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시절 일했던 직장 얘기.

2010.09.09 0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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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을 찍은 날짜는 아마 기억이 맞다면 2004년 2월 26일일 것이다. 2004년의 첫 기수였기 때문에 기억하고 있다.
여기서 나온, 인터넷 교육과정을 갓 수료한 어르신들 중에서는, 이로부터 두 달 정도 지나서 엑셀 필드 정도는 껌으로 메우고
함수까지 수식으로 쳐 넣으시는 분들이 많았다.)


내 옛날 프로필 중에는 '시민정보화교육 강사' 라는 게 있는데,

잊혀진 옛날 홈페이지를 뒤지다 말고 가끔 물어오는 사람들이 있다.

"도대체 정보화교육이 뭐하는 곳이오?"
"말 그대로 시민들에게 정보화, 즉 컴퓨터를 교육하는 곳이지요."
"니가 하는 강사는 뭐하는 것이랴오?"
"대학 새내기 컴퓨터 교양수업 때 조교들이 하는 일과 똑같지요."




- 그 단기 공공근로 시절 겪었던, 자주 일어나는 황당한 케이스 몇 가지.



Case 1. [컴퓨터 기초]

강사 : 자~ 저어기 바탕화면 파란색 모양 e를 더블클릭하세요-

학생 1 : 클릭이 뭐꼬?
학생 2 : 선생님! 안돼요!

....여기서 학생이라 함은 나이 예순 넘으신 지긋한 촌로.
가 보면, 십중팔구 마우스 쥐는 법이 잘못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흔히 감싸쥐는 그 모양이 아니다.

(이것은 어르신들의 쾌적한 인터넷 라이프에 매우 심각한 애로사항을 꽃피우게 한다.)

야구공 쥐듯 잡고 계신 분은 양반이고, 마우스가 무슨 논에 나락 베는 낫자루처럼 보이는 분도 있다.

사실 기성세대에 대한 컴퓨터 교육은 이런 법부터 차근차근 되어야 맞는 일일 터이다.

하지만 언제나 빡시게 진행되는 프로그램상 일대일 개인교습은 커녕, 진도 빼기도 벅차다.

2주 안에 컴퓨터 기초를 마스터해드려야 하니...

(어딜 가나 남의 돈 먹기는 힘들다. 특히 그게 관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이라면.)


- 제일 골치아프면서도 흔한 건, 클릭하는 방법이다.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서 마우스가 부서져라 칵칵 버튼을 누지르는 분들이 의외로 많은 것이다.

이런 경우 보통 더블클릭이 아닌 드래그가 되어버린다. 실행될 리가 없다.

어르신들에게 더블클릭의 그 미묘한 시간차는 의외로 가르쳐드리기 어렵다.

나중에는 미군 지포 라이터 하나 들고 다니면서 따닥, 하는 타이밍을 맞춰드렸다.


"할배요 여 고스돕 물때 흔들고 나서 따닥 안캅니꺼. 따닥. 이 타이밍 대로 한 번 해보이소."


....의외로 잘 먹힌다.


하지만 오른쪽 버튼을 두 번 누지르고 선생 안되오를 외치는 할배들이 쌔고 쌨다.[....]

이건 나도 답이 없다. 그 분들 몸에 익을 때까지 계속 수정, 수정, 반복, 반복이다. 아 진도 빼야 되는데.


Case 2. [인터넷 기초]

"어이! 미스터 박!"

내가 제일 자주 들었던 호칭이다. 나는 상관 없는데 이러면 다른 강사선생님들이 싫어한다.

특히 관영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분들 중 상당수는 수십 년 경력의 프로들이기 때문에 어중잽이 학원강사와는 질이 다르다.

공과대학 강의 나가시는 여자 부교수도 있었고, S대기업 연수원 같은 데를 주무대로 활동하는 분도 있었다.

(이런 분들이 왜 이쪽 프로그램에 참여하는가... 하면, 1.나라에는 돈이 많고, 2.확실하게 나온다. 그리고 3.정부와 연줄이 닿는다.)

어쨌거나 나름 프라이드가 상당하다. 수업 중에는 절대로 존칭을 바라며, 물론 그만큼 깍듯이 학생들을 대한다.

심지어 그 당시의 나 같은 뉴비들에게도 상호 존대를 깍듯이 했다.


어쨌거나 수업을 따라갈 수 있도록 화면을 빨리 진도까지 맞춰 주는 것도 일이기에

(ex: MBC 홈페이지를 못 들어가면 들어갈 수 있게 빨리 URL을 타자해 주는 것 등)

호출해서 다가가 보면

학생 : 박군(이젠 숫제 미스터에서 군으로 바뀌었다...)아, 이게 요리 됏는데 저리 했거든 근데 안 되네?
박군 : 저.. 그건 이래서 그렇거든요, 자 수업 따라가시구요 다른 분들 기다리시니까요.
학생 : 있어 봐라. 그리 했는데 요거는 또 어떻는데 또 안되거든....

딴 사람 수업 방해되고 진도는 진도대로 못 따라가서,

결국은 내가 한 시간 내도록 그 할배한테는 붙는 꼴이 된다.
그 양반은 계속 수업을 놓치니까 [....]

진도는 계속 늦는다.

이래 놓고 진도 다 못 빼면 다른 잘 하는 사람들이 당국에 민원을 낸다...... 아! 울고 싶다.




Case 3. [인터넷 기초]

강사 : 자~ 휠을 돌려서 화면 밑을 내려 보세요~ 메뉴가...
학생 : 잠깐만! 난 안되는데?

... 보면 마우스를 잡고 돌리긴 돌리는데 이 할머니는 천천히


모니터 위에 올려놓고 시계방향으로 정성스레 맷돌 갈듯.


돌리고 계신다.


[.....]

Case.1 에 연관된 에피소드고 사실 웃으면 안 되는데 (어차피 배우러 오신 분들 아닌가)

하지만 아... 현장에서 안 본 사람은 모른다, 그 광경. 강사 머릿속은 패닉이 된다.


대체 이 분, 컴퓨터 기초반 수료 안 시키고 인터넷반에 집어넣은 행정담당자 누구냐고.(.....)




Case 4. [한글워드프로세서]

학생 : 총각아(미스터 박, 박군, 학생을 넘어 이젠 총각이구나), 왜 계속 나는 글상자가 안 나오고 이렇게 나오지...?


..... 가 보니 이 분께서는 그리기마당 개체를 넣을 때 드래그를 안 하고 클릭을 해 놓고 계신다.

마우스를 누른 채 드래그가 아니라 그냥 한 번 누르고 손을 놓아 버리는 습관이다. (리모콘으로 착각하시는 듯하다.)

그렇게 되면 개체가 점처럼 작게 나와 있다.

글상자 개체는 노안인 생도의 눈에도 안 보이고, 심지어 아직 파릇파릇한 강사 눈에도 안 보인다. -_-;

(이런 경우 일단 조판 부호를 켜 놓고 보면 개채들이 다 빨간괄호로 보이니 알아서 조치는 가능하다.)


그래서 강사는 누누히 강조한다.

"자 전부 따라 하입시다~ 여짝에 개구리를 클릭 하구요, 넣기 클릭 하시구요,

십자 보이시죠? 그러면 그걸 화면에 놓고 드래그~ 드래그이십니다, 클릭 하시면 안 됩니다-"


..... 라고 수십번을 얘기 해도, 이런 분은 2주 후 수업과정 수료할 때까지 끝까지 안 된다. 흑흑.




Case 5. [플래시 MX]


조금 고급과정이기 때문에, 초보를 벗어나 애법 컴퓨터를 쓰시는 어르신들이 많다.


- 수업 시작 10분 전에 강사용 PC의 터치스크린(전자칠판)이 갑자기 고장나서 내가 점검하고 있었다.

(이런 경우 보통 메인보드 쇼트기 때문에 파워 빼고 방전시키면 응급처치는 된다. 중증이면 업체 기사 불러서 수리하러 보낸다.)



그런데 저 쪽에서 조영남처럼 다가오시는, 반백을 포마드로 빗어 넘긴 금테 안경 어르신이 가로되


학생 : 어이, 내가 고쳐 줄까?

박군 : [.....] (삐질)

... 저도 안 되는 걸 할아버님이 되세요? 라고 묻고 싶은 걸 참았다.-_-a 오해는 없으시길. 내가 싸가지가 없어서가 아니다.

그도 그런 것이, 이 할배는 참 나대고 잘난척하기 좋아한다. 들어보니 어디 교장까지 하다 오신 모양인데...

이런 분들이 솔직히 제일 난감하다. 아직도 자기가 교장인 줄 알고 계시니까...


학생 : 어이, 강사 양반, 내가 말이야, 아주 좋은 사이트를 찾았는데, 거 보니까 자주 가는 사이트들이 전부 일목요연하게 정리가 되어 있더라고!

얼마나 편리한지 몰라. 이거 수업시간에 좀 소개해 줬으면 좋겠어.


다른 강사 : 아 네...(삐질) 그런데 인터넷 수업 할 때 그런 좋은 정보는 저희가 나누어 드려요...


당연한 얘기지만 본 강사는, 수업시간에 '즐겨찾기해두면 좋은 사이트'를 소개하면서

그 사이트는 소개하지 않았다.  (네이버 같은 포털 개념은 아직 없던, '검색사이트'만 있던 시절이다.)

- 수업권 침해는 둘째 치고(.....), 그 10년을 대기업이랑 광역자치단체 컨설팅 교육을 해 온 분들이

그런 데를 모르겠는가? 커리큘럼 짜면서 안 집어넣은 건, 다 이유가 있다.


그리고 그 어르신은 좀 뿔이 난 모양이다.


학생 : (옥상 자판기에서 쉬던 사람들에게) 그 김XX란 참 싸가지가 없어요.

내가 교장을 몇십 년이나 해먹었는데, 나도 교육자고 지보다 나은 게 더 있단 말이야.

그런데 왜 좋은 걸 안 해줘? 이건 나 무시하는 거 아니냐고. 자자, 여러분, 여길 봐요. XXXX.COM이란 덴데...

(이하 생략)

다음날.

학생 2 : 선생님... 우리 피씨가 이상해요... ㅠ.ㅠ
다른 강사 : 네? 어떻게 이상하세요? (생글)


'올 것이 왔구나.'


학생 2 : 그 어제 X XX 할배가 가르쳐준 XXXX라는 싸이트 들어갔더니....

다른 강사 : 벗은 언니들 사진이 있는 팝업창이 막 뜨고 시작페이지가 고정되어서 안 바뀌죠? 하드디스크 읽는 속도도 굉장히 느려지구요.

학생 2 : 네에.... ㅜㅠ


강사 : 실은 말이에요. 저한테도 수업시간에 하라고 했었어요. 그런데 제가 ㅇㅇ그룹에서 전문으로 15년을 가르치던 사람인데, 그런 것 모르겠습니까?

그리고 그건 인터넷 수업과정에서 하는 것이지 파워포인트나 플래시 과정에서 하는 건 아니죠....



...... 아줌마들 뒷담화 까기 모드로 돌아간다. 대한민국 아줌마들 셋이 모이면 정말 무섭다.(.....)


학생 3 : 그 할아버지 말예요, 너무 예의도 없고... (중략) .... 그 사이트를 하라고 선생님에게 메일을 보냈다고 하더라구요?


강사 : 아, 안 그래도 그래서 그 할아버님께 답장을 드렸는데, 제가 십 오년동안 인터넷 수업 해 오면서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즐겨찾기 폴더를 그대로 복사해서 첨부파일로 넣어 보냈는데, 그 답장 얘기는 안 했나 보네요. (히죽)



박군 : [.... 아줌마들은 무서워.....]




Case 6. [컴퓨터 기초]

학생 : 총각 선생님, 나 왜 클릭이 안 될꼬?
박군 : 저, 클릭은요. 여기 마우스 화살표 포인터 꼭다리를 단추에 맞추고 누지르면 되세요.
학생 : 했다구. 이거 봐....

그 아주머니는 화살표의 쪼삣한(사투리로 해야 뭔가 삘이 난다.~_~)끝이 아니라, 아래쪽의 뭉툭한 끝을 맞추고 계셨다.

그러니 마우스 끝은 단추 밖으로 나가 버리는 상태.



Case 7. [컴퓨터 기초]

아줌마 : 아이 총각아, 그러지 말고 나 좀 등록시켜 줘....
직원 : 저기, 죄송합니다만 규정상 안되십니다.....
아줌마 : 그라지 말고, 응응? (가방에서 박카스를 꺼낸다)
직원 : 안돼요오오.
아줌마 : 아이 참, 계속 까먹어서 배워야 한다니까 우리같은 늙은쟁이들은...



....까먹으실 리가 없다. 이 분은 이미 - 아주머니, 님하는 홈페이지, 플래쉬, 엑셀 같은 중급과정 전부 수료하셨잖습니까악. 

어디 문화센타 같은 데 찾아가는 대신에 여기서 소일거리 하러 오시는 거잖아요.

생짜배기 컴퓨터 켜고 끄는 데서부터 시작하는 [컴퓨터 기초] 수업을 들어오시려고 기를 쓰시면 난감합니데이.


에이, 그냥 등록시켜 주면 안 돼? 라고 하실 분들에 대한 보충설명.

분명 관에서 운영하는 컴퓨터 교육은 공짜이고 시민들의 컴퓨터 활용 능력 향상에 공헌하는 (이라고 공문에 써 있다) 면이 있으나

시설은 무한정이 아니고, 기수별로 인원제한이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 이렇게 컴퓨터 잘 하는 분들은 정보가 빨라서

인터넷에 공고 뜨자마자 미리 신청해버린다. 그렇게 되면 조금 정보가 늦는 분들은 신규이면서도 계속 대기자로 밀리는 수가 있다.

특히 신규로 교육받는 분들은 인터넷 공고는 당연히 볼 리가 없으시고 (인터넷을 못하시니까), 대부분 지방MBC 지역소식이나

지역 신문 광고 등을 통해 신청을 하시는데, 그게 항상 언론사 마감시간 때문에 공고가 좀 미묘하게 며칠 늦게 뜨는 것이다.


그래서 한 번은 어떤 분이 당국에 민원 제기하는 바람에 기관 전체가 한번 뒤집어진 사건이 있었다. -_-

국장급부터 밑으로까지 전부 줄줄이 다 깨지고, 하여간 어느 조직이나 이런 건 똑같은 것 같다.


그래서

결국

모든 명부를

엑셀에다 집어넣고 액세스로 임포팅해서 MDB 데이터화.


이름을 딱 치면 몇번 수료한지 그대로 튀어나오게 했다. -_-)V


(*그래도 할 사람은 계속 땡깡 부리더라. 어떤 아줌마는 무슨무슨 시 의원 연줄까지 동원하기도 했다....

근데 그게 그럴 만큼 가치있던가? 물론 교육관할에서는 철저히 씹어드셨다. 뇌물수수 및 청탁에 걸립니다.)


Case 8. [액셀기초]

학생 : 학상(학생의 사투리. 박군을 지칭)은 어느 고등학교 나왔노?
박군 : M고 나왔습니다.
학생 : 학상은?
다른 뉴비 강사 : 1고 나왔습니다.
학생 : 니는 M고 몇기고?
박군 : 59긴데예.
학생 : 내가 15회거든. 저기 봉수 할배가 13회고....


학생 : 근데, 자네 아버지는 오데 나오싰는고?
박군 : .....M곤데예.
학생 : (눈을 빛낸다) 몇 회인데?
박군 : .... 29회예.

..... 제대로 잡혔다. 이놈의 지방도시 바닥은 이렇게 좁아서 파이다.-_-

(난 연합고사 뺑뺑이 세대라서 사실 별로 상관할 바도 못되는구만!)

물론 그 까마득한 선배 할배한테 얻어먹은 국수가 몇 그릇이고 자양강장제며 과자 상자가 몇 통이냐만.... 

그래도 이런 거 받아먹는다고 또 그 사람만 더 챙겨 주면, 다른 분들에게 차별이 일어나고. 참 어려운 문제.

(그렇다고 이미 구내식당에 시켜놨다는 국수 안 먹을 수도 없고 참..)


- 그래도, 이 할배가 아까 Case.2의 그 분이었는데, 내가 그만둘 때쯤에는

무려 한글의 메일머지 기능을 이용해서 동창회 명부를 새로 짜고 계셨다는 게

반전이라면 반전, 보람이라면 보람.




Case 9. [넌 선생도 못 알아보냐?]


서ㅇㅇ 선생님은 내가 서중 1학년 재학시절 담임이던 분이었다. 흔히 말하는 '할매 샘'이었는데 사실 할머니라고 하긴 그렇고

그냥 40대 후반의 흔히 볼 수 있는 아줌마 샘이었다. 단지 성격은 꽤 꼬장꼬장하셔서 아무리 놀고 싶어도 숙제는 빼먹을 수가 없었다.

학급간부라고, 걸리면 남보다 두 배로 당했으니까.(...) (*'당했다'라고 표현한 것에서 보듯 여선생님들의 체벌은 구타가 아니었다.

차라리 남자 샘이 몽둥이로 패는 게 낫지, 라고 다들 생각했다. 후덜덜. 근데 난 2학년때도 여자 선생님이 담임이었다.

특히 그녀는 여선생님 치고는 특이하게 기술, 공업과목 담당이었다. 그녀의 체벌 - 회음부를 손톱으로 꼬집기 - 이 아직도 기억난다.

(지금은 다들 기술가정으로 교과과정이 통합되었죠?))

그로부터 세월이 흘러 꼭 10년이 지나서 시민의 컴퓨터 능력 향상에 이바지-_- 하던 시절,

인터넷 수업의 새 기수를 받기 전에 교육생들의 서류를 정리하다가 문득 저 이름을 보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냥 예사로 넘겼다. 흔하다면 흔한 이름이니까 그냥 어, 이 이름 옛날 담임 샘하고 똑같네... 그렇게 여겼다.

그런데 막상 수업을 시작하고 보니 어디서 많이 보던 얼굴이 보이는 것이다. 맙소사. 저 분 '할매 샘' 아니가?! (....)


사실 아는 척하기는 좀 그랬다. 분명 비슷해보이는 얼굴이긴 한데 머리가 백발이고 눈가에 주름도 찌글찌글해서 다른 사람이 아닐까 싶었다.

그래서 모든 교육생들에게 하듯 으레히 안녕하세요 인사만 하고 수업을 진행하는데.... 실습 시간 중 그 분의 옆 사람 컴퓨터를 보아 주고 있는데....

'딱!' 하고 어디선가 들려오는 경쾌한 소리, 그리고 눈물이 핑돌 것 같은 정수리의 통증. =_=

"넌 선생님을 봤는데 그 정도로밖에 인사를 못하냐? 이노무 자식아."

아.... 우리 담임샘 맞구나. 후덜덜.

"슨생님 핵교는 우짜고 오셨습니꺼."
"정년퇴직했다, 이놈아."

아아, 세월이 벌써 그렇게 흘러버렸나.

난 이 샘이 울 모친이랑 호봉이 같이 가는 줄 알았는데. 그 때가 젊어 보이셨던 것이었나.



그로부터 몇 개월 뒤에는, 고등학교 때 은사였던 백 선생님을 보았다.

국어수업을 들어오시던 분이었는데 풍채도 당당하고 이목구비도 뚜렷한 분이어서 기억에 남아있는 선생님이었다.

(김희라 스타일? 아니 그보다 좀 더 잘생긴 듯도 하다.) 여튼 이 분도 컴퓨터 무료강습을 신청해서 받으러 오셨다.

좀 편찮으시다는 얘기를 학교 다닐 적에도 들었는데 아예 퇴직을 하신 모양이었다. 이번에는 내가 먼저 인사를 드렸다.

"안녕하십니꺼."
"어 그래, 니구나."

공립이라 여기저기 옮겨다니신 분이었지만, 선생님은 내 얼굴은 확실히 기억하고 계셨다.

우리 동네에서 몇 번 뵌 적 있기 때문에. 하지만 그 때는 내가 현역 고등학생인 시절이다.

그로부터 몇 년이 흐르고 선생님은 퇴직을 하시고 나는 서울로 유학(?)을 갔다 잠시 돌아온 때였다.

시간을 건너뛰어 오랜 훗날이 된 그 날에 옛 은사를 다시 보니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교육생 출결상황부에 사인을 하면서 선생님 입에서 나온 말은 조금 뜻밖이었다.

"거 참, 니가 여기 있는 줄 알았으면 내가 등록을 안 할 걸 그랬다."

지나가듯 말씀하신 것이라 예사로 넘겼던 말이었는데, 정말로 다음날부터 선생님은 교육에 나오지 않으셨다.

제자에게 가르침을 받는다는 것이 그의 교육자 인생의 자존심을 건드리기라도 했던 것일까, 아니면

이제 병으로 노쇠해져 가는 자신의 모습을 옛 제자에게는 보이고 싶지 않아서 그랬던 것일까. 지금도 석연치 않다.





Case 10. [오, 삶이여.]


그런 하루하루를 겪어가며 어르신들은 신세기의 정보화첨병(거창하다..)으로 거듭나고 있었다.

ABC를 모르던 할머니는 아예 컴퓨터과정과 함께 아래층 도서관쪽 영어회화 강좌에 등록해서 그 후로도 참 자주 뵈었다.

까막눈이던 분이 나중에는 최명희의 혼불을 다섯 권씩 대출해가는 것을 보았던 기억이 있다.

또 다른 아주머니(와 할머니 중간..)는 당뇨였다. 건강유지를 위해 매일 집에서 새벽같이 4Km를 걸어서 오셨다가

내가 출근하면 교육장 앞에 쭈그리고 앉아서 "작은 선생님(나는 이렇게 불렸다), 문좀 열어주요... 연습좀 하게..." 라고 하고 계셨다.


처음에는 운영원칙상의 오픈시간 9:25분을 칼같이 지켰지만 나중에는 그냥 열어드렸다.

그리고는 마치면 또 그 길을 걸어서 집에 가셨다.


한 1년쯤 뒤에 그 할머니가 쉬는시간에 뭐하시나 들여다보니 엑셀로 자기 가게 장부를 쓰고 있었다.



"경남 우리신문"이라는 타블로이드 지방지의 한 늙수그레한 중견기자는

업무시간을 쪼개 택시 타고 센터까지 찾아와서 인터넷을 열심히 배웠다.

그 해 겨울, 그는 마침내 한 불우이웃의 애절한 사연을 알리는 인터넷 기사로 특종을 냈다.

서울 강남구 인구의 1/3에 불과한 작은 도시에서 그 사연은 이내 사람들의 화제에 올랐고,

연말에는 신동엽의 러브하우스에 선정되어 서울MBC에서 내려와 취재해 갔다.


인터넷과 펜이 만난 힘은 정말로 무서웠다.



하지만 내가 정말로 삶에 충격을 느낀 것은, 어떤 교육생 부부에 관한 경험을 겪고 나서다.



처음에 그를 눈여겨 본 것은 잠시 자리를 비운 직원 대신에 사무실에서 접수를 받고 있을 때였다.

부부가 같이 접수하려고 했지만, 이번 교육 기수는 이미 접수가 끝났고 가(假)예약만 받는 상황이었다.


아주머니는 등록자의 주민번호 뒷자리를 1로 시작하는 번호로 남겼다. 그것은 남편의 이름이었다.

"죄송하지만 지금 남은 자리가 한 자리 뿐이라서.... 근데 아주머니께서는 이번 기수 말고

다음 기수 접수 나오면 바로 이름 올리셔서 따로 받는 방법도 있는데예."


"아이라예. 이 양반은 꼭 내가 있어야 되거든예."

무슨 사연이겠거니, 했지만 그냥 이럴 때는 캐묻지 않는 게 좋다. 그러려니 하는 게 사실 예의다.

"예에.... 그라면, 장담은 못해드리겠지만 예약취소자 나오면 제가 그 자리로 올려드릴께예."
"고맙십니더. 근데 컴퓨터 자리도 꼭 붙여서 빼 주이소."
"그거 자리 배정하는 거는 당일날 일찍 오시면 선착순대로 하니까.... 쪼매 일찍 오면 빨리 열어드릴께요."

다행히 취소자가 나와서 그 아주머니도 남편과 함께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교육이 시작되던 2주 후 월요일 아침에, 복도 끝 교육장의 둔중한 철문 앞에 서 계신 부부를 보고

나는 뭔가 가슴에 울리는 느낌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아저씨는 양 팔목이 없어 갈고리를 차고 있었고, 휠체어에 앉아 있었다. 4지 중 3지가 없는 상황.

그저 마누라가 밀어 주는 휠체어에 의지하여 살아가야 하는 사람이었다.

이 사람은 앞으로 2주간은 내 도움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할 것이었다.

배선 때문에 바닥이 10cm쯤 높게 되어 있는 교육장은 배리어-프리(barrior-free)가 되어 있지 않았고,

안으로 들어가려면 휠체어째로 들어야 했다. 그건 아마도 강사인 내 몫이 될 예정이었다.

나는 뭔지 모를 감정이 이것저것 뒤섞였다.

그 때도, 지금도 생각건대 그것은 나는 저사람보다 낫지 않느냐는 싸구려 안도감은 아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은 미안함이다.

남의 탓,환경 탓을 하며 빌어먹을 세상을 탓하던 데에 대한

괜스러운 미안한 감정부터 몰려들었다.

그리고 다른 하나의 감정은 감동이었다. 

그 감정들은 뒤섞여 착잡함과 용기를 동시에 안겨주었다.
지금 내 눈 앞에서 저 사람은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여

자신이 처한 거대한 운명의 흐름과 싸우려 하고 있는 것이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그는 어디선가 산업재해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고 했다.

금속노조의 뿌리가 확고한 창원공단에서는 매년 산업재해 피해자가 몇 명씩 나왔다.

그렇게 큰 사고를 당했으면 얼마나 큰 좌절을 겪었을까.

그러나 그는 그 좌절을 딛고 재기하고 있었다.


배우고야 무슨 일이든지 한다, 라던 시인 심훈의 외침은 죽은 지식에서 벗어나 내 눈 앞에서 현실로 다가왔다.

인간의 의지가 어디까지 승리할 수 있는가에 대한 것을 그는 내게 그 아침의 단 한 장면, 그 모습으로 증명했다.

교육이 끝나갈 때쯤 해서, 그 아저씨는 여전히 부인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자판을 칠 수 없었지만

오른발로 하는 마우스 클릭질은 거의 달인급으로 했다. 비록 그 자리에서 오후 수업 듣는 다른 할매 한 분이

"참 안되기는 했는데, 그래샀드라도 어데 드릅그로 발바닥을 갖고 마우스를 손대요?" 라고 민원이 들어와서

점심시간마다 매번 알콜과 걸레로 마우스를 세정해야 하긴 했지만....

그 분들은 그 후에도 한글 워드프로세서와 인터넷 중급자 과정을 수료했다.


내가 그 직장을 떠난 이후에는 더 이상 그 부부의 모습을 볼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아직도 어디선가 열심히 살아가고 있으리라 믿는다.


- 재작년에.

가족이 입원했던 병원에서 보험으로 반액을 공제한 후의 수술비 770만원을 결제하며

인간이 태어나서 왜 이렇게까지 아득바득 살아야 할까 하는 생각을 잠깐 했다.

아침 일찍 만원전철에 시달리던 풍경과, 미림여고 앞 수능시험장으로 내달리던 경찰 오토바이를 떠올렸다.


살아가야 하는 의미도 없이, 무엇을 누리기 위해, 무엇이 행복하기에, 이렇게 남을 밟고 모질게 남의 눈에 눈물 흘리며,

때로는 자기 눈에 눈물 맺히며 살아가야 하는 건지. 그 때만 하더라도 차라리 이꼴저꼴 보지 않고 죽어버렸으면,

아니 어디론가 사라졌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짙었다.


그 때 한남대교에 갔었다. 한참 동안 흘러가는 강물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문득 떠오른 것은 그 사람들이었다.


요즘도 가끔 그런다. 세상이 날 속일 때, 승질이 대폭발해서 울고 싶은데 울 수가 없을 때,

몇 년 전에 잠깐 스쳐지나간 인연이었던 그 부부의 모습을 같이 떠올리고는,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아니면 그 생각을 잊어버리거나 어딘가에 몇 문장으로 적어 배설해버리고는 잊어버리고 일상으로 복귀를 한다.


병원 로비에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더니 수납하는 아가씨가 별 미친놈 다 보겠소 하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저 씨익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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