흘렸던 것 같아요. 사실은 그 뒤는 하도 울기만 했는지라 기억이 잘 나지 않아요. 어머니에게 악마라고 갖은 욕을 뱉었을 수도 울기만 한다고 몇 대 맞은 것일 수도 울지 말라고 갖은 변신 로봇을 선물로 받은 것일 수도 있었겠지만 며칠이 지난 뒤에야 저의 눈물은 마를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곤 동네의 보신탕 가게를 보면서 혹시나 캐리가 저기 갖혀 있는 것은 아닐까 서성이거나 캐리가 다시 돌아올까봐 어머니께서 외출하면 몰래 대문을 열어놓곤 했습니다. 하지만 캐리는 돌아오지 않았고 전 여전히 동네에 범람하는 똥개를 귀찮아 하는 어린 시절로 되돌아 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여름날. 대청 마루에 누워 책을 읽고 있었던 저에게 새로운 하얀 새깡이가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전 이 녀석의 얼굴을 보고 이름을 짓는 것에는 단 일초의 시간도 망설임이 없었습니다. 마침 제가 정독하고 있었던 책은 저의 바이블이었던 천원짜리 로보트 대백과 사전. 그 중에서도 표지가 멋들어진  ‘Z건담’ 1편이었거든요.

 

“ 캐리 마크 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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