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리에 개봉일 적어놓고 오매불망 기다리던 영화였어요.

'범죄와의 전쟁'과 마찬가지로 개봉 첫날에 예매해놓고 어제 보고 왔는데,

듀게에 올라오는 화차 관련 글이 읽고 싶어서 그간 꾹 참느라 혼났어요.

저는 기대한 영화일수록 사전 정보 없이 보는 것을 좋아해서

영화를 보고 나서 후기와 관련 기사 그리고 원작을 찾아 읽는 편이에요.

하지만 변영주 감독님의 화차를 보고 나서는 미미여사님의 원작을 읽고 싶던 마음이 사라졌습니다.

소설은 영화보다 훨씬 자세히 묘사되어 있을테니까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몇 번이나 뒤를 돌아봤는지요.

영화 속 시대배경이 2011년도인데다가 현실의 지명까지 그대로 사용한 덕분에

어디선가 일어났거나 어쩌면 현재진행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서 더 무서웠습니다.

사채 때문에 스스로 목을 맸다는 기사도 적지 않고요.

 

 

펜션 장면은 강렬했어요.

살인하는 장면도 없었고, 토막 시체를 본 것도 아닌데

차경선의 구토에 저도 덩달아 속이 메슥거렸거든요.

 

 

그런데 문호와 전직 형사인 사촌 형이 차경선의 전 남편을 찾아가서 극 중 2011년도에 만남을 가지는 장소가 어째서 다방인가요.

진해에는 한 번도 안 가봐서 잘 모르지만 '써니'에 나올 법한 장소가 2011년도 배경에 나오니 갸우뚱했어요.

그리고 과거 결혼 생활 당시의 배경도 너무 시골스럽게 묘사했더라고요.

차경선이 2011년도에 29살로 나오고, 스무 살에 결혼했다 하더라도 2002년 즈음일텐데

식당에 찾아와서 행패 부리던 사채업자분은 '범죄와의 전쟁'에서 튀어나오신 줄 알았어요.

차경선의 전 남편 역할을 하신 배우분은 '공주의 남자'의 공칠구 역할을 맡으셨던 분이셨네요.

어디서 많이 들은 목소린데, 누구지? 했는데, 집에 와서 후기 찾아 읽다가 알았어요.

'그들이 사는 세상'에서 정지오의 전 여자친구로 나왔던 차수연도 반가웠어요.

 

 

영화는 꽤 친절했어요.

러닝 타임만 찬찬히 따라가도 어려움 없이 이해됐으니까요.

그 음침하고 스산한 분위기가 내내 이어진 것도 좋았고요.

두 번이나 나온, 화면 가득히 숲의 나무 잎사귀가 파르르 떨리는 장면과 노을 진 빨간 하늘은 무얼 말하고자 하는지 의아했지만 감독님 취향인가하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사라진 약혼녀의 흔적을 밟아가던 문호와 과거의 차경선이 한 장면에서 교차하는 부분도 마음에 들었는데, 이런 식의 연출을 뭐라고 부르나요?

오버랩은 아닌 거 같고, 다른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자주 나오던데 궁금하네요.

 

 

마지막으로 엔딩 이야기.

저는 에스컬레이터에서 문호와 경선이 마주치는 장면에서 끝을 맺었더라면 어땠을까 싶어요.

차경선의 자살이 너무 나풀거리는 느낌으로 다가와서 어쩐지 튀더라고요.

감독님께서 고려하신 엔딩 중에 1년 후에 다른 남자와 함께 있는 경선이 문호와 마주치는 장면도 있었다는데,

그랬다면 영화 보고 나서 더 찝찝했을지도요.

자신의 인생을 위해서 다른 사람의 소중한 인생을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취하는 게 끔찍했거든요.

여자들은 사소한 이유로 친해지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그 점을 이용하다니.

가냘프고 긴 팔다리와 서늘한 김민희의 눈빛이 잘 어울리는 영화였어요.

 

 

덧.

김민희가 쎄씨, 신디더퍼키류의 잡지에 나올 때부터 팬이었어요.

드라마 '학교 2'에서 껌 좀 씹던 학생일 때 그 쌔한 표정도 좋았어요.

국어책 읽는 연기라는 이야기에도 지쳐갈 즈음,

노희경 작가님의 '굿바이 솔로'에 최미리로 나왔을 때부터는 김민희가 아닌 그 역으로만 보였던 거 같아요.

그런데 이 언니, 떡국에 방부제 타서 먹나 봐요.

화차에서 어깨에 닿을 정도의 단발머리 모습은 학교 2의 신예원하고 묘하게 겹치네요.

김민희스러운 말투와 목소리, 웃는 모습도 여전히 매력있고요.

이 영화에서 이선균과 조성하의 역할은 다른 배우가 맡아서 했어도 무난히 소화할 듯한데

차경선 역의 김민희를 대체할 배우는 떠오르지 않아요.

 

 

영화의 호불호가 꽤 갈리던데

저는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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