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도 좀 뒷북인가요.


처음 그 광고를 봤을 때 착잡했습니다. 저 어린이는 자신이 성적 대상물이 되는 연기를 했다는 걸 자각하게 되면 어떻게 느낄까. 그런 이미지를 반복적으로 보면서 자라는 다른 어린이들은?

그나마 하루만에 항의로 내려진 것이 다행스러운 대목인가요. 그런데 그에 대한 백래시가 자못 충격적이었습니다. 남초에 가면 엄청 많이 볼 수 있고, 여기 듀게에서도 봤는데 지운 것 같네요.


'예쁜 여자를 좋아하는 게 무슨 문제냐.'

'페미쿵쾅이들이 그 어린이 모델이 예쁘다고 질투한다.'

'그 광고가 음란하다고 비판하는 너희들의 눈이 문제다. 내 눈에는 그냥 예쁘기만 하다'

'역시 여자는 예뻐야 맛이다. 그 모델 예뻐서 좋더라. 페미들이 뭐라고 해서 더 좋아할 거다. 메롱'

'여자애들도 화장하고 어른처럼 꾸미는 거 좋아한다. 그걸 왜 막냐?'


1. <못생긴 페미들이 예쁜 어린이모델을 질투한다>

성인여성이 어린이를 질투해서 광고를 문제삼는다는 망상은, 그런 망상을 하는 남성들에 대해 많은 걸을 알려줍니다. 우선 그 남성들은 어린 소녀를 성인여성과 동일선상에서 성적 대상으로 보고 있어요. 그 남성들의 머리 속에는, 어린 소녀들을 성적 대상화하지 않는 사람들도 세상에 많이 있다는 생각이 전혀 떠오르지 않는 겁니다. 그래서 남들도 자신들처럼 당연히 어린 소녀를 성적 대상으로 보고 있을 거라고 가정합니다. '성인 남성들은 어린 소녀들을 탐닉하고 싶어할 것이다. 성인 여성들은 어린 소녀들과 성적 매력을 두고 경쟁하고 있을 것이다.' 이런 가정이 머리 속에 단단히 자리잡고 있는 것이죠.


이런 상황에서 어떤 성인 여성들이 예쁜 소녀가 나오는 광고를 문제삼는다? 빙고! 정답! 질투하는 거다! 


네. 정말 역겹습니다. 자신들의 망상을 투사하니 저런 말도 안 되는 비난을 하기에 이르렀네요. 그리고 그 비난은 도리어 자신들의 뒤틀린 욕망을 그대로 적시합니다. 


(비슷한 예가 떠오릅니다.  '창녀들은 넘치는 성욕을 주체 못 해서 몸을 판다'라는 황당한 소리도 역시 본인들의 망상을 투사한 결과죠.)


2. <페미들이 쿵쾅거리니까 웃긴다. 나는 예쁜 어린이 모델 좋다. 어쩔래? 페미들 열받으라고 더 티내야지. 여자는 예뻐야 맛이지.>

소아성애는 죄악입니다. 그래서 그 광고가 문제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섹슈얼리티가 강조되긴 했지만 소아성애까지는 아니다' 또는 '전혀 성적이지 않고 당연히 소아성애적이지 않다'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면서 동시에 '엘라 그로스 예쁘기만 하던데. 페미들이 싫다니까 난 더 좋다. 어때, 쿵쾅이들? 분하지?'라는 흐름들이 있더군요. 

그러니까, 페미니스트를 조롱하기 위해서 소아성애자-되기를 자처하는 것입니다. 페미니스트를 조롱하는 포지션에 설 수 있다면 소아성애자와의 동일시조차도 불사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들에게는 소아성애자보다도 페미니스트가 더 멀리하고 싶은 존재. 네. 미쳤다고밖에 할 수가 없네요. 


세 가지 가능성이 있습니다. 첫번째, 페미니스트를 너무너무 혐오해서 자신을 불사르고 똥구덩이에 다이빙하면서까지도 페미니스트를 조롱하고 싶다. 두번째, 소아성애가 그렇게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세번째, 사실 소아성애 경향을 가지고 있다.

세 가지가 결합되었을 수도 있죠. 이런 종자들이 한국 사회에 있다고 생각하니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얼얼하네요. 그동안 많이 놀랐는데 아직도 놀랄 게 남아있었네요.


3. <여자애들이 좋아해서 어른같이 꾸미고 섹시해지려고 하는데 왜 막냐. 자유의 침해다.>

어린 소녀들이 자신을 성적 대상으로 인식하고 성적 매력을 돋보이게 하려는 경향은 당연히 어른들의 세계를 모방한 데에서 나옵니다. 그리고 그렇게 자신을 스스로 성적 대상으로 인식하면 자아의 성장과 전인격적 발전에 크나큰 저해를 가져옵니다. 어린 시절의 경험은 중차대한 차이를 낳고요. 그래서 아동 대상 성범죄는 특별히 가중 처벌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내용은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어야 마땅한데, 한국 사회는 아직 멀었나 봅니다. 모든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보고 물건처럼 대하는 데 워낙 익숙해진 남자들이 많아서요. 어린  소녀가 스스로를 성적 대상화하는 것이 뭐가 문제인지도 모르고, 오히려 반기는 거죠... 



며칠 전 본 모습이 잊히지 않아요. 10살 정도 된 어린이가 히잡을 쓰고 있더군요. 그런데 그 안에는 또 귀여운 곰돌이 무늬가 있는 바지를 입었어요. 자기 오빠와 장난치며 놀고 있는 모습이 개구장이처럼 보였습니다. 저 아이에게 왜 '성적인 코드를 가리는' 히잡을 씌움으로써 다시 성적 대상화하는 것인지. 아이에게 히잡을 씌우는 사회나 화장을 시키는 사회나 그 바닥은 같아 보입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3890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2294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0674
179 아래 현역 카투사 행정병 덕택에 알게된 것 [10] 타락씨 2020.09.14 1564
178 한국과 일본, 판데믹 시대의 정치/국제 정치 [12] 타락씨 2020.03.07 1004
177 [영업] 진산 마님의 고양이 귀 [2] 룽게 2019.12.24 594
176 김장 후기 [4] 칼리토 2018.11.14 1218
175 방전은 나이탓일까? [3] 칼리토 2018.05.18 1295
174 1.출장명령서 2.우리 고양이는 나를 뭘로 보는가? 3. 아몰라 [10] Koudelka 2015.12.12 2507
173 우리집 주소는 라니아케아 초은하단 국부은하군 은하수은하 태양계 지구 한국... [5] 데메킨 2014.09.11 5043
172 원숭이가 찍은 셀카 저작권은...! [2] 데메킨 2014.08.22 1537
171 맹장수술.. 오늘 퇴원했어요. [5] 살구 2014.07.28 2768
170 아들 양육기(육아 얘기 싫어하시면 패스) [20] 계란과자 2014.07.09 2749
169 아기 고양이가 좋아하는 음식 [5] JKewell 2014.03.14 4629
168 김애란 「눈물의 과학」, 연재를 중단하며 [4] 닥터슬럼프 2013.10.11 3706
167 GTA도 GTA지만 [1] 국사무쌍13면팅 2013.10.08 1269
166 지금 모니터를 보고 계신 곳은 어디신가요? [3] ageha 2013.08.11 1471
165 비스트, 크리스탈 라이트, 술버릇 [4] 칼리토 2013.07.30 2349
164 웹진 <아이즈>가 새로 창간됐네요. [1] 보람이 2013.07.15 2325
163 [연예바낭] 가족분께서 방언을 뿜어내고 계십니다 [14] 로이배티 2013.06.25 5654
162 여성의 병역 복무를 양성평등의 시각에서 봐야 할 이유? [32] 룽게 2013.06.17 2467
161 [엽편] 초능력, 영웅 그리고 연애 [5] clancy 2013.05.20 1537
160 요즘 읽은 소설들과 파리 5구의 여인 칼리토 2013.05.09 1233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