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2년작이니 31년 되었군요. 런닝타임은 1시간 43분. 스포일러는 따로 적진 않습니다만 짤 중에 들어가 있습니다. 원치 않으면 피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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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아 이 어찌나 예술적인...)



 - 나름 사이키델릭(?)한 스타트를 끊습니다. 그러니까 연인 사이인 이승철과 나현희가 허름한 여관방에서 오골오골 근본 없이 로맨틱한 대화를 하다가 갑자기 문짝을 부수고 들이닥치는 조폭들에 의해 찢어지게 되는 과정을 각각의 입장에서 한 번씩 보여주며 시작하는데, 정말 그 허세 쩌는 로맨틱 대사와 배우들의 기가 막혀 어이가 사라지는 연기, 그리고 홈비디오 아닌가 싶게 찍어 놓은 어두컴컴 화질 덕택에 뭔가 되게 의미 심장한 환상을 보는 듯한 기분이. ㅋㅋㅋ


 암튼 그러다 송승환의 나레이션으로 갑자기 미주알 고주알 설정 요약을 하면서 시작합니다. 근데 그게 길어요. 송승환과 이승철은 배다른 형제구요. 송승환은 곱게 잘 자라서 프로 사진 작가로 한창 뜨는 중이고. 이승철은 아빠에게 쏘쿨하게 버림 받고 부산에서 험하게 자란 끝에 조폭이 되었다네요. 나중에 이승철의 존재를 알게 된 송승환이 찾아가서 인사를 건네고, 친형제보다 더 절친한 사이가 되었다든가 그렇구요. 근데 이승철은 자기 조직 보스의 여자 나현희랑 눈이 맞아서 어찌저찌 고생을 하다가 결국 조직 돈 500만원을 들고 여자와 도주를 했으나, 당연히 붙들려서 찢어지게 됐고 그게 도입부에 두 번을 보여준 그 상황입니다. 그 과정에서 나현희는 조폭들에게 칼침을 맞아 한쪽 뺨에 흉터가 생긴 채로 붙들려가 나이트 클럽 공연을 하며 살아가고. 간신히 500만원을 들고 도망친 이승철은 나현희를 찾아 헤매고... 대략 이 정도 상황에서 이제 요약 나레이션은 끝나고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됩니다만.

 문제는 대체 이 영화에 '본격적인 이야기'랄 게...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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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일 네시 십 일분이 되면 너는 나를 생각하게 될 것이야!!)



 - 다들 아시다시피 박찬욱의 감독 데뷔작입니다. 각본에도 직접 참여했구요. 이승철과 나현희에게도 데뷔작이죠. 그리고 그 셋 모두가 부정하고 싶어하는 모두의 흑역사입니다. 박찬욱이야 다들 아시다시피 뭐 그렇지만 나현희는 이것 한 편으로 영화를 끊었고 이승철은 이것 한 번으로 연기를 완전히 끊었죠.

 전부터 언제 한 번 보긴 해야지... 하다가 결국 이번에 봤는데요. 참 여러가지로 기대 이상입니다. 아니 정말 진심으로 이 정도의 영화(?)일 거라곤 상상을 못 했어요. 그렇지 않습니까? 나중에 결국 거장급으로 큰 감독이라고 하면 데뷔작이 아무리 구려도 최소한의 기대치 정도는 충족을 시키는 경우가 많잖아요. 최소한의 완성도라든가, 최소한의 재미라든가, 이도저도 아닐 경우엔 감독 스타일이라도 확실하게 드러난다든가. 근데 이 영화는 그 중 어느 것도 충족을 못 시킵니다. 한 마디로 요약하면 '그냥 엄청 못 만들어서 웃긴 영화'에요. 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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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얘기 하지 말랬지!!! 라는 듯한 이승철씨의 살벌한 표정.)



 - 뭐 그렇습니다. 엄청난 저예산으로 힘들 게 찍은 거 알죠. 이래라 저래라 제작자의 입김도 왜 없었겠습니까. 송승환을 제외하면 주연 배우 둘이 다 쌩초짜였던 것도 감안해야죠.

 이런 부분들 다 이해하고 봤습니다. 장면장면의 배경들이 이야기와 안 어울리게 넘나 험블한 90년대 아무 가정집인 것도, 어두운 장면 들어가면 조명도 제대로 못 비춰서 화질 깨지는 그림이 나오는 것도, 이승철이 '일요일 일요일 밤에' 꽁트 톤으로 비장한 장면을 소화하는 것도. 뭐 다 이해하면서 그냥 즐겁게 봤거든요.

 근데 아무리 봐도 이건 박찬욱이 스스로 원해서 넣은 거다! 싶은 부분들까지 앞서 얘기한 부분들 수준으로 허접하다는 게 문젭니다. ㅋㅋㅋ 도입부의 어설픈 왕가위, 아비정전 흉내는 그냥 보는 제가 감독과 함께 부끄러워질 뿐이고. 중간중간 들어가는 박찬욱st. 개그들도 이후에 본인이 보여준 것들 대비 정말 썰렁해요. 채플린 영화 보러 극장 가겠다는 주인공에게 조폭 아저씨가 "뭐? 찌푸린? 넌 왜 굳이 찌푸린 영화 같은 걸 보러 가냐? 우울하게" 라는 드립을 치는데 정말 소파에서 그대로 얼어 붙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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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일하게 멀쩡한 연기를 보여주는 송승환입니다만. 배다른 동생의 애인을 짝사랑하는 비극적 랑만 캐릭터... 를 소화하기엔 좀. ㅋㅋ)



 - 다만 이걸 아예 작정하고 깔깔 웃으며 보는 괴작! 으로 생각하고 본다면 꽤 괜찮은 작품이기도 합니다.


 일단 우리 승철씨. 정말 연기 더럽게 못합니다만, 박찬욱의 그 부끄러운 새벽 2시 or 내 안의 흑염룡 갬성은 어떻게 봐도 부끄러운 것이기 때문에 이승철의 그 발연기가 그 감성의 부끄러움을 200% 강화시켜 보여주는 게 오히려 적절한 것이 아니었나.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ㅋㅋㅋ

 웃기는 게 이 양반, 키스 장면은 잘 해요(...) 되게 자연스럽게 리얼하게 잘 하더군요. 그리고 아주아주 일상적인 장면들에선 그냥 그 시절 기준 귀공자st. 소리 들었던 뽀얀 얼굴이 나름 귀여워 보이기도 하구요. 게다가 애초에 후시 녹음으로 다른 사람이 대사를 더빙했기 때문에 대사 처리는 본인 책임은 아니고. 근데 뭔가 격렬한 것을 표현할 때, 특히 고통을 표현할 때 연기가 정말 대단합니다. 막판에 부상을 입고 비틀 절뚝거리며 공중 전화기로 달려가는 장면이 있거든요. 제가 살면서 본 고통 표현 중에 가장 괴이한 연기였다... 라고만 해두겠습니다. ㅋㅋㅋ


 그리고 송승환은 이 영화의 몇 안 되는 경력자 겸 나름 유명인으로서 가장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데. 문제는 이 영화의 아비정전 흉내 나레이션이 이 분에게 몰빵되어 있다는 겁니다. 이 나레이션들은 거의 9할이 고독한 활화산처럼 혼자서만 마구 격하게 터지는 감성으로 채워져 있어서 도무지 감당이 안 됩니다. 하긴 누구를 데려다 시켰어도 감당 못 했을 거에요. 그냥 감성 터지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라 그 결과물이 매우 처절하게 구리거든요.


 뭐... 구구절절 다 적긴 그러니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지적하자면, 이 영화의 민망함은 초짜 감독 박찬욱의 야심이 상당히 투명하게 드러나는데 그렇기 때문에 그 야심와 결과물의 괴리까지 실시간으로 선명하게 보인다는 데서 나옵니다. 중간에 이승철이 나현희를 데리고 무슨 빈 놀이 공원 같은 데 가서 겁나게 로맨틱한 대사를 마구마구 발사하는 장면이 있거든요. 여기를 바다라고 생각하라느니 어쩌고 저쩌고 하는 대사였는데. 대충 가난한 연인들의 애틋한 로맨스를 보여주는 장면으로 이것저것 레퍼런스도 떠오르고 그러는데, 그 와중에 제 눈에 보이는 건 10대 학생들에게 스마트폰 갖고 1주일 안에 5분짜리 이야기 하나 만들어 오라고 시켰을 때 보게될 것 같은 결과물입니다. ㅋㅋㅋ 아니 정말 안 웃을 수가 없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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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통!! 비극!!! 애절!!!!! 을 온몸으로 표현 중인 이승철씨. 그리고 이 장면을 보는 제 표정은 아마도 좌측 단역 분과 비슷했을 것...)



 - 그래도 설마 박찬욱인데! 건질 게 정말 하나도 없을 수가 있니? 라고 물으신다면. 뭐 그런 마음으로 영화를 째려본다면 없진 않습니다.

 일단 몇몇 장면에서 예쁜 벽지가 좀 보이구요(...) 위에서 말씀드렸듯이 자꾸만 툭툭 튀어나오는 썰렁 개그 같은 데서 박찬욱이 사랑하던 B급 감성을 느낄 수도 있겠죠.

 그리고 몇몇 장면들은 '의도대로 찍혔다면 괜찮았겠다'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막판 나현희의 패션쇼와 이승철의 상황이 교차 편집으로 전개되는 부분 같은 건 장면과 어울리는 정상적인 음악을 깔고 제대로 찍어서 제대로 붙였다면 평범하게 괜찮았을 거고. 이승철의 공중전화 씬 같은 것도 평범하게 정상적인 배우가 연기했다면 애절까진 아니어도 박찬욱이 노렸던 홍콩 영화들 장면 비슷한 느낌은 줄 수 있었겠죠. 

 하지만 이 영화를 그렇게 봐야할 이유는 '어쨌든 이게 그 박찬욱의 데뷔작이니까 뭐라도 건질 걸 찾아보자' 라는 것 밖에 없는데. 아무리 박찬욱이라고 해도 어쨌든 결과적으로 분명히 완벽하게 못 만든 영화에 굳이 그런 식으로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뭐가 있을까요. 전 그냥 웃고 넘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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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받아랏! 내 안의 흑염룡!!!!!!)



 - 결론적으로, '내 생전에 박찬욱 전집 콜렉션이 나올 일은 없을 것이다' 라는 박찬욱의 드립이 농담이 아닌 뼛속 깊이 진심에서 우러 나온 발언이라는 걸 확인할 수 있는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좋게 말하자면 박찬욱은 노력파, 성장형 감독이었던 것이구요. 이딴 물건(...)을 내놓은 사람에게 두 번이나 더 기회를 줘서 기어코 JSA를 뽑아내고 한국을 대표하는 거장으로 키워낸 충무로는 사실 따스함이 넘치는 사랑의 거리였던 거냐...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 훌륭한 작품이었습니다. 

 이 영화에서 정말 순수하게 좋은 점을 찾아본다면 그냥 나현희의 미모 밖에 없어요. 그 시절에도 예쁘다고 생각했지만 이제 와서 다시 보니 정말 미인일 뿐더러 2023년으로 샥 옮겨 놓고 활동을 시켜도 전혀 위화감이 없을 것 같은 현대적인 미인이시더군요. 연기도 그렇게까지 못하진 않습니다. ㅋㅋ 제가 원래 배우들 연기에 관대해서 그런 걸 수도 있지만 그냥 신인답게 무난하게 못해요. 물론 영화 내내 이 분과 함께하는 이승철의 압도적 연기력 때문에 상대 평가를 하게 되는 면은 있지만요.

 뭐 그렇습니다. 아주아주 즐거운(!) 100분이었구요. 한국의 영화 감독 지망생 여러분들, 힘들고 절망스러울 때마다 이 영화를 보세요. 희망이 솟아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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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쨌든 나현희는 예뻤습니다!)




 + 둘 중에 누가 나은 감독이라고 비교를 할 생각은 없습니다만. 이걸 보고 나니 데뷔작 기준으로 봉준호는 참 엄청났구나... 라는 생각이 어쩔 수 없이 들구요. ㅋㅋ



 ++ 나현희가 참 예쁜 가운데 보는 내내 손담비 데뷔 초 생각이 나더라구요. 그리고 나현희를 검색해보니 이 분이 한참 전에 슈가맨에 나오셔서 이미 '손담비 닮았다'는 커뮤니티 글과 인터넷 기사가 수백 개가 쏟아져나와 있군요. 아니 물론 손담비가 나현희를 닮은 거겠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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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미이쳐써~ 하는 노래를 시켜보고 싶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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