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20

2010.11.08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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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며칠 전 신촌을 비롯한 서울 서대문구 일대에 나붙은 홍보물을 보고 길 가던 사람들은 아연실색했다. G20 정상회의(이하 G20) 기간에 음식물쓰레기 배출을 자제해 달라는 서대문구청의 포스터는 즉각적이고도 강력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세계가 보고 있습니다" 라는 표어에 대해 시민들은 "그럼 밥도 먹지 말라고?" 라고 대꾸했다. 

한겨레가 특종으로 보도한 이 에피소드는 G20을 둘러싼 사회적 의견 불일치의 단적인 예시다. 국가적으로 중요한 행사라고 소리높여 홍보는 하고 있지만 정작 시민들은 왜 그것이 필요하고 불편을 감내해야 하는지 납득하지 못하고 있다. '민심(民心)이 천심(天心)'이라는 말이 있듯 지금처럼 당국과 시민들간에 목소리가 어긋나는 상황은 분명 바람직하지 못하다. 


2. 물론 G20이라는 것 자체가 나름대로 중요한 의의를 갖고 있음은 부정하기 힘들다. 특히 2010년 서울에서의 회합은 향후 국제정세의 판도를 세부적으로 조정하는 여러 사항들이 논의된다고 한다. 그 성과에 따라 국제관계의 청사진이 나올 수도 있기에 그 중량감이 더하다는 것이다. 어쩌면 강대국의 판도라는 것이 기존의 G7+러시아+중국이 되느냐, 혹은 G7+한국.인도.브라질 등 경제력이나 성장가능성 있는 고만고만한 나라들의 협의체가 되느냐, 이런 쪽으로 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줄곧 국제사회에 경제력 이상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싶어하는 대한민국의 정부로서는 호기를 맞은 셈이다. 특히 의장국으로서 어떻게 어젠다를 놓고 각국의 이해관계를 조율해보느냐는 이전의 한국 정부가 꿈꿔보지도 못한 기회다. 물론 꿈은 꿈으로 끝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게 '글로벌 호구'의 일장춘몽이건 진정한 천금의 기회건, 찬스 자체의 중요성에는 재론의 여지가 없다. 


3. 사실 현재 국민 입장에서 피부로 와닿는 가장 큰 문제는 정부의 홍보 전략에 관한 것들이다. G20이 중요하다 치자. 그렇다면 정작 왜 중요한지에 대해서는 구체적 사실의 설명이 대부분 누락되어 있다. 위에서 언급한, 대한민국 입장에서 본 국제사회의 이해타산 관계를 한 나라의 공식적 홍보 캠페인에 적나라하게 실을 수는 없다. 그래서 이미지 캠페인을 하는 것일 테지만 현 정부는 그러한 이미지 구축마저 실패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G20을 주관하고 홍보하는 대한민국 정부당국은 이 행사의 의의를 '국격(國格)의 상승'에 두고 있다. 실제로 소위 산업화 세대인 50대 이상의 연령층은 이러한 어젠다에 찬동하는 분위기다. KBS 9시뉴스를 45.7%의 지지율로 시청하는 이들 계층은 식민지 및 전쟁으로 인한 빈곤과 고도성장 과정까지 한 번에 고스란히 겪은 세대이다. 이들은 과거 국제뉴스에서나 들어 보았던 'G7'에 한국이 어깨를 견주는 것을 매우 자랑스러워하거나, 적어도 호의적으로 여기는 경향이 짙다.

말하자면 당국의 홍보는 이들 세대가 공유하는 정서에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G20이라는 행사는 '서밋(Summit)'에 초점을 둔 것이 아니라 마치 올림픽이나 엑스포와 같은 대대적인 관제 국제행사인 것처럼 포장된 채 홍보되고 있다. 그래서인지 당국의 이러한 홍보 전략은 G20이라는 브랜드를 국민들에게 널리 알리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그 행사의 내용은 잘 모르는 결과를 낳고 있는 것이다.


4. 오히려 상술한 '국격의 상승'이라는 슬로건은 현재의 사회주도 계층에게는 거의 역효과에 가깝다. 과거 20세기의 성장 주역이었던 구 기성세대에게는 효과적인 마케팅으로 기능하고 있겠지만, 현재의 대한민국 사회에서 주요 경제활동 계층을 이루는 것은 20대 중반~40대 중반의 세대이다. MBC 뉴스데스크를 61%로 높게 신뢰하는 이들 계층에게는 국격이 어쩌고 하는 두루뭉술한 이야기는 그저 근거없는, 그래서 받아들이기 힘든 선동구호일 뿐인 것이다.

산업화 이후의 세대는 이전 세대에 비해 경제적 궁핍을 비교적 덜 겪으며 자유스럽게 자라났다. 특히 87년 민주화로 상징되는 군부독재의 종식 및 권위주의의 해체를 눈으로 보며 자라난 세대이다. 이러한 거대담론의 패러다임 변화가 현 세대들에게 일정 이상의 영향을 끼쳤음은 부인할 수 없다. 즉 이들에게 거대한 권위를 내세우며 선동 구호에 발을 맞추라는 이야기는 반감만 일으키기에 딱 좋을 소재일 뿐이다. 정반합의 피드백에 익숙한 사회계층에게 소통의 부재는 독이다.


5. 서대문구청 건은 당국에서 부랴부랴 무마하며 해프닝으로 끝나긴 했지만 이러한 '소통 부재'의 상징적 사건임은 부정하기 힘들다. 20년 전 서울올림픽 당시와 비교해 보면 더욱 명확하다. 그 당시만 해도 경인가도 철거사건 같은 일이 버젓이 자행되고 있었지만, 이제는 시민들이 정책 집행에 있어서 구체적 배경 및 근거를 당당하게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 건에 있어서 일부 시민들이 '왜 개최장소도 아닌 서대문구가 이런 행정 정책을 내놓는가?'라고 비판한 점은 이러한 추세의 증명이라 할 수 있다. 이제는 대한민국도 민주주의 국가의 정부로서, 정부가 국민의 행동을 요청하기 위하여는 나름의 합리적이고도 구체적인 근거가 있음을 요청받고 있는 것이다.

G20을 성공적으로 개최한다고 했을 때 국가에 이익이 된다는 명제가 참이라면, 적어도 그 일이 개개의 구성원인 국민들에게 악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는 대전제가 수반되어야 한다. (세계화 및 반세계화에 관한 논의는 별론으로 쓸 문제이니 여기서는 생략한다.) 그러나 두루뭉술하고 관념적인 캠페인과 홍보전략은 민주주의 국가에 어울리지 않는 구시대적 행정이다. 국민에게 행동을 요구할 때에는 구체적이면서도 합리적 근거를 제시하면서, 행동을 강제하지 않고 협조를 부탁한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것이 21세기 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에 걸맞는 '국격'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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