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호해 전투[퍼시픽 시즌1]

2010.11.20 09:47

무비스타 조회 수:2555

어제 맥아더의 호주방어전에 이어  일본군의 해상전투의 전의를 꺽은 산호해 해전을 이해하지 않고는 앞으로 오키나와 본토까지 전장을 이해하실수가 없습니다. 물론 미드 퍼시픽에서 다룬 해병대 이야기와는 사뭇 다르지만 퍼시픽을 보면서 동시에 해상에서 벌어지는 미일 항공모함 전쟁이 전세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필수 숙지 사항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재미 배가를 위함이지만 더 깊이 태평양 전쟁사 빠지고 싶으신분들은 흥미롭게 읽어주기시 바랍니다.

 

 

전편에서 맥아더의 얼토당토 않는 호주의 브리즈번 선을 대신할 공격전략을 니미츠와 맥아더는 전격적으로 업무할당을 배정하고 보다 효과적인 뉴기니 공략 작전을 표방하게 됩니다. 이에 니미츠의 해상전에 대한 산호해 전략이 구상되어지고 전격적으로 일본 4함대와의 피튀기는 해상공중전을 펼치게 됩니다. 일본은 호주공격을 위해 라바울에서 연일 일본 공격기들이 폭격을 진행 중이었으며 뉴기니 포트모스비에서  발진한 연합군의 비행기들은 라바울에 대한 대응 폭격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미태평양 함대 사령관 니미츠는 일본이 호주공략의 발판으로 삼으려는 포트모스비에 대한 공격에 혈안이 되어있는 일본군의 저지를 위해,  항모 네척중 두 척을 산호해로 투입하게 됩니다. 당시 미 항모 엔터프라이즈와 호넷 는 둘리틀 일본본토 공격을 지원하고 있었습니다. 미 태평양 함대는 진주만 기습으로 약해진 상태로 일본의 뉴기니와 솔로몬군도 공격 준비를 감지하게 되며, 4월부터 일본함대의 라바울 집결을 확인하고 맥아더 역시 5월초 산호해를 거쳐 포트모스비 상륙을 예측하게 됩니다. 

 

 

>>플레쳐 제독과 미항모 요크타운. 산호해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나지만 한달뒤 미드웨이 해전에서  장열한 최후 를 맞습니다.
 

 

>> 영국 해군 소장 크레이스 함장과 호주 순양함 오스트랄리아
 

 

>> 피치 소장과 렉싱턴. 항모 렉싱턴은 산호해에서 수발의 폭탄과 어뢰로 최후를 맞게 되며 훗날 90년대 미국의 렉싱턴의 수중침몰지점을 확인 촬영하게 됩니다. 

 

4월16일 일본본토공격을 마치고 돌아오는 항모(엔터프라이즈,호넷)마저 태평양 배치를 하고 싶었으나 미함대사령부의 진주만과 태평양 다른 지역이 많이 노출됨에 4월 26일에 당시 니미츠는 해군 참모총장 킹 제독과 상의하여 플레쳐 소장의 요크타운과 피치소장의 렉싱턴 두 척의 항모를 산호해로 5월1일까지 항진하라고 명령을 내리게 됩니다. 엔터프라이즈와 호넷은 둘리틀폭격대의 B-25를 이륙시켜주고서 복귀 중이었지만 산호해 이동 명령을 받더라도 재보급을 하와이에서 받아서 출발해야 되기 때문에 많은 시간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지요. 

 

한편 일본의 정보국은 미국이 항모 1척 정도만 보낼거라 생각하고 자기들의 정규항모 2척과 경항모1척 총 3척이면 이길 수 있다고 예상하게 됩니다.

일본해군은 모르스비 상륙보다 6월 미드웨이 상륙작전에 비중을 두고 있었습니다.

 

>>>항공모함 세척을 포함 70여척의 함대를 지휘한 제4함대 사령관 이노우에 시게요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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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의 MO작전(포트모스비 상륙작전) 최종 규모는 항모3척, 중 순양함 6척, 경순양함 2척, 구축함 17척,  수송선 7척, 항공기 161대로서 호송함대와 기동함대 2개의 지휘자는 이노우에의 부하 다카기 다케오 중장으로서 상륙작전시 조우할 미 함대의 타격임무가 그에게 내려졌습니다.

>>> 기동부대의 주축 항모 상)쇼가쿠 중)즈이가쿠 하)소송선단 보호 임무를 가진 쇼호 여기서 기동선단은 임무는 => 앞으로 조우하게될 미항모를 깨부수는 역활 수송선단의 임무는 => 전투병을 싣고가는 수송선단을 보호하는 역활 이렇게 정리하면 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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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은 5월초까지 포트모스비 상륙을 완료하고 솔로몬 군도의 과달카날 앞에 섬, 툴라기도 상륙계획에 집어넣게 됩니다. 당시 툴라기에는 호주군 경비대가 방어가 있었지만 미미한 수준이었 읍니다. 일본기동부대의 항모 즈이가쿠, 쇼가쿠 는 하라 쥬이치 소장의 지휘아래 솔로몬으로 가서 미항모를 찾으라는 야마모토의 명령을 받고 트럭섬에서 발진하게 됩니다.(진주만 기습의 메인 일본항모 4척은 일본본토에서 대기 중이 었고 즈이가쿠,쇼가쿠는 6월초 미드웨이 작전에 참가예정이었음) 
 

>> 제4함대 사령관 이노우에 시게요시 휘하의 지휘관들... 좌) 쇼가쿠,즈이가쿠및 순양함과 구축함의 기동부대 사령관 다카기 다케오 중) 항모 쇼가쿠와 즈이가쿠를 지휘한 하라 쥬이치 우) 남해지대및 육전대(해병대를 생각하면 됨)를 싣은 수송선단의 사령관 고토 아리도모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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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송선단 보호함대에는 육군 남해지대는 6대의 수송선에, 육전대 는 5척의 수송선으로 지대장 호리 소장  지휘 아래 다른 수송선과 함께 5월4일 출발하게 됩니다. 이 수송선단의 보호 함대로 고토제독의 경항모  쇼호와 순양함 4척이 동시에 뒤따릅니다. MO작전의 최고사령관 이노우에 시게요시 중장은 5월 10일까지  이 작전을 끝낼 계획이었습니다. 일본군의 포트모스비 점령시 효과는 솔로몬군도, 뉴헤브리디즈, 뉴칼레도니아,피지, 사모아 점령작전에  용이하고 할뿐 아니라, 호주를 고립시키고 남태평양을 통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얻을수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항모 렉싱턴(피치소장), 요크타운(플레처 제독) 중 순양함7척(오스트레일리아, 시카고는 맥아더 휘하

 

>> 산호해 해전 작전그림 이 그림의 주안점은 수송선단의 라바울 출발과(육전단 모스비 목표) 기동함대의  미함대와의 조우 부분  그리고 고토제독의 라바울쪽으로 반전 후퇴를 요크타운 함재기들이 추격하여 집중공 격 하는 부분 등 텍스트를 숙지하시고 지도만 봐도 귀에서 조종사 교신과 비행기 엔진소리가 들리는듯합니다. 

 

영국해군 크레이스 소장 지휘) 경순양함 1척(호버트) 구축함 13척, 항공기 143대 규모로 대응하게 됩니다.

일본 기동부대는 트럭섬을 떠나 남진후 솔로몬 군도 동쪽을 돌아 5월1일 툴라기 섬에 상륙 하고, 함대는 5월5 일 뉴헤브리디즈 제도 동쪽에서 산호해로 들어오면서 일본함대를 찾기 시작합니다. 일본군은 5월5일 산호해로 진입하고 양측은 본격적인 산호해 해상전에 임하게됩니다.

 

5월6일 호주 동북부 초계 중이었던 호주군 정찰기가 고토제독의 호송함대와 상륙 선단을 발견하게 되고,  동시에 일본 정찰기도 산호해에 들어선 미항모 두 척을 발견하고 라바울에 보고를 합니다. 당시 이 보고에서 이노우에는 기습작전이라고 생각했습니다만, 항모 두척이라는 보고를 받고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사실 JN25 암호체계가 모두 노출이 되어 기습작전이 탄로가 다 났는데 말입니다. 5월7일 일본 정찰기는 미항모와 순양함 발견을 함대에 보고하고 즈이카쿠, 쇼가쿠의 97함상공격기 10대, 99식 함상폭격기36대의 함재기들은 일제히 공격을 개시합니다. 그러나 발견 침몰시킨 것은 미 함대 급유함과 구축함 심즈(Sims) 두 척이었고, 일본항공기 6대가 추락합니다.

 

오전 8시5분경 미군정찰기는 일본순양함, 구축함과 항공모함 2척을 보고합니다. 이에 플래쳐 제독은 함재기 93대를 이륙시킵니다. 그러나 그 보고는 오보로서 호주 타운즈빌에서 이륙한 다른 미군 정찰기가 처음 보고한 위치에서 63km떨어진 위치에 있는 항모의 위치를 재보고하게 됩니다. 그 항모는 수송선단 보호 임무를 맡고 있는 일 경항모 쇼호였습니다. 당시 플레쳐 소장의 함대가 일본정찰기에게 탐측될때 다카키 제독에게 무선이 접수되어야 하는데 무전기 고장으로 보고를 받지 못하고 근처 상륙함대를 이끌고 있는 고토 제독이 듣고 미 함대가 근처에 있음을 눈치 채게 됩니다. 그는 신속하게 상륙선단을 되돌아 라바울방향 북쪽으로 방향을 틀어 라바울에서 발진하여 도와줄수있는 자신의 아군 일본항공기 제공권 안으로 피해버립니다.

 

>> 요크타운 갑판에서 바라본 당시 공중전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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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정찰기로부터 보고를 받고 급 발진한 렉싱턴의 급강하 폭격기 돈틀리스와 요크타운의 뇌격기들은 11시경 돈틀리스 헤밀턴 비행대대장은 우이지아드 제도의 미시마 섬에서 동쪽 40Km 떨어진 곳에서 항모 쇼호를 포함 고토제독의 호송함대를 발견하게 됩니다. 아울트 중령이 이끈 렉싱턴 함재기들은 고도 5,000미터에서 쇼호 상공에 도착하자마자 급강하 공격을 감행합니다. 쇼호갑판에는 28대의 항공기가 발진 준비 중이었는데 돈틀리스의 폭탄에 비행갑판이 대파됩니다.  이어서 11시 반경 요크타운에서 날아온 디배스테이터(TED-1, Devastator)들은 어뢰를 발사합니다. 요크타운, 렉싱턴에서 벌 때같이 날아온 93대의 함재기함부터 폭탄 11발과 어뢰 7발을 맞고 기관실에 어뢰가 들어와 폭발까지 합니다. 미 함재기 공격 35분께 쇼호는 침몰하게 됩니다. 일본항모 1척이 격침되었다고 요크타운에 보고하자 요크타운과 렉싱턴의 함교에서는환성이 터져 나옵니다. 그에 비하면 미군의 피해는 3대 격추5월7일 오후 일본함재기들은 근처 미항모에 대한 정찰이 집중적으로 시작됩니다. 미항모 렉싱턴은 스콜(열대비바람)속에서 숨어버리고 일본함재기들은 저녁에 요크타운를 발견 일본항모인줄알고 착함을 시도하다가 요크타운 으로 부터 사격세래를 받기까지 하는 어이없는 일까지 속출합니다.

5월8일 양측은 정찰기부터 띄우고 서로의 위치를 먼저 찾기 위해 혈안이 됩니다. 함재기 미군 121대 일본 122대. 조종사와 어뢰 수준은 일본군이 우세한 상황.

다카하시 가쿠이치 소장의 즈이카쿠 항모에서는 제로기 9대, 99식폭격기 14대, 97식공격기 8대등 총 31대가, 쇼가쿠 항모에서는 제로기 9대, 99식 폭격기 19대, 97공격기 10대 총 38대로 두척의 항모에서 도합 69대가 발진하게 됩니다. 요크타운은 일본함재기 97함상공격기의 어뢰공격에 회피기동으로 잘 피하나 99함상 폭격기의 360kg 폭탄에 요크타운 관제탑 부근 비행갑판을 뚫고 폭발하는 바람에 66명이 전사하고 레이더가 고장이 나고 맙니다. 그러나 다행히 운항은 가능한 상태. 렉싱턴은 일본어뢰 11발 가운데 2발이 왼쪽 옆구리에 명중하게 되고 폭탄2발은 비행갑판에 명중하고 기관실이 침수 당합니다. 전날 일항모 쇼호가 침몰 때 쇼호 함재기들이 항모로 돌아와 착함할 배가 없어 바다에 모두 불시착한 것처럼 렉싱턴 함재기들도 모두 집을 잊고 바다에 불시착. 수장되고 맙니다. 벌떼 같은 일본함재기들의 공격으로 오른쪽으로 기운 렉싱턴은 불길이 잡히고 반대편에 바닷물을 집어넣어 수평을 유지하고 버팁니다. 어뢰에 연료탱크 파이프 파괴로 연료가스가 분출되는 등 렉싱턴 갑판밑상황은 아수라장 그 자체. 렉싱턴 함재기들이 돌아오듯이 일본함재기들도 공격이 모두 끝났다고 생각하는 순간~! 3만6천 톤 렉싱톤이 들릴 정도의 대폭발이 일어나게 됩니다. 후에 셔먼 대령은 어뢰가 명중된 걸로 알았다고 하는데 전기모터가 불타면서 유증기에 점화되어 내부연쇄폭발로 대폭발 하고 만것입니다. 화재 진압하면서 25노트 속력으로 이동하지만 마지막 큰 폭발로 함장은 퇴함명령을 내리게 됩니다. 침몰 후 2,951명 승무원 중 137명이 전사하고 85명은 부상자가 나왔으며 퇴함 3시간 뒤 미군은 펠프스의 어뢰 5발로 자침시키게 됩니다.

 

>> 렉싱톤의 상좌)갑판 피격  상우)렉싱턴의 퇴함  하좌) 렉싱턴의 1차폭발 하위)2차 대폭발

미국의 태평양 전쟁 시 최초의 항모가 침몰하는 순간인 셈입니다. 한편 렉싱턴의 침몰을 일본 조종사들은 사라토가로 잘못 보고까지 합니다. 
오전 9시50분~ 10시40분까지 쇼가쿠,즈이가쿠 일본의 두 척의 항모는 스콜 속으로 피신하게 됩니다. 이를 놓칠 수 없는 미 함재기들은 뇌격대 테일러 소령이 발견하고 접근 순간 항모 상공의 일 함재기 18대와 만나게 됩니다. 사실 일본은 미항모 2척을 정확히 찾아냈지만 미 함재기 84대는 절반만 두 척의 일항모를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당시 미함재기 편대 돈틀리스 46대, 디배스테이터 뇌격기 21대, 와일드캣 17대) 일항모 쇼가쿠는 뇌격기의 공격을 잘 피했으나 폭격기 폭탄 2발에 갑판에 명중하게 되고 100명이 전사하게 됩니다. 그리고 항공유 인화로 화염에 싸이게 되고 침몰은 되지 않습니다. 렉싱턴 공격대인 21대의 돈틀리스는 즈이가쿠에 내
리 꽂듯이 폭탄을 퍼붓는데 일본 제로기의 방어가 만만치가 않았습니다. 이때 일본 격추왕인 이와모도 데쓰조 편대의 공격으로 돈틀리스는 여러 대가 격추당하고 맙니다. 즈이가쿠는 어뢰의 회피기동으로 모두 피합니다.
플래처는 미,호주 순양함으로 반격을 위한 야간 공격계획을 취소하고 함대를 동남쪽으로 돌려 전투해역을 빠져 나가게 됩니다. 이에 일본 함재기들은 돌아와서 미군항모 2척을 격침했다는 보고를 하게 되고 다카기 중장은 승리라고 판단하게 됩니다. 반파된 쇼가쿠는 소속함재기를 즈이가쿠에 착륙시키고 이 두 척은 북쪽으로 달리며 산호해를 벗어납니다. 이노우에 제독은 워낙 많은 보고의 오류로 조종사들의 보고 자체를 의심하게 됩니다. 쇼호를 읺고 쇼가쿠가 대파된 상태에서는 미항모 기동부대 출현 시 위험하다고 판단, 5월8일 오후5시 포트모스비 상륙계획을 취소하고 수송선 14척에 승선하고 있는 상륙부대에 대해 라바울 귀환을 명령내립니다. 5월9일 오후 4시에 라바울 항구에 도착하게 됩니다. 한편 모트모스비에서는 호주방어군 들은 해안교전 보다 산속에서 전투를 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하고 후면 내륙 산속에서 이틀을 지켜 섰으나 일본군은 나타나지 않게 됩니다.

 

이렇게 최초의 항공모함 대해전이 끝이나고 쌍방간의 피해전적을 계산해보니 일본 : 경항모(1만천톤)1척, 구축함 1척, 소해정4척,정규항모1척 대파,항공기 77대,병사 1,074명 미국 : 정규항모(3만6천톤)구축함 1척, 급유함 1척, 항공기 66대, 병사 543명 해전자체는 일본의 승리였으나 MO작전 본래의 목적인 포트 모스비 상륙은 실패함으로서 미국은 자기들  승리라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역사학자들이 판단할 문제이겠지요?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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