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의 형태로 작성되어 말투가 이런 것이니 양해 부탁드려요. 엔딩에 대한 언급이 있어요.)

‘미친’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수 있는 영화가 존재한다면 바로 데이미언 셔젤의 음악적 천재성이 빛나는 <위플래쉬>와 같은 영화를 두고 하는 말일 게다. <위플래쉬>는 통상적인 의미로 장르를 구분한다면 음악영화라고 부를 수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은 그냥 음악영화가 결코 아니다. 음악영화라는 말 앞에 복합 장르적인 성격을 띤다는 점에서 ‘하드보일드 버디 액션 스릴러’라는 단어를 동원해도 무방하다. 

<위플래쉬>는 가히 최고의 ‘밀당’ 영화라고 할 만하다. 이 영화에서 앤드류(마일즈 텔러)와 플레쳐 교수(J.K.시몬즈)가 밀당을 하는 수준은 신과 신이 교차되면서 계속 이어지는 것은 기본이고 한 신 안에서도 순간 순간 관객의 기대를 무너뜨리며 반복된다. 가령 드디어 제1 드럼 연주자가 되었다고 만족해하고 있는 앤드류가 연주 연습이 끝나고 상쾌한 기분으로 연주실을 나서려는 순간 플레쳐가 앤드류를 불러 세우면 갑자기 라이언이 화면에 등장한다. 즉시 플레쳐는 라이언과 앤드류가 연주 대결을 하게 만들고 관객이 보기에도 분명히 앤드류가 드럼을 잘 쳤음에도 불구하고 궤변을 늘어놓으며 바로 앤드류를 내친다. 영화는 시종일관 이런 식으로 관객을 배반하는 순간들로 가득 차 있는데 흥미롭게도 이 영화의 그러한 전개 방식은 이 영화에서 다루고 있는 재즈 음악과도 닮아있다. 일반적으로 치밀하게 구조화된 음악인 클래식에 비해 재즈는 즉흥성, 우연성, 예측 불가능성을 주요 동력으로 해서 완성되는 음악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를 도식화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고자 하는 앤드류와 폭력적인 방식으로 앤드류가 한계를 뛰어넘도록 부추기는 플레쳐 간의 상호 교환되는 에너지를 동력으로 해서 전진하다가 두 에너지의 충돌이 절정으로 치달아 드디어 대폭발을 일으키는 순간 영화가 끝난다. 이 영화에는 서사적으로도 이러한 진행 방식을 뒷받침하는 디테일이 있다. 이 영화에서 서사적으로 중요하게 사용되는 곡은 ‘위플래쉬’와 ‘카라반’이다. ‘위플래쉬’는 이 영화의 제목으로도 쓰이고 있고 극 중 앤드류가 플레쳐가 이끄는 교내 스튜디오 밴드에 처음 합류해서 플레쳐로부터 심하게 망신을 당하는 시퀀스에서 연주되는 음악이다. 그리고 ‘카라반’은 영화의 3분의 2 지점쯤 앤드류가 차 사고로 부상을 입어서 제대로 연주를 진행하지 못할 때 등장하는 곡인데 이때 ‘카라반’의 연주가 유예되는 것은 감독의 의도이다. 전율의 엔딩 시퀀스에서 앤드류에 의해 다시 폭발적으로 연주가 되어야 하는 곡이기 때문이다. 

<위플래쉬>는 또한 드럼 연주에 관한 실험적인 시도를 한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영화 전체가 드럼에 관한 한 연구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감독의 드럼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드럼 연주에 대한 영상화에 철저하게 몰두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데이미언 셔젤은 음악 전문학교인 프린스턴 고등학교에서 드럼을 연주한 적이 있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이 영화를 만들었다. 드럼이라는 악기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은 아무래도 리듬감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 <위플래쉬>는 탁월한 편집을 통해 드럼의 리듬감을 최고조로 구현해낸다. 서사적으로 볼 때도 선형적으로 직진하는 가운데 엎치락뒤치락해가며 두 남자의 대결을 그리는 영화의 내용 또한 드럼의 리듬감을 표현해내는 데 있어서 적절하다. 위에서 언급한대로 <위플래쉬>가 다소 복합 장르적인 성격을 띤다면 이러한 장르들에 필요한 요소들이 드럼 연주의 극단적인 시각화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즉, 형식을 가장 잘 구현하기 위한 이야기를 찾았다고나 할까. 결과적으로 데이미언 셔젤의 그러한 전략은 정확하게 먹혀들어 10분 간 이어지는 전율의 피날레와 함께 관객들이 음악적으로 교감할 수 있는 경이적인 순간을 만드는 데 성공하고야 만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5236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3795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2291
38 [바낭] 영상편집 어떻게 해야할까요? [9] skelington 2020.01.03 514
37 김실밥, 투표 거부와 무임승차 [3] 타락씨 2020.01.17 910
36 인용, 신천지, 마스크, 오명돈에 대한 쓸모없는 의견 [4] 타락씨 2020.03.02 688
35 [영화] 애나벨라 시오라, 애슐리 져드, 살마 하이엑, 로즈 맥고완, 대릴 해나, 하비 와인스타인 [10] tomof 2020.03.03 872
34 천관율의 시사인 기사, '중국 봉쇄 카드는 애초부터 답이 아니었다' [12] 타락씨 2020.03.05 1430
33 한국과 일본, 판데믹 시대의 정치/국제 정치 [12] 타락씨 2020.03.07 1008
32 존 카사베츠의 걸작 <오프닝 나이트> 초강추! (서울아트시네마 토요일 마지막 상영) [1] crumley 2020.05.08 505
31 어제 세 편의 영화를 보고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는 신기한 감정 상태에 대해서 [6] crumley 2020.05.13 865
30 제가 출연하고 스탭으로 참여한 이혁의 장편 <연안부두>가 6월 14일 15시 30분에 ktv 국민방송에서 방영돼요. [6] crumley 2020.06.13 813
29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고, 산 사람에겐 산 사람의 일이 있으며, 무엇도 그리 쉽게 끝나지 않는다, 혹은 그래야 한다 [4] 타락씨 2020.07.10 1027
28 몇몇 깨어있는 시민들의 판단 중지 [11] 타락씨 2020.07.15 1127
27 뒤늦게 올리는 엔니오 모리꼬네에 관한 개인적인 추모글 [9] crumley 2020.07.24 563
26 [싹쓰리]. 그 추억이 더 이상 희미해지기 전에 [3] ssoboo 2020.07.26 914
25 메리 루이스 파커 - Bare magazine, July 2020 [2] tomof 2020.08.01 575
24 기적이네요! 제가 참여한 이혁의 장편 <연안부두>가 9월 4일 밤 12시 10분에 KBS 독립영화관에서 방영돼요! ^^ [14] crumley 2020.09.02 753
23 윤주, 뒤늦게 써보는 전공의 파업 비판 성명에 대한 잡담 [5] 타락씨 2020.09.18 719
22 아르헨티나의 거장, 페르난도 솔라나스 감독님에 관한 개인적인 추모글 [1] crumley 2020.11.20 324
» 최고의 ‘밀당’ 영화로서의 <위플래쉬>에 관한 단상 [3] crumley 2020.11.22 556
20 기적이네요! 제가 시나리오 윤색 작업을 하고 배우로 출연한 남승석 감독의 <감정교육>이 방콕 국제다큐영화제에서 수상했어요! ^^ [12] crumley 2020.12.19 832
19 [닉네임 복구 기념 글] 바이든은 한반도에 똥일까요? 된장일까요? [16] soboo 2021.01.28 953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