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애드 아스트라'


돈이 아깝진 않은데 시간이 아까운 영화였습니다. 오리지널리티가 없습니다. '그라비티', '인터스텔라', '퍼스트맨'에서 조금씩 가져와서 브래드 피트를 입혔어요. '그라비티'는 어떤 영화였죠? 더이상 살아있을 이유가 없을 때, 왜 더 살려고 노력해야하는가에 대한 영화라고 샌드라 블록은 말했습니다. 딸은 죽었고 동료도 죽었고, 우주는 한없이 공허하죠. 나 하나 죽는다고 달라지지 않는 무정한 진공에서 왜 발버둥을 쳐야하죠? '인터스텔라'는 어떤 영화였나요. 스러져가는 문명 속에서 후세대를 위해 위험을 무릅쓰는 현 세대에 대한 이야기죠. 후세대인 딸과 현세대인 아버지는 시간의 벽을 뚫고 교감합니다. '퍼스트맨'은 어떤 영화였느냐 하면, 허접하기 이를 데 없는 당대의 기술을 모아 되는 대로 밀어붙여서 인류 능력의 한계를 시험하고 오는 이야기죠. 그럼 '애드 아스트라'는 어떤 이야기냐구요?


어중간합니다. 별을 지나갈 때는 '인터스텔라'의 비주얼을 조금씩 떠올리게 하고, 우주공간에서 허우적 거릴 때는 '그라비티'를 연상케합니다. 브래드 피트가 연기하는 로이 맥브라이드가 건조한 말투로 말할 때는 '퍼스트맨'에서 닐 암스트롱의 고독을 보여준 라이언 고슬링을 보는 것 같습니다. '애드 아스트라'가 전달하고 싶은 내용은 '우리 밖에 없다' '만족하라'예요. 아버지가 밖으로 나돌아다니며 외계인을 찾아다니는 동안 아들은 이만큼 컸고, 아버지를 구조하러 올 만큼 훈련을 받았고, 그러나 아버지는 큰 프로젝트, 큰 사상에 사로잡혀서 아들의 작은 생각에는 조금도 관심없죠. 실제로 아버지 클리포드 맥브라이드는 말합니다. 사실을 말하면 나는 너에게도, 네 엄마에게도 관심이 없고, 네 머릿속에 있는 작은 생각에도 관심이 없다. 내 집은 바로 여기다, 라구요. 


로이 맥브라이드 같이 재미없는 캐릭터에 촛점을 맞추는 것보다 차라리 클리포드 맥브라이드에게 시선을 줬으면 영화가 그나마 나아졌을 거다 싶네요. 뭐가 인간을 저 한계까지 밀어붙이는지? 내가 가진 걸 다 걸고라도, 혹은 그보다 더 한 걸 하더라도 경계선을 시험하고 싶은 인물은 어떤 인물인지? 하구요. (제가 들은 게 맞다면) 스물아홉에 아버지가 없어져서 상처입은 남자, 아버지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남자, 그래서 자기 주변의 여자도 사랑하지 못하는 남자. 도대체 이 캐릭터 어디에 매력이 있단 말이예요? 주인공 로이가 아버지를 만났을 때 하는 말도 그래요. 긴 말 필요없고 기절시켜서 데려오든지, 아니면 손주가 주렁주렁 있으니 그 손주들이 당신의 프로젝트를 완성시켜줄 거라고 거짓말 하든지. 늙은 아들이 더 늙은 아버지를 얼마나 교화할 수 있겠어요? 


2. '다운튼 애비'


그냥 드라마를 영화로 옮겨놓은 딱 그 수준입니다. 그래도 '애드 아스트라'보다는 재미있어요. 다운튼 애비에 조지 5세와 메리 왕비가 방문합니다. 다운튼의 하녀, 하인들 뿐 아니라, 온 마을 사람들이 들뜹니다. 식료품 점 주인은 "지금이 내 인생의 피크"라면서 자기가 공급한 식료품을 왕과 왕비가 먹는다는 걸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다운튼의 사용인들은 왕과 왕비를 수발할 기회를 잡기 위해서, 왕궁에서 온 사용인들을 방안에 가두고 가짜 전화를 걸어 런던에 보내기까지 합니다. 


이 영화를 보는 근대인들은, 20세기의 사람들이 왕과 왕비를 모시는 걸 저렇게 영광으로 생각하고 기뻐할 수 있느냐 싶겠죠. 하지만 저는 정치인 팬덤에 빠진 사람들이, 정치인 머리에서 후광을 봤다고 증언하는 것도 들었어요. 21세기의 정치인들에게도 후광을 보는 게 사람인데, 20세기의 영국인이 왕과 왕비를 면전에 둔다면 과연 황공해 하겠죠. 


아일랜드인들이 보면 기분 나빠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아일랜드인이면 기분 나빴을 거예요.


극장에서 꼭 볼 필요는 없었던 영화고, 스트리밍 서비스로 나올 때까지 기다려도 괜찮았을 영화지 싶네요. 시간은 안 아까웠는데 돈은 아까운 영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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