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2010년 여름 대학을 졸업했습니다. 마지막 한 학기도 거의 일하면서 남는 학점 채우려 주 2회만 왔다갔다한 거라

제 실질적인 대학생활은 2008년까지였다고 볼 수 있겠군요. 제 베프도 군대 다녀오고 이래저래 휴학하느라 졸업이 늦어져

지금 마지막 학기를 다니고 있습니다. 우린 대학동기죠. 걔가 1학년 첫 학기 때 '소설의 이해와 감상'이라는 교양수업에서

은희경 발표를 맡았었고, 그때 완전 위엄쩔게 은희경의 전작을 앞에 뙇, 쌓아놓고 포풍발제를 해서 완전 칭찬들었던 적이

있었죠. 나름 몇 안되는 영광의 기억...우짜든동 오늘은 베프의 대학시절 마지막 발표고, 그게 또 하필 은희경.

 

-나 또 은희경임ㅋㅋㅋㅋㅋ 대학시절의 시작과 끝을 은희경으로 마무리하는구낰ㅋㅋㅋㅋㅋㅋ

-헐 존나 수미상관ㅋㅋㅋㅋ(*시에서 첫 연과 끝 연을 반복하는 구성법)님 대학생활 존나 시적이네염ㅋㅋㅋㅋㅋ

 

  해서, 할 일도 없고 지금 아니면 이제 학교 갈 일도 없겠다는 생각에 친구의 마지막 은희경 발표를 구경하러 오늘

학교에 갔습니다. 애를 만났는데, 앜ㅋㅋㅋㅋㅋ 완전 드레스업하고 있음ㅋㅋㅋㅋㅋ 흰셔츠에 검정바짘ㅋㅋㅋㅋㅋㅋ

결혼식장 가시냐몈ㅋㅋㅋㅋㅋ 나름 마지막 발표고 하니 의미를 부여했던 모양임미다. 학교 일대를 걷는데 와...진정 지금

내 옆을 지나가는 애들이 거의 다 나보다 어리단 말인가.....................흑흑.

 

   과목은 현대소설론. 친구도 교생실습 하고 하느라고 두 달 여만에 처음 수업 들어가는 거라던데 흠, 담당 교수님이 제가

1학년 때 교양 들었던 분이시더군용. 문학이론서 요약발췌해 온 거 발표하고 선정작품 작품론 발표하는 게 수업구성.

문학이론 발표 들을 때부터 좀...갸우뚱. 그래 뭐 무...물론 요약발췌인 건 알겠는데, 발표가...그냥 말 그대로 '줄여 와서

줄줄 읽고 있는' 겁니다. 어 음...나도 저랬나, 아닌데 난 안 저랬는데. 제대로 듣는 애들도 별로 없고, 교수님도 발표에 크게

관심있는 것 같지도 않고. 으...으음....어차피 구조주의고 나발이고 다 까먹었고 다시 들어 봤자 써먹을 일도 없고, 귀기울여봤자

크게 재밌지도 않고 해서 공부 안하는 애들이 꼭 하는 포풍필담주고받기를 베프랑 시전합니다. 그래도 쟤는 시험봐야한다고

필기도 몇자 적고 그르드군요. 이 글 읽으시는 분들도 이런 거 다 해보셨죠들?

 

 

 

  이윽고 드레스업한 내친구의 발표 차례. 한 학번 낮은 남자애들 두 명과 같은 조였다는데 그냥 친구가 다 했다는군요. 수업 전에 한 번 읽어보면서

막 포풍 맞춤법이랑 오타지적해주고 그랬는뎈ㅋㅋㅋㅋ 잘 썼더라구요. 그러나 역시, 그 강의실의 누구도 이 발표를 열심히 들을 준비는 되어 있지

않았고...(눈물)

 

   다 읽고 질의응답시간을 가졌는데, 질문들이 참...'저걸 왜 물어보지' 싶은 것들 뿐이었는데, 그중 백미는 앞줄에 앉은 어떤 여자애의

 

-여기 나오는(이상문학상 수상작, 「아내의 상자」) 아내,  되게 별로인 스타일이지 않아요?

 

였드랬지요.  이....이게 질문이냐......................................................당신은 토크쇼 패널입니까..........................................친구랑 저랑 둘 다

어이없어서 빵터졌는데 웃지도 못하고 어흑. 그냥 저는 이쯤에서 포기하고 이면지 낙서를 시전하기 시작했지요.

 

 

(괜히 귀퉁이에 애인님도 그려넣고. 저녁먹으면서 보여줬더니 반응은 신통찮...똑같구만)

 

   아무튼 참, 가르치는 사람도 별 열의 없고, 듣는 애들은 더더욱 열의 없는, 참 별로인 대학수업풍경이었어요. 같은 과목을 전 되게

열심히 가르쳐주신 교수님 만나 엄청 열심히 재미있게 들었던 기억이 나서 더 씁쓸. 수업 마지고 내려오는데 친구와 저 둘 다 왠지

파김치가 되어 서로를 도닥여야 했습니다. 얘도 뭔가 잔뜩 힘주고 준비한 발표가 이모양이니 왠지 김도 새고 기력도 쇠하고 그랬던

모양. 학교는 축제기간이라 여기저기 주점에, 먹을거리 판매에 복작복작하는데 우리 둘은 물에 뜬 기름처럼 어색하게 얼른 학교를

빠져나왔습니다. 하긴, 우린 동기들이랑 학교 다닐 때도 축제에 제대로 참가한 적은 한 번도 없긴 했어요. 

   어쨌든 나이들어 대학다니는 건 좀 못할 짓이지, 싶더군요. 빨랑빨랑 마쳐놓길 다행이지, 그 떠들썩한 틈바구니에 어색하게 껴 있는

것만으로도 기가 쭉, 빨리는 느낌. 대학생이 어른인 것 같아도, 별로 그렇지도 않구나. 이런 꼰대스러운 생각이 드는 자신이 되게

놀라웠습니다. 그러니까 오늘 저는, 비로소 이십대 후반이라는 자각을 하게 된 듯해요. 그건 뭐 좋을 것도 크게 나쁠 것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조금씩 나이들어 가는 거죠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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