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친척의 죽음을 맞아

2015.05.12 16:38

칼리토 조회 수:2234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6월이면 구순이신데.. 며칠을 못참고 먼저 가셨네요. 


슬하에 3남 3녀를 두고 손자에 증손자까지 보셨습니다. 음식을 못넘긴다 하실때 아이들을 데리고 찾아뵌게 생전의 마지막 모습이었어요. 


일요일에 가셔서 오늘은 발인에 화장, 봉안까지 마쳤습니다. 연세도 많으신데다 아들 세대가 나이가 들다 보니 조문객들도 많지 않았고 오랫만에 보는 친척들간의 모임처럼 되어버렸네요. 우리끼리는 할머니 덕분에 이렇게 얼굴 본다 했습니다. 


돌아가셨다는 말에는 온곳으로 간다는 뜻이 있을겁니다. 그러니까.. 돌아가셨다고 하면 할머니가 오셨던 곳으로 가셨다는 뜻이겠지요. 


추모공원에는 참으로 전형적이지만 귀천이라는 시가 벽면에 커다랗게 적혀있습니다


歸 天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다른곳이라면 모를까 고인을 모시는 곳에 적힌 이 시의 위력은 대단하더군요. 할머니가 하늘로 돌아가 어린 소녀의 모습으로 해맑게 뛰노는 모습까지 떠올리고 말았습니다. 


특별히 고생하지 않고 가셔서 심정적으로는 호상입니다. 덕분에 분위기도 화기애애했구요. 화장하는 내내 오열에 통곡이 이어지던 다른 집과 너무 비교가 되서 민망했습니다. 죽음에도 등급이 있고 좋은 것 나쁜 것이야 있겠냐만 많이 슬프고 억울하지 않은 죽음이 제일 복받은 죽음이 아닌가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현대의 장례는 시스템화 되어 있어 편리하기도 하지만.. 죽음마저 공장에서 생산되는 매끈한 제품같습니다.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납골당에 모신 할머니의 유골을 보니 그런 생각이 더하네요. 


어린 시절 할머니가 주시던 밥을 먹으며 자란 시절이 있는 저이기에 지금의 저를 있게 한 분도 어쩌면 외할머니였습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그곳에 아름다운 꽃들이 만발하고.. 이 세상 소풍 재미있게 즐기고 왔노라며 발그레한 얼굴로 누군가에게 말하는 앳된 소녀같은 외할머니가 계셨으면 좋겠습니다. 


어쩌면 이 글이 외할머니의 임종을 맞아 제가 드릴 수 있는 가장 진솔한 추모일지도 모르겠네요. 그래서 그런가..아까도 아니 나오던 눈물이 흐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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