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이재수의 난

2019.01.07 13:33

흙파먹어요 조회 수:735

유시민 작가의 등판을 보며 옛날에 봤던 영화 감상을 고쳐적었습니다. 전 유시민이 재밌는 책이나 읽고, 하고 싶은 공부나 실컷 하면서 즐겁게 살았으면 했는데...


김훈의 소설 '흑산'에서 황사영은 위로는 어수의 체온을 가슴에 품고, 아래로는 주군을 향하는 공명의 도리를 다르지 않게 베풀었던 순결한 선비로 묘사된다. 하지만, 소설 속 인물의 입을 빌려 김훈은 탄식한다. 소년급제라...

벼려진 날이 너무도 순결하여 칼집 속에 몸통을 숨기는 법을 몰랐던 이 백면서생은 서학을 접하고 세례명 알렉시오를 받아든 후, 박해를 피해 숨어든 토굴에 웅크려 장차 안으로는 가문을, 밖으로는 수 많은 백성들의 앞섶을 핏빛으로 물들일 일을 저지르고 만다.

무명천에 촘촘히 적어 베이징으로 보내 그의 서찰에는 핍박 받는 조선 천주학의 실태와, 그가 믿기로 작정한 신의 목소리가 조선 땅에 닿기를 바라는 간절함이 녹아들어 있었다. 그리고 그를 위해 백면서생이 내놓은 방안은 아둔한 맹수같이 늙어가던 조국의 목전에 열강의 칼날을 들이대는 것이었다.

무채색의 무명에 단정히 적어내려 백서라 불리는 이 서찰은, 발이 없는 그의 마음과 달리 땅을 딛고 달려야만 인간의 국경을 넘을 수 있어, 결국 조선을 채 벗어나기도 전에 조정의 손에 넘어가고 만다. 말 하여질 수 없는 것에 침묵을 지키지 않기 위해선 때론 목숨을 걸어야 하는 것. 황사영은 대역죄로 사지가 찢겨 죽임 당했고, 2014년 8월. 프란치스코 교황이 집전한 <한국 순교자 124의 시복식>의 명단 그 어디에서도 그의 이름을 찾을 수는 없었다.

조카사위의 어린 행동으로 정약용과 형제들은 형틀에 메달린다. 끝내 가슴에 품은 붉은 마음을 푸르다 말 할 수 없었던 정약종은 자신의 목을 내어주고, 천주의 독생자가 손을 내밀었던 베드로가 그랬듯 무릎으로 기어 이승에 이마를 대었던 약전과 약용은 유배지에서 유배지로 멀고 긴 이승의 치욕을 걸어간다.

신지도에서 밀려나 흑산도로 흘거 간 정약전. 그곳에서 약전은 조국 없는 물고기들의 이야기를 저술하여 역사에 또 하나의 업적을 남기지만, 세상에는 죽어서 이름을 남기기는커녕 살아서 생로병사의 복됨조차 제대로 누리지 못한 채 바둑판 위의 돌처럼 놓여졌다 떨어지는 목숨들이 부지기수였다.

황사영은 당대 치세를 누리던 서인은 아니었으나 용안을 가까이 한 적 있는 조선의 사대부였다. 그는 임금을 가까이 하고 스스로 임금을 등졌지만, 조선의 가장자리에 메달린 백성들에게는 그 배반조차 꿈 속의 꿈이었다.

세월은 흐르고, 아무리 빳빳하게 풀을 먹인 깃발이라도 세월따라 불어 온 서풍에 아니 흔들릴 수 없는 것. 이제 천주학을 익힌다 하여 탄압을 받는 일도, 자국의 백성들이 신의 치맛자락 안에 들기를 염원하며 강대국의 군대로 자국을 압박해 달라 백서를 띄우는 자도 없었다. 황사영의 바람은 어떻게든 이루어져 열강이 조선에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 것이다.

신유년 박해가 휩쓸고 간 후 정확히 100년 후. 그러나, 무슨 일인지 먼 고장 탐라에선 백성들이 여전히 신음하고 있었다.

갑오년 개혁으로 문무와 반상의 차별은 서류상에서 자취를 감췄으나, 여전히 사람들의 목숨 값은 같지 않았다. 1898년 종로에서 열린 만민공동회. 구름 같이 모여든 각계 각층의 사람들 앞에 한 사나이가 분연히 나아가 첫 입을 뗀다. 그의 이름은 박성춘. 도축업에 종사하던 그는 이 문장으로 연설을 시작한다.

"여러분, 나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천대 받는 사람이외다."

같은 시각, 탐라의 들판을 달리는 또 한 명의 사나이가 있었다. 사나이라기엔 소년의 티가 아직 묻어나는 그의 이름은 이재수. 관노였다고도 하고, 마부였다고도 전해지는 이재수는 그 백 년 전 황사영의 족보가 확실한 것과 달리 그가 누구인지 명확히 전하는 활자들을 지닐 수 없었다. 본래 백성이란 그런 것이었다.

현기영의 <변방의 우짖는 새>를 원작으로 삼은 감독 박광수는 이 백성 이재수에게 탐라의 곳곳을 두 발로 뛰어 다니는 '통인'이라는, 낮지만 분명한 직함을 쥐어준다. 역사서 속 몇 줄이 고작인 그에게 이정재를 데려다 살아있는 뼈와 살을 입히고, 심은하를 데려다 마음도 심어 준다. 그렇게 되살린 사람 이재수의 눈을 통해 감독이 관객들 앞에 펴 보인 1901년 제주도는 이재수가 헤치며 달렸던 온 풀섶들이 분노로 흠뻑 젖어 있었다.

제주에 닻을 내린 천주교는 황사영이 백서에 담아 보낸, 음지에 숨 죽여 핍박 당하던 옛날의 서학이 아니었다. 19세기 중반에 섬에 상륙한 이 새로운 신앙은 전통신앙의 뿌리가 깊은 섬고장에서 이렇다 할 반응을 이끌어내지 못 했지만, 세기말에 본격적으로 선교를 시작하여 20세기의 시작과 함께 그 세를 확장한다.

열강의 힘을 뒤에 입은 프랑스 신부들에게는 치외법권이 주어졌고, 무슨 짓을 저지르더라도 일단 신자임을 내세우며 교당의 영역에 들어서기만 하면 관이 어찌할 도리가 없었기에 온갖 잡배들과 모리배들이 거짓으로 신의 치맛자락을 들추어 기어들었다.

이들의 패악질은 강봉헌이 봉세관으로 부임하며 본격적으로 자행된다. 강봉헌은 온갖 잡세들을 과도하게 거둬 들이며 제주 백성들을 핍박하고, 그 핍박을 실행할 인물들로 천주교당에 모여든 잡배들을 이용한다. 사람의 손을 거친 신의 말씀은 또 다시 피와 눈물이 백성의 땅에 흘리게 하고 있었던 것이다.

왈패와 다를 바 없는 교도들과 탐관오리의 폭정에 백성들은 신음하고, 대정군수 채구석은 양반들로 구성된 조직 "상무사" 를 조직하여 이에 대항한다. 무슨 이유에서든, 어떤 사연에 의해서든 천주교를 둘러 싼 사람들과, 그 대척점에 선 사람들 사이에 맺힌 앙금은 커져만 갔고, 아름다움이 원죄인 탐라, 그 먼 바다에선 또 다시 들판에 선 말갈기를 비릿하게 적실 거대한 먹구름이 피어 오르고 있었다.

관의 입장에선 신축민란, 천주교의 입장에선 신축교란이라 불리는 이 사건을 박광수 감독은 민의 시선에서 조명하여 <이재수의 난> 이라 이름 붙인다. 역사는 언제나 그렇듯 변곡점의 대가로 피를 갈구했다. 채군수의 통인으로 들판을 달리고, 때론 풀섶에 몸을 숨기며 사정을 전하던 이재수의 손에는 어느 때인가부터 낮은 그가 감히 잡아볼 수 없었던 환도 한 자루가 들려 있었다.

합의 된 약속을 이반한 교도들의 습격, 분노한 민당의 저항과 교도 가족들에 대한 보복. 프랑스 군함이 제주를 향한 가운데 조정으로 받아 낸 두 가지 약속과, 민란의 책임을 지기 위해 이재수는 스스로 칼을 내려놓고 꿈에라도 다시 보고 싶은 숙화를 뒤로한 채 서울로 압송된다.

감독은 고운 님과 마주 앉아 밥을 지어먹고, 새끼 낳아 기르며 사는 것이 소망이었던 조선에서 가장 낮은 사람의 마지막을 동대문 밖에 높이 걸린 그의 목으로 대신한다. 검은 실루엣으로 비춰지는 그의 굳은 얼굴 위로 까마귀 한 마리가 날아들어 세상을 굽어보고, 오름을 넘어 달려 말을 전하던 먼 고향땅의 풍경이 허무한 가운데, 날짐승이 내려다 본 한양땅에는 이미 전차가 굴러 다니고 있었다.

기록된 사실과, 천주교의 입장, 민의 입장, 그리고 감독의 영화적 상상력 따위야 어떠했건, 사람 이재수는 사람의 붉은 피를 뒤집어 쓴 채 봉기의 얼굴인 장두가 되어 제주땅에 서 있었다.

황사영의 서찰은 거창했다. 그는 토굴에 몸을 숨긴 채 박해의 모습과 염두에 품은 포교방안을 1만 3천여 글자로 정리했다. 이재수의 죽음으로부터 일백 년 전 그의 목소리는 활자로 남아 지금도 교황청 민속박물관에 전해지고 있는데, 그가 바랐던 정의, 믿음이 무엇인지 먼 제주에서 물질하는 1901년의 숙화는 알지 못 했다. 알리 없기는 관의 서찰을 품고 들판을 달리던, 숙화가 마냥 고운 재수도 마찬가지 였다.

홑겹옷을 걸치고 뛰어들어야 목숨이 이어지는 숙화의 바다는 종종 젊은 뼈마디가 저릿해 오도록 찼고, 두 다리로 달려야 이어지는 섬의 말과 말들에는 종종 급작스레 비가 쏟아졌다. 무엇이 재수가 칼을 잡게 했을까? 숙화는 뒤돌아 가버리는 재수를 어떤 마음으로 배웅했을까? 망토를 두른 채 하늘을 날 수 없었던 숙화의 영웅은 잡아 본 일 없던 환도를 들어 기꺼이 피를 뒤집어 쓰는 것으로 모진 비구름을 갈랐다.

스스로 내놓은 그 목에서 떨어진 피를 욕심껏 머금고서야 피바람은 멎었다. 숙화는 재수에게 영웅이 되어달라 한 일이 없었다. 재수는 추호도 영웅이 될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궁궐 담으로부터는 멀어도 너무 멀어, 나랏님이란 말은 세금 낼 때나 한 번씩 들었던 이재수는 그 먼 땅에서 목숨을 내어 준 댓가로 나랏님으로부터 두 가지 말씀을 받아들고 영웅이 되었다.

변방에도 우짖는 새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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