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처음에 다른 곳에 올리기로 했었기 때문에 말투가 이런 것이니까 양해 부탁드려요.)

 

호들갑 좀 떨겠다.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진행되고 있는 존 포드 탄생 120주년 회고전에서 걸작 <태양은 밝게 빛난다>를 보고 너무 감동을 받은 나머지 어떻게 글을 쓰면 이 영화를 한 명이라도 더 보게 만들 수 있을까에 대해 많이 고민했다. 지금까지 영화를 보고 이런 고민을 한 적이 없었다. 답은 나오지 않았고 그냥 내 감정에 솔직해지기로 했다. 도대체 왜 이 영화가 나를 이렇게 사로잡았을까? 나도 논리적으로 그 이유를 설명하기는 힘들다. 이 글을 읽고 한 명이라도 영화를 보러 갈지 알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글을 쓰지 않고는 도저히 넘어갈 수가 없어서 글을 쓰기로 했다. 지금 이 순간 내 글을 읽으면 수천 명의 독자가 움직일 수 있는 글쟁이가 아니라는 것이 너무 아쉽다. 내가 관객을 동원해서 남은 두 번의 상영을 모두 매진시킬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 정도로 나는 많은 사람들이 <태양은 밝게 빛난다>를 봤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영화와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이 이 영화를 꼭 봤으면 좋겠다. 많은 기독교인들도 이 영화를 꼭 봤으면 좋겠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영화에 대한 나의 안목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이 영화를 꼭 봤으면 좋겠다. 이 글을 읽는 모든 사람들이 이 영화를 꼭 봤으면 좋겠다. 내가 지금까지 수천편의 영화를 보면서 영화를 더 이상 보지 않아도 되겠다고 생각한 적이 딱 한 번 있다. 칼 드레이어 회고전때 높은 경지에 있는 영화들을 보고 그런 느낌이 들었었는데 <태양은 밝게 빛난다>를 보고 11년만에 다시 한번 더 이상 영화를 보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기분으로는 <태양은 밝게 빛난다>는 영화 사상 가장 위대한 작품이라고 말하고 싶다.

<태양은 밝게 빛난다>는 존 포드 스스로도 가장 좋아했던 작품들 중의 하나로 알려져 있으나 존 포드의 다른 걸작들에 비해 덜 알려져 있는 불운의 영화다. 그런 만큼 이 영화를 보기도 쉽지 않다.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 중의 하나도 이번 기회가 아니면 이 영화를 스크린에서 보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존 포드의 다른 걸작들에 비하면 대단히 소박하다. 이 영화는 서부극도 아니고 그렇기 때문에 존 웨인, 헨리 폰다와 같은 스타 배우도 등장하지 않고 존 포드 서부극의 상징과도 같은 모뉴먼트 밸리의 웅장한 풍경도 없다. 그런 만큼 감독으로서도 힘을 줄 만한 구석이 없다. 그러나 이 영화는 단순하고 소박한 것이 얼마나 위대해질 수 있는지를 입증한다. 이 영화는 프리스트 판사를 중심으로 한 공동체에 관한 이야기이다. 선거를 앞두고 있는 프리스트 판사는 여러가지 일로 분주하다. 영화는 여러가지 사연들이 얽히면서 천천히 흘러가는데 어느 지점에 이르면 영화사의 기적과도 같은 순간이 펼쳐지기 시작한다. 허문영 영화평론가가 영화 사상 가장 위대한 시퀀스라고 표현했던 장례식 행렬 장면이 바로 그것이다. 처음에는 그 장례식 행렬을 그냥 일상에서 흔히 마주치는 풍경과도 같이 무심한 상태로 보게 된다. 그런데 그 장례식 행렬 장면이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나는 내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감정이 북받쳐 오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사연이 있는 한 창녀의 죽음에 최대한의 예의를 갖춰 치뤄지고 있는 장례식인데 그 장례식을 집행하기로 한 프리스트 판사가 창녀의 관이 실린 마차 뒤를 조용히 따라가고 있다. 그 장례식 행렬을 보고 있던 술주정뱅이, 의사, 보안관 등 공동체의 일원들이 한 명씩 한 명씩 그 행렬에 조용히 합류한다. 그 장면은 대략 7분 동안 진행되는데 대사도 거의 없고 배경 음악도 없다. 마차가 굴러가는 바퀴 소리와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밖에 없다. 거의 무성영화를 보고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이다. 그 시퀀스는 공동체 일원들이 장례식 행렬을 보는 시선 쇼트들과 한 명씩 한 명씩 조용히 행렬에 합류하는 움직임으로 구성되어 있다. 아주 단순하다. 그런데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엄청난 감동을 준다. 이건 정말 미스테리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사실이다. 한 쇼트, 한 쇼트가 모여서 어느 순간 숭고한 지점에 이르게 되는데 나는 그게 너무 놀라웠다. 이런 단순한 장면이 그런 순간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존 포드를 비롯해서 오즈 야스지로, 나루세 미키오, 클린트 이스트우드 등 영화 속 시선 쇼트의 미학에 감동을 받을 때가 많았는데 이 장면이야말로 시선 쇼트의 미학의 절정을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장례식 행렬 장면은 어느 순간 거의 영적인 차원으로까지 승화된다. 그리고 그 장례식 행렬 장면 속에서 불가능할 것처럼 보였던 용서와 화해가 이루어진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그 인물들의 용서와 화해가 정말로 믿어진다는 것이다. 그 인물들 간에 아무런 대사도 없고 단순히 장례식 행렬에 합류할 뿐인데도 말이다. 이 장면은 인간에 대한 예의를 보여준다. 이 장면을 보면서 비록 허구이기는 하지만 나도 그 창녀의 죽음을 진심으로 애도하게 되었다. 내가 이 장면에서 그토록 감동을 받았던 것은 평소에 한 인간의 죽음을 진심으로 애도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이고 인간에게 예의를 갖춘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왔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 장면을 보고 그런 내 자신에 대해 반성을 하고 싶다는 마음도 들었다. 현실에서와 같이 이 장례식 행렬 장면에서 존 포드는 창녀를 비난하며 장례식 행렬에 합류하지 않는 사람들도 보여준다. 그러나 평소에는 갈등과 반목 속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이 장례식 행렬에 합류하는데 그 사람들의 결단과 움직임은 너무 아름답고 깊은 감동을 준다. 이 영화의 러닝 타임은 101분이다. 그리고 이 작품은 서사 중심의 할리우드 영화이다. 이야기가 중요한만큼 다른 감독이 연출을 했다면 이야기와 별로 상관이 없어 보이는 장례식 행렬 장면은 1분 정도만 보여주고 끝났을 수도 있다. 그러나 존 포드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나는 무려 7분 동안 이 장면을 보여주기로 한 그의 결단에 진심으로 경의를 표하고 싶다. 이런 장례식 행렬은 아마 현실에서도 보기 힘들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장면은 더욱 감동적이고 찬란하게 빛난다. 내가 이 영화를 강력하게 추천하는 것은 바로 이 장면을 많은 사람들이 직접 스크린으로 보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이 장면을 보면서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많은 것을 느꼈으면 좋겠다. 감상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장례식 행렬 장면을 묘사하려고 했기 때문에 이 글을 읽어도 영화를 보는 것에 지장을 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이 장면은 도저히 언어화가 불가능한 것도 사실이다. 이 장면은 직접 보고 그 경이로움을 느껴야 한다. 영화만이 할 수 있는 어떤 것을 '영화적' 혹은 '시네마틱'이라고 한다면 바로 이런 장면을 두고 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장례식 행렬 시퀀스는 그야말로 시네마틱한 순간의 절정이다.

이 장면을 떠나서도 <태양은 밝게 빛난다>는 시종일관 풍부한 유머가 있어서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장례식 행렬 장면이 압도적이기는 하지만 사실 그것은 이 영화의 일부에 불과하다. 이 영화는 전체적으로 봤을 때도 대단히 아름답고 생각할 거리가 풍성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도 매우 인상적이고 깊은 감동을 준다. 사람마다 각자의 감상은 틀리겠지만 적어도 장례식 행렬 장면만으로도 이 영화를 보고 후회하는 사람은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장례식 행렬 장면을 보는 것은 영화 사상 가장 진귀한 체험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앞으로 두 번의 상영이 남아있다. <태양은 밝게 빛난다>는 서울아트시네마에서 9월 26일 금요일 저녁 8시와 10월 1일 수요일 5시 30분에 상영된다. 이 영화가 궁금하신 분들은 영화를 보시고 내가 한 말이 정말 사실인지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시기를 바란다. 글을 더 잘 쓰고 싶었는데 내가 이 영화를 보고 느낀 감동을 표현하기에는 역부족인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 이 부족한 글을 읽고 한 명이라도 이 영화를 보러 가게 된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다. 이만 글을 마친다. 긴 글을 읽어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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