듀게에 글 쓴지 굉장히 오래되었군요.  


세월호 사태로 모든 분들이 슬픔과 분노에 젖어 있을 당시에는 아무 글도 쓰고 싶지 않았었고,  사실 이제 더이상 듀게의 주요 관심사는 저의 주요 관심사가 아닌 것처럼 보이게 된지 오래 되었지만, 오랫만에 dmajor7 님의 글을 읽고 나니 알게 모르게 자극을 받은 것 같습니다.


최근에 좀 좋은 일이 있었는데 (당연히 기분 상하는 일도 있었지만... 뭐 별로 대단한 건 아닙니다.  건강은 항상 그 모양이고요)  먼저 '제자' 와 '학생' 의 차이에 대해 두서없이 글을 쓰려 합니다.


전 우리 부모님, 특히 어머니의 인생에서 가장 부러웠던 것 중 하나... 어쩌면 가장 부러웠던 바로 그것... 이 부모님들께서 그분들의 '제자' 분들에게 받은 사랑과 존경의 양과 질이었습니다.  교수 생활을 하면서 항상 포기하지 않고 분발과 노력을 하도록 만드는 동기이면서, 다른 의미에서는 나는 과연두 분과 같이 제자들을 키워내고 그들의 절대적인 (내 입장에서 볼때는 거의 절대적이라고 밖에는 보이지 않는....어떻게 보자면 친 자식들인 나와 내 동생이보여주었던 그것보다도 훨씬 더 강렬한) 사랑과 존경을 받을 수 있을까 하는 회의를 가져다주게 만드는 요소였습니다.   


많은 수의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그들의 인생에 긍정적인 공헌을 한 것에 만족을 하면 되지 않느냐, 라고 수없이 자신에게 되뇌었지만 마음 한 구석에서는 여전히 부모님들의 능력과 인격에 대한 질투심 (^ ^흐흐... 이것이 가장 솔직한 표현이 되겠죠) 이 태양 내부의 온도처럼 몇만도에서 지글지글...  그렇게 온도가 높으면 "지글 지글" 이라는 소리가 날리도 없지만...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음 근데 사실 지난 1년동안 돌이켜 보니 저에게도 '제자' 들이 없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1) 제가 아니었다면 학문의 세계에 발을 디디지 않았을 분들,  2) 제가 구체적인 가르침과 끊임없는 조언을 통해 어느 정도까지는 "빚어냈" 다고 볼 수 있는 젊은 학자들, 3) 저와 단순히 학교 훈장질을 넘어서는 레벨에서의 인격적인 교류가 있으면서 가족관계를 넘어설 수 있는 정도의 신의와 존중이 상호 존재하는 그런 젊은이들, 4) 저보다 몇 레벨 더 앞선 훌륭한 학문적 성취를 이룰 능력과 의욕이 있고 그것을 위해서 마지막 남은 한방울까지 제 머리속의 아이디어를 빨아먹을 준비가 되어있는 (... ^ ^;;;) 분들, 그런 분들이 없는 게 아니더군요.   


물론 이 세가지 조건중에서 두가지 이상을 충족시키는 사람은  교수 경력 15년 동안 가르친 분들 다 따져서 현재 한사람 내지는 두사람 정도?  


그런데 전 이제는 이러한 관계를 그것도 성인이 된 다음에 발전시킨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확실히 알기 때문에, 숫자가 적다는 것 자체는 더이상 고민의 사유가 되지 않네요.   나카다이 타츠야 연기자께서 본인이 만든 액팅스쿨의 졸업자 중 "잘 된" 분이 20년동안 가르친 사람들 중 야쿠쇼 코오지 한 분이었다는 말씀을 하신 적 있는데 진짜 잘 되면 한사람이라해도 좋은 거죠. 


그래서 전 앞으로 은퇴할때까지 한 15년 내지 20년 더 교수생활을 할 예정입니다만 (그 사이에 건강이 나빠져서 죽거나 식물인간이 되지 않는 이상 ^ ^) 은퇴 전까지 세 명만 '제자' 를 길러내는 것을 목표로 삼기로 했습니다.  


예, 딱 세명이면 됩니다.   지금 있는 분 플러스 세명이거나 아니면 합쳐서 세명이거나.     솔직히 그 이상은 분에 넘치는 욕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일은... 아 교수 생활 15년만에 처음으로 학부 학생들이 공모하는 Excellence in Education 상의 Finalist 에 올라갔다는 겁니다.  유감스럽게도 본상을 받지는 못했지만,  인문-사회대학에서 세사람밖에 후보자가 없었는데 (당연히 동양인은 나 혼자;;;) 그 중 하나로 찡겨들어가는 행운을 맞이했네요. (본상 받은 여자분이 자기 강좌에서 노력한 걸 일별하니 후덜덜.... ;;;;; 내가 못받은 건 너무나 당연코) 이 상은 후보 선출부터 시상까지 백 퍼센트 학생들의 주도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더욱 얼떨떨합니다.   


이른바 "교수평가제" 에서 도출되는 저의 강좌 평가 평점 5점만점에 몇 점 이런 점수는 아마도 인문-사회대학 전체 평균보다는 높겠지만 5점만점에 4.95 뭐 이런 분들이 즐비한 우리 역사학과에서는 명함도 못내미는 "성적" 이었기때문에 더 놀라왔는데... 그래도 먹히는 학생들에는 먹혔구나 그것참 하고 새삼스럽게 고마운 생각이 듭니다.


음 뭔가 제 자랑만 하고 만 것 같아서 약간 죄송합니다.  이제 봄학기 텀페이퍼와 기말고사 채점도 끝나고 제일 지독했던 서평 쓰기도 끝났으니 회원리뷰 다시 속개하겠습니다...   이게 다 뭔 잡소리냐 하시는 분들께서는 밑의 괭이 짤방만 보시고 넘어가시길. ^ ^ 

 


FUNNY%20CAT%20SITTING%20POSTURE%20%206.1


자세가 아주.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5230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3790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2285
154 성에와 얼어붙은 꽃 사진들 [4] Q 2014.12.30 1281
153 밑에 정명훈 이야기 (또)보니 생각나는 게 [14] 멀고먼길 2014.12.22 2578
152 <깨진 거울과 비틀즈 이야기> - 서태지와 아이들과 비틀즈의 유사성 [1] catgotmy 2014.12.03 996
151 [잡담글] 미국에 귀국, 제주도의 아름다움, 대한항공 비행기안에서 본 영화들 기타 [3] Q 2014.09.12 2090
150 특수메이크업의 왕자 딕 스미스옹이 타계했습니다. [2] Q 2014.08.01 1655
» 최근에 있었던 좋은일, '제자' 와 '학생' 의 차이, 괭이 사진 [5] Q 2014.06.15 2771
148 우리 모두는 원숭이다. [6] 자본주의의돼지 2014.04.30 2963
147 코바토인지 토바코인지... [6] 샌드맨 2014.04.03 2253
146 [바낭] 들꽃영화상 후보작 상영회, 트위터에 대한 잡상, 거대 고양이 [6] Q 2014.03.22 2157
145 추억의 정몽준. "너한테 물어봤냐? 내가 지금?" [3] chobo 2014.02.25 3621
144 [약간 욕설주의] 김연아는 대한민국 어쩌구에 대한 짤방 하나. [15] 국사무쌍13면팅 2014.02.18 5957
143 R. I. P. Maximilian Schell [5] Q 2014.02.02 1659
142 신장개점 (....) 축하드립니다 아울러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4] Q 2014.01.24 950
141 기다리던 두 달이 20년 같았어요. [2] scherzo 2014.01.23 680
140 로버트 프랭크 영상 상영회 MoPS 2013.11.23 783
139 슬플때는 슬픈 노래를 들으시나요 신나는 노래를 들으시나요 (James Blake...) [8] Overgrown 2013.11.17 1456
138 [그래비티] 좋았습니다 (노 스포일러!) [7] Q 2013.10.07 2857
137 [이것저것] 미국에 귀국, [SVU] 새 시즌 유감, 바다 생물의 손자 [8] Q 2013.10.03 2591
136 [바낭] 피로와 차와 외로움과 [3] 에아렌딜 2013.09.28 2001
135 - [8] 언젠가 2013.08.28 1991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