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뚜라미 볶아 먹고, 꼬챙이를 하나 들어 천하(aka 논두렁)를 호령하던 어린시절에는 저 멀리 기차가 굽이굽이 멀어져가는 선로의 소실점이 세계의 끝이었습니다. 그래도 그 작은 세계가 저에게는 너무나도 큰 우주였어요. 봄에는 진달래 따러 산골로 가는 누나들, 여름이면 개울에서 이불을 빨던 엄마, 겨울 밤에 휘휘 돌아가던 불타는 깡통들과 높이 타오르던 달집. 등에 짊어진 책임은 한 없이 가볍고, 알콜과 카페인 따위가 침범할 일 없어 한 없이 맑았던 아침. 그때 우리는 매일 미야자키 하야오의 세상에서 눈 뜨고 잠들었어요.

그 완벽한 에덴에 살면서도 생겨먹기를 인간이라 아빠가 군복 챙겨입고 새벽마다 어둠을 헤치며 사라져가는 기찻길의 소실점 너머에 있다는 세계를 저는 가슴 두근거리며 동경했더랬어요. 그래도 워낙 심플한 두뇌를 가지고 있어서인지 귀뚜라미 볶아먹을 생각에 가을을 기다리는 생활에 불만을 품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사람은 먹어본 음식만큼 세계를 이해한다고 생각하는데, 그 시절 저의 작은 행성은 그래도 멀리 북간도까지는 이어져있었습니다. 동네 점빵에서 만두를 쪄서 하나에 백원에 팔았거든요. 백동화 한 닢에 그래도 백석의 고향을 보았던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부락의 아이들 사이에서 가슴 두근거리는 소문이 돌기 시작합니다. 서낭당 지나 새로 들어 선, 괴상하게 생긴 안테나가 달린 교회라는 곳에 출석을 하여 한두 시간 시키는대로 하기만 하면 자장면이란 탐스러운 국수를 먹여주는데, 그 맛이 과연 점빵의 모든 과자를 다 합친 것보다 몇 곱절 더 거룩하다는 것이었어요.

이미 신문물을 경험한 아이들은 자장면이라는 단어에 우쭐하여 마치 오리온 성단의 바다를 보고 오기라도 한듯 우쭐댔지만, 국수라곤 신김치를 송송 썰어 넣은 맥 없는 맛의 잔치국수가 전부인 아이들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뭐? 만두보다 맛있다고?

돌아오는 일요일. 교회에 가겠다는 말에 저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엄마는, 어서 자장면을 향해 돌격앞으로 하고싶은 저를 붙잡아 앉히곤 빗에 물을 발라 머리를 2:8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소매가 반질해진 잠바를 벗겼다가 입혔다가 안절부절 못 하시던 엄마는 말 했습니다. 예배당에 가려면 말쑥하게 입어야 하는디... 엄마도 알고 있었던 것이지요. 자장면의 거룩함을.

그리고 시간이 흘러 저는 스물 한 살의 군인이 되어있었습니다. 제 앞에는 탐스러운 초코파이 두 개가 놓여있고, 사문난적 펩시 따위가 아닌 탄산 위한 일편단심 코카콜라가 놓여 있는 것입니다. 아아, 저 설탕이 이룩하는 분분한 축복을 위해 인류는 대항해시대와 동서로 나뉜 사상투쟁의 고난의 행군을 해온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그 옛날 설탕물 한 모금이 마시고 싶다는 아픈신 어머니의 소원을 끝내 들어드리지 못 해, 제삿상에 마침내 류쿠로부터 공수해 온 설탕을 올리고 아이처럼 뒹굴며 울었다는 큰아들 문종 대왕의 슬픔을, 가벼이 먹고 마시면서도 그러고도 서로 사랑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이 아니 개탄을... 아무튼,

초코파이가 놓인 종이 접이 옆에는 각각 종이 한 장씩이 놓여있더랬습니다. 그곳은 기불천 삼교가 신도수 확보라는 양보할 수 없는 전쟁을 국군 창설 이래 이어오고 있는 총성 없는 전쟁터. 불당이 스크린으로 축구를 보여주는 꼼수를 쓰고, 교회가 맥도널드라는 치트키를 쓰는 혈투의 와중에, 성당은 고작 교회 가면 그냥 뿌리는 기본템 초코파이를 입교의 보상으로 내어준 것입니다.

그때, 허여멀건 병장 하나가 초코파이 박스를 들고 방에 들어와 각각 앞어 놓인 접시 위에 두어 개씩을 벌충해주며 굉장히 미안한 말투로 말을 했습니다. 신병들, 정말 미안해요. 이거라도 더 드시면서... 그때 문득 머리를 곱게 빗고 교회에서 수줍게 자장면을 입에 올리던 시골소년이 떠올랐습니다. 묘하게 찌푸려지던 그의 미간과, 너희는 다음 주에도 나오면 그때 주겠다던, 처음 들어봤지만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던 비웃음이란 것이 묻은 말들도.

그런데, 저 병장은 자기도 국방부 시계 돌리러 왔으면서 왜 저렇게 진심으로 미안해하나? 왜 이 초코파이가 미안함을 담은 정성이어야 하나? 어쩌면 저는 그 마음에 마음이 움직였는지 모르겠습니다. 마치, 그제도 던지고, 어제도 던지고, 오늘도 던졌는데 또 던지라는 감독에게 손 끝이 얼얼해진 최동원 선수께서, 알겓심더. 마 함 해보입시더... 남아의 운명을 실어 답했듯이 말입니다.

그 방의 한 켠에는 칠판이 하나 있었고, 거기엔 난데 없는 이름들이 스무 개쯤 적혀 있었는데 멀뚱히 앉아있던 스무 명 남짓한 아이들은 역시나 멀뚱히 게 중 마음에 드는 이름을 하나씩 골라잡아 종이에 있는 공란을 매웠습니다. 그렇게 저는 미카엘이 되었습니다.

세례식이 열린 미사. 연병장도 아닌데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시키는 복잡한 제사 끝에 신부는 말 합니다. 우리가 비록 총을 잡기 위해 이 곳에 모였으나, 그 총은 누구의 목숨을 빼앗기 위함이 아닌 우리가 사랑하는 이들의 목숨과 평화를 지키기 위함이며...

다른 건 다 기억나지 않지만, 초코파이가 놓인 그 작은 방의 분위기. 그때 미사를 주관 했던 조정래 신부님의 얼굴과 저 말씀만은 기억이 납니다. 저는 워낙 소년만화처럼 유치한 인간이라 그런 거에 불타오르는 것이지요..

최근 양심적 병역거부 이슈를 보며 저는 시한부 선고를 받은 환자처럼 부정, 분노, 협상, 우울, 그리고 마침내 수용의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분노의 단계에선 생전 들여다보지도 않던 다음 댓글난에 악플을 막.... 죽어! 이 버러지들! 사이비! 양심에 털난!!!

오늘 뉴스를 보니 참여연대가 또다시 이 건으로 정부를 공격하더라고요. 정말, 안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진심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진심을 전하는 사람의 말투일 수도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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