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상당히 충실하게 재구성한 이야기이다 보니 결말에 반전이니 뭐 그런 건 없고 거의 초반부터 어떻게 끝날지는 다 예측이 가능합니다만, 그래도 스포일러는 없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 이미 게시판에 두 분이나 추천글을 적어 주셨죠. 모두 저보다 훨씬 잘 소개해주는 글이니 안 읽어보신 분들은 한 번씩 읽어 보세요.

http://www.djuna.kr/xe/index.php?mid=board&page=2&document_srl=13633449

woxn3님의 추천글


http://www.djuna.kr/xe/board/13634295

바로 아래 있지만, McGuffin님의 추천글.



 - 번역 제목을 놓고 보면 뭔가 '기묘한 이야기'삘도 나고, 줄거리 설명을 봐도 '침입 흔적도, 유전자 흔적도 남겨 놓지 않고 사라진 성폭행범. 사실인가 환각인가!' 뭐 이런 느낌이라서 듀게에 올라왔던 woxn3님의 추천글을 읽기 전까진 미스테리 범죄 스릴러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ㅋㅋ

 원제 'unbelievable'이 드라마 내용과 관련해서 갖는 중의적 의미(주변에서 '믿을 수 없는' 사람 취급 당하는 주인공 마리의 사정. 그리고 사건 전개 과정의 '믿을 수 없는' 황당함들)를 생각하면 그냥 '믿을 수 없는' 정도로 번역하는 게 적절했을 거라 생각하지만 뭐 이 제목도 크게 나쁜 정도는 아니구요.



 - 1화는 '마리'라는 팔자 기구한 소녀의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이 소녀는 혼자 살던 집에 침입한 괴한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수사를 맡은 경찰들에게서 '성범죄 수사에서 하지 말아야할 일들'이라는 제목을 달아줘야할 것 같은 일련의 일들을 당합니다. 그리고 2화는 갑자기 장소와 시점, 등장 인물이 모두 바뀌어요. 역시 성폭행을 당한 젊은 여성이 등장하는데 이번엔 주인공이 피해자가 아닌 형사입니다. 그리고 '성범죄 피해자를 대하는 경찰의 태도 모범 사례' 같은 내용들을 차분히 보여주다가 1화와 2화의 성폭행 사건이 같은 범인에 의한 것 같다는 떡밥을 흘리며 마무리됩니다.

 3화부터는 이제 이야기가 둘로 나뉩니다. 하나는 '마리'가 겪게 되는 잔인한 수난사. 또 하나는 2화에 등장했던 여성 경찰 콤비의 범인 수사 드라마이고 이 둘은 결국 같은 사건에 대한 이야기지만 서로 마주치는 일이 없이 흘러가다가 거의 마지막에 (전체 8화로 구성된 드라마입니다) 가서야 하나의 이야기로 완성이 됩니다. 



 - 공익 드라마. 딱 이런 생각이 들게 하는 작품입니다. 특히 1화와 2화를 놓고 보면 그래요. 정말 이 부분은 경찰서나 학교에서 성범죄 관련해서 교육용으로 써도 될 법한 내용이거든요. 사실 정말로 그런 용도로 학생들에게 틀어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으나 이게 기본적으로 청불 등급인지라 참기로 했습니다. 제 밥줄은 소중하니까요(...)

 이어지는 내용도 마찬가집니다. 마리의 처절한 수난사는 계속해서 성범죄 피해자를 대하는 것에 대해 고민을 하게 만들고, 두 형사가 수사 과정에서 맞닥뜨리는 크고 작은 드라마들 역시 우리와 같은 세상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 성범죄 피해자들에 대해, 그리고 괴물 같은 범죄자들과 그들을 본의 아니게 돕고 있는 사회, 문화적 환경들에 대해 생각하게 합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러면서 상당히 구체적인 교훈들을 등장 인물들의 입을 통해 꽤 직설적으로 던져줘요. 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건 공익 드라마가 맞습니다. ㅋㅋ



 - 1화에서 마리 사건을 수사하는 형사들은 사실 '빌런' 같은 건 아닙니다. 특별히 유능하지는 않고 결정적으로 성범죄 수사에 대해 무지하다는 결점이 있지만 기본적으론 그냥 자기 일 열심히 하려는 선의를 갖고 있는 평범한 형사들이죠. 잠시 후 떨어지는 쓰잘데기 없는 제보(?) 하나를 지나치게 믿어 버리면서 정말 악당 같은 짓거리들을 저질러 버리기 전까진 분명히 그랬죠. 그래서 1화에서 가장 인상 깊은 부분은 형사들이 그렇게 '평범하면서 좀 무지한 상태로 열심히' 수사를 진행하는 와중에 마리가 상처를 받는 과정을 보여주는 부분이었습니다. 선의와 노력만 갖곤 안 돼, 성범죄 피해자는 다르게 다뤄야 한단 말이다!! 라는 교훈을 가장 잘 보여준 부분이었어요. 그리고 2화에서 이제 경험 많고 사려 깊은 형사를 등장시켜 올바른 수사 태도에 대해 수업(...)을 해 주죠.


 

 - 이렇게 적어 놓으면 의도 좋고 내용 좋은데 뻣뻣하고 재미 없는 드라마겠구나... 라고 생각하게될 것 같은데, 그렇지 않습니다. 

 1, 2화의 공익 드라마스러움은 부정하기 어렵지만 3화부터 일단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흘러가기 시작하면 그런 느낌은 거의 없습니다.

 

 먼저 '마리'의 수난기 파트는 참으로 바라보기 고통스럽지만 그만큼 응원하는 마음을 갖게 만들어주는 훌륭한 드라마에요. 주인공의 캐릭터를 특별히 미화하지도 않고 수난을 강조하기 위해 주변 사람들을 악마로 만들지 않으면서도 시청자가 주인공의 고통에 공감할 수 있도록 차분하게 전개하는 솜씨가 정말 훌륭하단 느낌이었구요.

 두 형사의 수사극 부분은 의외로 장르적인 재미가 단단하게 잘 잡혀 있어서 꾸준히 흥미를 갖고 몰입할 수 있었습니다. 이게 그러니까 전통적인 발품팔이 개고생 탐문 수사 + 약간은 탐정스러운 추리를 바탕으로 전개되는 과학 수사... 가 병행되면서 전개되는데 각각의 재미가 모두 잘 살아 있어서 놀랐습니다. 실낱 같은 단서를 하나하나 모아가면서 범인의 윤곽을 잡아내는 과정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해요.

 그리고 재미가 있으면 있는 거지 왜 놀라기까지 했냐면, 그러니까 이게 실화잖아요. 현실에서 실제 인물들이 정말 이렇게 수사를 해냈다는 게 놀라웠어요. 정말정말 출세 시켜줘야 마땅한 사람들 같다는 생각이 마구 샘솟더라구요.



 - 그리고 배우들. 정말정말 훌륭합니다.

 보니깐 모델이 된 실제 인물들의 외모까지 감안해서 두 형사 역할 배우들을 캐스팅한 것 같던데. 둘 다 너무나도 현실적인 느낌을 주면서도 또 참 개성있게 매력적이에요. 함께 활동할 때 화학 작용도 좋아서 막판엔 '저 둘이 위풍당당하게 폼 잡으며 슬로우 모션으로 걸어가는 장면 한 번 보고 싶네' 같은 뻘생각을 하는 와중에 정말 비슷한 장면이 한 번 나와서 웃어버렸구요.

 비극의 주인공 마리 역의 배우도 (저는 처음 보는 분이었는데) 정말 잘 합니다. 표정 변화가 별로 없고 진심을 대사로 잘 안 드러내는 무덤덤하면서 까칠한 캐릭터인데, 상황에 따른 미묘한 감정 변화 같은 걸 마치 그게 그거인 듯한 표정 몇 가지로도 되게 섬세하게 잘 표현하더라구요. 

 그 외의 조연급 역할들도 거의 다 연기가 좋습니다. 남편들도 좋고 FBI 아저씨도 좋고 몇 안 되는 귀염 개그 캐릭터들도 자기 역할을 잘 해줘서 그냥 다 좋았어요.


 

 - 암튼 제가 초반에 적어 놓은 이야기들 때문에 오해하지 말아주세요. 공익(?)스럽고 교훈적이지만 동시에 되게 재미있고 감동적인 드라마입니다.

 개인적으로 넷플릭스 오리지널 제작 컨텐츠들 중에 가장 감명 깊었던 게 '힐하우스의 유령' 이었는데 그에 비해 떨어질 게 없는 완성도의 수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두컴컴하고 부담스러운 이야기이지만 완성도가 워낙 좋아서, 그냥 한 번씩 시도해 보셔도 좋을 것 같아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추천할 수 있겠다는 느낌.



 ...그리고 이 아래 부터는 진실로 잉여스러운 여담들입니다.




 - 요즘의 트렌드를 격하게 따르는 여성 중심적인 드라마입니다. 소재만 그런 게 아니라 그냥 등장 인물들의 배치가 노골적이에요. 이 드라마의 남자들은 대략 세 부류로 정리할 수 있는데 1) 주인공들을 이해하고 도와주지만 사건에는 영향을 못 주는 선량한 남편들 2) 주인공들 말 잘 듣는 부하 3) 사건에 전혀 도움이 안 되는 민폐 형사 아니면 범죄자... 뭐 이런 식입니다. 그리고 머릿수를 따졌을때 3)의 비중이 압도적이고 좋은 역할들은 여자들이 다 하죠. 

 역할 분담이 너무나도 선명하고 그 의도가 노골적이기 때문에 가끔은 좀 난감한 기분이 들기도 했지만... 뭐 소재가 소재이기도 하고 또 실제 사건에서도 여성 형사들이 가장 중요하면서도 결정적인 역할들을 했었기 때문에 큰 왜곡도 아니고 문제될 것도 없죠. 그리고 아마도 그동안 수억편이 쏟아져 나왔을 남자들이 멋진 거 다 해먹고 여자들은 옆에서 박수 치고 뽀뽀만 해주는 드라마 & 영화들을 보면서 여성들이 느껴왔을 기분을 생각해 보면(...)


 에피소드 끝날 때 크레딧을 보고 알았는데 제작, 감독, 감독을 한 사람이 다 했는데 그 분도 당연한 듯이 여성이더군요. ㅋㅋ

 하긴 여성이니까 "저들은 왜 아무도 분노하지 않는 거야!!!?" 같은 인상적인 대사를 쓸 수 있었겠죠. 보신 분들은 다 기억하시겠지만 이 장면이 전 참 기억에 남거든요.



 - 생각보다도 실제 사건의 내용에 되게 충실합니다. 정주행을 끝낸 후 McGuffin님 글 속 링크를 통해 읽어봤는데, 8화 분량으로 압축해서 드라마틱한 이야기로 정리하려다 보니 결정적 역할들을 다 주인공들의 공으로 몰아준다든가, 피해자들의 역할이나 캐릭터에 픽션을 많이 넣는다든가 하는 식의 어쩔 수 없는 변형은 있지만 큰 흐름 면에서나 중요한 순간의 디테일 면에서나 대부분의 요소를 실제 사건에서 그대로 끌어오고 있어요. 특히 후반에 유력 용의자의 집에서 벌어지는 어떤 장면 같은 건 너무 드라마틱해서 당연히 허구일 줄 알았는데 실제 사건 그대로여서 당황했네요. 역시 허구를 현실을 이길 수가 없...


 다만 주인공격인 두 여형사는 처음부터 쭉 그냥 사이가 좋았다고. ㅋㅋㅋ



 - 실제 사건 내용을 정리한 글을 보니 마리의 인생을 시궁창으로 밀어 넣는 그 형사는 드라마에서 묘사된 모습이 실제보다 좀 순화된 버전인 것 같더군요(...) 근데 순화한 게 잘 한 일인 것 같아요. 그 형사가 애초부터 의욕도 없고 사건을 하찮게 보는 식으로 묘사가 되었다면 오히려 주제의식이 좀 약해졌을 것 같거든요. 나름 멀쩡하고 양심적이며 성실한 경찰이 조금의(?) 무지와 판단 미스로 이런 큰 일을 불러왔다... 라는 쪽이 더 강한 인상을 준 것 같아서요.


 근데 그 형사가 하는 짓들을 보면서 '아무리 그래도 미국은 성범죄 피해자 관련 매뉴얼이 잘 되어 있는 나라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현실에서 그 양반은 마약반 같은 일만 하다가 업무 바뀐지 얼마 안 된 사람이라서 당시에 이미 보급되어 있던 성범죄 대처 매뉴얼에 익숙치 않은 상태였다고 하네요. 게다가 그 동네가 인구 대비 경찰 수가 너무 적어서 늘 사건이 밀려 있고 경찰은 격무에 시달리는 상태였다고. 아무리 그래도 별 근거도 없는 제보(?) 하나에 휘둘려서 사람 인생 하나를 끝장낼뻔 한 죄는 용서 받을 수 없겠습니다만.



 - 중간에 드라마 C.S.I.가 한 번 언급되는데 좀 웃겼습니다. FBI 요원이 '요즘엔 그 드라마 때문에 개나 소나 현장에 dna 안 남기고 나쁜짓 하고 다닌다고!!' 라면서 구체적인 통계까지 인용하는데 확실히 그 드라마가 어마어마하긴 했구나 싶더라구요. ㅋㅋ 아... 근데 이게 웃을 일은 아니겠군요. orz



 - imdb에서 이 드라마의 제작, 연출, 각본을 맡은 분을 검색해보면 대표작들의 포스터 이미지가 뜨는데, 모두 다 강인한 여성이 단독 주인공으로 나오는 작품들입니다. 또 생각해보면 '에린 브로코비치'는 실존 인물에 대한 실제 사건을 극화했다는 점이서 이 드라마랑 비슷한 점이 있네요. 이런 일관성 쩌는 분 같으니. ㅋㅋ



 - 이젠 정말로 게임할 겁니다!!! 추석과 이 드라마 때문에 기어즈5가 중반에 멈춘 채로 장기 숙성 당하고 있어요. ㅠ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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