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피해 하지마셈~

2019.01.20 0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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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가 자신의 어떤 결정/행동을 두고, '몹시 창피하다'는 내용의 메일을 보내왔습니다. 어리둥절했으므로 사전에서 '창피'라는 단어를 찾아봤어요. (물고기에게 물이 그렇듯, 익숙한 단어일수록 가끔 뜻을 모르겠...)

한문으로 猖披라고 쓰고,
1. 체면 깎일 일을 당하여 부끄러움. (용례: 아랫사람에게 창피 당하다.)
2. 모양새가 사납다. (용례: 점잖은 자리에 창피스러운 옷차림.) 로 나와 있더군요.

저는 지금껏, 창백蒼白한 피부皮膚의 첫 자를 따서, 蒼皮 -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는 뜻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었어요. -_-
어쨌든 사전의 용례로 보건대 창피란 이런 정도의 감정인 모양입니다. 타인에게 큰 해악을 끼치지 않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는 자신의 이미지와 부합하지 않은 모습의 노출에 심리적 균형이 깨지는 것.
그런데 선배가 제게 창피함을 느껴야 하는 이유를 도무지 모르겠어요. 자신의 선택(정확하게는 침묵)에 대해 미학적 비평을 가하는 태도가 아닐까 짐작할 뿐입니다. 
그런데 창피함을 느끼는 마음이란 건 그 자체로 어딘지 예쁘지 않나요? 하지만 상심이 될 정도여서는 곤란하지 않을까 싶어요.

창피와 계통이 다른 감정 중에 '수치'라는 것도 있는데, 창피함이든 수치스러움이든 우리가 유념해야 할 게 있다고 생각해요.
뭐냐면 남들은 자신이 깨닫는 만큼의 실수를 다 보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이솝우화 한 편으로 그 설명이 가능해요.

- 모기 한 마리가 황소의 뿔에 내려 앉았다. 
오랫동안 앉아 있다가 옮기고 싶은 생각이 들자, 모기는 황소에게 물어보았다
"이제 내가 떠나도 괜찮을까?"
황소는 눈을 꿈벅이며 대답했다.
"난 네가 왔을 때도 눈치채지 못했단다. 네가 그냥 날아가도 나는 전혀 눈치채지 못할거야."

모기는 자신의 비중을 너무 과대평가했던 겁니다. 이처럼 우리도 자신의 수치/창피의 의미를 너무 크게 보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에요. 
지나치게 창피해 한다는 것은 시정되어야 할 일종의 불균형이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비평의 미덕이 궁극적으로는 작가의 영감을 자극하는 것에 있듯, 개인의 반성 또한 그렇지 않을까요.

솔직히, 언제나 바르고 한번도 실수하지 않았다는 자신을 문득 깨닫게 된다면, 그건 얼마나 섬뜩한 느낌이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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