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좀더 나은 미래를 만들고 싶다고 늘 외친다. 그건 사실이 아니다. 미래는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는 무심한 공허다. 과거는 삶으로 가득 차 있다. 과거는 우리를 약 올리고 화나게 하고 모욕한다. 과거는 우리를 유혹한다. 과거를 부수고 다시 색칠하라고 요구한다. 사람들이 미래의 주인이 되고자 하는 유일한 이유는 과거를 바꾸기 위해서다."


“People are always shouting they want to create a better future. It's not true. The future is an apathetic void of no interest to anyone. The past is full of life, eager to irritate us, provoke and insult us, tempt us to destroy or repaint it. The only reason people want to be masters of the future is to change the past.”


밀란 쿤데라의 <잃어버린 편지> 중에서


1. 테드 창의 책 '숨'을 읽었습니다. 이 책의 첫번째 작품은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입니다. 바그다드의 상인 후와드 이븐 압바스에게는 가슴 아픈 과거가 있습니다. 그는 20년 전 카이로에서 아내와 크게 다툰 후, 아내에게 모진 말을 하고 집을 떠납니다. 아내는 며칠 후 모스크 벽에 깔려 죽습니다. 아내에게 사과 한 마디 하지 못하고 그는 20년 동안 죽은 듯 삽니다. 그런데 바그다드에서 어느 연금술사의 상점에 들어가보니, 연금술사의 문을 통해 과거로 여행할 수 있다지 않습니까. 하지만 이 연금술사는 바그다드에는 20년 전에는 이 연금술사 문이 없었고, 카이로까지 가야한다고 합니다. 20년 전으로 돌아가 운명을 바꾸고 싶은 압바스는 카이로로 황급히 달려갑니다. 그러나 그는 과거를 돌리지 못하고 아내의 죽음을 막지 못합니다. 하지만 아내가 죽을 때 같이 있었던 여자를 만나고, 아내의 진심을 듣죠. 그는 과거를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하고 평화를 찾습니다. 


2. 예전에 김동조 트레이더는 2017년 1월 26일 에스콰이어 지에 '빚을 져야 한국이 산다'는 글을 기고한 적이 있었는데, 글 대부분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다만 한 구절만이 눈에 띄었죠. "우리는 운명을 거슬러서라도 제자리에 돌려놓고 싶은 것이 있는가? 언제 사라질 지 몰라 가슴 졸이는 것이 있는가?"라는 마지막 부분이었습니다. "당신은"이 아니고 "우리는"이라는 질문이라면, 저는 많은 사람들이 2010년 5월 23일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을 거라고 생각했지요. 이 날 새벽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살로 생을 마감했지요.


만일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저는 그 죽음을 막을 수 있었을까요? 무엇을 했어야 했을까요? 어느 자리에 서 있어야 했을까요? 어떤 역할을 했어야 했을까요? 이런 생각을 여러 번 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결론을 내렸습니다. 내가 할 수 있었던 건 없었다고. 


왜냐하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아내인 권양숙 여사가 박연차씨에게서 13억원을 받은 건 문재인 전 민정수석이 인정한 사실이고, 그건 저라는 별개의 인간이 시정할 수 있는 잘못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노무현에게는 노무현의 문제가, 제게는 제 문제가 있고, 제가 노무현을 책임질 수는 없는 일입니다. 허버트 사이먼은 우리의 합리성(rationality)은 기억에 의존한다고 합니다. 우리가 무엇을 선택적으로 기억하는가가 우리의 합리성을 제한한다고 설명하지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과 관련해서 사람들은 억울한 죽음이었다고 하고, 타살된 거라고도 하고, 혹자는 진짜 유언장이 따로 있다고도 합니다. 고통으로 인해 기억을 바꾸고 싶은 거지요. 사람들은 자기들이 던진 모진 말, 그리고 조중동의 끈질긴 기사들을 기억하고, 어떤 팩트가 드러났고 누가 그 사실을 인정했는가는 기억하려고 하질 않습니다. 자살이 노무현의 마지막 선택이었음도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지요. 과거를 직시하지 않으면 미래를 소유할 수 없습니다. 


이번 조국 법무부 장관 가족 검찰 수사와 관련하여, 노무현 대통령 돌아가시기 직전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더군요. 그래서 감정이 격해진 분들이 많더군요. 천정배 전 법무부 장관은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수사와 조국 수사가 다르다고 선을 그으면서, 많은 분들이 아픈 기억으로 가지고 있는 사건이라고 설명합니다. 사람들은 예전의 사건으로 현재 사건을 설명하고 싶어하지만, 그건 게으른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저는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에서 대한민국 시민이 배워야하는 게 있다면, 한 명 한 명이 댓글을 더 열심히 많이 달고, 한 명 한 명이 더 열심히 상대를 모욕해야한다는 건 아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노무현 때 그러하지 못했으니, 민주당은 더 준비된 자세로 정권을 잡아야 한다, 경제에 대해서도 더 배우고 권력을 쓰는 방법에 대해서도 더 배워야한다, 였다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지금 문재인 대통령이 권력을 쓰는 방식은 권력을 잃는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노무현의 죽음은 노무현 지지자들의 잘못이 아닙니다. 그리고 조국 장관, 혹은 장관 가족의 비리가 밝혀진다 하더라도 그건 지지자들의 도움이 부족해서는 아닌 것입니다. 캔자스 대학 김창환 교수가 오늘 포스팅에서 경고했다시피 '결과의 직접적 책임이 대통령에게 향한다는 면에서 현재의 정국은 집권 여당에게 매우 위험한 상황'이란 걸 인식해야 합니다. 김경율 회계사가 참여연대의 살 길을 열어주려고 하고, 천정배 전 의원이 민주당의 살 길을 열어주려고 하고, 윤석열 총장이 문재인 대통령의 살 길을 열어주려고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3. 그건 당신 잘못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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