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상하게 고장난 키보드를 교체했어요. 그 사이에 쓴 글과 댓글 들은 대부분 화상 키보드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ㅂ, ㅁ, ㅋ 이 얼마나 글을 쓰는데 자주 등장하는지를 뼈져리게 알 수 있었습니다. 왼 새끼손가락이 꽤 고생을 하고 있다는 사실도요. (그러고 보니 여러분, 혹시 왼쪽 엄지가 놀고 있지 않습니까? 전 스페이스를 오른쪽 엄지만 누릅니다. 양쪽을 동시에 사용해보려고 노력했는데 왼쪽 엄지는 복지부동이더군요. 키보드를 치는 내내 왼쪽 엄지는 편히 쉬고 있어서 얄밉습니다. 오래 글쓰면 다른 손가락들은 다 지친다고!) 키보드가 없으니 일상 잡담을 더 써보고 싶더군요. 하지만 글이 길어질 것은 당연한 일인지라 화상 키보드로는 엄두를 못 냈습니다.

도서관은 문학 계열 정리를 끝냈습니다. 자세히 말하자면 한국 문학이 정리가 되어 있지 않았는데 마무리 지었죠. 한국 문학은 아무리 자리를 넓게 잡아놔도 꾸준히 늘어나면서 빈자리를 다 채우고 책장이 폭발할 지경으로 늘어나서, 다시 20권 정도를 들어서 뒤로 미루고, 미루고를 반복하는 작업이었습니다. 이문열이나 조정래, 특히 박경리가 미웠습니다. 왜 이렇게 박경리의 토지를 좋아하는지 기본 토지 3질, 청소년 토지 2질이 있죠. 이만하면 책장 한 켠을 다 차지 합니다. 대학 도서관의 토지는 1권이나마 빌려가지만, 중학교 도서관의 토지는 1권조차 빌려가질 않아요. 청소년들이 '청소년'이라고 써진 책을 피한다는 사실을 정부는 알고 있는건가요. 어린왕자와 갈매기의 꿈은 30권 넘게 있습니다. 도서관 초창기 맨 처음 들여놓은 책인데 이 책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건 한 자리에 모아 놓으니 기묘한 기분이 듭니다. 어린왕자 하니 말인데, 생텍쥐베리의 성을 '생' '쌩' '텍'으로 해서 같은 책 다른 판본이 여기저기에 흩어지게 만든 장본인은 누굽니까. (어째서 어린왕자가 30권이나 있지만 또 다른 판본이 대여섯개나 있는지도 의문)

도서관에 앉아 있으면, 마치 맛있는 빵집에 매우 다양한 종류의 빵들을 공짜로 먹을 수 있게 진열해놓은 듯 합니다. 고양이한테 생선가게를 맡기는 격이죠. 하지만, 책은 물어뜯는다 해서 닮아 없어지진 않으니 다행입니다. 한 입씩 물어뜯은 책들이 책상 책장에 가득 모셔져 있는데 다 읽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문학 계열을 정리 끝내고 난 후에는 진이 빠져서 다른 계열을 정리할 엄두가 안나네요. 아마 다음 정리는 예술이나 역사가 될터인데 무서워요. 아님 이대로 대출/반납이나 하며 게으름 부리다가 끝날지도 모르죠. 이제 날짜가 별로 안 남았어요.

요번에 아이들이 와서 여기저기 앉아서 책을 읽는데 그저 행복했어요. 그 전까지는 들여보도 않은 녀석들이 내려와서 보고 있으니 제가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았지만 매우 기쁘더군요. 다들 책 하나씩 끼고 말이죠. 아이들은 김진명 소설이 제일 재미있나 봅니다. 그 다음이 귀여니고. 자기만의 진로를 찾은 아이들은 자기 개성에 따라 책을 빌려봅니다. 아이들이 책을 읽도록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요. 자기 모임 내에서 서로 입소문을 듣고 책을 읽지만, 제가 추천한답시고 앞에 나열해놓은 것은 잘 빌려가지 않습니다. 제가 뭐, 애들 입맛을 알겠나요.  과연 중학생이 읽을 만한 책이라고 규정 지어놓을만한 선이 있을까요? 1Q84도 있고, 전문 서적도 꽤 많습니다. 저는 뭐든 읽을 수 있고 읽고 싶어한다면 괜찮다고 생각하는지라 그러려니 하지만요. (창가학회나 문선명이 쓴 글은 별로지만서도.. 이런 책들은 학교 도서관으로 공짜로 보내진다고 합니다. 도서 바코드도 없이 여기저기 껴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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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전에 시험감독을 했습니다. 제 삶에서 시험감독을 해볼 날이 또 올지는 모르겠네요. 부시험감독을 했는데, 애들의 등덜미를 바라보는 자리에서 60분 동안 서 있어야 했어요. 주 시험감독이 부럽더군요. 그 분이야 선생님이셔서 아이들 얼굴을 잘 알고 있겠지만, 아이들 등을 바라보는 저로서는 이만큼이나 좋은 기회를 등을 선별하는데 쓴다는게 아쉽더라구요. 수학 시험이었는데 빠르게 포기하는 아이들과 끝까지 푸는 아이들로 당연히 나뉘었습니다. 전 60분을 가만히 있는 것도 힘든데 그 시험을 하루에 5교시동안 지속적으로 본다는게 참 살인적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차피 수능 세대긴 합니다만, 그래도 무언가 가만히 서서 1분 1분의 시간을 느끼다 보니 참 시험이란게 힘든 일이다라고 떠오르더군요.

시험응시자로써 자주 경험했기 때문에, 누군가의 뒤에서 계속 있다거나, 특정한 응시자의 시험지를 유심히 본다거나, 신경쓰이게 계속 같은 자리를 맴돈다거나 하는 일을 최대한 자제했습니다. 그래도 그 나름대로 또 불만이 있겠죠. 시험 상황은 사람을 예민하게 만드니까요. 글씨를 예쁘게 쓰는 남자애들은 왠지 똑똑해보이는 성차별적인 생각을 떠올렸습니다. 중학생 수준에서는 남녀 전부 악필과 선(?)필이 골고루 섞여 있더군요. 제 기억에는 이맘때쯤 해서부터 여자아이들에게 예쁜 글씨의 압박/회유가 동시에 들어간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여학생들의 예쁜 글씨는 순수한 노력의 결과라고 생각해요. 참고로 저는 악필입니다. ㅏ를 쓸 때 - 부터 쓰고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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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교롭게도 아이들의 나이가 5, 6, 7살이기 때문에 오늘 아이 글이 더 특이하게 읽히드라구요. 아이들을 싫어하는 안아이(어른)들을 자주 봤기 때문에 그런가 싶었습니다. 저도 아이와 어른 사이의 미묘한 시기의 무책임성에 대해서는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어느 정도 제목만 보고도 공감이 되었습니다. 아이들 이야기를 쓰려고보니, 아이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가명을 지어야겠는데 이니셜로 하자니 70~80년대 소설 같고, 아무거나 붙이자니 기분이 이상해서 한참 고민을 했습니다. 아직도 결론은 안난 상황인데 자축인묘, 이런 것도 생각해보고 이걸 해결하지 않으면 영영 아이들에 대해서 글을 쓸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아이들을 좋아해서, 작고 귀여운 여자아이들이 나오는 애니는 장르가 어찌되었든 사족을 못 쓰고 봅니다. (이것은 저는 부정하지만 제 친구들은 긍정하는 바입니다.) 그러나 실제 아이들과 함께 지내보니 창작물에서 다루는 아이들이 얼마나 허구스러운지에 대해 되새기고 또 되새기고 있습니다. 싫다는 측면이 아니라 매우 좋다는 측면에서요. 어떤 창작물에서 특정한 모티브들은 실제를 거의 언제나 압도합니다. 쉬운 예로 홍대 거리와 영화 속의 더 홍대 거리스러운 홍대 거리 말이죠. 하지만 아이들은 허구를 완벽하게 압도하더군요. 어떤 창작물 속의 놀라운 아이들도 실제 아이들을 당해내진 못합니다. 진짜 아이들이 더 아이스러워요. 창작의 목표가 아이스럽게를 목표로 한다고 하더라도 말이죠.

어찌되었던, 그러한 압도 속에서 정말로 아이들을 눈앞에 두고 좋아서 눈이 팽글팽글 도는 상황의 연속이었습니다. 실제로는 근엄한척했지만 말이죠. 그 자그마한 머리 속에서 각각의 자신만의 논리가 존재하며, 그에 입각해서 안아이세계에서는 별로 찾아보기힘든 결과치가 여기저기서 터져나오죠. 마치 듀나 소설의 유치원 교사를 하는 로봇에 대한 이야기가 얼마나 현실을 잘 반영하고 있는지를 생각하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일단은 아이들의 입버릇으로 끝을 내겠습니다. 임시로 이니셜을 써보는게 좋겠어요.

Y는 아직 존댓말과 반말을 잘 구별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자주 -했다요, 라는 표현을 쓰죠. 이게 귀여우려고 하는게 아닙니다. 그냥 나오는거에요.
E는 자기 이름을 먼저 넣습니다. 'E는요.' 다른 애들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데 어째서 혼자 이렇게 말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또한 자주 이런 식으로 말합니다. 'ㅇㅇ! 좋아.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좋아'
W는 단답형 대답을 합니다 'ㅇㅇ 싫어' 'ㅇㅇ 쪼끔 싫어' 'ㅇㅇ 좋아' (ㅇㅇ에는 사람 지칭이 들어갑니다)

아이들의 언어는 글로 적는 순간, 그 미묘한 어투가 지워져 버리기 때문에 전부 전달할 수 없다는게 아쉽네요. 아직 발음상의 정리가 끝나지 않은 때인지라 그 개인적 특수함을 더욱 더 쉽게 알 수 있고 그런 것들을 들으며 매우 즐겁습니다. 이니셜은 역시,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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