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감정은 포유류가 아니라 파충류이지 않을까 고민되는 요즘입니다. 열을 체내에서 만들 수 없어서, 어기적 어기적 기어나가 외부열을 받아야 피를 데울 수 있고, 살다보면 자신의 껍질이 알맹이보다 적어져서 탈피를 때때로 해야 하죠. 껍데기나 알맹이나 제 살은 살이기에 어디까지가 자신인지 모르고 찢어내려면 고통스럽기 그지 없구요. (파충류가 탈피할 때 아프거나 할지는 모르겠지만 가장 위험한 순간이긴 하겠죠.) 그러니까 문제는 외부로부터 날 지켜주고 내 것이었던 것만 같았던 감정의 두께를 갈라내기 위해 어느 순간에는 떨어내는걸 노력 해야할 시점이 온다는 겁니다, 아마도.


저는 타인에게 가혹한 만큼 자신에게도 가혹하고 그 점이 저를 붕괴시키죠. 오늘 오전에는 자격증 필기 시험이 하나 있었는데 안 갔어요. 등록비 낭비 한 거죠. 문제는 3일 전부터 공황 상태에 돌입해서 당일에 다가갈수록 공부를 아무것도 못했죠. 3일 동안 하루에 2시간이라도 적당히 읽고 넘긴 후에 시험 봤으면 떨어지든 말든 그럭저럭 넘길 수 있는 건데 제 정신 근력은 갓 태어난 병아리 날개 쭉지 근육만도 못한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돈을 들여서 오늘 포함, 총 4일을 뭉게버린거죠. 일상이 큰 원통형 롤러로 짓이겨지는 느낌은 산 채로 발 끝부터 납짝해지는 건데, 심지어 다른 일도 하질 못하게 됩니다. 음식을 만들어 먹는다는 피곤함을 피하기 위해 밥도 3일간 한 끼씩 먹고, 그나마 다른 한 끼는 밖에 기어나가 사다 먹었네요. 그리고 짓뭉개진 몸을 끌어다가 진탕 침대에서 뒹굴며 노는거죠. 수면과 가상소요가 향정신제의 일종이 아닌가 고민되는 시간들입니다.


냉정하게 생각해봤을 때, 저를 이루고 있는 요소들 중에서 괜찮은 게 있고 괜찮지 않은게 있어요. 개인적으로는 그것들을 분해해다가 다른 사람들이 혹하는 것들은 무료 나눔하고 나머지는 쓰레기통에 버려버리고 싶습니다. 네, 여기 지금까지 금주 금연한 간 있는데 받아가시구요, 이번에는 글쓰기 요령을 담은 사유입니다, 아, 파란 옷 입은 분이 손 빨리 들었어요, 나와서 가져가세요, 에, 빡빡한 머리숫입니다, 아 좋은 선택 하셨어요 다만 모발이 좀 굵으니 관리 잘 해주시구요, 나머지는 수거해서 정리하겠습니다 혹시 관심 있으신 분은 목록 확인해서 개인적으로 연락 부탁드리고 기관에서 보관기간은 경매 종료일로부터 7일입니다. 그런데 아직 장기 말고는 그런건 불가능하니 총체인 제 자신을 버릴 수도 없고 어떻게든 잘 끌고 가야겠죠.


솔직히 남이 뭐라고 하는게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그런거야 회사 취직이나 어쨌던가 남에게 평가 받을 순간에나 상관 있는 것이지 자기 자신의 감정/이성적 행복 추구에는 절반은 자기가 관장하는 것인데요. 문제는 자기 옹호가 불가능하다는 것에 있죠. 쉽게 생각해서 두 명이 서로 사귀고 있을 때, 한 쪽이 집단 윤리에 어긋난 일을 하거나, 논리적으로 옳지 않은 일을 저질렀다고 생각해봐요. 다른 쪽은 그 일탈자한테 그런 이야기를 들었을 때 건조하게 사실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거나, 또는 잘못 되었다고 지적하거나, 아니면 그 사람을 옹호하고 받아들여줄 수도 있겠죠. 근데 그게 한 몸에서 일어난다고 생각해보세요. 제가 유일하게 살해욕이 일어나는 사람은 세상에 제 자신 밖에 없습니다. 다른 사람을 농담으로라도 죽이고 싶다, 고 생각해본 적은 없죠. 그런데 찌그러진 자기를 옹호 못하면서 남은 어떻게 옹호할까요. 논리적인 사람이 히스테리를 부리면 누가 말릴 수 있으려나요. 정말 짜증나요.


요즘 사람들은 도대체, 이성과 감성의 배수로를 어떻게 파고 그 관을 어디로 이어서 하수처리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하긴 제가 스포츠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연예를 파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다종다양한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아닌데 흘려보낼 곳은 인터넷 밖에 없으면서도, 인터넷에서도 무슨 정치인 수준으로 자기 검열을 하죠. 타자 혐오를 받아들여 자기 혐오로 체화시키는 버릇은 참 나쁜데, 인터넷에 만연해 있는 것들을 반박하지 않고 수긍하다 보면 그렇게 되는 거죠. 게다가 요새는 넷상이건 인간관계상이건 이성이든 감성이든 드러내는 걸 에티켓의 파괴라고 주장들 하는 집단 윤리가 형성 중이기 때문에 은은하게 퍼져나가는 타자 검열을 자기 검열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많을꺼라 생각합니다. 저에게도 어느 정도의 두꺼운 낯짝이 있고, 그 두께는 내적 일관성을 유지한다는 원칙 때문에 가능한 것이니 물결을 타는 분들은 자신을 드러내는게 더욱 힘든 일이겠죠.


내향성도 좋고, 내적 에너지를 얻는 것도 좋은데 정말 과연 홀로 사는게 가능한 사람이 있을까요. 있을 법도 해요. 듀나님도 그런 부류에게 모델이 될만한 사람이죠. 그리고 앞으로 1인 가구의 증가율을 생각해보면 그렇게 살아야만 하는 사람들은 계속 증가할 것이고, 독신률도 증가하고 있죠. 자신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런 형태의 삶은 우리들 중 일부에게 주어질 겁니다. 게다가 역 피라미드. 외로움이나 고독은 문학에서 포장되어 팔리는게 아니라 정말 많은 사람이 지금까지의 시대보다 이후에서 더 많이 일상적으로 마주치게 되겠죠. 인구학적으로도 개개인 사유의 배수로는 구축되어야할 시스템이죠. 그렇지 않으면 그 오폐수들이 어디로 모여 흐를지 알 수 없는 일입니다.


궁금한 점은 그거에요. 합리화 또는 옹호를 어떻게 능청스럽게, 또는 어른스럽게 할 수 있느냐는 거죠. 제가 자기 잘난 맛에 사는 인간은 아닌데도 평균 이하의 (다른 식으로는 사회 부적응의) 못남에 고통받는다면 그것을 어떻게 해체하고 넘기는 건가요. 어화 둥기둥기 하면서 띄워주는 것은 당연히 아니고. 성취 할 때보다 시도를 붕괴시킬 때 더 많은 자원이 필요한데 역설적이잖아요, 성취한 사람은 좋은 감정적 자원을 얻게 되고 다시 사용할 수 있지만, 실패한 사람은 이미 파산 과정에서 또다시 파산하는 구제금융도 포기하고 평가는 마이너스가 되서 대출도 불능이 되는 그런 상황이 되는 거잖아요. 어디서 감정을 대출받죠? 좀 쉬어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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