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보기에는 그래요. 대부분의 남자는 황야에 홀로 던져진 이리와도 같아요. 먹이를 찾아다니고...쓸모를 인정받아야만 무리에 들어가는 것을 허락받고...외로움을 달래 주는 것을 댓가로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보호를 제공해줘야 하는 여자를 찾고...쓸모가 없어지는 날 무리에서 버림받아 쓸쓸히 죽음을 기다려야 하는 이리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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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몇몇 페미니스트들은 남자들이 권력자라고 하지만 글쎄요. 엄청난 유동성을 가졌거나 모두가 욕망할 만큼 뛰어난 용모를 지녔거나 잘 알려진 유력자의 자식이거나...하는, 직관적인 장점이 없는 대부분의 남자들에게 주어지는 건 특권이 아닌 의무뿐이예요. 세상은 아무것도 아닌 남자들을 공짜로는 사랑해 주지 않으니까요. 조던 피터슨이 말했듯 남자들간의 관계는 힘에 의한 상호 위협으로 형성되죠. 간신히 무리에 들어가도 소위 같은 편이라는 놈들과 끊임없이 서열 싸움과 암투를 벌여야 해요.


 남자들은 생판 모르는 놈들에게도 갑자기 시험당하고 평가당하는 경우가 많아요. 어쩔 수 없어요. 남자들은 이 세상이 남자들에게 제공하는 허들을 뛰어넘으며 살아야만 하니까요. 하나의 허들을 뛰어넘으면 그 다음에 올 허들을 뛰어넘을 준비를 하고...또다시 준비를 하고...그래야만 하죠. 업무를 평가하는 상사부터 신혼 아파트는 30평 넘는 걸로 구해오라는 장모, 새로 나온 비싼 스마트폰을 사달라는 자식까지...세상은 온갖 모습의 허들로 남자들에게 다가오고, 남자들은 세상이 제공하는 허들을 뛰어넘을 준비를 늘 하고 살아야 하죠.


 그리고 그렇게 자신을 증명하는 건 설렁설렁 해서 되는 일이 아니예요. 최선을 다해야만 간신히 해낼 수 있는 것들이죠.


 

 2.요즘 페미니즘 시위 때문에 세상이 시끄럽네요. 전에 썼듯이 나는 비명지를 수 있는 가엾은 놈들에겐 관심없어요. 내가 연민하는 사람들은 비명지를 수 없는 가엾은 사람들이니까요. 


 남자들은 비명지를 수 없는 것이기도 하고 비명지르지 않는 것이기도 해요. 첫번째로는...징징거리는 건 남자로서의 점수가 깎이는 일이기 때문이죠. 두번째로는 남자들은 원래 연대하는 걸 싫어해요. 남자들은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공유하지 않고 독점하려고 하는 경향이 짙으니까요.

 

 '그럼 너는 어떤데?'라고 묻는다면, 몇 번 썼듯이 나는 남자가 아니거든요. 스스로를 남자 따위라고 여기지 않아요.



 3.하지만 내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든, 세상은 나를 남자라고 인식하죠. 그렇기 때문에 다른 남자들에게 주어지는 허들은 내게도 똑같이 주어져요. 그건 존나 엿같은 일이면서 어쩔 수 없는 일이죠.


 세상은 남자들에게 비웃는 얼굴로 허들을 제시하거든요. '너 이거 뛰어넘을 수 있어?'라는 듯 옆에서 느물거리며 쳐다보죠. 사실 그들에겐 아무래도 좋아요. 허들을 넘는 데 실패하거나 상대하지 않고 비켜가면 조롱해버리고, 허들을 넘으면 인정해 주면 그만이니까요. 그러나 나는 어느 쪽도 싫은거예요. 누군가가 억지로 제시한 허들이라고 해도...아무리 무례한 태도로 허들을 넘어 보라고 해도...넘지 못하거나 그냥 피해가버리는 건 싫어요. 피해가버리면 그걸 사람들은 무시하는 게 아니라 도망을 가는 거라고 야유해댈 거니까요. 그렇다고 해서 허들을 간신히 넘어서 사람들에게 적당히 인정받고 같은 편이 되어버리는 것도 싫어요.


 멋대로 허들을 들고 와서 이걸 넘어보라고 하는 놈들을 놀라게 해주는 것...그게 내가 바라는거죠. 아니, 그건 나만이 그런 건 아닐 거예요. 인간이라면 다 그럴 거예요. 같잖은 놈들이 가져온 허들이 무색할 정도로 높이 뛰어올라서, 허들을 넘어 보라고 한 자식들을 벙찌게 만들어버리고 싶다...무안하게 만들어버리고 싶다...라는 마음을 늘 품고 있겠죠. 그렇게 강한 사람이 되는 게 세상에 멋지게 보복하는 방법이니까요.



 4.휴.



 5.다른 남자들이 어떻게 사는지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나는 그래요. 태어나버린 이상 결국...나를 둘러싼 환경보다도 강해질 수밖에 없다고 믿는단 말이죠. 맞아요. 세상은 존나 잘못되어 있긴 해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남자들과 한데 뭉쳐 비명지르거나 더 나은 대접을 구걸하거나 하지는 않아요.


 왜냐면 나는 알거든요. 비슷한 처지의 다른 사람들과 연대하는 순간 스스로가 약자라는 것...앞으로도 계속 약자일 거라는 걸 마음속으로 인정해버리고 마는 거라고 말이죠. 스스로의 힘으로는 나 자신을 늪에서 건져올릴 수 없다...라고 인정하는 거라고 말이예요. 그건 말 그대로, 마음이 꺾여 버리는 거죠.


 하지만 마음이 꺾여버린 채로 살 수 있을까...? 라고 묻는다면 아니예요. 내 비명 소리를 세상에 들려 주느니 그냥 황야에서 쓸쓸히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하거든요. 하지만 그렇게 됐다고 해도...부당하다고 여기지는 않았을 거예요. 세상은 아무것도 아닌 남자들을 공짜로는 사랑해 주지 않는다는 것...그리고 그건 세상을 원망할 일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걸 오래 전에 받아들였기 때문에 남자인 거니까요. 


 그러니까 절대로 남과 연대할 일따윈 없는 거예요. 그 정도까지 궁지에 몰려버렸다면 자살을 하고 말지, 남에게 도움을 구걸하지는 않을 거니까요.

 


 6.이 글은 꽤 전에 쓰다가 만 거예요. 위에서 '요즘 페미니즘 시위 때문에'라고 쓴 것에서 알 수 있듯이 혜화역에서 한참 시위가 빈발할 때 썼었죠. 쓰다가 귀찮아서 말았는데 쓰다 만 게 저장되어 있어서 그냥 써봐요.



 7.사실 내가 남자라는 잔재는 거의 없어졌어요. 나는 남자로서의 역할이나 남자로서의 책임이 요구되는 상황을 거의 안 겪게 됐거든요. 노력해서 그렇게 만들어 놨죠. 남자로서의 역할은 아직 종종 요구되지만 몇몇 멍청한 사람들에게서 말고는 남자로서의 책임이 요구되는 일은 없어요. 왜냐면 내가 겪는 대부분의 상황에서 나는 손님이니까요. 손님은 여자든 남자든 돈만 잘 내면 되는 거고요. 하지만 그건 손님으로서의 책임일 뿐이죠.


 손님이라는 건 뭐랄까...고객이라는 뜻도 있지만 왔다가 떠날 사람이라는 뜻도 있잖아요. 그렇게 살기 시작했을 때는 구매력을 행사하는 갑(甲)으로서의 이점만을 느끼며 살겠지만, 그 상태로 시간이 가면 갈수록 '그곳에 속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의미 또한 크다는 걸 늘 느끼며 살게 돼요. '어디서나 손님이라면' 좋고 편한 점도 있지만 쓸쓸한 점도 있죠. 반드시 이점만이 있는 건 아닌거예요.


 어떤 곳에 속하게 되면 외로움은 덜해지겠지만 짊어져야 할 짐의 무게는 무거워지겠죠. 하지만 결국 (마음이)약해져버리면 적당히 같이 지낼 무리를 찾아서 들어가야 할지도 모르는 일이예요. 잘 계산해서 선택해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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