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듀게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글을 올리는데요. 다른 곳에서 먼저 쓴 글을 옮겨서 말투가 이런 것이니 양해 부탁드려요.)

우울한 기분마저 즐겁게 바꾸어버리는 영화의 마법이란! 몇 일 전에 자크 타티의 <플레이타임>을 오랜만에 다시 보고 나에게 그런 일이 일어났다. 그래서 이 영화에 대한 감사의 의미로 뜬금없지만 이 영화에 대한 예찬을 몇 자 적어보기로 했다. 내가 가끔 같이 영화를 보러 가자고 권하는 글을 sns에 올리는데 <플레이타임>도 주변 지인들을 끌어모아서 좌석을 매진시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지인들 중에 이 영화를 본 사람들도 많이 있으니 아직 안 본 사람들 중에서 그렇게 하고 싶다는 뜻이다. 이 즐거움과 경이를 나만 느끼는 것은 왠지 미안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글을 읽는 사람 중에 단 한 명이라도 오늘 오후 4시에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마지막으로 상영되는 이 영화를 보러 갔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글을 쓴다.

<플레이타임>은 자크 타티의 최고작이자 영화 사상 가장 위대한 작품 중의 한 편임에 틀림없다. 지난 주에 다시 보면서 너무 감탄한 나머지 이 영화는 세계 문화 유산으로 등재되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나는 이 영화를 정말 너무 사랑한다. 오랜만에 다시 봤는데 앞에서 이미 말했듯이 여러가지 일로 우울한 기분마저 이 영화가 즐거운 상태로 바꿔버렸다. 그래서 예전에 여기에 올렸던 이상 흥분 상태에 대한 글(http://www.djuna.kr/xe/board/12149898)에 나온 것처럼 이상 흥분 상태가 재발되어서 <플레이타임>을 보고 온 날 또 다시 밤을 꼴딱 새고 말았다. 영화가 한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이란 무섭다. 이번에는 긍정적인 의미로서 말이다. <플레이타임>에서 타티는 그를 공간 미학의 거장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영화적 공간을 탁월하게 구현해내며 그 공간을 이용해서 설계한 놀라운 시각적인 개그들을 보여준다. <플레이타임>은 아무리 매 프레임 속의 인물과 사물을 열심히 봐도 한번에 전체 상황을 캐치해서 모든 디테일에 반응하는 게 불가능하다. 이 영화는 주로 롱 쇼트로 찍은 장면이 많은데 딥 포커스 기법으로 프레임 안에 있는 모든 피사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런데 타티는 대부분의 이런 쇼트를 다양한 모습으로 움직이는 사람들로 시종일관 빼곡히 채워서 보여준다. 그렇기 때문에 눈이 적절한 순간마다 적절한 대상을 시종일관 따라다니지 않는 이상 화면 안에 있는 정보를 모두 파악하기가 정말 힘들다. 

나는 완벽주의 성향이 있어서 이런 영화를 보면 늘 패배감을 느낀다. 지난 주에 볼 때도 시각적 개그를 포함해서 놓친 게 여러 개 있었다. 그런데 타티는 내가 패배감을 느끼기를 원하지 않는다. <플레이타임>은 그런 강박관념으로부터 관객을 해방시키기를 원하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관객이 영화에서 본 만큼 각자가 그에 반응해서 이야기를 만들면 된다. 다음에 다시 보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질 것이다. 그런 면에서 <플레이타임>은 일정 부분 인터랙티브 시네마를 실현한 측면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식의 관람이 가능한 것은 이 영화에 통상적으로 말하는 이야기가 부재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굳이 이 영화의 내용에 대해 요약해보자면 한 무리의 미국인 관광객들이 프랑스 공항에 도착해서 시내를 관광하고 다시 공항으로 돌아가는 이야기이다. 그 속에 자크 타티가 직접 연기하고 있는 윌로 씨가 회사의 한 직원과 계속 만나지 못 하고 헤메는 에피소드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 영화는 무수히 많은 에피소드의 나열로 이루어져 있고 각 에피소드마다 다양한 개성을 가진 인물들이 등장해서 그 인물들을 중심으로 다양한 시청각적인 유머가 펼쳐진다. 중심 플롯 자체가 부재하며 따라서 특정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지 않는다. 그나마 윌로 씨가 두드러진 캐릭터이기는 하지만 윌로 씨도 수많은 인물들 중의 한 명일 뿐 결코 이야기를 주도하지 않는다. 많은 에피소드가 교차하는 가운데 각 에피소드의 인물들이 서로 우연히 마주쳤다가 헤어지곤 하며 우연한 만남을 통해 새로운 에피소드가 펼쳐지기도 한다. 윌로 씨는 미국인 관광객 중의 한 명인 바바라와 우연히 여러번 마주치고 점점 좀 더 가까운 사이가 되어간다. 그러나 그 만남이 로맨스로 발전하지는 않는다. 만약 로맨스로 발전하게 되면 이 영화에서 윌로 씨와 바바라가 더 부각되고 그들의 에피소드가 중심 플롯으로 부상하게 되기 때문이다. 타티는 이 영화에서 그런 걸 허용하지 않는다. 모든 인물들은 각자의 개성으로 각 에피소드마다 본인의 역할을 하며 서로 어우러져 균형과 조화를 이룬다. 특별히 극을 주도하는 인물이 없기 때문에 화면 속에 보이는 모든 것이 중요해진다. 그러므로 관객은 화면 속에서 보고 싶은 것을 보면 되는 자유를 얻게 된다. 그래서 이 영화를 두고 영화의 민주주의를 실현했다는 말도 나온 것이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어느 것 하나도 그냥 지나가도록 놔두면 안 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 것이기도 하다. 화면에서 보이는 것들을 놓치는만큼 관객이 타티가 완벽하게 설계해놓은 이 영화를 즐길 수 있는 재미가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귀도 예민하게 열려 있어야 한다. 타티는 시각적인 요소만큼 청각적인 요소를 중시해서 개그를 설계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관객은 선택하면 된다. 그건 어디까지나 관객의 몫이다. 이 영화의 제목인 <플레이타임>처럼 관객은 이 영화를 가지고 놀고 싶은 만큼 놀면 된다. 더 잘 놀고 싶으면 화면 속에서 더 많은 것들을 찾아내려고 노력하면 되고 적당히 놀고 싶으면 여유롭게 화면 속을 구경하면 된다.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맛있는 음식이 상 위에 잔뜩 올려져 있는데 서로 사이 좋게 앉아서 이것저것 맛있는 음식을 먹는 즐거움이 핵심이다. 누구는 초코렛 케잌을 먹었는데 나는 그걸 못 먹었다고 해서 본인이 그 자리에서 음식을 먹는 즐거움을 누리지 못한 것은 아니다. 초코렛 케잌만큼 맛있는 또 다른 음식을 먹으면 되는 것이다.

윌로 씨와 한 회사의 직원은 서로 만나려고 하지만 계속 어긋나면서 숨바꼭질을 반복한다. 그들이 질서정연하게 구획된 방들로 구성된 거대한 건물 속에서 방향 감각을 상실한 채 헤멜 때 그들은 마치 카프카적 미로 속의 세계에 있는 듯하다. 그 세계는 심지어 반사되는 투명한 유리들로 둘러싸여 있어서 실체와 허상의 경계조차 모호해진다. 그 결과로 유리가 있는 걸 눈치채지 못한 채 윌로 씨를 부르던 직원은 코를 다치기까지 한다. 그들은 저녁이 되어서 좀 더 인간적인 공간이라고 할 길거리에서 비로소 만나게 된다. 이 에피소드를 통해 타티는 고도로 산업화된 사회 속에서의 인간 소외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을텐데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와 유사하게 유머와 풍자의 전략을 통해 메세지를 전달했다고 볼 수 있다. 

이 영화의 후반부를 장식하는 로얄 가든 레스토랑 장면은 영화 사상 최고의 시퀀스 중의 하나라고 할 만하다. 타티는 그의 천재적인 능력을 이 시퀀스 하나에 모두 집중시킨 듯하다. 완벽하게 설계된 그 수많은 인물들의 동선 속에 등장하는 시각적인 개그들을 보고 있노라면 이 장면들을 과연 인간이 만든 게 맞는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다. 그야말로 미친 리듬감을 보여주는 이 시퀀스는 가히 리듬의 모든 것이라고 할 만한 감각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점입가경으로 내달리며 춤을 추는 손님들의 몸짓도 거의 기계적으로 만들던 속도감이 주춤하게 되고 기계화된 신체가 인간적인 온기를 되찾게 되는 계기는 공간의 변형으로부터 시작된다. 윌로 씨가 만취한 미국인이 따려고 시도하는 모조 과일 장식을 대신 떼어내는 순간 시종일관 고장으로 말썽을 일으키고 있던 이 공간의 일부가 무너져내리기 때문이다. 그렇게 됨으로써 빠른 속도로 음악을 연주하던 밴드의 공연이 멈추게 되고 칸막이로 인해 새로 생성된 공간에서 새로운 에피소드가 펼쳐지기 시작한다. 이 순간은 마치 이 영화 자체를 은유하는 것 같기도 한데 감독이 완벽하게 설계한 거대한 무질서의 세계에서 나름의 논리로 이야기를 만들어나가야 하는 관객이 처한 상황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 새로운 상황에서 갑자기 바바라가 피아노를 치고 레스토랑의 손님 중의 한 명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이 순간은 실로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이 순간이 오기 전까지 바바라가 이 영화 속에서 피아노를 칠 것이라고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캐릭터의 의외성도 딱히 주인공이 없는 이 영화의 민주적인 특성에 의해 가능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영화의 마지막에 아름다운 방점을 찍는 것도 바바라의 몫이다. 윌로 씨가 그녀에게 준 작은 꽃다발이 그래픽적 유사성으로 아름답게 확장되면서 영화는 막을 내린다. 

나는 <플레이타임>을 하나의 건축이며, 음악이며, 시이며, 회화라고 말하고 싶다. 이 영화에 대한 찬사를 나름 늘어놓다가 보니 사설이 길었지만 사실 이 영화에는 이런 긴 설명이 필요치 않다. 화면에 예민하게 반응할 수 있는 눈과 소리에 민감한 귀와 여유로운 마음만 있으면 된다. 오늘 서울아트시네마에서 <플레이타임>이 마지막으로 상영된다. 이 글을 읽으시고 마음이 동하신 분들이라면 주저하지 마시고 자크 타티가 영화 사상 가장 진귀한 진수성찬을 차렸다고 해도 무방할 이 완벽한 놀이의 세계 속에서 길을 잃고 헤메는 놀라운 체험을 하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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