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령님은 언제나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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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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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승식이 평소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알 길이 없으나, 기사에 따르면 폴리페서라 판단해도 큰 무리가 없을 듯 하다. 기사는 일부 사실을 왜곡하고 있을 뿐 아니라 가치와 사실의 문제를 뒤섞으며 절반의 사실만을 전달하고 있는데, 언급되지 않은 그리고 마땅히 언급됐어야 할 나머지 절반은 정부의 실책이므로.

[1월에 질본이 아는 정보는 극히 제한적이었다. 코로나19는 코로나바이러스의 일종이라는 사실만 확실하던 시기다. 이때는 전파력·치사율 관계가 사촌 격인 사스와 메르스 사이 어디쯤일 것이라고 짐작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더욱이 발원지인 중국 우한에서는 치사율이 상당히 높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었다. 당시 우한에서는 한국처럼 의심환자를 전수조사하다시피 검사한 게 아니라 상태가 나쁜 환자들만 병원에 왔다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즉, 유행 초기의 경증환자나 무증상 감염자는 아예 통계에 잡히지 않아서 치사율이 실제보다 높게 계산되던 시기다.]

이 문단은 '1월'이라는 긴 시간 단위와 '극히 제한적'이라는 모호한 표현으로 인해 면피할 수는 있을지언정 사실에 부합하는 진술이라 볼 수 없다. 1월 초라면 모를까 1월 말경에는 다양한 역학 특성과 사례에 대한 연구들이 보고되어 있었고 이에 기반한 예측 모델들이 나오고 있었으니까.

입국제한에 대한 내용을 담은 감염학회의 대정부 권고안만 보더라도 1월 말경에는 판단에 필요한 근거들을 갖추고 있었음을 알 수 있으므로, 천관율이 기사에서 언급한 '1월'은 '1월 초~중순'을 의미해야한다. 그렇다면 천관율은 왜 '1월'이란 긴 단위의 시간을 선택했을까, 봉쇄의 명분이 갖춰진 20일 이후를 '모든 것이 불확실하던 시점'에 포함시키고 싶었기 때문이겠지.

만일 정책의 근거로 삼을만한 확증된 구체적 사실이 부재했다는 의미라면, 이는 위험 평가와 선제적 대응의 포기를 의미한다. '예방'은 불확실성을 전제하는 개념이므로.

1월 23일 중국 정부의 우한 지역 봉쇄는 이 질병으로 인한 전파력이 높은데 반해 치명률은 낮다는 판단이 내려졌음을 시사한다. 정부와 방역 당국의 누구도 이런 추론에 이르지 못했다면 글쎄, 이 나라엔 미래가 없다해도 될 것 같다. 물론 이는 사실일 수 없고, 보다 개연성 있는 시나리오는 어떤 이유로 이같은 판단이 정책에 반영될 수 없었다는 것일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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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3일을 전후한 시점에서 정부는 두개의 위험 사이에서 적어도 하나를 선택해야하는 상황에 놓여있었다. 하나는 감염병의 창궐이라는 위험, 다른 하나는 입국제한이 미치게 될 여파. 두가지 선택 모두 발생 가능성이 불확실할 뿐 아니라 위험의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만큼, 의사결정은 위험을 최소화하는 방향, 통상 합리적이라 기대하는 방향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정부가 어떤 과정을 거쳐 의사결정에 이르게 되었는지는 알 길이 없으나, 그 결과는 지금 보는 것과 같다.

1월 말 시점에서의 국경 봉쇄는 이미 실효성이 없었으리라는 예측은 여러차례 언급한 것과 같고, 이를 두고 정부를 비판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고 본다. 다만 이로 인해 분명해진 한가지 사실은 밝혀둬야 할 것 같은데, '검역주권'이나 '국민의 건강권'이 결코 포기될 수 없는 가치라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거나 정부는 이에 입각하여 정책을 수립하고 운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문제에 있어서, 이명박 정권과 문재인 정권 사이에 본질적인 차이는 없다.

말 나온 김에, '중국인 입국금지'가 인종주의의 발로라는 비판도 일리는 있지만.. 만일 '뇌송송 구멍탁'을 정치적 의도에 동원된 무분별한 공포가 아닌 '검역주권과 건강권'으로 이해할 수 있다면, 이같은 선해의 틀 안에서는 '중국인 입국금지'도 마찬가지로 '국경 방역 강화'로 이해해야 마땅하다.
둘 다 합리적 판단과는 동떨어진, 우매한 대중의 광기의 산물이라는게 사실에 부합하겠지만.

어떤 사회적 비용을 치르더라도 포기될 수 없는 가치란 존재하지 않고 한쪽의 비용이 이미 선불로 치러진 시점이라면, 정부가 이중으로 비용을 들여 입국을 제한할 유인은 없다. 저 선택상황은 가짜 선택상황이라 할 수 있을테니 봉쇄를 포기한 정부의 선택을 문제삼을 일은 아니라고도 하겠다.

문제는, 그리고 정부가 비판받아 마땅한 실책은 봉쇄를 포기함으로써 완화 전략에 접어들었어야 할 이후의 대응에 있다. 황승식이나 천관율이 이를 모를 리 없으므로, 이 글의 첫머리는 '수령님은 언제나 옳다'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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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중순, 한경 기사에서 처음 언급된 어느 시민의 '창문 열고 모기잡는 꼴'이란 비판은, 비록 발화의 의도에 동의할 수 없을지라도 정부 방역 정책의 모순에 대한 통찰이 담긴 탁월한 비유였다. 이 상식적인 판단에 이르는 데는 첨단의 전문지식이나 대단한 지적능력이 필요하지 않음에도, 정부는 '창문을 열어놓은 채 모기를 잡으려 애쓰는' 기이한 행태를 고집한다. 정부와 방역 당국에는 이 단순한 이치를 알지 못하는 바보들만 있는 것일까? 혹은 전문가들만 빠져드는 터널 비전 효과 때문인가.

황승식이 양심적인 학자라면 봉쇄 전략의 무용함을 언급하면서 이 모순을 언급했어야 했다. 그가 언급하지 않았더라도, 천관율이 양심적인 저널리스트라면 이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더구나 주무부처의 장관은 모순된 방역 정책을 모기 사냥에 빗댄 이 비판에 대해, '겨울이라 모기가 없다'는 정신나간 동문서답으로 답한 바 있지 않은가. 이 정부의 고위직 공무원이 정신나간 소리를 하는게 하루이틀 일도 아닌지라 이젠 모순과 부조리를 감각하지 못하게 된 것일까? 천관율은 묻지 않는다. 그의 흥미로운 사고 실험은 그를 불편하게 만드는 지점까지 나아가지 않기에 '흥미로운 사고 실험'일지도 모른다.

정부 정책에서 발견되는 모순은 계속 이어진다. 이미 1월에 봉쇄를 포기했다면 봉쇄를 전제할 때나 유효한 능동추적에 자원을 쏟아부을 이유가 없다. 국적과 마찬가지로 신앙의 문제가 아니라면 정부가 반복적으로 '신천지'를 적시하며 강조할 필요가 없다. 경제적 타격을 우려했다면 확진자의 동선을 공개하고 확진자를 양산하며 불안을 조성하는 행태를 설명할 수 없다. 외교적 불이익을 우려했다면 '감염주도 방역'이란 비판을 듣는 실태를 설명할 수 없다. 마스크를 쓰는게 불필요할 뿐 아니라 해로울 수 있다면 며칠씩 같은 마스크를 재활용하면서까지 고집하는 여당 대표의 취향을 설명할 수 없다..

모순의 비판은 결과를 필요로 하지 않으나, 저 멍청한 실책들의 결과는 막대한 비효율과 의료자원의 고갈, 감염과 감염자에 대한 공포와 혐오, 사회 불안과 내수의 침체, 외교적 위상의 추락, 정책에 대한 냉소로 나타나고 있다는 중간평가 정도는 가능하겠다.

장대한 실패의 목록이 채 끝나지 않은 지금, 정부는 방역의 제1주체는 국민들 개인이며 각자의 사회적 격리가 최선의 방역 수단이라 말한다. 이미 같은 주장을 논증하기도 했으니 이에 이견은 없으나, 사실상 무제한의 자원과 인력을 보유하고도 위기를 가속화하고 부작용만 양산한 끝에 결국 국민에게 책임을 돌리고 마는 정부의 행태는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어리석은 정책의 실패를 운동으로 극복하자 외치면서 정부와 여당의 누구도 이를 수치스럽게 여기거나 책임감을 느끼지 못하는 듯 하다. 아마 '일본과는 다르다!'며 국뽕 파티를 벌이던 문천지 신도들도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할테고.

문재인 정부가 전능하지도 전선하지도 않다는 것, 유능하거나 선하다 하기도 어렵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아마도 그들 자신과 그들의 열렬한 지지자들을 제외하면. 그러나 이를 가장하는 저들의 쇼는 멈추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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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는 짤막하게 대통령의 '메시지 실패'를 언급하지만, 진짜 문제는 메시지가 아니라 메시지에 담긴 오판의 근거와 결론에 이르기까지의 논리다. '곧 종식될 것'이라는 판단을 어떻게 재구성하더라도 여기엔 오직 근거 없는 낙관 뿐, 타당한 근거나 논리가 없다. '과학'에 무지한 촌로라 할지라도 정상적인 이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하지 않았을 발언이 무책임하게도 일국의 대통령의 입에서 발화되었다는 사실은 이 정부와 이미 숱한 언행들로 인해 지적능력을 의심받고 있는 제왕적 대통령의 판단력에 대한 불안을 증폭시킨다. 이것이 단지 '관리에 실패한 메시지'가 아니라, '구조적 필연으로써의 실패들 중 하나'에 불과할지 모른다는 불안. 만일 그것이 구조에서 비롯된 필연이라면 이같은 실패는 꾸준히 반복될 것이다.

이 불안을 더 증폭시키는 것은 이같은 오판을 '메시지 실패'라든가 '희망의 표현'이라며 무마하려는 시도들, 명백한 정책의 실패를 '최선'이라거나 '선의'라며 옹호하려는 시도들이다.
정부와 집권당에 사실에 기반한 합리적 사고가 결여되어 있고, 비판을 청취하고 수용하는 태도가 결여되어 있으며 지난 과오에 대한 반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비판들이 꾸준히 제기됨에도 달라지지 않는 이유, 혹은 달라지지 않을 수 있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그래야 할 필요가 없으니까'.

당위적 결론에 맞춰 전제가 되는 사실을 왜곡시키는 것을 자연주의 오류에 빗대어 역자연주의 혹은 도덕주의 오류라 한다. 종교에서 흔하게 발견되는 이 맹신적 사고방식은 수령님은 언제나 옳다는 무오성 교시처럼 유사종교적 성격을 갖는 집단에서도 발견된다. 이 맹목적 광신이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결과가 원인을 지배하는 인과의 전도가 발생하곤 하는데 예를 들면 마스크가 부족해서 정부가 비판받을 위기에 처하면 그 해법으로 원인인 마스크의 필요를 제거하는 식.

과학적 사실이란 생각만큼 단단하게 고정되어 있지 않으며 종종 불확실한 상태에 놓여있으므로, 정부가 불과 며칠 전까지 올바른 마스크 착용으로 감염을 예방할 수 있다든가, 일반인은 kf80으로 충분하다든가, 비상시엔 면 마스크로도 충분하며 일회용 마스크를 재사용할 수 있다 발표했음에도 이제 와서 마스크가 필요 없다 주장하는 것을 꼭 수령무오설의 산물이라 단정할 수는 없을지 모른다.
정부가 어제 한 말을 오늘 뒤집는게 한국 사회에서 놀랄 일도 아니고, 그 이유가 과학적 사실에 부합하는 새로운 신념 때문이라면 아무튼 공공의 위험은 감소할테니 말바꾸기를 두고 시비할 일은 아니다. 정부가 마스크 무용론의 신념에 부합하도록 공적 판매를 중단하고 모든 물량을 의료진과 취약계층 등 고위험군의 필수 수요에만 공급하고 비축한다면 말이다. 일반인에겐 필요가 없을 뿐 아니라 더 위험할 수도 있다니 당연한 결론 아닌가.

의료자원 확보의 실패를 면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게 과학적 사실에 부합하기 때문이라 해도 그간의 잘못된 메시지에 대한 책임은 남는다. 잘못된 정보로 인한 오해를 바로잡고 훼손된 신뢰를 복구할 책임은 정부의 몫이라 할 것이므로, 대통령은 습관성 격노 발작만 일삼을게 아니라 마스크 없이 대구에 내려가 파견 공보의들과 식판에 밥 받아먹는 쇼 정도는 해줘야 파렴치하다는 평을 면할 수 있을게다.
과학적 사실에 그만한 확신이 없거든 스스로도 믿지않는 정보를 근거로 국민들을 기만하는 일은 그만두는게 옳겠고.

'먹어서 응원하자'는 멍청한 캠페인이었지만 아베는 적어도 그가 말한대로 후쿠시마 농산물을 먹는 쇼라도 하지 않았나. 설마 언제나 옳으신 남조선 수령님이 아베만도 못한 정치인은 아닐거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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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시사인 구독을 요청하는 전화를 받고 내가 한 대답은 '주진우 따위가 몸담은 매체에 구독할 가치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였고, 돌아온 대답은 '저희 천관율 기자도 있는데..'였다. 만일 그때 구독하지 않은 것이 오늘의 시사인과 천관율을 만드는데 일조했다면 유감스러운 일이나, 지금의 결과를 두고 보면 당시의 판단이 잘못이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어느 자살한 정치인은 말하기를 사람이 부끄러운 줄을 알아야 한다고 했다. 그 자살한 정치인을 재림 예수 쯤으로 섬기는 자들은 하나같이 부끄러움을 알지 못하던데, 아마도 그 정치인이 자살하며 그들 몫의 부끄러움까지 짊어지고 갔다 믿는 듯 하다.

지금도 종종 그의 자살에 대해 생각하곤 한다. 그는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이었기에 자살한 것일까? 만일 그렇다면 실로 무가치한 죽음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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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혹자들은 일본 정부의 대응을 보며 '기도메타'라 비웃던데, 기도메타란 표현이 더 잘 어울리는 경우는 '사태가 곧 종식될 것'이란 근거없는 믿음일 것이다.

ps2: 또 혹자들은 중국에서 10배로 돌아온 의료물자를 두고 중국으로의 의료물자 지원이 결국 이익이었다며 신났던데, 한중간에는 이와 비슷한 형태의 교역이 행해진 오랜 역사가 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대등한 국가들 사이에서는 구호물자를 10배씩 돌려주고 받는 짓을 하지 않으며, 필요에 의해 수용해야 할지라도 이를 자랑으로 여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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