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전에 여수 해양 엑스포를 다녀왔습니다. 제 인생에 있어 그런 큰 축제에 일부러 참여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어 이게 무슨일인가 싶었죠. 하지만 왠지, 여수 엑스포는 어떠한 우연으로라도 가버리게 되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다들 아시는지는 모르겠지만 최근 고아원은 아주 작은 단위로 쪼개져서 작은 가족 단위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부모 아래에서 아이들이 자라나는 방식으로 유년기를 보내게 하겠다는, 가족 재구축의 정부 구상인지는 모르겠으나 그걸 바로 저희 부모님께서 하고 계십니다. 저는 잠시 그 일을 도우러 내려온 거구요. 단체 후원이 들어와서 아이들과 함께 여수 엑스포를 가게 된 것이지요. 어딘가에 후원해드리는 분들에게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여수 엑스포에서 사람들은 그렇게 많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아쿠아리움의 줄은 매우 길어서 5시간을 넘게 기다려야 했습니다. 아쿠아리움을 2번째로 가기로 마음 먹어 정말 그렇게 오랜동안 줄을 섰습니다. 앞에 있는 사람과 뒤에 있는 사람들과 안면을 터 놓을 정도가 되어서야 수족관에 들어가게 되더군요. 부끄럽지만, 저는 수족관을 인생 처음으로 이번에 갔어요. 가보니 아주 많은 사람들이, 아주 적은 물고기들과 수달, 펭귄들을 보고 있더군요. 한 번에 400명씩, 15분 간격으로 들어가게 했기 때문에 그렇게 오래 걸렸더라구요. (누군가가 말한 불공평한 예약제 대신 공평하게 내리쬐는 햇볕 아래서 대기를 하게 된거죠, 비가 왔지만.) 수달과 펭귄은 이미 지쳐서 사람들을 피해 굴 속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펭귄 한 마리는 자해를 했는지 부리 주변이 빨갛더군요. 피 같았어요. 끊임 없이 플래쉬가 터졌습니다.


 그나마 절 유쾌하게 했던 것은 돌고래였습니다. 상아색의 깔끔한 가죽이 아름다운 유선형으로 이루어진 생명이 우리에게 꽤 호감(또는 호기심)을 가지고 있더군요.  그 중에 한 마리는 사람들 앞에서 얼굴을 맞대고 입을 뻐끔뻐끔하며 사람들의 반응을 보는 듯 했습니다. 돌고래가 너무 매혹적인데다, 아이들은 5시간동안 줄을 서느라 지쳤고 (사실 아이들보다는 어른들이 더 지쳤지만)해서 저는 거기서 1시간이고 2시간이고 앉아 있었으면 했습니다. 돌고래만큼이나 파도가 치는 해안가도 좋아하는데, 역시 마찬가지로 1시간이고 2시간이고 소리를 들으며 해안가를 보고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음 곳으로 이동했어요.


 그 이후 매우 넓은 크기의 거대한 유리 벽면에 물고기들이 돌아다니는 것이 보이는 곳이 있더군요. 거북도 몇 마리 있구요. 거기서도 마찬가지로 플레쉬가 터졌어요. 저는 참을 수 없어서 몇 사람의 플레쉬를 꺼 드렸죠. 어떤 할머님은 플레쉬를 어떻게 끄시는지도 모르더군요. 듀게에서 물고기는 눈을 감을 수 없다고 한 이야기를 들어서 더욱 화가 났어요. 어쨌던가 거기서 물고기들을 한참 보고, 원통형 통로를 통해서 지나간 다음, 또 물고기를 보고 인형 판매장으로 오니 한바퀴가 끝이더군요. 한 시간도 안 걸린거 같았어요. 물고기 떼를 볼 수 있어서 좋긴 좋았지만 물 바닥에 몇 마리 죽은 물고기를 보았기 때문에 우울한 마음을 떨칠 수 없었습니다. (피라냐가 있다는 수목+수족관은 임시 폐쇄했더군요. 차라리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옆의 3D 수족관에 가보고, 아쿠아리움 바로 옆의 해양생물관에 가봤습니다. 혹시 여수 엑스포를 가셔서 아쿠아리움에 가보고 싶으시다면 먼저 3D 아쿠아리움에 가서 확인을 해보세요. 별로 기다리지 않아도 볼 수 있는데, 내부가 어떤 형태로 이루어져 있는지 아실 수 있고 볼 필요 없다고 여기시면 안 가도 되거든요. 차라리 3D 영상이 실제보다 더 팔팔했어요. 수족관을 여러 군데 가본 분들이라면 실망하시지 않으려면 미리 가보는게 좋을 듯 합니다. 해양 생물관은 360도 영상관으로 잠수함처럼 바닷속을 노닐더군요. 왼쪽 중간에 기둥이 있는데 바로 그 뒤에 앉아서 전체를 보기 힘들었으니 그 자리는 피해주세요. 그리고 어떤 분의 말대로라면 아쿠아리움은 엑스포 기간이 끝난다 하더라도 없어지질 않으니 차라리 세계관과 기업관을 가는게 나으실 겁니다.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부모님은 돌아가시려 했지만, 위와 같은 이유 때문에 전 억울해져서 세계관까지만 가자고 했어요. 그리고 세계관은 지붕이 있어서 비를 안 맞을 수 있거든요. 비를 피해 세계관에 가면서 부모님은 '아, 이제 물고기는 질렸어, 세계관엔 별로 없겠지' 하셨지만 세계관에도 물고기는 여전하더군요. 해양 엑스포의 취지에는 잘 맞췄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번 엑스포 전체를 보면서 해양 발전에 대한 거대한 밑그림 같은게 느껴지긴 했거든요. 실제는 허망하긴 하지만 말이죠.


 세계관의 형태는 2가지에요. 밖에서 대기하고 들어가느냐, 아니면 끊임없이 들락날락 하느냐. 대기조가 있는 곳은 어느정도의 시간을 들여서 퍼포먼스를 합니다. 대기조가 없는 곳은 그냥 지나가면서 보는 곳들이구요. 있는 곳 쪽이 컨텐츠가 더 좋기 때문에 고려해서 보면 좋습니다. 세계관을 돌면서 느낀 점은 좋은 나라와 나쁜 나라의 차이점은, 앉을 자리가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정도 였습니다. 앉을 자리가 없으면 나쁜 나라고, 있으면 좋은 나라. 또한 대부분이 프로젝터를 통한 벽면 사용이라 거의 비슷한 기분이었어요. 벽면을 얼마나 크고 특이하게 배치했느냐 정도가 차이였습니다. 프로젝터 판매 업체에게 로비를 받았나 싶을 정도였어요. 동태평양 섬들이 우글우글 있는 곳을 갔는데, 그곳에 몽골이 참가했더군요. 몽골! 해양 엑스포에 바다가 하나도 안 인접해있는 국가가! 아주 작은 부스에서 순록 박제과 함께 관광상품 판매점처럼 여러 상품들을 모아놓은 몽골 부스는 서글펐습니다. 동남아 지역 중에 어디였는지는 기억 안 나지만, 자기 나라 트로트를 파는 나라도 있었어요. 누군가 살까요? 과연?


 아이들은 시간이 갈수록 힘이 넘쳐가는데 어른들은 지쳐서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습니다. 맨 아래층에는 일본 아사히 맥주와 철판볶음면 같은걸 팔더군요. 아이들과 그런걸 먹어볼까 했지만 안전하게 옆에 있는 한국 전문점에서 돈가쓰를 먹었습니다. 이미 러시아, 스페인, 체코 등 여러 외국 음식점을 지나오긴 했지만 말이죠. (상당히 큰 나라의 세계관에는 아주 작게 음식 부스가 있습니다. 캥거루 고기 이야기야 다 들어서 아실거고, 가격은 그작저작 사 먹을만 해 보였습니다) big-O 공연을 시작하고 있을 때 조용히 빠져 나왔습니다. 차도 안 가져왔는데 그 많은 사람들이 우루루 빠져 나오면 집에 가기 매우 곤란해질것만 같았죠. 게다가 아이들은 그런 거대한 전경에 대해서 별로 흥미를 가지지 않더라구요.


 아주 많은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아이들, 그리고 학생들을 봤을 때, 왠지 국가의 압박이 느껴졌어요. 기업 측에 압박해서 후원을 하면 그 후원금으로 여수 엑스포를 관람하러 오는 거죠. 사실 그렇지 않겠지만은, 어쨌던가 큰 축제에 간다는 건 써볼만한 실적이니까요. 그러나 할머님, 할아버님들에게는 관람이 너무 힘들지 않았을까 했습니다. 어쨌던가 여러분, 엑스포에 가시면 아쿠아리움을 멀리하시고 세계관과 기업관 가세요. 기업관은 못 봤지만서도.


 나중에 아이들에게 엑스포 경험을 물어보니, 물고기를 본 것과 줄을 선 것.. 만 기억하더라구요. (더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왠지 허망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어떤 세대 내에서 서로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거대한 체험이 있다면, 꽤나 괜찮은 일이 아닌가 싶었어요. 그것만으로도 말이죠. 하지만, 줄을 섰다는 건... (줄을 서서 기다리면서도 엑스포의 진 재미가 이런게 아닌가 하면서 떠들긴 했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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