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에서 이어집니다.)

 

 

 

6.


또 다른 '나를 사랑하기' 방법을 이야기하기 앞서서, 미리 소개해두면 편한 심리 치료 이론이 하나 있어요.

제가 받은 심리상담 중 하나는 '스키마 치료'였어요. 이건 요사이 막 등장한 제3의 인지치료 기법의 하나로, 급성 우울증의 빠른 대처 등의 특정 질병상태의 치료보다, 심리 장애의 근간이 되는 만성적인 성격적 요소를 치료하기 위해 개발되었다고 해요.

스키마 치료의 얼개를 <심리 도식치료> (학지사, 2003)을 참조해서 대강 써봐요.


성격적인 요소로 심리적 장애를 겪는 사람들은, 문제의 뿌리가 되는 특정한 심리적인 주제가 되풀이된다. 예를 들어, 나는 실패자다. 나는 사랑받지 못할 것이다 등등. 이는 생애 초기에 형성된 자기 패배적인 감정과 사고 패턴으로, '초기 부적응 도식 schema'이라 하며, 이는 평생 되풀이되는 경향이 있다. 심리도식은 내담자의 자기정체감의 중심에 가까우며, 그것의 어설픈 포기의 시도는 자아의 붕괴와 같은 충격이 된다. 그래서 스키마 치료는, 내담자가 치료자와 동맹을 맺고, 저 부적응 스키마를 우선 내담자의 자아와 분리한 후, 종국에 그것을 포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성격이 운명이라는 말이 있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혹은 알면서도 자기 자신을 사지로 몰아넣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어요. 저도 그랬고요. 스키마치료에서는 저 초기 부적응적 스키마가 사람의 성격을 만들고, 그 성격이, 곧 자기 자신이 스스로 운명을 망가트리는 것이라고 풀이하는 듯 해요. 그리고 스키마 치료는 저 부적응적 스키마를 치유하고, 파괴적 성격 요소를 바꾸려는 목적을 가져요. 제 개인적인 감상으로는, 스키마치료는 인지치료에 기타 정신역동의 대상관계이론의 요소나 애착 이론 등 심층치료의 요소들을 가미한 느낌이었어요. 


(우행길 중에 대략 세 가지 주제-스키마에 대한 글을 썼었어요. 초기 부적응 스키마의 구체적 형태가 어떤 것인지 궁금하시면 아래글을 보시고, 더 자세한 것은 <새로운 나를 여는 열쇠> (열음사, 2003)을 참조하세요.

나는 실패자다  http://djuna.cine21.com/xe/?mid=board&search_keyword=%EC%9A%B0%ED%96%89%EA%B8%B8&search_target=title&page=2&document_srl=1845305

나는 결코 사랑받을 수 없다 http://djuna.cine21.com/xe/?mid=board&search_keyword=%EC%9A%B0%ED%96%89%EA%B8%B8&search_target=title&page=1&document_srl=1999273

나는 쓸모 없는 사람이다. http://djuna.cine21.com/xe/?mid=board&search_keyword=%EC%9A%B0%ED%96%89%EA%B8%B8&search_target=title&page=1&document_srl=2005135 )

 

 

 스키마치료에서는 한 개인의 특정한 정서 상태 및 대처방식을 양식(mode)이라는 용어로 설명해요. 그러니까 '나는 실패자다.'라는 특정한 내적 주제에 대해, 다른 부분에 대해서는 아주 합리적인 반응을 하는 사람이라도 '자신의 실패'에 대해서는 막무가내로 공포에 질린 반응을 보일 때, 그 사람은 특정 '모드'에 돌입해있다고 이야기하죠. 저 상태는 크게 4가지 범주(구체적으로는 더 많아요.), 즉 아동 모드, 역기능적 대처 모드, 역기능적 부모 모드, 건강한 성인 모드로 나뉜대요. 그러니까 자학이 너무 심하면 '역기능적 부모모드'이고, 그 공격이 너무 괴로워서 온라인게임이나 팬 질에 빠져 현실 도피를 한다면 역기능적 대처 모드고, 한창 자학을 하고 난 후 맥이 빠지고 침울하고 징징 울고만 싶을 때는 특정 아동 모드에 들어가 있는 거고, 뭐 이런 거죠. 하여튼 상태 이름만 딱 봐도 스키마 치료의 목표가 다른 모드들을 달래거나 조절하며 건강한 성인모드를 극대화하는 게 목표라는 걸 알 수 있죠. 보통 사람들은 건강한 성인모드에의해 다른 모드들이 적절히 통제되지만, 심리적 고통이 심한 사람들은 모드 간에 갈등이 심하거나 해리가 되어 있고, 특히 건강한 성인모드의 발달이 아주 미약한 상태라고, 스키마 치료에서는 해석해요. 사람의 특정 페이스를 저런 식으로 나누어 개념화하는 것은 (치료과정에서는 각각의 상태에 이름까지 붙여요  찡찡이. 참견꾼. 파괴자. 아니면 어린 영희. 맛간 철수. 등등.), 다중성격 장애 같은 경우는 저 모드들이 대놓고 다중 인격의 형태로 해리되어 있는 경우도 있고 다른 심리적 고통을 가진 분들 역시 다양한 형태의 자아 내부의 개별 목소리간에 갈등이 심한 경향이 있는데, 그것을 그대로 반영한 측면이 있어요. 또 효용적인 면에서 보면 모호한 것을  명확히 하여 인지하고, 관찰하고, 조절하기 쉽게 하기 위함이기도 하죠. 예를 들어 나를 공격하는 내면의 목소리가 들린다고 하면 '처벌적인 부모 모드'가 발동했다고 생각한 후, '참견꾼! 또 난동이네? 닥쳐!!!'하고 대응하는 식.

 

저는 이 스키마 치료를 받다 중단한 상태고, 다시 받으려고 생각 중이에요.  제 내적 경험과 이론이 어느 정도 일치했고, 특히 스키마나 모드라는 개념이 제 내면의 혼동과 갈등을 구체적이고 체계적으로 이해하는 좋은 도구가 되어주었으며, 실제 치유 효과도 어느 정도 있었거든요.

 

 

 

 

 

 

7.

 

 

 이번 글의 주제인 '나를 사랑하기'는 '자신에게 따스한 마음을 품는 것', 그리고 제가 스키마 치료를 받던 와중 제 '취약한 아동 양식'을 달래며 받았던 (일종의) '내면의 아이 치유'와 관련이 있어요.

 

내면 아이 치유법은 존 브래드쇼라는, 알코올중독자의 자식으로 태어나 본인도 알콜 중독자가 되었다가 치유되는 경험을 했으며, 사제 수련을 받았던 경험도 있는 심리치료사가 개발한 치료법이에요.  (국내에서도 <상처받은 내면아이 치유> (학지사)라는 책으로 접하실 수 있어요.) 이 치료법 자체도 많이 알려졌지만, '내면의 아이'라는 용어는 정말 유명하죠. 이 치유법은 어린 시절 양육의 문제나 환경적인 이유로 충족되지 못한 사랑, 애정, 보살핌 등으로 인해 결핍과 상처와 슬픔이 가득 찬 어린 시절의 나를, 지금의 내가 그 아픔과 슬픔을 대신 느끼고 울어주고, 또 어린 나를 보듬고 사랑해주려는 시도에요.  과거가 직조하는 현재의 나와, 그 무의식에 대한 프로이트의 놀라운 통찰 이래, 부모의 양육과정에서 받은 상처를 이해하고 분석하고 그 상처가 지금의 나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분석하는 것은 현대 심리치료 과정에서 아주 빈번하게 행해지는 것이에요. 문제는 그렇게 과거를 이해하고 수용하더라도, 그래서 과거를 보는 현재의 시선을 바꾼다 하더라도, 과거 자체는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에요. 그리고 과거의 잔재는, '상처받은 내면의 아이'의 형태로, 혹은 스키마치료식으로는 '취약한/성난/충동적인 아동 양식'이 과도하게 활성화된 형태로, 내 안에 잔존해있지요. 그래서 심층심치료 과정에는, 내담자의 해소되지 않은 어린 시절의 슬픔과 고통과 한을, 무조건적인 사랑이 담긴 주의를 환자에게 온전히 쏟아내는 치료사가 조성해놓은 안정된 치료공간 속에 풀어놓고, 치료사가 그것을 충분히 느끼고 슬퍼하고 공감해주며 내담자도 그 감정을 인지하고 느끼고 해소할 수 있도록 도우려 하죠. 그런데 존 브래드쇼는,  정신분석의 경우 그런 '해소' 과정에서 환자가 치료자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는 경향이 생긴다고 주장해요. 그렇기에, 내면의 아이 치유는 과거 슬픔의 잔재를 환자 스스로가 직접 어루만져보려는 시도에요. 다 자란 내가, 어린 시절 받지 못한 무조건적인 사랑과 애정과 보살핌을 장착하고, 타임머신을 타고 아주 어린 나를 만나서 직접 보듬고 쓰다듬어 주는 느낌이죠. 그래서인지 직접 경험해보면 아주 직관적이고, 간단하면서도 상당히 효과적이고, 큰 감정적 울림과 치유경험을 가져다주곤 해요.

 

 

 저는 본격적인 내면의 아이 치유 프로그램을 수료한 것은 아니었어요. 본격적인 방법은 에릭슨의 이론에 따라 어린 시절을 각 단계(신생아기, 유아기, 학령전기 등등.)로 나눈 후, 단계별로 자발적 연령 퇴행(spontaneous age regression)을 하여 각각의 내면의 아이를 다 달래주는 형태더군요. 하지만 저는 스키마 치료를 받는 와중, 제 주된 스키마인 '나는 실패자야.'가 최초 탄생했던 어린 시절의 장면으로 돌아가볼 목적으로 상담 선생님이 저에게 간략한 형태의 자발적 연령 퇴행을 시도하셨어요. 그리고 그 방법 자체가 내면의 아이 치유법이었고요. 자발적 연령 퇴행은 일종의 반 최면으로, 존 브래드쇼는 묵상이라고 불러요.  그는 사제 교육 전력도 있고 교단에서 떠난 후에도 기독교 신자로 남아 있기 때문에, 치료법 자체가 종교성이 짙은 편이죠. 상처받은 내면의 아이가 다 치유된 후 발견되는 놀라운 아이는 결국 하나님의 형상 그 자체라는 이야기도 나오고요.

 

하여튼 연령퇴행은 이렇게 진행되었어요. 우선 어두운 방 안에서 눈을 감고 조용히 숨을 쉬며 몸을 충분히 이완시킨 후, 상담자의 지시문 (몸이 편안해지고 등등 최면에 쓰이는 문구들..) 에 따라 어린 시절의 특정 장면으로 돌아가요. 돌아가고 싶은 어린 시절의 구체적인 상황을 그려보는거죠. 그 당시 살던 집, 친구, 방안의 풍경들, 그때 가족들의 모습, 기타 각종 그 시절의 이미지들을 구체적으로 그려보려고 노력해요. 과거의 그 자리에 내가 돌아가보는거죠. 그리고 그 어린 시절의 나를, 내 앞에 이미지화해서 그려요. 헤어스타일이랑 옷이랑 대강 나이가 몇 살인지 이런 것들을 세밀하게 그리려고 노력할 수록 이미지화가 쉬워지죠. 제 경우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제 어릴 때 사진 속 단발머리로 나오더군요. (그리고 전 쉽게 잘 된 편인 것 같은데, 이건 제가 원래 백일몽으로 영화찍는게 취미인 것과 관련이 있는 것 같아요.)  그렇게 나타난 내면의 아이를 내 앞에 두고, 다 큰 내가 그 아이를 바라보면서 이런 저런 질문을 해요. '안녕, **야? 뭐하고 지냈어? 지금 느낌이 어때?  무슨 말이 하고 싶어? 안아줄까?' 연령 퇴행이 잘 된 상태에서는 정말 영화를 보는 것 처럼 머릿속에서 그 아이가 발랄하게 뛰어놀면서 저에게 말을 걸기도 하고 울며 안기기도 해요. 그리고 그 시절에 꼭 듣고 싶었는데 평생 듣지 못해서 한으로 남았던 말들, '네가 거짓말 한거 아니라는거, 엄마는 믿어.', '공부 못해도 괜찮아. 그런거랑 상관 없어. 언제나 널 사랑해. ', '여자아이로 태어나줘서 정말 고마워. 난 니가 여자아이인게 정말 행복하단다.' 이런 말을 해줘요.

 

혹은, 책에서는 이런 말을 들려주라고 해요.

 

이 세상에 온 것을 환영한다. 널 오랫동안 기다려 왔어.

네가 여기에 있어서 너무 좋다.

난 네가 지낼 만한 아주 특별한 곳을 마련해 놓았단다.

네 모습 그대로를 사랑한다.

무슨 일이 생겨도, 널 떠나지 않을 거야.

네가 필요한 게 무엇이든 다 괜찮아.

네가 갖고 싶어하고 네게 필요한 걸 언제든지 줄게.

네가 남자아이(또는 여자아이)라서 너무 기쁘다.

널 보살펴 주고 싶구나. 난 그럴 준비가 다 되어 있다.

널 먹이고 목욕시키고 옷을 갈아입히고 너와 시간을 보내는 게 너무 좋다.

이 세상에서, 너와 같은 아이는 없다. 넌 독특하다.

네가 태어났을 때 하나님도 웃으셨단다.

<상처받은 내면아이 치유> p.152

 

이런 말들을 해주면, 듣는 '나'도, 듣고 있는 '상처받은 내면 아이인 나'도 눈물을 흘리며 울다가 통곡하고, 난리가 나요. 특히 평생의 트라우마가 큰 사건을 해결하는 아주 간단한, 하지만 친절하고 애정이 듬뿍 담긴 '결정적인 한 마디'를 제대로 해주게 되면,  하도 울어서 정신을 못차리기도 하죠. (그래서 상황에 따라서는 혼자 이거 하면 위험할 때도..) 최초 상담 와중에 퇴행을 하였을 때 저는 정신을 좀 차린 상태에서 펑펑 운 편이긴 했지만, 너무 심하게 울었어요. 아 쪽팔려 울기 싫은데 하면서도 휴지 한 통을 다 썼죠. 사실 이 글 쓰기 위해서 혼자서 자발적 연령 퇴행을 다시 해봤는데 (전 혼자서도 잘 됨 ㅋㅋ 자가최면이 잘 걸리는 듯.), 이번에도 하도 울어서, 그 여파인지 어제 하루 축 늘어져있었어요. 이번에 어린 제가 듣고 싶은 말은 이런거였어요.  '무슨 일이 있더라도, 네가 어떤 모습이더라도, 난 너를 사랑해. 영원히 같이 있어줄게.'

 

하여간, 핵심은 이런 거에요. 조용한 명상, 혹은 묵상 상태에서 아주 어린 시절, 혹은 내가 크게 상처받았던 특정한 어린 시절의 나를 눈 앞에 생생하게 그리고, 그 아이와 함께 그 때 그 시절 내가 느꼈어야 마땅한 (부모에 대한 혹은 특정 상황에 대한) 슬픔이나 분노를 같이 공감하고 다시 느끼고 충분히 풀어내는 것. 정말 이유도 원인도 모르는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려요. 어린 시절 모종의 이유로 숨기고 억압해야만 했던 화, 분노, 두려움, 공포, 수치심 같은 감정들을, 지금의 내가 충분히 애도하고 슬퍼하고 느껴주며 풀어내는 거죠. 그리고 난 후, 그 때 받았어야 할 무조건적인 사랑, 안전, 보살핌을 가슴을 가득 담은 말의 형태로, 내면의 아이에게 들려줘요. 이 세상에 태어나는 어리고 순진한 생명체들이라면 마땅히 들어야만 하는 그 말을, 아주 어린 나에게 다 커버린 내가 새로운 부모가 된 냥, 온 마음을 담아서.  이런 것을 반복하고 나면,  허하고 텅 비어 있는 마음에 따뜻하고 빛나는 무언가가 채워진 느낌이 들어요. 그러고 나면 '나는 나를 사랑한다!'라는 선언을 반복하지 않아도, 가슴 속에서 정말 '난 내가 좋다'는 느낌이 그냥 뿜어져 나와요. 실제로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았으니까. 그 사랑을 줄 사람은 바로 나 자신, 그래서 절대로 떠나지 않을 거라는 걸 아니까. 그래서 안심할 수 있으니까. 어떤 일이 있더라도 나만은 나를 영원히 사랑할 테니까.  

 

 내면의 아이 치유가 한번 제대로 잘 되고 나면, 내면의 어린 아이는 툭 하면 튀어나와서 안아달라고 애정을 달라고 조르곤 해요. 그게 또 아주 귀여워요. 아직 어린 애라서 단순하고 제멋대로고 많이 사랑받고 싶어하고. 그래서 본격적인 내면의 아이 치유법에서는 하루에 시간을 정해놓고 정기적으로 이 아이와 만나는 것을 권장하더군요. 제 아이는 저보고 자꾸 안아달라고 졸라요. 그래서 안아주면 명치 언저리에서 쉬다가 사라지곤 해요.

 

 

<상처받은 내면아이 치유> 책의 마지막에 보면, '상처받은 내면의 아이'가 다 치유되어 '놀라운 아이'가 된 후, 그 아이를 만나서 인생의 진정한 목적에 대해 이야기해 볼 수 있다며, 이를 위한 묵상법이 등장해요.  인생의 목표에 대해 십년 넘게 고민하고 있던 저는 또 냉큼 (혼자) 해봤는데, 제 아이는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까지는 아직 모르더라고요. 이 녀석은 잘 모르면 이야기 안 해줘요. 대신 재미있었던 게, 저 묵상법 초반에 의심이나 걱정거리를 크리스탈 상자에 넣고 땅에 묻는 이미지화과정이 있거든요. 그 후 아이를 만나러 가고, 그리고 다시 돌아오면서 (묵상을 끝내면서) 걱정거리 등을 다시 가져오는 거죠. 제 경우 가장 큰 걱정거리는 '생계, 생존에 대한 근심'이었어요. 그런데 아이랑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아이가 저랑 같이 가고 싶어하길래 (원래 혼자와야 함;;) 안고 같이 내려오는데, 근심거리를 다시 집어들려는 찰라, 아이가 흙 뭍은 손을 쭉 내밀더니 근심거리를 탁탁탁 치더라고요. 이딴 거 버려 버리라고. 너무 웃기고, 또 좋았어요. 음, 쓰다보니 제가 정신이상자 같이 보일 거라는 걱정이 드는데, 실제로 저 치료법에서 자발적 연령 퇴행이 잘 되면 머릿속에서 이미지가 알아서 돌아 간답니다. 거기 등장하는 내면의 아이도 제 의도와는 상관없이 자발적으로 움직이고요. 경험해보면 좀 신기해요.

 

 

 

 

8.

 

 

<상처받은 내면 아이 치유>의 핵심은 위에 예시한, 묵상을 통한 자발적 연령퇴행이에요. 하지만 다른 방법들도 많아요. 부모에게 분노의 편지;;를 쓰는 것도 그 중 하나죠. 제가 직접 해본 것은, 저에게 편지를 써보는 것이에요. 구체적으로, 어린 시절의 나를 내가 입양한다고 가정하고, 내가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는 정말 좋은 부모가 된 냥 잔뜩 감정이입을 한 상태에서 아이에게 편지를 쓰는 거죠. 이때는 '오른손'(왼손잡이는 왼손)으로 써요. 또 어린 내가 새로운 부모가 될 나에게 편지를 쓴다고 가정하고, 정말 아이가 된 느낌에 머물면서, 내면의 아이를 불러낸 적이 있다면 그 아이가 되면 되고, 아니라면, 어린 유아를 상상하고 그 안에 들어간다는 느낌으로 해도 되고, 하여튼 자가 최면 비슷하게 아이가 된 냥 상상하면서, '왼손'(왼손잡이는 오른손)으로 새로운 부모인 나에게 편지를 써보는 거에요. 왼손으로 쓴 편지는 특히 귀여워요. 저는 basic trust에 문제가 있었기에 발달단계 중 신생아기에 초점을 두었어요. 그리고 아래는 신생아인 저를 입양한다고 가정하고, 각각 오른손과 왼손으로 쓴 편지에요. 

 

 

제가 어린 저에게. (오른손으로 씀.)

 

'사랑하는 XX에게.  XX야. 이 세상에 태어나줘서 고마워. 난 네가 존재하는 것 자체가 기쁨이란다. 사랑해줄게.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무조건적으로 사랑해줄게. 많이 아끼고 예뻐하고 세심하게 보살펴줄게. 난 네가 원하는 게 뭔지 바로 알 수 있거든. 예쁜 아가씨로 태어나줘서 고마워. 넌 너무 빛이 난단다. 넌 이 세상에 유일한 목적을 가지고 태어난 아주 특별하고, 단 하나뿐인 존재야. 그러니 넌 분명히 너를 사랑하게 될 거고, 나도 널 사랑하고 너무 자랑스럽게 생각한단다. 그리고 우리는 아주 많은 사람을 도울 수 있을 거야. 와줘서 고맙다. 사랑해. 어서 오렴. 난 언제나 너와 함게 있을 거란다.'

 

 

어린 제가, 부모가 된 저에게. (외손으로 씀.)

 

'엄마 안녕. 난 사랑이 필요해. 와서 안아줘요. 사랑해주고 늘 내 옆에 있어줘요. 엄마를 만나고 이 세상에 와서 기뻐요. XX이가.'

 

 

민망한 저 문장 중 오른손으로 쓴 윗 부분은, 일부는 책에 많이 나와있는 '좋은 말들'에서 따온 것이고,  일부는 제가 제 강아지에게 하는 말들을 그대로 적은 거에요. 강아지 입양 후 '나한테 와줘서 고마워. 사랑해. 평생 행복하게 건강하게 살자. 아후 이뻐. 사랑해.' 이런 말들을 2년 넘게 구사하며 뻔뻔해지지 않았다면, 무감정증에 시달리는 무뚝뚝한 제가 저런 편지를 쓰려는 생각조차 못 했을지도.  우울증에 가장 도움이 되는 생활 방식 하나를 뽑으라면 전 '반려동물 기르기'를 뽑겠어요!! (블로그에도 장문의 글을 ㅋㅋㅋ) 그리고 왼손으로 쓴 부분은, 그냥 가슴에서 알아서 흘러나와요. 써놓고 나서 빼뚤빼뚤한 그 글씨를 보다 보면 귀엽고 애잔하고 뭐 그래요.

 

정리하자면, '나를 사랑해야 한다'라는 생각 자체가 끔찍하신 분들,  가슴 깊이 응어리진 것이 부글거리는 분들,  한이 많으신 분들, 특히 기독교 전통에 익숙하신 분들 (현재 기독교 신자 아니어도 상관 없음.), '우격다짐으로 난 내가 좋다고 외치는 거 민망하다. 난 나를 사랑한다고 직접적으로 느끼고 싶다.'는 분들은, 내면의 아이 치유법 (중 특히 자발적 연령 퇴행.) 프로그램을 직접 시도해보세요. 제일 좋은 것은 전문가가 하는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것이지만, 기회가 없으시다면 우선 책을 보면서 혼자 시도해보셔도 될 거에요.  책은 <상처받은 내면 아이치유> (학지사)를 사시면 되고, 이 책의 번역자인 오제은 교수가 쓴 <자기 사랑 노트> (샨티)를 사셔도 된답니다. 내면 아이 치유법을 본격적으로 깊이있게 접하기에는 전자가 좋고, 오제은 교수 본인의 경험담을 따라가면서 대중서 읽듯 쉽고 편하게 접하기에는 후자가 좋아요.  또 <자기사랑 노트>에는 내면아이 치유의 여러 방법을 직접 해 볼 수 있는 공란들이 있어서, 자가치유 목적이라면 이 책이 편하실지도 모르겠네요. 전 두 권다 즐겁게 봤어요.

 

 

관심 있어서 책 사보시는 분들, 부디 그냥 읽어보지만 마시고, 꼭 해보세요. 이 방법은 굉장히 몸으로 와 닿는데다가, 성공했을 때 내면의 변화 폭이 크거든요. 본 투 비 시니컬남/자학녀가 갑자기 가슴이 따뜻해지고 자신에게 너그러워지고, 민망해서 부끄러워서 혹은 단지 싫어서 예전에는 입 밖으로 안 나왔을 '난 내가 좋다!'라는 말이, 자기 이름까지 붙여서 (김어준이라면, "난 어준이가 좋아!!!!") 웃음 그득 머금은 상태에서 감정 담뿍 담아 저절로 흘러나와요. 자기 안의 (내면의) 아이에게 해주는 말이라 더 쉽게 되는 것 같기도 하고. 우리들은 아이에게 너그럽잖아요. 직접 해. 보·세. 요. 혹여 책을 사신다 한들, 직접 안 하면 효과 제로. 심리치료 방법 중에는, 겉으로 보기에는 유치하고 실없어 보이고 정교한 이론 배경도 없어 보는데 막상 해보면 어마어마한 효과를 보이는 방법들이 많아요. 내면의 아이 치유 방법은, '나를 사랑하는 방법' 중 특히 직접적으로 와 닿는 방법이라고, 경험자, 주장합니다.

 

 

 

 

9.

 

내면아이 치유법은 어린 나의 슬픔과 고통을 어루만지고 (스키마치료법으로 따지면 '상처받은 아이 모드'를 달래고) 나 스스로 좋은 부모가 되어 나를 사랑으로 품는 방법이라 할 수 있죠. 그러면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고 자학에 빠져 사는 사람들의 내면에서 들리는 끊임없는 자기비하의 목소리, 스키마 치료법에서는 '처벌적 부모 모드'로,  <자기 사랑의 심리학>의 저자 롤프 메르클레의 표현에 따르면 내면의 '면박꾼'으로 불리는 그 목소리는 대체 어찌 처리해야 할까.

 

혼자서 하기 제일 쉬운 방법으로는, 그 녀석이 등장할 때 마다 '닥쳐!!!'를 외치며 철저하게 무시하는 것이에요. 인지치료를 좀 받아보셨다면 그녀석들이 하는 말이 얼마나 비현실적이고 왜곡되어있고 뒤틀렸는지 '머리로'나마 인정할 수 있는데, 아직 자학이 심한 경우는 내면의 비판적 목소리가 정말 다 맞는 것 같고 이치에 맞아 보이고 하거든요. (그래서 병이라는;;) 그래서 중요한 건, '앞으로는 그 녀석이 무슨 말을 해도 절대 듣지 않겠다!'라는 굳은 결심을 하고, 실제로 무조건 무시하는 거에요.

 

<나는 오늘도 나를 응원한다> (비지니스북스)의 저자 마리사 피어가 전하는, 내면의 비판을 무시하기 파트를 옮겨볼게요.

 

아기들이 타고난 자존감과 자신감을 유지하는 중요한 이유는 내면에 비판의 목소리가 없기 때문이다. 비판의 목소리가 있다면 아기들은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팬티에 오줌을 쌌잖아. 난 정말 골칫거리야... 아기들은 실수를 저지를 때조차 자신에 대한 애정을 잃지 않는다. 당신도 그렇게 하라. 내면에 비판의 목소리가 아예 없다고 상상하고 자기비판을 중단하라. 비판의 목소리를 끄기 위해 당신이 해야 할 육체적 행동은 하나도 없다. 다만 자존감과 자신감을 해치는 생각을 마음속에서 싹둑 잘라내기만 하면 된다. 지금부터 비판적인 목소리의 볼륨을 '0'으로 맞춰라.         <나는 오늘도 나를 응원한다>, p.109

 

이 방법에 익숙해졌다면, 자신을 비난하는 목소리를, 상황을 인식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형태의 목소리로 치환하는 연습을 하면 더 좋죠. 이걸 정교하게 하면 인지행동치료의 생각바꾸기에서 하는 훈련이 되지요. 역시 저 책에서 예시를 뽑아와보죠.

 

전화하는 것을 잊다니 정말 중요한 전화였는데. 난 정말 구제불능이야.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어.

-> 이제라도 기억해내서 다행이야. 아직 늦지 않았어. 지금 전화를 걸어도 충분히 이해해줄 거야.

 

공과금을 냈어야 하는데, 난 건망증이 너무 심해. 형편없는 기억력 탓에 연체료까지 지불하게 됐잖아. 난 정말 바보 같아.

-> 은행에 직접 가는 건 별로 좋은 방법이 아니군.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자동이체 신청해야겠어.    <나는 나를 응원한다> p. 108

 

 

핵심은, 문제가 생겼을 때 후회나 자책 따위는 철저하게 제거한 채 지금 상태를 있는 그대로 보고,  이 상태를 어떻게 '개선'시킬 수 있는지 문제해결에 집중하는 거에요. 자학이 심한 사람들은 보통 보면 후회나 자책을 하는데 모든 에너지를 쏟을 뿐, 문제해결에 들이는 에너지는 거의 없거든요. 이건 제2의 천성인 냥, 머리에 깊이 박힌 일종의 사고 습관이에요. 그러니까 이 습관을 고쳐나가는거죠. (자학 mute) 현실 인식 -> 문제 해결 방법으로 무조건 연결. 특히 '행동'을 생각해 내는 습관은 상당히 좋은 것 같아요.  문제가 생겼다. 그럼 자학의 목소리는 철저하게 zero로 만든 채, 현실을 인식한다. 그리고 상황을 고칠 수 있는, 문제해결을 위한 구체적 '행동'을, 억지로라도 하나 이상 생각해낸다.  

 

혹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뾰족한 방법이 없다면, '우유를 한잔 마시고 거하게 자자.' 혹은  '서점에 들러 오늘 나온 **잡지를 사서, 카페에 들러 커피 한잔과 함께 읽어치우며, 마음을 식히자.'라는 식으로라도 건전하게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행동을 구체적으로 생각하면 좋을 것 같아요. 그럼 특정 일 때문에 자학이 터져서 열이 받은 나머지 라면을 끓여 흡입하고 또  냉장고를 열고 남아있는 아이스크림을 퍼먹는 불상사는 피할 수 있을 테니까요. 보통 이런 식의, 고통에서 피하고 스트레스를 풀려는 행동들은 자동으로 일어나고, 그 종류는 사람에 따라 달라요. 건강한 사람들은 요리, 달리기, 등산, 피아노 연주 등 건전한 스트레스 해소법들을 가지고 있어요. 하지만 정신적으로 문제가 심한 사람일수록 누구는 폭식 누구는 온라인게임 누구는 트위터나 인터넷게시판에서 너덧 시간 헤매기 누구는 무협지나 미드 몰아보(다 다음날 회사 지각하)기 누구는 술 누구는 도박 등, 비생산적이고 몸과 정신에 피해를 주는 방법에 주로 빠지며, 특히 이 현실도피법들에 중독되는 경향이 있어요. 음, 제가 그랬어요. 어흑. 그러니까 이 부정적인 도피처로 '자동적으로' 퐁당 하기 이전에, 건전한 방법으로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다짐'을 하는 게 아니라, 구체적으로 '이런 이런 행동을 하자'고 명확하게 생각하는 습관을 들이는거죠. 더 나아가서 그대로 해보는 습관도 들여보고. 이런 식으로 사고패턴을 바꾸면 안 좋은 일이 생겼을 때, 일차적으로 자학이 사라지고, 문제 해결을 위한 행동이 이어지니 상황도 좋아지고, 혹여 안되더라도 현실도피를 위해 나쁜 일에 빠져 시간을 버리고 몸과 정신이 상하는 괴로움을 막을 수 있는 이득이 있죠.

 

이런 식의 사고 전환은 당연히 아주 꾸준히 연습해야 해요. 하지만 꾸준한 반복만 이어진다면, 분명 엄청난 효과가 있어요. 특히 '그러면 어떻게 행/동/해야할까?' 를 생각하는 습관 들이는 거. 그리고 제 경험 상, '자학하는 목소리 볼륨을 zero로 만드는 것'은 한번에도 됩니다. 정말 필요성을 절감하고, 그렇게 하겠다고 굳은 결심을 하고, 잘 되든 안 되든 비아냥거리는 내부 목소리가 들릴 때마다 '닥쳐 조용히 해 꺼져 난 니말 안 들어!!'하면서 그 목소리를 완전히 무시하시면 됩니다. 혹여 까먹고 자학을 계속 했다가도, 생각 나는 순간 다시 '닥쳐!!' 하고 무시해주세요. 혹은 아예 '비판적 목소리' 자체를 소거시켜버리세요. 시도해보면 할 수 있어요. 

 

그리고 제 경우는, 위빠사나 명상법을 좀 익힌 후에, 내부 비판의 목소리가 있을 때 그것을 알아차림 하며는 그 목소리가 저절로 샥 사라져요. 원래 바라보면 사라지거든요. 그래서 어지간한 부정적인 감정이나 사고들은, 위빠사나 명상의 알아차림을 하는 와중 그냥 소멸 되어요. 아주 좋죠. 하여튼 그렇게 내면의 비판적 목소리를 바라보면, 사라지고, 그 와중에 확실히 알게 되어요. 내부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올 때는, 몸의 상태나 기분이 좋지 않은 경우가 대다수라는 거. 남을 비방하고 괴롭히는 사람은 사실 자기 자신을 정말 싫어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제 몸상태가 찌뿌둥하고 안 좋거나 감정적으로 짜증이나 불안, 우울에 차 있으면, 그렇게 안 좋은 상태의 또다른 내가(스키마요법으로 따지면 처벌적인 부모 모드, 혹은 내면의 면박꾼이.) 나를 공격하는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지르고 있더라고요.  잘 보면 꼭 같이 연결되어 있어요.  그래서 스키마치료에서 '모드'를 정의할 때 '정서상태 및 대처방식'이라고 했나봐요. 특정 생각에는  정서가 같이 따라가고, 그 정서의 바탕이 되는 신체적 반응이 동반하죠. 그리고 깊은 알아차림은 이 세가지를 싹 다 뒤집어버리는 것 같아요. 그런데 명상을 하지 않더라도, 그냥 '생각' (내면의 비판적 소리)에 대해 '닥쳐!! 난 니말 안 들어!!'하고 단호하게 대처하고 볼륨을 zero로 만들어 줘도, 우울하고 끔찍한 정서와 몸의 찌뿌둥한 상태도 같이 사라진답니다. 생각이 바뀌면, 정서도 바뀐다는 것이 인지치료의 기본이니까요. 참 하기 쉽죠. 꾸준히만 하면 효과도 좋고요.

 

 

 

 

10.

 

 

그리고 더불어, <나는 오늘도 나를 응원한다> (비지니스 북스) 이 책도 추천. 자존감을 살리기 위한 다양한 방법들, 바로 사용해 볼 수 있고 바로 효과를 보는 생활 속의 방법들이 아주 많답니다. 책 속의 방법 하나를 더 소개해볼게요. 이 방법은 '타인이 나를 과하게 비난하고 심지어 괴롭히기까지 할 때!!' 사용하는 방법이에요.

 

당신을 폄하하고 깎아내리는 사람들에게 대처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건 내 이야기가 아니에요. 당신 이야기겠죠.", "그렇게 말하는 걸 보면 당신은 스스로에 대한 불만에 가득 차 있는 게 분명하군요.", "당신이 다른 사람을 계속 비판한다면, '난 내가 만족스럽지 않아'라고 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예요."라고 속으로 생각하거나 말하는 것이다. (뜬금없이 들러붙는 인터넷 악플러들을 상대하는데도 탁월한 방법임.) 

 

(생략)

 

 나는 종종 괴롭힘을 당하는 아이들을 상담하는데, 그때마다 괴롭히는 친구한테 이렇게 말하고 조언한다. "오늘은 네 자신이 정말 싫은가보구나. 네 기분이 엉망이라서 이러는 거지?" 평범한 듯한 이 말은 정말로 효과를 발휘한다. 남을 괴롭히는 것은 실제로 자기 자신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나타나는 행동이다.... 만일 당신이 누군가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면, '나를 좋아해줘'같은 말을 하거나 그런 메세지를 담은 행동을 해서는 절대 안된다. 오히려 당신은 '나는 나 자신을 좋아하니까 당신이 나를 좋아할 필요는 없다.'는 메세지를 담은 행동을 보여야 한다.              <나는 오늘도 나를 응원한다.> pp.99~100

 

 

타인에 대해 세상에 대해 툴툴대는 사람은 사실은 자신이 너무 싫은 사람이라는 점, 경험자로서, 백번 동감입니다. 반대로 자신을 사랑하고 자존감이 넘치는 사람은 타인의 단점이나 실수에도 너그럽고 이해심이 있죠. 혹은 타인이 나에게 뭘 하든 별로 신경을 안 쓰기도 하고요. 어쨌든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있으니까. 그래서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대인관계도 잘 풀리고, 연애도 잘하고, 남들을 위해 세상을 위해 생산적인 일을 쉽게 할 수 있죠. 사람은 결국 자신이 가진 것만을 줄 수 있으니까. 나를 사랑하는 것은 그래서 중요한 것 같아요. 자학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존감을 살리기 위해, 내 삶의 행복을 위해, 또 대인관계의 근본적인 개선을 위해, 그리고 인생의 목표를 성취하고, 더 큰 무언가를 하기 위해. 모든 것은 나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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