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 다이너마이트>를 보고

2019.11.14 16:49

Sonny 조회 수: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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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 다이너마이트>에는 이상한 점이 있다. 나폴레옹과 뎁이 어울리는 엔딩은 흔한 하이틴 드라마의 공식처럼 보인다. 못생기고 잘난 거 하나 없는 남자 청소년이, 얼굴은 괜찮지만 살짝 바보같은 여자친구를 사귄다는 결말은 자연스러울지도 모른다. 끝에 가면 나폴레옹의 형 킵, 나폴레옹의 할머니, 나폴레옹의 삼촌 리코, 나폴레옹의 친구 페드로, 나폴레옹의 주변사람 모두에게 함께하는 이가 곁에 있다. 뭘 원하고 부족하다 느끼든, 이 바보같은 사람들에게는 아무튼 같이 있어주는 사람이 존재한다. 그런데 다시 묻게 된다. 이 영화는 연애를 하고 싶어하는 남자 청소년의 이야기였던가. 혹은 외로워하는 청소년의 빈자리를 메꿔주는 이야기였던가. 영화는 단 한번도 나폴레옹의 고통을 이야기한 적이 없다. 보통의 청소년들이 의례 안달복달하게 마련인데도 나폴레옹은 태평하고 제마음대로다. 물론 나폴레옹은 졸업댄스파티를 같이 갈 짝을 찾지만, 그는 생각만큼 절실하지도 비참하지도 않다. 그리고 영화는 심지어 댄스파티가 끝난 다음에도 계속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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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청소년기는 인간의 평생을 쫓아다닐 실패와 비관의 꼬리가 본격적으로 꿈틀대기 시작하는 시기이다. 동시에 이를 처음으로 극복하는 최초의 성취기간이기도 하다. 왜 나는 못생겼을까. 왜 나는 공부를 못할까. 왜 나는 인기가 없을까. 왜 나는 돈이 없을까. 왜 나는 꿈을 이루지 못할까. 자신과 세계에 만족하지 못하는 주인공이 이를 충족하려 할 때, 이야기가 시동이 걸린다. 어떤 결여나 궁핍 앞에서 자존감을 지키려 하는 게 본능이니까. 그런데 <나폴레옹 다이너마이트>는 10대 남자아이에게 있을만한 결핍으로 시동을 걸지 않는다. 그래서 <나폴레옹 다이너마이트>에는 도착지는 있으나 일반적인 출발선이 없다. 분명 니폴레옹은 불만가득한 소년이다. 그는 툭하면 옆사람에게 짜증을 내고 모든 사람을 바보취급한다. 그러나 그의 강한 자기중심적 세계관에는 "왜 나는 XX하지 못할까?"라는 두려움이나 자기비하의 그늘이 없다. 그가 졸업댄스 파트너로 트리샤에게 들이대는 모습은 어떠한가. 난 아무런 스킬도 없어! 나폴레옹이 투덜거릴 때 페드로는 영혼없고 성실한 격려로 그를 북돋는다. 넌 그림을 잘 그리니까 그림으로 한번 꼬셔봐! 그리고 영화는 어찌됐든 나폴레옹이 트리샤와 졸업댄스파티에 갈 수 있도록 만든다. 이처럼 영화는 이 멍청한 남자애가 자기연민의 늪에 발을 디딜 틈을 주질 않는다. 관객 역시 괜한 우울을 각오할 필요가 없다. 되고 그만, 안되도 그만, 어찌됐든 나폴레옹은 처음부터 끝까지 정신승리를 해나간다. 그는 리코 삼촌같은 얼치기 외부인만 아니면 계속 남들을 깔보고 자기 세계를 긍정하며 살아가는 슈퍼 - 초 - 포지티브 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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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하면 나폴레옹은 못생기고 바보같은 남자애다. 거기다가 그가 하는 "짓거리들"은 탄식이 나올 정도로 찌질스럽다. 버스에서 하는 인형놀이나 유니콘 그림 그리기등을 보면 그가 정신적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궁금해진다. 거기다 그는 학교에서 잘나가는 부류에게 늘 비웃음을 당하고 덩치큰 동급생에게는 늘 괴롭힘을 당한다. 하는 짓도 당하는 짓도 몽땅 최악이다. 그럼에도 나폴레옹이 딱히 현재로부터 탈출을 꾀하지 않는 이유는 그세계가 그를 압박하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 속 세계 전체에 유아적인 공기가 가득하다. 아이다호 주의 어느 시골 지역, 옆동네에는 농부 아저씨들이 살고 있고 나폴레옹의 할머니는 라마를 키운다. 나폴레옹을 비웃는 이들도 아주 잘난 느낌은 아니고 나폴레옹을 때리는 동급생도 갱의 느낌보다는 힘만 센 바보의 느낌이 더 강하다. (심지어 그는 나폴레옹의 주머니 안에 있는 감자튀김을 탐낸다!) 이 영화에는 바쁘게 움직이고 계급상승을 꾀하는 어른의 세계, 특히 도시적인 느낌이 없다. 이 영화 속 유일한 어른이라 볼 만한 리코 삼촌도 나사가 빠져있다. 청소년들이 유사어른으로서 욕망을 탐하거나 휩쓸리는 이야기들에 비교해보면 나폴레옹의 세계는 현실과 유리되어있다. 모두가 맹하거나 대충대충, 야심과 탐욕이 없고 바보들의 유니콘 천국 같은 붕 떠있는 느낌을 준다. 어떻게 보면 이 영화는 나폴레옹의 성장과 무관하게 그 자체로 유토피아를 제공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나폴레옹은 똑똑한 사람들 가운데 모자란 인간이 아니라, 조금 나은 바보들 사이에서 오리지널 바보로 살아 숨쉰다. 이 바보들의 세계에서 나폴레옹은 이미 완성된 인격체 그 자체이다. 그는 성장이나 변신이 필요치 않다. 그래서 보는 사람도 나폴레옹의 성공이나 실패에 크게 연연하지 않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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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하이틴 드라마에서 이같은 "유아화"를 꾀하는 것은 그 자체로 동화적이다. 질풍노도의 시기에 공부를 잘하고, 운동을 잘하고, 잘 생기고, 특출난 주변인들을 보며 시기하지 않을 수 있는가. 나폴레옹은 "나도 누구처럼"이라며 자신을 타인과 비교하고 그리 되기를 꿈꾸지 않는다. 그리고 나폴레옹의 영화 속 세계에는 딱히 본받을만한 인간도 없다. 이미 나보다 더 잘나게 존재하는 인간, 즉 자신보다 더 상위계층에 속하는 인간을 흉내내며 벌이는 계급투쟁이나 인정투쟁이 없다. 나도 저 사람처럼 잘나져야지, 나는 저 사람보다 더 잘난 사람이 되어야지, 나는 지금의 못난 나를 극복해야지, 와 같은 사회적 욕망이 없다. (학생회장이 되려는 것도 주인공인 나폴레옹이 아니라 나폴레옹의 친구 페드로다!) 이미 유아적 판타지를 체현한 영화 속 세계는 보는 이에게 이상한 위로를 준다. 왜 그렇게 아둥바둥 더 잘나지고 덜 못나지려고 기를 써야하는지, 해방같은 의문을 품을 수 있다. 그러니까 뭐 어떻냐는 말이다. 저렇게 튀어나온 주둥이를 갖고 덜 떨어진 소리나 하고 다니는 나폴레옹도 별 생각없이 헤벌레 잘만 살고 있는데. 타인의 인정과 사랑이 그렇게 중요한가? 나폴레옹의 세상이라고 귀찮은 일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폴레옹은 자유롭다. <나폴레옹 다이너마이트>는 모든 사람을 아이로 돌려놓으면서 어른의 스트레스에서 우리를 탈출시킨다. 이 영화 속 실패는 죄다 우스꽝스러운 해프닝으로 끝난다. 자전거로 점프를 못하면 어떤가. 그냥 고환이 X나게 아플 뿐이다. 나폴레옹의 세계에서는 뭔가를 잃어버리거나 추락하는 게 없다. 아이들의 세계란 성장을 위한 것도, 퇴보에의 저항도 아닌 그 자체로 그냥 좋고 웃긴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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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댄스파티와 테더볼 엔딩씬이 주는 이상한 여운을 곱씹게 된다. 분명 이 영화는 나폴레옹이 뎁을 만나 특별한 관계를 만들어나가기까지를 보여주는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테더볼을 같이 하는 게 아니라 졸업댄스파티로 끝나야 하지 않았을까? 여기서 영화는 다시 한번 성인의 욕망을 이입하려는 관객에게 "Idiot!"이라는 일갈을 날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하게 된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인정투쟁이다. 그것은 내가 나를 좋아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한 어른들이 어떻게든 타인에게 자아를 위탁하는 정치적 관계이기도 하다. 브라이언 드 팔마의 <캐리>는 어땠는가. 이 무시무시한 영화는 엄마에게 사랑받지 못한 청소년 여자가 또래들의 세계에서도 끝내 거부당하면서 모든 세계를 다 박살내버리는, 인정투쟁의 실패를 다루는 신화이다. <나폴레옹 다이너마이트>에는 그런 관계의 압박이 없다. 나보다 잘나거나 못난 그런 친구로서 일종의 보상효과를 누리는 성인의 관계가 아니다 .얼떨결에 친해져서 그저 뭘 하면 신나고 짱이겠거니 하는 모험의 동지이다. 어릴 때는 그저 우연한 계기로 공통의 흥미를 찾아 놀 궁리만 열심히 하지 않았던가. 댄스파티로 끝이 났다면, 영화는 여자친구를 "획득"하면서 관계를 통해 자신의 컴플렉스를 극복해나가는 흔한 정상남자의 이야기가 되고 말았을 것이다. 댄스파티에서 트리샤가 도망갔어도, 비록 페드로의 파트너인 뎁과 춤을 추고 있어도 큰 상관은 없다. 쌍방의 욕망을 통용시킬만한 "자격"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이 세계는 아주 외롭지만은 않고 다정함이 남아있다는 게 중요하니까. 엔딩씬에서 나폴레옹은 뎁과 테더볼을 같이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내 하던대로 신나서 테더볼을 혼자 미친듯이 후려치며 뱅뱅 돌린다. 이 영화가 평범한 연애스토리였다면 나폴레옹은 안경을 벗고 스트레이트 펌을 한 뒤 근사한 옷차림으로 뎁과 나이스한 데이트를 즐기면서 끝이 났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나폴레옹은 그대로다. 이 영화는 외로워서 못하던 걸 둘이 되서 할 수 있게 되는 모쏠극복 커플천국으로의 진입이야기가 아니다. 아무도 봐주지 않던 나를 이제는 누가 정면으로 바라봐주고 같이 어울려줄 수도 있는, 그런 단짝 친구를 만들 수 있는 세계의 이야기다. 어쩌면 뎁과 나폴레옹의 관계는 커플이라고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나폴레옹이 뎁에게 던지는 마지막 대사, "Do you want to play with me?"는 동화적 세계관을 끝맺는 가장 보편적인 대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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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가 나폴레옹의 원맨댄스인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내 친구를 난처하게, 외롭게, 슬프게 할 순 없어! 동화적 언어로 번역한다면 "그래서 나폴레옹은 선거에서 질 것 같다며 울상을 짓는 페드로를 위해, 비장의 댄스를 준비했답니다." 그리고 나폴레옹은 라폰두의 사촌이 녹음했다는 테이프를 켜고 춤을 추기 시작한다. (그런데 기가 막히게도 그 사촌이 자미로콰이다...) 의외로 유연하게 움직이는 허리, 쭉쭉 뻗어나가는 팔다리. 팀벌레이크나 어셔같은 끗발은 없지만 리듬을 착실히 따라나가면서 뱀장어처럼 흐느적대는 나폴레옹의 춤사위에는 완전히 눈길을 빼앗긴다. 자기도 모르게 손끝과 허리돌림에 인상을 쓰고 눈을 부릅뜨는 것처럼, 카메라는 수차례 줌인을 반복하며 오두방정을 떤다. 도대체 관객을 설득할만한 춤솜씨는 아니다. 나폴레옹은 여전히 못생겼고 음악은 쓸데없이 힙하다. 춤을 추는 도중 관객 누구도 흥을 타며 즐기지 않는다. 앞서 썸머와 트리샤가 치어리더 컨셉으로 했던 공연만큼 반짝이거나 화려한 것도 없다. 그럼에도 나폴레옹은 춤을 춘다. 이게 나고, 이게 나다! 렉스퀀도 도장에서 처음으로 배웠던 그 말, 친구의 등을 지켜주라는 말을 실천함과 동시에, 누가 좋아하든말든 자신에게 빠져든 자신을 가감없이 공개한다. 춤솜씨와 퍼포먼서가 무엇이 그리 중요한가? 비트에 영혼을 맡긴 채 온몸으로 자기애를 뿜어내는 독립된 인간이 무대 위에 서있는데. 나폴레옹 다이너마이트는 인정투쟁에 파업을 외치고 원래 그대로의 자신을 폭발시킨다. 그렇게 말하면, 그렇게 걸어다니면, 그런 표정을 지으면, 그런 걸 좋아하면, 그런 춤을 추면 남들한테 인기없다구? 뭐 어쩌라구! 멍청이! 나폴레옹의 댄스에 계속 빠져드는 것은 우리 모두가 이루고자 해도 이루지 못하는, 고고하고 자유로운 인간이 그 순간 나타나기 때문이다. 결과는 어떤가. 나폴레옹은 늘상 그렇듯이 상반신 마비주법으로 무대에서 도망간다. 그리고 이어지는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 세상의 사랑을 받으려 애를 쓰는 게 아니라 세상의 사랑을 아랑곳하지 않는 자가 오히려 사랑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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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같이 보여도, 세상의 인정을 받지 못해도 상관없다. 있는 그대로의 내가 나를 얼마나 충실히 사랑할 수 있는가. 이 충실한 자기만족은 어른들의 약삭빠르고 재기바쁜 세계에서는 절대 이룰 수 없는 쾌거다. 돈, 외모, 차, 집, 직장, 외국어, 하여간 첫눈에 스캔할 게 많기도 많은 이 세상에서 좀 찐따같은데 이상하게 멋진 퍼포먼스의 순간을 우리는 과연 현실에서 만들 수 있을까. 알 수 없다. 그저 내가 나를 사랑하는 방식을 친구 앞에서 두려움없이 내펼쳐보일뿐! 아무튼 모두는 제 방식대로 행복해질 것이고 어리석은 희망을 보답받을 것이다. 불우하고 늙어갈 뿐인 우리는 자기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웃기는 짓들로 계속 실험할 수 있을 것이다. 좀 웃기고 창피하다고? 멍청이! 근데 너 나랑 놀래? 나폴레옹은 우리에게 이상한 용기를 충전한다. 내가 아무리 못나고 애인도 없지만 그래도 너네가 틀렸어 멍청이! 이제는 나폴레옹에게 대답해야 할 타이밍인지도 모른다. I wanna play with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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