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일러 없구요.



1. 고스트 오브 슈거랜드: 그는 어디에


 -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입니다. 보아하니 선댄스 영화제에서 상도 받은 모양이에요. 런닝타임이 21분 밖에 안 되는 짧은 작품이고 사실 그래서 봤습니다. ㅋㅋ

 잠깐 검색을 해 보니 슈거랜드는 텍사스 주의 도시로 인구 8만명이 채 안 되는 작은 동네입니다. 뒤늦게 슈거랜드 특급 생각이

 그런데 이 동네가 다양한 유색인종들이 많이 모여 사는 곳이고 그 중에 무슬림의 비중이 꽤 큰 모양이에요. 이 다큐멘터리는 가명 '마크'라는 젊은이의 친구들을 인터뷰하는 형식으로 이어지는데 이들은 모두 무슬림이며 마크는 친구들의 영향으로 무슬림이 된 아프리카계 미국인입니다. 그런데 그런 주제(?)에 이 친구는 어느 날 갑자기 비행기 타고 먼 나라로 떠나 isis에 가입해서 테러 활동에 참가했다는 혐의를 받게 되었고. 이 다큐에 등장하는 친구들은 그 '마크'의 성장 과정에 대해 이야기하며 그가 그렇게 되어 버린 이유를 추측합니다.



 - 뭐 사실 길게 얘기할 게 없는 작품입니다. 기본적으로 런닝 타임도 짧고 그 안에서 뭔가 쇼킹한 이야기가 튀어나오는 것도 아니에요. 형식적으로도 별다른 기교 없이 그저 인터뷰 대상들의 이야기를 차분하게 전달하는 데 주력하구요. 전부 다 보고 나면 미국의 '슈거랜드'라는 동네의 인종 문제에 대해 뭔가 좀 알게 되고 평범한 동네 청년이었던 '마크'가 테러리스트가 되어 버린 이유에 대해서도 대략은 짐작할 수 있게 되지만 그냥 거기까지입니다. 애초에 (제작 당시 기준으로는) 정답이 주어지지 않은 사건에 대한 작품이었다 보니 어느 정도 선 이상은 넘어갈 수 없는 한계가 있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어쨌거나 '마크' 친구들의 인터뷰에서는 진심이 엿보이고, 미국 내 무슬림들이 느끼는 사회적 분위기를 대략이라도 생생하게 전달받을 수 있구요. '마크'의 급격한 변화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정답인지 아닌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짐작할만한 설득력 있는 이야기를 전해줍니다.


 특별히 튀는 느낌이 아닐 뿐, 모자라거나 나쁜 작품이라는 생각은 안 들었어요. 괜찮았습니다. 게다가 어쨌거나 21분이니까(...)



2. 오, 라모나!


 - '안드레이'라는 찌질한 고등학생이 주인공입니다. 사실은 잘 생긴 배우가 촌스러운 머리와 안경, 옷차림으로 최선을 다해 미모를 숨긴채 섹스에 집착하지만 인기 없는 찌질남의 생활을 열심히 보여줘요. 근데... 그게 참 성공적입니다. 정말 찌질해 보여요. 동정과 연민의 여지 없이 그냥 찌질하고 불쾌한 놈이라는 느낌이 팍팍. 사실 제작진의 의도는 그게 아니었을 것 같지만 암튼 그렇구요.

 근데 이 찌질이는 '라모나'라는 학교에서 가장 예쁘고 섹시한 여학생을 짝사랑하는데, 인기가 많아서 언제나 자기가 원하는 남자로 자유롭게 갈아타며 즐기는 이 학생이 주인공에게 관심을 줄리가... 있었습니다! 그냥 어느 날 변덕으로 '경험 전혀 없는 남자애랑 한 번 해봐야겠어'라고 마음 먹은 거죠. 그래서 강제로 실현된 19금의 순간에 주인공 안드레이군은 "난 이런 걸 원하는 게 아녀! 나는 너와 영원히 사랑하는 관계가 되고 싶드아!!!" 같은 소릴 하다가 빡친 라모나에게 굴욕을 당합니다. 그래도 분위기 파악 못 하고 찌질거리다가 얼마 안 되는 친구 관계까지 꼬인 안드레이는 엄마와 함께 떠난 바닷가 여행에서 '아네모나'라는 또 다른 예쁘고 매력적인 여자를 만나는데, 본인의 찌질함은 여전하지만 이번엔 왠지 분위기가...



 - '아메리칸 파이'를 생각하면 되시겠습니다. 피 끓고 호르몬과 성욕이 폭발하는 (하지만 어리버리한) 남학생을 주인공이자 화자로 내세우는 섹스 코미디요. 근데 문제는... 작품의 분위기나 정서가 정말로 '아메리칸 파이' 그 시절 그대로에요. 진짜 무슨 제작진이 단체로 타임머신을 탔나 싶을 정도. '나 재치있지!?' 라며 등장하는 특수효과와 자막들을 동원한 드립들도 딱 그 시절에 '재기발랄하다'란 소리 듣던 그런 스타일이구요. 이야기의 나이브함도 그렇구요. 결정적으로 섹스와 사랑(...)을 소재로 다루는 사고 방식이 완전히 20세기 분위기입니다. 어떻게 이 시국(?)에 이런 영화를 만들 생각을 했나 싶을 정도. 처음 한 30분 정도는 "이게 지금 주인공을 비꼬려고 만든 영화야, 아님 진심으로 주인공이 순수하다고 주장하는 시대 착오 영화야?" 라는 게 궁금해서 꺼버리고 싶은 걸 참고 봤습니다. ㅋㅋ


 그래서 보다보면 괴상한 기분이 막 듭니다. 대략 20년전에, 시대도 지금과 전혀 다르고 저 자신의 사고 방식도 전혀 다르던 그 시절에는 재밌게 봤을만도 한 장면들이 지금 보니 너무 괴롭고 괴상하고 유치하며 불편하구나... 라는 걸 런닝타임 내내 체험시켜주거든요. 분명히 작가와 감독은 주인공을 성욕이 좀 넘쳐서 그렇지 악의 없고 오히려 순수한 청년으로 생각하며 그리고 있는 것 같은데 하는 짓들은 죄다 빌런이고(...) 웃으라고 등장하는 드립들 중 상당수가 여성 내지는 성적으로 안 매력적인 사람들에 대한 조롱과 비하 같은 거라서 불편하기 짝이 없구요.


 '아메리칸 파이' 이후로 시대가 얼마나 변했는지, 그리고 그 안에서 나의 사고 방식이 얼마나 변했는지 궁금하시면 한 번 이 영화를 틀어보세요. ㅋㅋ



- 그리고... 위에서 계속 언급한 '시대착오적 멘탈'과 관련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지만, 암튼 보통의 관객들이 쉽게 접할 일이 별로 없는 루마니아 영화입니다. 왠지 학생들 차림새나 등장인물들 이름이 좀 이상하다 싶었는데 다들 넘나 유창한 영어를 하길래 긴가민가 했거든요. 근데 검색을 해보니 국적이 루마니아네요.

 초반엔 주로 실내나 바닷가 장면으로 진행되다가 후반에 가면 길거리 풍경이 종종 나오는데 확실히 그쪽 동네 풍취가 풍기는 게 보기 좋았어요. 배우들도 다 잘 생기고 예쁘고 하니 여러모로 눈이 즐거운 편인 영화라는 건 분명합니다.



 - 그냥 결론을 내리자면 이렇습니다.

 사실은 이게 그렇게 종합적으로 형편 없는 영화는 아닙니다. 화면도 예쁘게 잘 찍었고 배우들도 괜찮고 위에서 잔뜩 씹어 놨지만 대체로 촌스러운 가운데에서 그럭저럭 먹히는 유머도 종종 있구요. 다만 기본적으로 영화 전반에 깔린 사고방식이 너무 시대착오적이라 당황스러웠던 거죠. 그러니 뭐 PC함 같은 거 관심 없으시고 그냥 '아메리칸 파이 같은 영화 오랜만에 또 보고 싶군'이라는 맘이 드는 분이시라면 시간죽이기 격으로 한 번 보실만도 해요. 하지만 PC함, 성욕 폭발중인 미성숙한 남성의 입장만 부각시키는 시선 같은 부분에 예민하신 분이라면 재생 버튼을 누르지 마세요. 넷플릭스에 다른 좋은 작품들도 많은데 굳이 사서 고통을 감내하실 필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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