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기억이 선명합니다. 


오랫동안 상영금지에 묶여있었던 지옥의 묵시록이 우리나라에 개봉한 해가 1988년이죠.


그 해 초여름 어느날. 후루룩군은 방과후에 혼자서 기대하던 지옥의 묵시록을 보러 갑니다. 


공책 한 켠에는 오려놓은 지옥의 묵시록 신문광고도 끼워있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 잠깐 눈을 감고 생각해보니, 그 때 극장은 들어가는 맛이 있었던 것 같아요. 


엠보싱이 있는 스펀지 방음 처리가 되어있는 묵직한 문을 열면 커텐이 있었죠. 


한쪽은 검고 반대쪽은 선명하게 붉은 커텐을 '촤아악' 걷으면서 들어가는 기분이 설레이면서 참 좋았던 것 같습니다. 


극장 특유의 눅눅한 먼지냄새가 묻어나는 공기도 그 때는 극장에 왔다는 기분이 실감나게 했죠. 


당시에는 지정좌석이 없으니, 자기 앉고 싶은 곳에 앉으면 되었습니다. 


가장 좋은 자리 정중앙에서 약간 뒷 쪽에 자리를 잡고서 앉아 주변을 둘러봤습니다.


몇 명 없이 데이트 커플들만 듬성듬성 앉아있네요. 제가 가장 어린 것 같습니다. 


습하고 더운 기운이 넘치는 영화였죠. 


커츠 대령(말론 블란도)이 구축한 세계관과 마지막에 말했던 공포에 대한 독백(Fear)에 대해서는 당시에는 전혀 이해 못했지만요.


상영시간이 세 시간이 조금 못될만큼 긴 영화인지라 밖에 나오니 상당히 어두워져서 급한 마음으로 서둘러 집으로 향했습니다. 


붉은 태양이 이글거리던 화면은 그 날 잠들 때까지도 눈 앞에 아른거렸어요. 




다음 날 




종례시간에 담임 선생님이 저를 부르더군요. 


앞으로 나와보래요.


"후루룩, 어제 뭐했어?"


"예?"


"아무것도 안했는데요."


"기억해봐." "....."

"어서 말해봐." 


저는 그냥 담임 선생님 얼굴을 봤습니다.


"진짜 모...르겠는데요. 뭘요?"


"진짜 몰라? 응?" 


"예?" 


"내가 어제 움직이다 너 어디 들어가는 것 봤는데, 너 어제 극장 갔어? 안갔어?" 


"예? 예..."


"무슨 영화 봤는데?"


"...." 


"지옥의 묵시록요."


"몇 대 맞을래?" 


"예?"


"...."


"말 안해?"


담임 선생님은 교탁위에서 저를 근엄하게 내려보십니다. 


잠시후에 아래있는 제 가슴을 발로 밀어찹니다. 


저는 앞자리에 있는 책상들을 밀면서 뒤로 넘어졌습니다.


"일어나!" 


"...." 


"내가 알아서 때릴까?"


"5대요..." 


"크게 말해 새끼야!"


"5대요!" 


"아니 선생님이 생각하기에는 열 대다. 열 대만 맞자."


담임 선생님은 나무로 만든 사재 분필통의 뚜껑을 스윽 밀어 빼냈습니다. 


모서리가 둥그렇고 매끄럽게 갈려있죠. 


그 양반이 왜 그 뚜껑을 체벌도구로 사용했는지 이해가 안됩니다. 


그 나무 모서리로 머리(박)를 꿀밤 때리듯이 이마를 돌아가며 '빡' 소리가 날 정도로 내려 찍습니다.(카스) 


예, 그래서 머리를 깐다고 하여 '박카스' 입니다. 학교에서 유명했죠. 


한 번 맞으면 주저앉으며 눈물이 핑 돌고, 두 대 맞으면 눈물이 주루룩 흘러내립니다. 


강한 무스크향이 나는 왼손으로 제 턱을 꽉 붙잡고 이마를 때립니다.


맞으면서도 그 냄새가 역하다는 생각이 스치더라고요. 


아프고 창피해서도 눈물이 났지만, 이유를 모르고 흘린 눈물이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3주 후 정도인가 기말고사 끝난 뒤, 학교에서는 "지옥의 묵시록"을 단체관람 했습니다. 


극장 앞까지 줄을 맞춰 움직이는 그 기분이 어땠을 것 같나요.


아마도 그 때의 담임 선생님은 제가 못된 길로 빠질까봐 바른 길로 인도하기 위하여 사랑의 박카스를 주셨을까요. 


그 사랑의 매를 마음으로 달게 받지 않아서, 지금 이렇게 컸을까요. 


인성 함량 미달의 선생들은 그 후로도 계속 만나게 되긴 합니다만, 


시간이 지나면 제 아버지(아버지도 교사) 이야기도 정리해서 들려드리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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