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님 멋지시던데요. 김어준이 왜 그렇게 홀딱 빠졌는지 알 것 같았어요. 어떤 분이 노무현과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고 쓰셨던 것 같은데, 저도 공감합니다. 순수함이라든가 강직함, 소탈함 같은 것들은 닮았지만, 노무현은 에너지가 강한 불 같은 느낌이었다면, 문재인은 깊이 흐르는 강 같은 느낌이랄까, 그래요.

 

저도 보면서 노무현 대통령님 생각 많이 났어요. 자료화면 속에서 환한 미소를 짓고 있는 모습을 보니 자연히 울컥, 하는 게 생기더라구요. 자연인으로서 정말 매력적인 사람이었단 점에 공감하고, 대통령으로서도, 본인이 믿는 바에 따라, 사심 없이 최선을 다하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한바탕 댓글전쟁;;이 벌어진 다음이라 말을 꺼내기가 조심스럽지만,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는 걸 써보고 싶었어요. 저는 노무현 대통령님의 죽음에 대해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다른 죽음들도 함께 떠올라요. 네. 노무현 정부 시절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노동자들의 죽음이요. 그렇다고 해서 그 죽음들이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을 덜 아프게 한다거나 별 것 아닌 일로 만든다는 게 아니에요. 저에겐 그 죽음들이 다 함께 어떤 역사적 비극으로 여겨지고, 마음이 괴로워집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그렇게 돌아가신 다음, 저를 엉엉 울렸던 글이 하나 있어요. 이 게시판에도 올라왔던 것 같은데, 지금은 희망버스로 유명해지신;; 김진숙 위원이 노대통령님을 기리며 쓴 편지글이었죠. 김진숙 위원은 조문을 가서 방명록에 이렇게 남기셨대요. "오랜 세월 동지였고, 짧은 시간 적이었습니다. 90년 변호사 접견 오셨을 때처럼 봉하마을 어딘가에 앉아 각자의 위치가 만들어낸 그동안의 원망과 미움들을 두런두런 털어낼 수 있으리라 여겼습니다. 곧.. 고맙고 죄송합니다."

 

이 주제가 나올 때마다 상이한 입장을 가진 이들이 날카롭게 날을 세우며 다투게 되는 건, 그만큼 이 주제와 얽힌 죽음들이 비극적이고 가슴에 사무치는 것이기 때문이겠죠. 노무현 대통령님의 죽음도, 김진숙 위원이 결국 크레인에 오르도록 만든 한진중공업 노동자 김주익의 죽음도, 그리고 제가 결국 이름을 외우지 못한 다른 노동자들의 죽음도, 그들을 아끼고 사랑했던 이들에게는 엄청난 고통이고, 트라우마를 남겼을 겁니다. 트라우마란 그런 것이죠. 작은 것으로도 그 때 그 고통이 되살아나 생생하게 아파오는.

 

그런데 김진숙 위원만큼 양쪽의 죽음이 다 절절히 아픈 사람이 있을까, 김진숙 위원의 글을 읽으며 전 그런 걸 느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사실은 김진숙 위원이 처한 위치야 말로 한국의 민주화운동의 역사 안에 배태된 비극이 아닐까 싶었어요. 오랜 세월 동지로서 지냈을 때에는 마치 지금 우리가 MB를 혐오하듯이 선명한 군사독재라는 적이 있었지만, 서로가 적이 되어버린 시절에는 '계급적 입장차'(다르게 볼 수도 있겠지만)가 가져온 건널 수 없는 심연의 거리가 존재함을 발견하게 된.

 

김대중 대통령마저 돌아가신 날, 지하철을 타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다들 호외를 펼쳐들고 있었어요. 신문 마다, 잡지 마다 김대중 대통령님과 노무현 대통령님의 사진이 실려 있는데, 그게 그렇게 울컥하여 눈물을 참느라 혼이 났었지요. 사진 속에서는 두 대통령이 함께 환하게 웃고 계셨는데, 저 두 사람이 모두 고인이라는 게 믿겨지지가 않았어요. 김대중, 노무현이라는 걸출한 정치인들이, 인간적으로도 훌륭했던 두 어른이 이제는 이 세상에 없다는 것, 그리고 그에 더해, 두 사람이 상징했던 무언가가 뚝 끊어지는 느낌도 들었죠. 김대중과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들었던 힘, 그 힘을 만든 사람들도 함께 떠올랐어요. 60년대, 70년대, 80년대, 90년대 그렇게 이어져온 민주화와 사회정의를 원했던 많은 사람들, 고생하고, 죽어갔던 그야말로 이름 모를 많은 사람들이요. 그 많은 노력과 희생으로 만든 것들이 한갖 MB 세력에게 이렇게 무너진단 말인가. 그런 생각에 더욱 가슴이 미어졌어요.

 

죽음에도 무게가 있을까요. 어떤 죽음은 더 많이 기억되고, 더 많이 추모되고, 어떤 죽음은 그렇지 않잖아요. 또, 어떤 죽음은 내게 너무 아프지만, 어떤 죽음은 잠시 착잡한 마음을 가졌다가 시간이 지나면 흐려지구요. 그게 나쁘다거나 잘못되었단 얘길 하고 싶은게 아니라, 그냥 저 자신도 그렇게 죽음의 무게가 다르게 느껴진단 사실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보게 되더라구요.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그건 그 사람이 살아생전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얼마나 많은 이들의 삶에 영향을 주었는가에 따라 결정되는 그런 거일 테니까요.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다보면, 그 죽음의 무게는 결국 그냥 그 한 사람의 죽음의 무게라기보다는 그가 나타내는 바, 어떤 표상들까지 함께 포함된 그런 게 아닌가 싶어집니다. 그리고 그 표상의 내용 때문에, 그저 순수하게 추모하려는 이들과 비판적 평가를 덧붙이려는 이들 간에 갈등이 생기는 거겠죠.

 

저는 김진숙 위원의 그 글을 읽으면서, 내가 기억해야 할 죽음이 하나가 아니라는 걸 가슴에 새겼었더랬습니다. 단지 노무현 정부 시절에 몇 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끊었는가를 기억하고자 한다는 것이 아니라, 긴 역사적 흐름 속에서 조금이라도 세상을 진전시키고자 했던 이들과 희생된 이들, 그런 많은 죽음들을 함께 기억할 수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저도 노무현 대통령이 그리워요. 그 분이 살아계셨다면, 그 분이 얼마나 훌륭한 지도자였는지, MB를 겪은 우리들은 많은 것들을 새로이 평가할 수 있었을 겁니다. 더불어, 한미FTA라든가 비정규직 정책 등에서 당시 노무현 정부의 노선에 어떤 한계가 있었는지도 함께 확인하고, 새로운 논의를 시작할 수도 있었겠죠. 그런 것들이 가능할 수 없게 만든, MB 정부를 불러들인 데에 대해서만큼은 모두가 함께 책임이 있을 겁니다.

 

그래서 저는 정권교체를 간절히 바라고, 실천이라고 말하기는 부끄럽지만 민주통합당 선거인단 신청해서 표도 행사하고;; 그러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우려가 들지 않는 건 아니에요. 정권교체가 끝난 뒤, '아, 이제 됐다'하고 다시 무관심해지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건 아닐까. MB보다 나은 정부이기 때문에 그 정부에서 하는 정책들에 신뢰를 보내고, MB보다 나은 정부에 저항하고 비판하는 사람들을 시대착오적이라 말하는 그런 시대가 다시 오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들이 기우이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런 걱정들도 일종의 트라우마에서 비롯하는 것이겠죠. 저처럼 노동운동의 당사자가 아닌 이에게도 이럴 진대, 당사자들은 더하겠죠. 그 마음들을 이쪽에서도 좀 이해해주고, 또 저쪽에서도 마찬가지로 누군가를 잃은 이쪽의 고통을 좀 이해해주고, 그렇게 '서로' 조심하고, '서로' 예의를 지키면서, 갈 수 있었으면.. 하고 나이브한 바람을 적으며 긴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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