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분들에겐 아이언맨 3가 그럭저럭 괜찮았던 모양인데 저에게는 끔찍할 정도로 별로였어요...=_= 


아이언맨 프랜차이즈가 다른 히어로물과 구분되었던 가장 큰 차이는 그 가벼움과 유쾌함이었다고 생각해요. 


1,2편은 시종일관 흥겨운 블랙 쌔버스와 AC/DC의 락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유치함과 쿨함의 경계에 선 토니 스타크가 히어로와 망나니짓을 오가며 빵빵 액션 터뜨려주는, 전형적인 팝콘 무비였죠. 


여기에 섹시한 여자, 화려한 스포츠카, 메카닉까지 남자들이 좋아할만한 요소는 다 들어있었고요. 


적어도 아이언맨 1,2편(그리고 어벤저스까지)을 보며 철학적 고찰을 기대했다거나 진지한 드라마를 기대했던 사람은 없을 겁니다. 깊이는 없을지언정 얼음 가득채운 콜라처럼 시원하고 상쾌하다는 게 프랜차이즈의 매력이었죠. 


...그리고 3편은 이 모든 것을 뒤엎어 버립니다. 


이 영화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못말리던 오덕후의 탈덕 과정'입니다. 생존을 위해 아이언맨 수트를 만들었지만 수트 만드는 재미와 히어로질의 매력에 빠져 일상생활조차 내팽겨쳤던 중증 오덕후가 일련의 사건을 겪은 뒤 여자친구의 도움으로 덕질을 그만두는 이야기죠. 아마 1,2편보다 드라마는 좀 더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 드라마가 그동안 시리즈의 매력이었던 유쾌함을 버리고 설정마저 개말아먹을 가치가 있었는지는 전혀 모르겠습니다. 


아이언맨은 물론 판타지입니다. 현실성을 따지자면 1편의 탈출장면에서 점프 후 사막에 처박히는 순간 이미 스타크는 피떡이 되어 사망했어야 정상이죠. 튼튼한 것과 충격을 흡수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니까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언맨은 '과학의 힘을 빌린 보통인간 슈퍼 히어로'라는 설정에 충실하고자 노력했고 나름대로 밸런스를 유지했습니다. 매우 강력하지만 무적은 아니며, 엄청난 동력 소모량 때문에 아크 원자로에도 불구하고 가동시간에 제한이 있고, 점점 개량 중이지만 입고 벗기가 불편하다는 설정 등은 아이언맨을 너무 사기스럽게 만들지 않는 요소였죠. 나름 메카닉 덕후들의 로망을 자극한달까요. 


하지만 3편에 오면서 이 모든 설정은 무너져버립니다. 


마크 42는 그냥 최악이에요. 온몸에 송신기를 심어 수트의 각 부품이 스스로 날아와 제 위치에 합체된다는 것까진 이해를 해주고 싶습니다(이것도 솔직히 이해는 안 되지만). 그런데 별도의 동력공급원도, 추진장치도 없는 수십개의 부품이 무려 1,000여 km를 날아와 스스로 합체한다는 건 개소리죠. 게다가 이녀석은 부상당한 토니 스타크가 끌고 갈만큼 가볍습니다.(1,2편의 수트는 리펄서가 뿜어내는 무지막지한 출력으로 겨우 들어올릴만큼 무겁죠. 물론 2편에 나왔던 마크 5부터 설정 붕괴지만;;) 가장 이해가 안 되는건 이 녀석이 무려 자동차 배터리로 충전이 된다는 겁니다. 1편에 등장한 아크 원자로 프로토 타입의 출력이 초당 3억 줄이고 이런 아크 원자로조차 전투 한번에 방전되어버리는, 에너지 먹는 하마가 아이언맨인데 이게 자동차 배터리따위로 몇 시간만에 충전이 되다니요...=_=;;


마크 42 외 다른 수트들은 언급할 가치조차 없는 쓰레기들입니다. 그냥 날아다니는 폭죽이죠. 스타크의 저택 공격 때 겨우 헬기의 미사일 한 발로 인해 마크 1~7이 파괴될 때부터 불안하더라니(이건 그냥 마네킹이라고 해줘...ㅠ_ㅠ 탱크 주포 맞고도 흠집조차 안 나던게 마크 3라고...) 예고편에서 "우와 쩐다!"를 외치게 만들었던 아이언멘 떼거리조차 그냥 익스트리미스에 발리는 역할...=_= 듀나님은 아이언맨의 액션이 수트를 입고 난 뒤가 아닌 수트를 입고 벗는 과정 자체라고 했지만(이건 저도 동의), 그건 수트를 입고 벗는 장면에서 하나하나 장착되고 조립되는 그 기계적 요소 덕분에 멋진 거지 3초만에 합체분리되는 장면 따위에서 나오는 게 아니에요. 


스토리의 개연성도 헛웃음나오는 수준입니다. 특히 만달린의 저택 습격씬은요... 만달린을 개그 캐릭터로 낭비해버린 거나(사실 마법에 기반을 둔 만달린이 과학을 기반으로 하는 아이언맨 3편에 나온다고 했을 때 이상하다 싶었지만 이따위로 써먹을 줄이야;;) 로드 대령의 아이디와 패스워드만으로 AIM의 모든 비밀을 파악해내는 것도 참 괴랄했지만, 그럭저럭 작동하는 마크 42 수트를 입고도 겨우 적 둘을 제압했는데, 그 괴물같은 놈이 떼거리로 있을지도 모를 적의 본거지에 토니 스타크가 맨몸으로 침투한다...? 이게 아직 어벤저스에 합류하기 전, 1편에서 곧바로 이어지는 이야기라면 그나마 이해해주겠어요. 하지만 이미 토니에겐 이런 상황에서 도움을 요청할 실드 요원들이 있음에도 멍청할만큼 모든 사건을 혼자 처리하려 합니다. 


...예 압니다 알아요. 이야기에 실드가 끼게 되면 사뮤엘 잭슨, 스칼렛 요한슨, 제레미 레너까지 출연해야 하기 때문에 여러 사정과 금전적인 문제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걸요. 하지만 토니 스타크가 수트도 없이 맨몸액션을 감행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뭔가 그럴 수 밖에 없는 동기를 줘야죠. 수트 없으면 일반인에 불과하고 사격도 못하는 인간이 이용가능한 지원도 마다하고 적의 본거지에 맨몸으로 돌격하는 건 그냥 미친 짓 아닙니까? 


무려 대통령 구출이라는 중요 미션에 스타크와 로드 단 둘이 총 한자루 들고 맨몸으로 돌진하는 후반부도(리셀웨폰 감독이라고 아이언맨에서까지 이짓거릴 할 필욘 없었잖아), 전투 끝났다고 뜬금없이 그동안 만든 수트를 모두 날려버리는 것도, 가슴에서 아크 원자로 제거하는 것 마지막 장면도(이렇게 쉽게 제거되는 거였다면 2편에서 팔라듐 중독으로 죽을 고비 넘기며 개고생은 대체 왜 한 거죠? 3편 보면 아이언맨 수트 동력원조차 스타크 가슴에 박힌 아크 원자로가 아무 상관 없는 걸로 나오는데요?) 정말 뜬금없었습니다. 아이언맨 시리즈가 원래부터 스토리는 부실했지만 그나마 화끈한 액션이나 메카닉 덕후 요소로 극복해왔는데, 그 화끈한 액션마저 버리고 집중했다는 스토리가 이모양이면 뭘 어쩌란 건가요...


그냥 아이언맨은 끝났어요. 후속작이 안 나온다는 게 차라리 다행스러울 지경입니다. 3부작의 마지막편은 망작이란 3부작의 법칙을 피해가나 했더니 아주 제대로 걸렸군요... 비싼 돈 내고 3D로 안 봐서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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