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약속시간 관련,  제 딴엔 퍽이나 흥미로운 주제의 글을 좀전에 읽었던 지라 원글과 상관없이 제 얘길 써봅니다.

 

저는 애초부터 약속시간에 많이 늦는 편은 아니지만 아주 칼같이 지키지도 못하고 오분이나 십분쯤은 늦는 평범한 인간이었습니다. 때로 사정이 있으면 삼십분 또는 한 시간도 늦어본 적 있고(물론 상대방에게 미리 통보는 합니다), 반대로 기약없는 상대방을 세 시간 넘게 기다려본 적도 있는(통보는 받지 못했습니다-_-) 사람이었지요. 이런 얘길 하려면 때는 바야흐로 제가 ****단지에 한창 혼을 박으며 다니던 시절을 먼저 얘기해야겠어요. 초기 **단지의 교통편은 열악하기 그지없어 당시 북한산자락 아래 살던 제가 3호선을 타고 일산 끝자락의 어디에서 내려 셔틀을 이용해야 하는(것도 아침 딱 두 타임만 운행되던) 상황이었죠. 당시 체력과 주력이 극에 달하여 월화수목금금금으로 야근에 주말특근에 오죽하면 창백한 개기름의 몰골로 야밤이나 새벽 엘리베이터 안의 거울에 비친 제 모습에 스스로 '초췌미' 또는 '야근미' 라 칭하며 자뻑에 빠져들던 시절이라 아침에 제 시간에 일어나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죠.

 

눈뜨면 (셔틀버스 이용가능할 시간은) 없어라, 오전 8시가 좀 넘어있고... 아무리 제 민낯이 심은하 같다지만(응?) 얼굴에 물만 묻히고 눈썹도 못 그리면서도 옷 겨우 맞춰 입고 나가서는 대로변에서 미스터 택시, 택시, 택시를 부르던 날들. 서울 언저리에서 **까지 당시 한창 심할 때는 한달  택시비가 50~60만원 나왔으면 말 다하던 시절. 친하게 지내던 동료들이 하나같이 그냥 차를 한 대 뽑아라, 라고 말하던, 네, 그래요. 그래서 그 당시 운전면허도 땄습니다, 땄고요(서울시민인데 경기면허로).

 

그럼에도 9시까지 출근에 8시58~59분 사무실 도착이면 땡큐, 서울에서 출발한 편도 택시비 25000원을 들이고도 9시 넘어 도착하는 낭패를 당하면 어쨌든 1분만 늦어도 지각이기에 동료에게 미리 컴을 켜둘 것을 부탁하고(책상에 서류도 좀 펼쳐놓고) 까치발을 하고 책상에 안착하면 등에 땀이 주주룩 흘러 팬티의 허리부분을 적시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죠. 주말특근이나 새벽야근의 택비시야 청구하면 받을수라도 있으니 그렇다치더라도, 그렇게 n년을 다녔으니 그 택시비만 모았어도 당시에 지금처럼 가격이 미쳐날뛰지는 않았던 C사의 가방 하나를 살 수 있지 않았을까 후회막급입니다만. 그런데 분명한 건, 저는 출근은 그렇게 했을지 모르지만 친구나 지인들을 만날 때는 그렇게 방만한 시간계획으로 나가본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대부분의 약속이 퇴근 후 저녁인지라 그때쯤이면 대략의 동선이나 소요시간이 나오고 그래서 만나는 시간이 대동소이하다는 것이 대부분의 직장인들 비슷한 지점일 것입니다만 경기북부지역 어디메서 자유로를 타고 서울로 진출하기란 무수한 변수가 작용하기도 하는 노선임에도 오히려 상대방을 기다렸으면 기다렸지, 누군가를 하릴없이 기다리게 만들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시간은 돈이기 때문이라는 너무나 자명한 논리는 말하기도 입 아프고, 저는 그냥 누군가와 약속을 정할 때면그 약속을 정하는 순간부터 만나고 즐기고 헤어지고 각자 집에 돌아가서 잘 들어갔다는 상호 메세지를 교환하기까지를 무척 중요하게 여기던 인간이라 그랬던 것 같아요. 저라는 사람은 이 모든 과정이 아귀에 맞게 딱딱 돌아가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 어떤 강박증이 분명 있었던 것도 같은데, 스스로에게 꽤 엄격하게 구는 제 성격에 대해 나름 상대방에 대한 '예의 또는 성의' 라고 규정했던 것 같아요.

 

그럼에도 모두가 나 같지는 않으니 그중 상습적으로 늦는 친구, 다른 것 다 좋은데 시간개념 없는 방만한 친구, 약속장소나 시간을 갑자기 변경하는 것에 대해 충분한 양해를 구하지 않는 친구, 심지어 당일날 약속을 일방적으로 깨버리는 것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나 해명도 없는 친구 등등 다양한 종의 친구 또는 지인들을 만나대고 다님에도 그냥 만남에만 의미를 두던 시절 이었죠. 무슨 사람이나 관계에 결핍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사람 대 사람으로 갖고 만나야 할 기본 중의 기본이 어떤 것인지도 괘념치 않고 허겁지겁 만나던 시절, 술값이고 밥값이고 지갑을 열던 사람도 저였으니 꼭 그래서였겠는가만 당시의 제 주변엔 사람이 들끓다못해 가마솥뚜껑 밖으로 흘러넘치는 암죽처럼 인간관계가 질펀하던 시절이었죠. 월화수목금금금도 모자라 주말까지 약속이 꽉 차고 진짜 무슨 홍대 죽순이처럼 저는 그 언저리에서 쉽게 발견되는 술에 불콰한 얼굴을 하고 지금 생각하면 우습기만 한 얘기들을 '담론' 이라는 낯뜨거운 형태로 배설해내는 것을 소통이라 여기던 시절이 있었어요.

 

그 시절을 반추하며 자조하고 후회하는 건 아니지만, 그 후로 n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돌이켜보면 지금 제 주변에 이파리 다 떨구고 남아있는 사람들은 그나마 '약속시간'을 잘 지키고 그것의 중요성을 아는 사람들이라는 결론이더라구요. 아주 사소한 것 같고, '우리가 남이가' 라는 동지의식으로 간과할 수 있는 기본에 대해 강박증을 갖고 있는 사람들만 그래도 이 관계가 상호간에 어느 정도의 비중을 차지하는지 직감하는 자들끼리 남게 되더라구요. 살다보니 이해관계나 비지니스 또는 인맥이라는 것을 마냥 폄하하고 무시할 수도 없고 간, 쓸개 까지 빼줄 것 같은 막역한 사이도 어느 순간 소원해질 수 있다는 것을 조금은 경험해본 터라, 위의 비중이 어느 순간 어떻게 변할지는 이제와서 장담할 수 없게 되었지만 그래도 저는 약속을 정할 만큼의 상대방과의 관계에 대한 적극성과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동선에 대한 배려, 그리고 그것에 대한 오차를 줄이기 위한 준비에 대한 성실함, 마침내 그렇게 해서 제 시간과 장소에 나타난 상대방의 얼굴을 보고 존재를 확인하며 따뜻한 밥이나 술 한잔을 나누는 행위의 아다리가 딱딱 맞아떨어지는 것 자체가 어쩌면 기적에 가까운 일이라고 느낄 때도 있습니다. 요즘 저의 경우는 그래요, 일단은 오라는 곳도 가고싶은 곳도 양방간에 땡기는 일도 드물고요. 웬만한 약속들은 저녁 운동 빼고 나가는 것도 마뜩찮아서. 더욱이 어느 싯점부터 저는 약속을 정하는 과정에서부터 배려나 성의가 없다고 느끼는 상대방과 굳이 만나고 싶지도 않을 만큼, 예고된 피로를 감당하고 싶지도 않아져서요.

 

아, 지각하는 습관을 어떻게 고쳤냐고요? 간단합니다. 늦을 것을 감안하고 지레 비싼 돈들여 택시타고 갔는데도 이미 늦고 그곳이 직장이든 개인약속을 정한 상대방이든 짜증이나 노여움을 애써 감추는 상대의 표정을 살피며 뭔가 변명거리를 만들며 쭈삣쭈삣거리는 것이 어느 순간부터 스스로에게 정말 화가 났기 때문이죠. 타자에게 힐난을 듣는 것보다 스스로 정한 임계치에서 상회하는 비굴비굴한 자신이 진짜 못마땅할 때가 되면 나쁜 습관은 웬만큼 다 고쳐지지 않나요? 저는 담배도 그렇게 끊었거든요. 장편소설 한 권을 쓸 쑤도 있을 것처럼 너무나 다양하고 구차하고 절박한 에피소드를 갖고 있었는데 결론은 거리에서(심지어 몇 년을 살았던 외국에서도 ) 당당하게 꺼내물고 타인을 의식하지 않을 수도 없으면서 또 끊지도 못해 어딘가 숨어 피울 곳을 찾아 전전하고 하루에 양치질을 열 번 가까이 해야할 만큼 지인들에겐 들키고 싶지 않았던 제 이중습성을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되었을 때, 저는 과감히 그것을 끊어버립니다.

 

언젠가 타인의 상습적 지각에 대한 관대함을 더 이상 보일 수 없게 되었을 때, 그것을 냉철하게 지적해야 했을 때, 그리고 그럴 자격에 대해 스스로도 자기검열하며 비장하게 입을 열고 따끔하게 일침을 가해야 했던 날. 저는 그날 저녁 다른 곳에서 아주 무거운 술자리를 앞두고 당장 내일의 나도 어떻게될 지 모른다는 일말의 두려움을 갖고 있음에도, 더 이상은 상대방의 무신경함을 용인할 수 없어 입을 열어야 했어요. 그리고 상대방의 입에서 나온 얘기는 앞에서 나온 몇 분들처럼 자기는 원래 그렇고 아주 중요한 시험에도 그래서 늦었고 암튼 잘하는 일은 아니지만 어쩔 수 없다는 얘기를 들었죠. 네, 누군가는 어디가 넘치고 또 누군가는 어딘가가 남아납니다만... 새벽까지 일을 하거나 술을 먹고도 집에 가서 단 삼십분을 누워있다가 찬물샤워를 하고 정시에 나오는 것이 이미 습관이 되어있던 저는 그까짓 게으른 습성 또는 나약함은 찬물샤워 한 번이면 된다는 계몽을 하려던 건 아니지만, 결국 모든 건 성의와 예의라는 것으로 귀결되더라고요. 그리고 이 밑바탕엔 상대에게 또는 회사라는 조직에게 아주 기본 중의 기본부터 책잡히고 싶지 않다는 자존심이나 거리감에서 기인한다는 것도요. 이것이 옳다 그르다 쉽게 말할 건 아니고 어울리지 않는 상황대비일지는 모르지만, 만약 제가 돈이 아주 많은 사람인데 누군가 제게 어떤 사정이 있어 금전적 도움을 청하러 온다면 시간개념 불분명한 사람에겐 금고는 커녕 현관문을 열어주고 싶지도 않을 것 같아요. 이게 돈이 아니라 다른 부분이라도 그렇겠죠.

 

2. 저는 늘 그렇듯, 집, 회사, 운동, 운동, 집, 회사 또는 가끔 친구들과 저녁약속을 하는 일상을 몇 년째 영위해 왔어요. 저에겐 이것이 가끔 참을 수 없이 지루하다는 생각도 들곤 했지만 돌이켜보니 저는 그냥 그것이 제 규격에 너무 잘 맞는 일이라는 걸 요즘들어 깨닫곤 해요. 좋게 말하면 담백하고 단정한, 나쁘게 말하면 권태로운. 그런데 그런 제 일상에 일말의 호감 또는 호기심을 갖고 기웃거리는 사람(들)이 꽤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저는 지루하지만 질서있게 돌아가는 제 컨베이어벨트 위로 타인(들)의 개입을 허용하지 않을 생각이지만, 제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훨씬 더 다채롭게 또는 복잡하게 살고 있다는 것을 느끼거나 알게 될 때마다 놀랍니다. 예전에 누군가가 제게 했던 '근데 진짜 홍상수의 영화같은 상황이 실제로도 일어난다는 거야?' 라는 말을 듣고 실소했던 적이 있는데, 이젠 지금의 제가 그렇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홍상수 영화와는 하등 관계없는 삶을 살아왔지만, 얼마 전부터의 제 삶은 지나치게 단순하고 단정한(?) 그런데 이런 제 일상이 매력적이고 신비롭다고 말하는 치들의 일상은 또 어떻기에 싶은 생각이 들만큼요. 몰론 제 삶에 만족한다는 말은 아닙니다만, 지금의 제겐 결핍이나 결기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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