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정말 한나라당은 하늘이 내려 주신 당이 맞는 것 같습니다. 이제 이 징그러운 정당의 목을 칠 수 있게 됐나 싶을 때에도 

항상 치명상만큼은 비껴서 빠져나가곤 합니다. IMF 때도 그랬고, 탄핵 총선 때도 그랬고, 이번 지방선거도 그렇군요. 전면적인 

타격을 받기는 했지만 상징성이 높은 서울시장과 경기도지사 자리를 지켜내며 전열을 유지한 채 물러나는데 성공한

셈입니니다. 몇 년 뒤 한나라당은 돌아올 겁니다. 언제나 그랬듯이.



2. 심상정과 노회찬의 선택과 그 결과를 보니 만감이 교차합니다.


심상정은 단일화를 수용했지만, 단일후보 유시민은 패했습니다. 결국 심상정의 선택은 진보신당의 존재 가치를 지킨다는 명분에도 실패했고, 선거에서의

승리라는 정치공학적 시도에서도 실패했습니다. 그리고 경기도에서 득표한 진보신당의 정당득표는 겨우 2.4% 가량. 인터넷에서는

심상정의 사퇴를 고마워하며 도지사는 유시민, 정당투표는 진보신당을 해 주겠다는 글도 꽤나 보였지만, 실제로 서울에서 진보신당이

3.8%의 정당득표를 한 것과 비교하면, 경기도에서의 정당득표는 기대 이하입니다. "후보사퇴가 고마우니 대신 정당투표로 화답", 이런 딜이

실제로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외려 후보사퇴로 정당득표율까지 침식되어 버린 효과가 두드러집니다. 


선거에서 이겼다면 모를까, 져 버렸기 때문에 심상정의 후보사퇴로 진보신당이 얻은 것은 단 하나도 없게 되었습니다. 명분도 

실리도 잃었을 뿐 아니라, 심상정 자신의 정치생명마저 위태로워졌습니다. 후보사퇴가 당내의 충분한 협의를 거친  것이었다면 

책임을 분산시킬 여지라도 있지만, 이번 결정은 심상정 개인의 독단에 가까운 것이었기 때문에 타격이 더욱 큽니다. 어쩌면 우리는 이번 일로

정치인 심상정을 잃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원들의 신뢰를 잃은 리더가 앞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그에 비해 노회찬은 단일화를 거부한 결과, 14만 표(3.3%) 가량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서울시장에 당선된 오세훈과 한명숙의 표차는 

2만 5,000표(0.6%) 정도입니다. 한명숙 지지자들 뿐 아니라 진보신당 지지자들로서도 생각조차 하기 싫었던 최악의 사태가 발생한 셈이죠. 

그 논리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쏟아지는 선거 패배에 대한  책임론과 싸워야 할 판입니다. 그나마 노회찬에게 위안이 되는 것은

완주를 통해 당의 이름을 알리고 존재가치를 지킨다는 명분은 잃지 않았다는 점 정도입니다. 심상정과 달리 당의 구심점으로서의 노회찬의 입지는 

더욱 강화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눈에 직접적으로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정치공학상으로의 이득도 일정 부분 있습니다.

0.6%차의 뼈아픈 석패를 통해 '꼴랑 3% 정당일지라도 진보신당과 단일화를 안 하면 질 수도 있다'는 것이 확실하게 학습된 것이죠. 이는

차후 선거에서 단일화 등의 사안을 놓고 민주당과 협상을 할 때 진보신당이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자산이 될 것입니다.


이번 선거를 지켜보며, 판세가 어지럽고 명분과 실리 양자 택일의 선택지가 눈앞에 놓였을 때에는 우직하게 명분과 원칙을 선택하는 쪽이 

훨씬 안전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가 좋다면 더 말할 나위도 없고, 설사 실패로 나오더라도 본인의 자존감과 재기의 기반은 유지할 

수 있습니다. 반면 명분과 원칙을 버리고 실리를 택할 경우엔 결과가 좋다면 문제가 없지만 결과가 나쁠 시에는 그야말로 모든 것을 잃고

산산히 부서질 수가 있습니다.


3. 노회찬이 단일화하지 않은 것을 탓하시는 분들께 드리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만약 노회찬이 단일화에 응했음에도 한명숙이 졌을 경우,

노회찬과 진보신당이 입게 될 타격은 심상정의 예를 참고하시면 되겠습니다. 이 정도 리스크를 감수하며 진보신당이 단일화에 나설

이유가 있을까요. 선거 승리를 위하여 단일화가 필요하다면, '국민의 뜻'이나 '대의'를 운운하기에 앞서 진보신당이 그 정도 리스크를 감수할 수

있겠다고 여길만한 댓가부터 제시하는 게 옳을 것 같습니다.


4. 마지막으로 이번 선거가 내포하고 있는 불안 요소를 짚어 두어야 겠습니다. 민주당이 서울 대부분의 구에서 구청장을 배출하여 외견상으로

보면 완승인 것 같지만, 정당 지지율에서는 한나라당과 별 차이가 없었음을 무섭게 여겨야 합니다. 이 우세는 굉장히 불안한 우세입니다. 어떻게

보면 그냥 재수가 좋았다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기초단체장과 기초단체의회에서 다수를 차지한 이상 할 수 있는 최대한 한나라당의 폭주와 반칙을

견제할 수 있는 모든 장치들을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승리에 취해 무심히 세월을 보낸다면, 다음 선거에선 이번 승리 이상의 참담한 패배를 당할 수 있습니다. 

한나라당은 그 정도 저력이 있는 당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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