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듀나리뷰랄라랄라] 스플라이스

2010.06.25 18:58

DJUNA 조회 수:4111

엘사와 클라이브는 유전공학시대의 빅터 프랑켄슈타인입니다. 영화가 시작될 무렵, 그들은 여러 동물들의 유전자들을 결합해서 진저와 프레드라는 거대한 애벌레 같은 생명체를 만드는 데에 성공했어요. 이것만 제대로 이용해도 그들을 고용한 제약회사의 배를 불려줄 신물질들을 뽑아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 특히 엘사의 야심은 멈출 줄 몰라요. 두 사람은 여기에 인간 유전자를 결합해 새로운 생명체를 만들 계획을 세웁니다. 처음에는 그냥 될 수 있나 실험한 해보려다, 일단 아기가 태어나자 끝까지 가기로 결정하죠. 어차피 그들이 드렌이라고 이름을 붙인 생명체는 수명이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으니까요.


이들이 한 실험은 현실성이 있을까요? 별로요. 시치미 뚝 떼고 이야기를 밀어붙이고 있긴 하지만, 빈첸조 나탈리가 [스플라이스]를 위해 만들어낸 설정은 하드 SF보다는 전통적인 50년대 SF 괴물영화에 가깝습니다. 인간유전자를 조금 섞는다고 드렌과 같은 생명체가 당연히 태어나는 것도 아니고 드렌과 같은 생명체가 나올 정도라면 이미 태어나기도 전에 두 사람들이 알았을 걸요. 


그래도 드렌은 여전히 재미있는 생명체입니다. 지나치게 인간과 닮은 건 걸리지만, 어차피 하드 SF를 의도한 영화는 아닌 걸요. 드렌의 이야기는 오히려 가족 멜로드라마의 주인공에 가깝습니다. 기본적으로 형편없는 부모에게 학대당하는 어린 소녀요. 이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우리는 우리가 창조한 존재에 대해 책임을 질 수 있는가'라는 SF 주제와 연결됩니다만, 이런 이야기를 하기 위해 꼭 SF를 끌어들일 필요가 있습니까? "이 인간들아, 도대체 당신들은 왜 나를 낳았어!"라는 비명은 지금도 주변에서 얼마든지 들을 수 있는 걸요. 


[스플라이스]에서 SF는 새로운 주제를 창조한다기보다, 이미 존재하는 현실세계의 주제를 극한으로 밀어붙이는 기능을 합니다. 엘사, 클라이브, 드렌이 펼치는 배배 꼬인 근친상간적 삼각관계는 영화가 끝날 때까지 멈출 줄 모르며 계속 진화합니다. 막장의 극이에요. 우리나라 연속극 작가들이 아무리 용을 써도 나탈리가 이 영화에 심어놓은 막장드라마의 발끝도 따라가지 못합니다. SF의 힘이죠. R등급의 힘이기도 합니다만. 


[스플라이스]는 배우들의 비중이 특수효과나 액션보다 더 큰 영화입니다. 사라 폴리와 에이드리언 브로디라는 거물급 배우들이 이 영화에 참여했던 것도 그들이 이 영화를 통해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았기 때문이죠. 특수분장과 CG에 갇혀 있긴 하지만, 델핀 샤넥이 드렌 캐릭터를 통해 얻을 수 있었던 재미도 만만치 않습니다. 


스릴러로서 영화의 구조는 전통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반전과 복선을 예측하기도 비교적 쉬우며 이야기를 맺는 마지막 결말이 지나치게 진부하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그건 모두 일리가 있는 말들입니다. 하지만 그건 영화가 페어플레이를 하고 있으며 논리적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적어도 나탈리는 이미 쌓아놓은 이야기 밖에서 충격효과를 끌어내는 무리수는 두지 않으며 이 정직성은 칭찬받아야 합니다. 


기타등등

드렌의 마지막 모습은 별로 맘에 안 들더군요. 드라마의 맥을 끊습니다. 대사로 충분히 설명할 수 있는 설정을 충실하게 묘사하는 것보다 캐릭터의 일관성이 더 중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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