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운동 끝나고 밤에 머리를 감는 건 날씨가 추워지면 감기 들까봐 걱정이고, 다음날 아침이면 스타일 구겨지는 무척 불편한 습관입니다만, 땀에 전 채로 잠들지는 못하는 퍽이나 깔끔한 생활 습관에 물로만 헹궈낸 젖은 머리카락이 마르기만을 기다리면서 쓰는 몇.

 

1-1.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워 차마 다른 이들에게는 권장하지 못하면서, 동시에 달라진 생체리듬의 놀라운 변화에도 불구하고 후자의 상쾌함을 전도하기 보다 전자를 권면하거나 묵인하게 되는 것. 제겐 그것이 흡연입니다. 그리고 금연입니다. 혹자들은 말하죠. 끊는 게 아니라 영원히 참는 것이라고. 뭐라도 좋습니다. 그리고 저는 지금 끊든 참든 금연한 시간이 꽤 지났고, 과연 내가 그것을 그렇게 사랑했었나 싶을 만큼 제게 담배는 생경하고 낯선 기호품이 되었지요. 저는 좀 모진 데가 있어서 결단하는 순간 내 육체와 정신의 웬만한 영역은 다 정복하고 섭렵할 수 있다고 믿었어요. 아무렴, 저는 독한 여자니까요. 하여, 1*년 넘게 피워온(애초에 시작할 때 이것이 내 체질과는 맞지 않았지만 미련한 오기로) 담배 따위 금방이라도 끊을 수 있다고 생각했고 이번만큼은 아니지만 몇 번인가 금연을 시도했었어요. 그러나 흡연자 만고의 진리인, ‘딱 한 대만’ 의 마성 앞에 무너져 내리는 것은 순식간. 그리고 다시 반복, 반복. 제가 얼마나 담배를 사랑했고 즐겼는지를 쓰기 시작한다면 그것은 군필 남자들이 술자리에서 회자하곤 하는 군대축구 얘기만큼 장황하고 지루하고, 그렇지만 어느 순간 무릎을 탁 치며 공감할 수 있을 지도 몰라요. 저는 정말 나중에 담배로만 책 한권을 다 쓰고도 남을 만한 복잡하고 다양한 이야기들을 갖고 있어요.

 

그러나 저는 이 모든 얘기들을 과거형으로 만드는데 성공했어요, 현재는. 이렇게 되기까지 저는 스스로에게 동기부여를 하기 위해 무려 한국에서 공수한 금연 패치를 사용했고(그때가 귀국 몇 달을 앞두고 있는 상황) 그 우스꽝스럽고 심장이 터질 것 같이 미칠 뻔한 부작용에 대해서는 나중에 기회가 되면 한 번 써보기로 하고. 사실 이렇게 결심하고 결단하고 마지막으로 담배를 딱 한 모금 피웠던 것이 파리의 드골 공항이었어요. 악마의 유혹 같은 ‘딱 한 대만’이 아닌 그냥 ‘무상한 한 모금’ 의 호흡이 필요했거든요. 뭐랄까… 몇 년간의 외국생활을 잘 정리하고 돌아가는 데 대한 안도와 동시에 한국생활에 대한 긴장과 부담감 같은 것. 이미 금연을 하고 있던 중이어서 한 모금만 피워도 핑 돌아야 맞는 건데, 예상 밖으로 너무나 달콤하게 잘 빨렸어요. 그러나 저는 딱 두 모금만 빨아들이고 그대로 쓰레기통 모래 속에 그것을 처박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저는 시도하지 않았어요. 사실 금연 몇 년차나 되어야 운운할 자격이 될지는 모르겠는데, 저는 이만하면 됐다고 생각하거든요.

 

이후 저는 아침형 인간으로 거듭나고, 늘 만성피로에 찌들었던 몸의 리듬이 생생해지고, 잠을 더 깊고 달게 잘 수 있게 됐으며, 내가 피우면서도 그렇게나 혐오하던 담배냄새에서 자유롭고, 체취가 달라지고, 체력이 더 좋아지고, 얼굴 중에 그나마 볼 거라곤 고른 치아였던 것이 변색되는 사태도 중단되어 미백치료를 굳이 안 받아도 될 것 같고, 페브리즈 따위 필요 없어졌으며, 아침마다 출근길 지하철역의 108계단도 뛰어서 올라갑니다…만, 저는 측근의 지인들에게 금연을 권장하지 않습니다. 금단의 고통 때문에 섣불리 덤비지 못할까봐요? 아니요. 이 모든 기적 같은 변화에도 불구하고 담배만한 것이 없다는 것을 너무 잘 알기 때문이죠. 믿을 것은 오직 담배뿐입니다. 흐르는 시간을 붙잡고 즐기는 가장 손쉽고 가장 특별한 행위는 제겐 담배를 피우고 있을 때라는 것을 금연 이후에 너무나 절감하게 됐어요. 어느 순간, 지금 이 순간 딱 담배를 피워야 하는 찰나라는 것을 느낄 때 있어요. 스트레스 때문도 아니고 고민이나 친목 때문도 아닙니다. 그냥 순도 100%의 담배를 위한 시간을 기막히게 알고 있는 것이죠. 그런데도 다시 시작하지 않게 되는 이유는 그 고통스러운 결심을 다시 해야 하는 과정이 번거로워서도 아니고, 스스로에게 한 약속을 저버리는 나약함에 대한 실망감 때문도 아닙니다. 그전에 나름 헤비스모커로 살면서 담배를 피우는 이유가 이런저런 후까시를 잡으려고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이제 저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 제 자신이 더 섹시하고 간지가 난다고 생각하게 됐거든요. 후후. 웃기는 얘기 같지만 저에겐 이게 가장 중요합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주변 사람들에게 담배 끊으라는 말은 안 할 겁니다. 그들도 나처럼 섹시하고 간지가 날까봐 겁나서요? 아니요, 그래도 담배를 피우는 즐거움이 제가 기준점을 두는 간지폭풍보다 훨씬 더 흥미롭고 무엇보다 담배를 피우는 순간 만큼은 자기가 자기 자신과 가장 밀착하게 되는 순간이라는 걸 아니까요. 스스로 자기를 껴안아야 할 때, 담배만큼 긴팔원숭이가 되어주는 건 없어요, 결단코. 술은 언제까지나 담배의 하수일 뿐입니다.

 

2. 일주일에 고기를 몇 번이나 드시나요? 반찬으로 먹는 거 말고 주식삼아 먹는 생고기 말이죠. 저는 주로 주말에 몰아서 배가 터지도록 먹습니다. 그리고 주중에 간혹 약속이 생기면 그때도 배가 터지도록 먹습니다. 사실 날마다도 먹을 수 있어요. 저는 사람들에게 대놓고 말합니다. 육식주의자라고. 채식주의자들에 대한 편견이나 감정은 갖지 않지만, 고기를 먹을 때마나 생각해요. 이 맛있는 걸 왜!!! 반대로 그분들도 그렇게 생각할까요? 너무너무너무 고기가 먹고 싶은데 하필 그 때 마땅히 같이 먹을 고기메이트가 없으면 잠깐 동안 낭패라고 생각했다가 금방 추스립니다. 이미 저는 이십대 초반, 대낮의 고기집에 혼자 들어가 돼지갈비 삼인분을 해치운 전력이 있기에 괜찮거든요. 정육점에서 매의 눈을 하고 정확하게 저울을 확인한 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구워먹는 고기도 맛이 있고요. 그렇지만 고기는 마땅히 누군가와 마주앉아 구워야 더 맛있지요. 모름지기 식탁 위의 부르스타에 후라이팬이건, 식당의 솥뚜껑이건, 같이 고기를 굽는 시간은 너무 사랑스럽고 따뜻해요. 아마 저는 전생에 호랑이였을지도 몰라요. 과천동물원에서 봤던 호랑이를 떠올릴 때마다 마음이 짠하고 그리워요.

 

3. 언제고 이창동 감독님의 영화 ‘시’ 에 관한 글을 쓰고 싶어요. 그런데 너무 두려워서 엄두가 나지 않아요. 쓰려면 한 번 더 봐야할 것 같은데 다시 한 번 더 보려면 어찌해야 할까요? 이 분의 영화를 극장에서 돈을 내고 표를 사서 직접 봤던 것이 제겐 행복이었습니다.

 

4. 오늘, 아니 어제의 화제 ‘봄날은 간다’의 유지태와 이영애. 저는 누가 뭐래도 그 영화 속의 유지태가 제가 생각하는 이상향과 이상형에 가장 가까운 연인의 모습을 하고 있었어요. 저 무척 소박하지요? ㅎ ㅎ. 그 dvd를 얼마 전에 공수했는데 당최 느긋한 시간이 나질 않아 못보고 있어요. 지금도 여전히 그렇게 느낄지 어떨지는 영화를 다시 봐야 할 테지만, 별반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저는 참 소박하고 수더분한 사람이라서요. ㅎ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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