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 바낭] 비와 당신의 이야기

2013.07.21 04:22

팔락쉬 조회 수:1188

비가 더 내리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이기적인 생각은 잠시뿐 다시 걱정이 앞서요. 물론 일을 쉬는 날 늦잠을 자고 일어나 아직 밤인지 낮인지도 모호한 채광에 의지해 창문을 열 때는 좋아요. 창틀에 튀어오르는 빗방울을 맞으며 오늘은 뭘 해야 할까 늦은 하루 계획을 생각할 즐거움 정도는 남아 있어요.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이기적이에요. 걱정해야 합니다.


어릴 때 강물에 휩쓸려 죽을 뻔한 적이 있어요. 서울 태생인 데다가 가정 형편상 유년기에 겨우 한두 번 있을까 말까한 여름 휴가지에서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기억하는 건 단편적이에요. 튜브가 벗겨지고 숨이 차오르던 가운데 물과 육지의 경계가 한순간 뚜렷히 보이더니 가족들의 모습이 사라졌죠. 헤엄을 배운 적도 없어서 그대로 떠내려갔어요. 마침 하류에서 그물로 고기를 잡던 무리가 아니었다면 더 늦게 구조되었을 테고, 어떻게 되었을지 모릅니다. 다행히 무사해 이렇게 글을 쓰고 있지만 여전히 지금도 헤엄은 못 쳐요. 아니 안 칠 거예요.


재해 중에서도 수해가 언제나 가장 두려워요.


옛날에는 시골에 내려가면 늘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아버지의 나고 자랐던 곳은 지금은 수몰되어 사라진 어느 마을이에요. 댐 건설로 인해 사라졌지요. 이런 지역 대부분은 상습 수해 발생 지역이기 때문에 주민 이주가 부득이한 경우도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아버지가 자주 얘기하는 것은 1972년 입었던 수해 중에 어느 섬에서 있었던 일화예요. 


당시 강 한복판에 자리잡은 섬에 주민들이 200명 이상 살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범람하는 강물로 인해 마을 주민들은 단 여섯 평에 지나지 않는 물탱크에 올라서 구조를 기다리며 밤을 지샜다고 해요. 처음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의외로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어서 지금은 저도 그냥 믿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믿지 않으면 미안해지는 죽음이 이 이야기 속에 들어 있어요. 이 날 갓난아기 하나가 목숨을 잃었어요. 어머니의 품에 안겨 있는 채로요. 좁은 공간에서 조금이나마 가장자리에서 멀어지고자 서로 밀어대는 압력 때문에 숨이 막혀 죽었을 겁니다. 글을 쓰면서도 숨이 막혀요. 구조대는 언제 올지 모르고, 비는 계속해서 쏟아지는 중에 아기를 안고 있던 어머니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어쩌면 아기가 죽었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어둡고 부대껴서 보이진 않더라도 안고 있던 손으로 이미 더듬거려 확인했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이웃 모두가 숨죽여 구조만 기다리고 있을 때 자신의 아이가 죽었다는 것을 쉽사리 알릴 수 없었던 걸까요.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는 기점이 무엇인지 저는 알지 못하지만, 아이의 사망은 결국 마을 주민 모두가 군부대 헬기에 구조되고 나서야 알려졌습니다.


당시 마을에는 사상자나 피해규모를 정확히 파악할만한 수단이 없었어요. 뉴스나 지역신문도 많은 이야기를 담지 않았고요. 마을은 그후로도 계속해서 수해를 입었지만 72년 수해에 대해서는 자세한 피해 규모를 볼 수가 없어요. 아버지가 알고 있는 것은 단 하나예요. 사망자는 한 명 뿐이었다고. 


해마다 접하는 여름철 사고 뉴스를 보면 늘 그런 생각을 합니다. 나도 어쩌면 저 수많은 아이들처럼 물살에 휘말려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것 자체가 무섭고 괴로워요.


작년쯤에 방영된 일일드라마에서 첫째 아들을 급류에 잃고 수십년 뒤 그 장소를 다시 찾아 오열하던 배우 김영철이 생각납니다. 물론 드라마 속 그 아이는 살아남아 기억을 잃고 재벌가의 아들로 입양돼 살아가지만 저는 상상할 수 있어요. 가족들이 멀어지고 물이 시야에 가득 차올라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기까지의 두려움 따위를요.


전 이자스민의 정치적 행보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이 분의 남편이 어떻게 죽었는지는 압니다. 급류에 휩쓸린 딸을 구하고 심장마비로 사망했지요. 가족들도 그의 선원 경력을 알기 때문에 별 걱정이 없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이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그에게 어떤 여유도 주지 못했을지 몰라요. 처음 이 뉴스를 접했을 때는 그저 러브 인 아시아 방송에서의 모습 밖에 몰랐기 때문에 저도 모르게 가슴이 먹먹해지고 남겨진 가족들을 걱정했어요. 


저는 남들과 다르게 열일곱이나 되어서야 바다를 처음 보았습니다. 저는 딱히 바다에 가고 싶다고 칭얼거린 적도 없는 아이였어요. 지금은 안 그렇지만 예전엔 물이 한데 거대하게 모여 있는 것만 봐도 이상하게 가슴이 답답했어요. 그만큼 썩 감상하기 편한 풍경이 아닙니다. 처음 바다를 보았을 때 나서서 한 행동은 돌멩이를 던져 물수제비를 뜨는 거였지요. 되나 안 되나 궁금했나 봐요. 잘 되더라고요. 한참을 같은 동작을 반복하다가 멀리서 집합하라는 소리에 돌아섰습니다. 고등학교 수학여행 때였어요.


저는 물 가까이 살 생각이 없어요. 육지 중에서도 높은 곳, 그것도 가장자리가 아닌 중앙으로 점점 옮겨가고 싶습니다. 


국민학교 다닐 때에는 여름방학 시작도 전에 반의 몇 명이 등교하지 않을 때가 있었어요. 그때는 그 아이들이 살던 마을이 지대가 낮아 수해를 입었다는 것을 어머니들의 대화와 뉴스를 통해 알았어요.


김연수의 단편소설 「내겐 휴가가 필요해」는 전직 대공분실 담당 형사가 퇴직 후 작은 해안마을의 도서관에서 끝없이 책을 읽으며 어떤 이의 죽음을 이해하고자 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자신이 타인에게 내린 고통을 경험이 아니라 겹겹이 쌓인 지식에 기대어 알아내고자 합니다만 불가능할 수밖에요. 어찌 보면 필연적인 소설의 결말은 끔찍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해하려 들 수는 있어요. 물 고문으로 죽인 청년의 눈동자를 잊지 못해 물에 빠져 죽는다니. 말하자면 이 결말은 포악해요. 하지만 김연수는 어느 작가의 말에서 이해하지 못할 바엔 최선을 다해 오해하라고 말하더군요. 아, 최선을 다하라니.


요즘, 


그리고 지금 순간 물에 관한 이미지들이 많이 떠올라요. 이런 것들도 오해해야 할까요.


저한테는 더없이 무서워요. 무섭고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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